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3) (본편 完)
카아앙-!!
박진우와 내 손에 들린 철검이 서로 강하게 부딪힌다.
특별한 아이템도, 스킬도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능력치와 검법 룬에만 기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한다.
우리는 지금, 육탄전에 특화된 능력만을 활용하고 있었다.
캉!
카강-!!
엄청난 충격이 부딪히는 검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하지만 단단하게 받쳐주는 보조 룬들과 내구 능력치 덕에, 우리의 얼굴엔 조금도 힘에 부친 기색이 나타나질 않았다.
“크윽- 근력이 대체 몇이냐?”
…정정한다.
힘에 부치지 않는 건 나뿐이었나 보다.
박진우는 지독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주기로 했다.
“118.”
“뭐, 뭐?! 아니, 순수 근력이 뭐 그렇게 높아. 너 능력치 펌핑 스킬도 따로 있잖아.”
아카데미 지하 던전 때부터 시작해, 파티 사냥을 할 때면 거의 박진우와 함께 전투를 해왔다.
오랜 시간을 같이 싸워온 만큼 녀석은 내 능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원래 좀 빠르잖아. 너도 비슷하지 않아?”
“오우, 미친 놈. 난 그 정돈 아니야.”
캉-! 카강-!
부딪히는 검의 속도가 빨라진다.
굳이 특별한 능력을 쓰지 않더라도.
공격 속에 마력을 담지 않더라도-.
검 하나에 담긴 위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연소 S급 홀더인 나.
아직 A급 홀더지만, 나 다음으로 S급을 달 게 유력한 홀더 박진우.
등급, 그리고 계열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검을 쓸 때 가장 강한 홀더들이었다.
카가가강-!!
“흡! 야! 근데! 그거! 기억하냐?”
공격 한 번에 기합을 하나씩 담으며 박진우가 물어온다.
“어떤! 거!”
나 역시 검격에 힘을 실으며 답한다.
우리의 대련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능력치, 무공 룬, 평범한 아이템만을 사용하며 싸운다.
그건 서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른 이후론 마력을 쓰는 것 자체가 위험해졌기 때문.
그래서인지 대련 도중 할 말이 있을 때도, 이렇게 검을 맞대며 말을 걸 수 있었다.
“우리! 처음! 싸울 때도! 네가 근력은 앞서고! 내가 속력은 앞섰던 거!”
“뭐?”
그리고.
거침없이 몰아붙이던 박진우가 씨익- 하고 웃는다.
“그거- 아마 지금도 비슷할 것 같은데?”
쾌검의 달인, 박진우.
녀석이 오늘 대련에 다시 불을 지폈다.
* * *
“진짜 처참하게 발렸네….”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누운 박진우가 허무하다는 듯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말했잖아. 나 강화 관련 룬 얻은 이후론 육탄전에서 잘 안 진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차이가 너무 심해.”
“억울하면 더 실력을 키워서 오도록.”
“하… 몇 연패인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아마 10연패는 확실히 넘을 거다.
내가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룬을 얻은 이후론 녀석에게 진 기억이 없으니까.
박진우는 누워있는 상태로 한숨을 푹푹 쉬다가, 이내 뭐가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드디어 미친 거야?”
친구가 실성하려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온다.
사실 속력마저 내가 더 높았단 사실에 충격이 좀 컸나…?
박진우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조용히 날 불렀다.
“야.”
“왜, 인마.”
그리고.
“고맙다.”
기어코 그 대사를 치고 마는 박진우.
나는 극도의 오글거림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으악! 왜 그러세요, 씨발. 오늘 뭐 잘못 먹었냐?”
“미친 놈. 고맙다고 해도 난리네.”
박진우는 손을 자신의 뒷머리에 대고 하늘을 봤다.
그리곤 조용히 웃었다.
“나 솔직히 스무 살 될 때까진 아무 생각 없이 살았거든. 그냥 아웃홀더들 만나면 줘 패려고 싸움 연습하고, 막상 싸우고 나면 그게 재밌어서 더 잘 싸우려고 훈련했었어.”
박진우의 자기객관화는 정확했다.
녀석은 훈련하고, 연습하고, 싸우는 걸 순수하게 좋아하는 놈이었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가족이었던 박윤서가 납치되기 전까진 별다른 목표가 없었으니까.
“근데 홀더되고 아카데미 오니까, 새로운 목표가 생기더라고. 아, 저 녀석이랑 싸워서 이기고 싶다. 저 녀석이랑 같이 싸울 땐 더 잘 싸우고 싶다… 목표 대상만 하나 바뀐 것뿐인데, 신기하게 인생이 통째로 바뀌더라?”
그랬던 박진우가 변했다.
맹목적인 전투엔 목표가 생겼고, 반복적인 훈련엔 열정이 생겼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엔…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의 외부인이었던 내가 있었다.
‘…아.’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계가 <넥스트 룬 홀더>였다는 것.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빙의해 온 외부인이었다는 것-.
그런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존재하는 지금 세계에서, 서로의 영향을 받아 변화해간다는 것.
과거가 어땠고 이와 비슷한 세계가 어땠는가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지금, 미래를 어떻게 그려갈까를 고민하는 것.
그 방향이 친구든, 라이벌이든, 동료든.
어쨌든 각자만의 방식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나는 그러한 문장들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빛을 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뭔 말 하려고 했더라?”
그런데 박진우가 순간 멍청하게 자문했다.
뭔가 멋들어지게 말을 꺼내긴 했는데, 맺음말을 생각하진 못한 모양이다.
녀석은 이내 머리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아무튼 고맙다고, 새끼야.”
“푸하하.”
한 바탕 웃은 나는 녀석처럼 내 자리에 대 자로 누웠다.
