제7구역 - 오래된 쉼터 (3)
쾅! 콰가강-!!
콰아아앙!!
테르멘 전사들이 내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간다.
[용인화]나 [광폭화]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강력한 일격들이 그들의 몸에 꽂힌다.
이제는 내 기본 능력치도 S급에 다다를 정도로 성장했고, 또 내 신체를 보조하는 다양한 룬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어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렬한 힘을 뿜어내고 있는 이유.
그건 내 양손에 꽂힌, 각종 마력석으로 빛나는 ‘너클 아이템’ 때문이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공멸의 권무
◎종류: 너클
◎등급: 에픽(Epic)
◎내구도: 손상
◎제작자: 최유민, 이현호
◎특수효과
1) 근력+3 속력+3
2) ‘장비 파괴’ 효과가 상시 적용된다. 상대가 착용한 장비의 등급이 에픽 이하라면, 높은 확률로 망가뜨릴 수 있다.
3) ‘공멸의 힘’ 효과가 상시 적용된다. 상대의 내구를 50% 감소시키며, ‘격투’와 관련된 공격의 위력이 20% 상승한다. 대신, 본 아이템의 내구도 또한 그와 반비례해 깎인다. 내구도는 수리가 불가하며 ‘파괴’ 상태가 될 경우 모든 효과가 사라진다.
◎파생스킬: -
◎세부정보
: 최고의 재능을 지닌 대장장이들이 합작해 만들어낸 너클. 걸출한 대장장이들의 역작인 만큼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 또한 상당하다.
‘정말 제대로 만들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 공략 성과가 아닌 대장장이들이 만들었다는 것, 그것도 이계에 살아본 적도 없는 홀더 두 명이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부탁하긴 했지만….’
사실 너클 아이템의 제작은 예전부터 부탁했던 내용 중 하나다.
[전사들의 강화술]이나 [끓어오르는 늑대인간의 힘] 같은 룬을 획득하게 되면서, 나는 검뿐만 아니라 격투술에 있어서도 꽤 깊은 조예가 생겼다.
실제로 검술을 다루면서도 격투술을 많이 활용했고, 맨몸으로 전투를 치를 때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최유민과 이현호가 클랜에 들어왔을 때, 쓸 만한 너클 아이템을 제작해줄 것을 부탁했었다.
국내 최고의 대장장이로 성장할 두 홀더들이라면, 뭔가 제대로 된 걸 하나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이건 너무 좋잖아.’
두 사람이 합심하니 정말 걸출한 역작이 탄생했다.
비록 내구도를 함께 갉아먹으며 수리가 불가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만 활용하면 되니까.
게다가 너클을 활용할 때의 장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테르멘의 의지 중 ‘결집’이 발현됩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무구에 순도 높은 마력이 응집되고 있습니다. 언제든 이 마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벨테인>의 중립지역 공략 중 마지막 테르멘 펠타네드를 처치하고 획득했던 [결집의 의지].
이 룬은 전투 도중 내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무구에 마력을 응집시키는 능력인데, 리치가 기다란 검보단 하나로 집중된 너클에 훨씬 감응력이 뛰어났다.
즉, 쉽게 말하면-.
‘주먹 한 방 한 방이 풀마력 핵펀치인 거지.’
상스럽긴 해도 정확한 표현이었다.
어쨌든 강력한 에픽 무기와 감응도 높은 룬을 활용한 공격은 효과가 확실했다.
-크아악!! 도대체 이게 무슨?!
-이런 비겁한!! 정정당당하게 검을 들어라!!
테르멘 전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갔다.
검 대신 주먹을 드는 게 왜 비겁한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내 공격에 반격조차 제대로 못하며 쓰러졌다.
난전 상황에선 제이텐도 필요 없었다.
속력과 룬 레벨을 고려하면 내 돌격이 제이텐보다 훨씬 빠르다.
나는 맨발과 맨손을 활용해 전장을 휩쓸고 다니며, 위기에 빠진 동료들을 구하고 적들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전투가 격해지기 시작할 때쯤.
“마스터! 뱀파이어의 상징 마법입니다!”
후방에서 전장 조율을 맡던 클랜원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쿠구구구-.
화르륵-!!
그의 말처럼, 테르멘 전사들의 후방 지역엔 남작급 뱀파이어들이 단체로 상징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작위가 낮을수록 상징 마법의 종류 또한 단순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뱀파이어들은 아무래도 ‘속성’과 관련된 상징들을 보유한 모양이다.
주변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땅이 뒤집히려는 중이었다.
‘직접 막아도 되겠지만….’
이들의 마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연합군 병력을 지휘해 전략적으로 막아도 되고, 아니면 내가 직접 나서서 저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려도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있었다.
“리플리.”
[계약의 부름]을 활용해, 내 네 번째 계약자인 리플리를 불러온다.
“-음?”
리플리는 소환되자마자 주변을 둘로보고, 3초도 안 돼 가볍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곤 팔짱을 끼며 날 바라봤다.
