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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44)화 (344/353)

Side. 스승님이 용기를 낸다면? (1)

서울 관악구.

서울 홀더 아카데미가 자리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엔, 또 다른 명물로 불리는 건물이 있다.

<이블 헌터> 클랜 타워.

S급 홀더를 무려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대형 클랜이자, 최근 젊은 홀더들이 가장 가입을 희망한다는 신흥 클랜.

창설 이후 꾸준히 명성을 키워가고 있는 클랜답게, 클랜 타워의 규모와 디자인도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웅장한 건물 안의 복도.

“부마스터를 뵙습니다.”

새하얀 눈꽃 같은 스타일의 여성을 보자마자, 한 클랜원이 곧바로 고개를 숙인다.

최연소 S급 홀더.

국내 유일 암살자 계열 S급 홀더.

이제는 그 두 타이틀을 한 남자에게 빼앗겨버렸지만, 여전히 암살자 계열에선 국내 최고라고 평가받는 홀더.

그리고 슬슬… <이블 헌터> 부마스터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게 된 듯한 여자.

S급 홀더, 유은설이었다.

“음… 사냥 5팀의 안세린 홀더 맞죠?”

잠깐 고민하다 묻는 유은설에, 인사하던 클랜원이 깜짝 놀라 반문한다.

“마, 맞습니다! 어떻게 제 이름을….”

“당연히 알죠. 우리 클랜원인데. 구 타이탄스 소속 홀더였던 것 같은데, 맞나요?”

“그, 그렇습니다. 와, 와….”

순간 안세린의 눈빛이 감탄과 존경으로 물들었다.

설마 유은설 정도 되는 홀더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같은 클랜이라고 해도, 클랜원 간 격의 차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

<이블 헌터>의 마스터와 부마스터쯤 되는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 국내 홀더 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들.

그중 한 명이 자신의 이름을 외우고, 영입 과정까지 전부 기억해준다는 게… 안세린에겐 무한한 영광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유은설이라는 이름이 지니는 파급력은 엄청났다.

클랜 내에서든, 클랜 외에서든 말이다.

안세린을 바라보던 유은설이 얕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클랜 내에서도 합병됐던 클랜 소속 홀더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어요. 그래도 혹시나 수뇌부에서 놓치고 있는 게 있을 수 있으니, 안세린 홀더도 뭔가 불편한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의견 내주세요.”

최근 <이블 헌터>는 클랜 합병을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블루 아쳐>와 <타이탄스>.

일전에 산하 용병 클랜으로 함께 일했던 클랜들로, 그동안 <이블 헌터>에 부족하다고 평가받던 궁수 계열과 전사 계열 홀더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었던 합병이었다.

어떤 종류의 합병이든 마찬가지로, 구 집단이 신규 집단에 융화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블 헌터> 수뇌부와 운영팀은 이런 점들을 최대한 신경 쓰며, 합병된 클랜 인원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클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깔끔한 운영 덕분에, 합병된 구 클랜 소속 인원들도 별다른 불만을 제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은설의 설명에, 클랜원 안세린도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전혀! 정말 전혀 없습니다!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그리고 마스터도 너무 잘 해주셔서….”

…그런데 너무 편하게 대해줬기 때문일까?

안세린의 입에서-

‘굳이’, 불필요한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지나치려던 유은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재현을… 본 적이 있나요?”

“재현…? 아, 아! 네! 합병 당일에 구 타이탄스 클랜원들을 직접 찾아주시면서 독려를 해주셨었습니다.”

“…그랬군요.”

어느샌가 살짝 낮아진 톤의 목소리.

그러나 안세린은 그런 유은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혼자 신이 나서 줄줄이 말을 이었다.

“네! 마스터는 정말 정말 따뜻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딱 한 번만 뵀는데도 그게 다 느껴질 정도로 친절하시고 배려심이 넘치셨습니다. 그리고 부마스터께서 방금 제 이름을 기억해주신 것처럼, 저희 클랜원들 이름을 하나하나 다 새겨두시더라구요. 제 이름도… 헤헤. 아! 또 일대일 면담도 한 번씩 진행하셨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잘 생기시…”

“안세린 홀더?”

“네, 네?”

끝도 없이 말을 이어가던 안세린은, 문득 자신을 끊어내는 목소리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부마스터를 신경쓰지 못했다.