감성에 가득 차서 하늘을 보고 싶은데, 아쉽게 연무장인 터라 검은 천장만 보였다.
…역시 이건 나하곤 안 어울리는 감성이다.
“그래. 넌 나한테 평생 고마워해야지. 카밀라랑 연결시켜준 은인인데.”
그래서 그대로 박진우의 발작버튼을 눌러준다.
우당탕탕-.
녀석은 역시 격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 카밀라가 나한테 먼저 고백했다니까? 어차피 우린 연결될 사이였다고.”
“그래서 그 상황을 만들어준 게 누구?”
“아오-! 일어나. 다시 떠.”
…평화로운 연무장의 풍경이었다.
* * *
[놀라운 업적! 아직 그 누구도 쌓지 못한 금자탑, ‘강림한 악신’을 척살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당신이 보유한 모든 힘이, 빠르고 눈부신 성장을 이룹니다.]
[모든 일반 및 특수 능력치를 각각 5씩, 모든 내성 능력치를 각각 3씩 획득합니다.]
[보유한 모든 룬의 레벨이 1씩 오릅니다.]
[놀라운 업적! 악을 모조하는 무리, 루덴아크 학파가 적응을 마친 영역을 공략했습니다! … …]
…
…
<이탈자의 방> 공략이 끝난 이후.
내게 나타났던 정보창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양이 너무 많아 이를 하나하나 읊을 순 없지만, 요약하자면 “개쩌는 업적을 연달아 해치운 탓에 보상이 쏟아졌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너무 경박한 표현을 썼지만, 팩트다.
이 모든 업적을 토대로 내 일반 능력치들은 대략 10씩 상승을 이뤘고, 특수 및 내성 능력치, 기존 룬 레벨 등도 유의미한 성장을 거뒀다.
특히 악신 루미엘에게서 복제한 신화룬 [고결한 신격]이라거나, <이탈자의 방> 공략 보상으로 획득한 에픽룬 [마도 지식의 정수] 등….
새로 얻어낸 룬의 성능 및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체감이 되는 것.
-길었던 공략의 대서사시가 끝이 났구나.
어마어마한 수준의 보상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니, 그 사실이 정말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들 중 정작 내 시선을 끌었던 건 따로 있었다.
[놀라운 업적! 선택받은 이들의 전유물인 ‘룬’을 추가 한계(50)까지 얻어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최초의 업적으로 인해 특별한 힘이 부여됩니다.]
[룬 사냥꾼에 신묘한 힘이 깃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룬을 획득할 경우,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룬을 삭제하고 새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공략으로 드디어 채워진 50개의 룬.
이번에도 제한 개수를 모두 채우니, 새로운 효과가 나타났다.
기존 룬을 삭제하고, 추가 획득 룬을 등록할 수 있는 효과….
살짝 필요성이 떨어지는 룬도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보유해야 했던 내게 있어, 어쩌면 가장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는 특수효과였다.
이 효과를 읽고 나니…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난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네.”
사실 언제부턴가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상위 룬’과 ‘룬 부여’ 등 그간 보유 룬들을 정리할 수 있는 여러 효과들이 생기긴 했지만, 그러한 정리에도 분명 한계가 있을 거라고.
할 수 있는 정리를 모두 마치고, 보유 룬을 50개까지 모두 채운다면.
결국은 [룬 사냥꾼]의 능력에도 한계가 찾아오리라고.
이제는 꽤 베테랑이 된 사냥꾼에게도…
분명 은퇴가 다가오는 날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해왔었다.
“하하….”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종착역에 도착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오늘 새로운 룬을 얻었다면, 내일 또다시 새로운 룬을 얻으라고-.
시스템과 [룬 사냥꾼]은…
내게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앞에 뭐가 있을지.
가다 보면 과연 끝이 있긴 한 건지….
솔직히 아직도 확신하진 못하겠다.
내가 지금껏 걸어왔던 길은, 확실하다 생각했지만 늘 불확실의 연속이었고.
넘어섰다 생각했지만 항상 새로운 산이 나타나곤 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잘 해낼 거다, 라는 확신은 못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만들어왔으니까.”
지금껏 내가 쌓아온 탑에 결코 우연은 없었다.
모든 것들이 연결고리로 잇고 이어져 만들어진 거대한 필연이었다.
나는 그 필연 속으로…
또다시 나를 던질 생각이었다.
“뭘 만들어왔는데?”
그리고 어디선가.
내 혼잣말에 반응하며 대답하는 목소리.
약간은 차가운 인상과 스타일.
그러나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성품을 지닌 여자.
모든 게 시작된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내 곁에 있어줬던 연인, 김채은.
그녀는 늘 그래왔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구도와 질문.
나는 그 익숙한 풍경에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것들.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
그 대답에…
김채은도,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거기에 나도 포함이야?”
“혼날래? 그걸 질문이라고 해?”
“헤헤.”
그녀가 내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나는 그 팔을 부드럽게 안아주며 길게 늘어선 거리를 그녀와 함께 걸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엔.
이렇듯, 늘 내 사람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그 내일의 내일까지도.
그 발걸음이 언제나 영원할 수 있기를.
떨어지는 나뭇잎 속에, 나는 그런 작은 희망을 담아 보냈다.
…
…
“근데 어떻게 혼내줄 건데?”
“뭐지? 그 기대하는 듯한 표정은?”
“빨리 말해줘~ 어떻게 혼내줄 건데에.”
“푸딩 사오면 알려줄게.”
“설마 포도맛? 힝, 그거 이제 집 앞 마트에서도 안 판단 말이야.”
“그럼 그냥 안 혼내지, 뭐.”
“아, 뭐야아-!”
- (본편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