“또 뱀파이어야?”
“이쪽은 네가 전문일 것 같아서.”
“흥. 귀찮아 죽겠다니까.”
틱틱대는 건 여전하지만, 그녀의 발 밑과 손끝에선 어느새 마력이 올라오고 있다.
Max 레벨에 다다른 [스며드는 씨앗].
그녀의 주력 마법인 ‘씨앗’의 상징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저건 리플리 백작?
-말도 안 돼! 우아한 건축가가 여길 대체 왜?!
마법을 준비하던 상대 측 뱀파이어들은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벨테인>을 벗어나 <이탈자의 방>으로 와 정착했는데, 이곳에서 무려 백작급의 뱀파이어를 마주칠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어디 한 번 똑같이 당해봐라.’
전사들의 전투엔 전사의 힘으로.
뱀파이어의 전투엔 뱀파이어의 마법으로.
제7구역 공략을 준비하며 마련한 너무도 간단한 공식이었다.
* * *
“살아남은 테르멘 전사는 없습니다! 전원 사망입니다!”
“대승! 대승입니다!”
<이블 헌터> 연합군은 제7구역에서 연전연승을 거뒀다.
테르멘 전사들은 무릎을 꿇으며 죽어갔고, 뱀파이어들은 허망하게 소멸한다.
구역 내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족족, 압도적인 수준의 승리를 거뒀다.
물론 워낙 대형 전투이기 때문에 사상자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공략을 이어갔다.
“교란의 팻말이 큰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그중 가장 큰 활약을 한 건, 역시 R&D팀이 남기고 간 마도구들.
사실 제7구역 공략의 커다란 걸림돌 중 하나였던 게 바로 마력 함정이다.
온갖 디버프를 선사하고, 전투 도중에도 까다로운 효과들이 발동됐던 함정은 [교란의 팻말]을 비롯한 마도구들을 통해 그 효과가 완전히 상쇄됐다.
그것만으로 이미 제7구역 공략의 절반은 해결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건 똑같으면 그때부턴 퀄리티 싸움이지.’
숫자 싸움이 아니다.
퀄리티 싸움이다.
홀더와 괴수 간의 전투.
혹은 홀더와 적응자 간의 전투에서 중요한 건 오직 전투의 수준 차이.
B급 괴수 한 트럭을 데려다놔도 공격형 전사 계열 A급 괴수 한 명을 죽일 수 없다.
결국 강하고 능력 있는 병력이 많은 쪽이 승리를 거둔다.
‘고르고 고른 선별 병력이니까.’
이번 ‘<이블 헌터> 연합군’에 지원한 병력은 모두 B급 홀더 이상.
각자의 클랜에서, 혹은 무소속 계에서 한 가닥 했던 정예 홀더들이 모두 모였으니… 전투의 수준이 낮을 수가 없다.
거기에 더해, 테르멘 및 뱀파이어들에 맞춤으로 공략을 준비해 온 내 전략까지.
비록 한달밖에 준비하지 못했지만, 이미 우리는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춘 상태였다.
“마스터. 테르멘의 흔적이 새로 발견됐어요.”
사냥4팀 팀장이자 탐색 부대의 부대장을 맡은 김아름이 내게 다가와 보고했다.
나는 살짝 숨을 고르며 그에 반문했다.
“위치는요?”
“북동부 쪽. 저희가 계속해서 전진하던 방향의 끝자락이에요.”
“이제 슬슬 다 왔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네. 그리고….”
김아름이 살짝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이번 병력은 그 기운이 상당히 강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요?”
“지금껏 마주친 테르멘의 전사들이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중급의 실력이었다면, 지금 앞에 있는 적들은 상급- 그리고 그 이상의 병력들도 확인되고 있어요.”
김아름의 말에 잊고 있던 적들의 병력을 떠올렸다.
족장 전사 타슈마드.
최상급 전사 알드레드와 그리멜드.
그리고 상급 테르멘 전사 20명.
<벨테인>에서 올란드가 설명해준 그 병력의 핵심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중하급 전사들 및 남작급 뱀파이어들.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실력자들이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격전이 일어날 것을 직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 새 명령을 하달할 테니-”
“그런데 마스터. 그게 끝이 아니에요.”
순간 김아름이 꽤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을 잘랐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미 확인된 전력만으로 충분히 위험한데, 뭔가가 더 있다.
…더 있을 게 있나?
거기에 뭐라 의문을 품기도 전에, 김아름이 먼저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래도 루덴아크 학파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검은 마력 말입니까?”
“네. 그리고 절대 평범한 간부의 기운이 아니에요. 지금껏 클랜 내에서 연구해왔던 내용과 울펜서에서의 경험 등을 종합해보면….”
김아름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날 봤다.
“부학파장 데이브. 그 사람의 기운이 확실해요.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의 것도 함께 느껴져요.”
“……!”
제7구역 공략 막바지에, 강렬한 변수 하나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