오직 마스터만 떠올리면서 말을 했더니, 앞에 있는 유은설의 표정은 전혀 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마주친 부마스터의 얼굴은, 한없이 차갑기만 했다.

“일하러 안 가시나요?”

“…네?”

“사냥 5팀은 업무 시간에 이렇게 한가한가 보죠?”

“아, 아닙니다! 그, 그럼 실례했습니다!”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 안세린이 곧바로 답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대로 있으면 분명 봉변을 당할 기분이었다.

그래서 연신 고개를 숙인 후에, 조금씩 눈치를 보며 최대한 빨리 복도를 지나갔다.

“…….”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은설.

그녀는 순간 벽에 머리를 콩- 하고 찍었다.

이내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뭐하는 건가요, 대체.”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클랜원에게, 자신은 왜 화를 내고 있는 걸까.

왠지 모르게…

격한 자괴감이 들었다.

* * *

“푸하하하.”

<이블 헌터> 클랜 타워 31층.

선임 클랜원 이상의 직급만 들어올 수 있는 고급 휴게실.

그 안에서, 전말을 듣던 나혜린이 한참을 웃었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노려보던 유은설이 말한다.

“웃지 말아줄래.”

“아니, 너무 웃긴 걸 어떻게 해. 푸, 푸하하.”

“계속 웃으면 때린다?”

“아, 미안. 진짜 미안. 그것만 참아줘. 언니 근력 너무 높아서, 나 같은 마법사들은 그냥 진짜 죽는단 말이야.”

아무리 암살자 계열이라 해도, S급 홀더 유은설 정도면 근력이 최소 100 가까이는 될 것이다.

그럼 내구도 낮고 별다른 방어룬도 없는 마법사 계열은, 그 주먹에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은설이 주먹을 내리며 조용히 화를 삭이자, 그새를 못 참고 나혜린이 장난을 걸었다.

“근데 언니 진짜 못됐다. 왜 애꿎은 일반 클랜원들한테 화풀이를 해?”

“…….”

“아니, 그렇잖아. 그 클랜원이 마스터를 좋아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친절하고 따뜻하다고 한 것뿐인데.”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나오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 있지. 언니, 마스터 좋아하잖아.”

“…뭐?”

냅다 직구를 꽂아버리는 나혜린의 모습에, 유은설이 순간 말을 잃었다.

그러나 나혜린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늘이야말로 고집불통인 저 부마스터님의 생각을 단단히 고쳐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언니, 우리 이제 좀 솔직해지자.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난 못 속여. 언니랑 나랑 같이 무소속으로 활동한 시간이 얼만데. 이블 헌터 사람들 중에, 내가 언니 마음은 제일 잘 알걸?”

나혜린은 무소속 홀더 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워낙 실력도 좋고 경험도 많은 A급 마법사 계열인 탓에, 무소속 쪽에서 어떤 공격대나 파티를 결성하든 1순위 동료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업계의 리더 격이었던 유은설과도 친할 수밖에.

유은설과 나혜린.

두 사람의 조합이 뭉쳤다 하면, 주변 홀더들은 해당 공략이 거의 무조건 성공이라고 봤다.

그 정도로 함께 오래 활동했던 두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서로 간의 친밀도도 남달랐다.

도재현을 포함해, 주변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주고받는 유은설.

그녀가 클랜원들 중 유일하게, 나혜린에게만 반말을 허용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니야.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아.”

하지만 유은설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나혜린이 던진 말들에 찔리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말 자신이 도재현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자를 좋아하는 스승이라니.

유은설은 그 정도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자 나혜린의 표정이 황당함에 물든다.

“언니.”

“재현은 그냥 제자일 뿐이야.”

“와, 이 언니 진짜 중증이네. 모르는 척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나혜린이 손을 탁탁 털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아무래도 오늘 설득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천천히 설명해줄게. 잘 들어. 언니, 나랑 만날 때 한 번이라도 마스터 얘기 안 꺼낸 적 있어?”

“…….”

없다.

나혜린을 만나든, 다른 클랜원을 만나든-.

도재현은 언제나 유은설의 1순위 대화 주제였다.

“그건 당연한 거야. 클랜에서 마스터 얘기를 안 하며 뭘 하니.”

“오케이. 인정. 그럼 저번에 종강 선물 준비하던 건? 2학년의 마지막이라면서 선물 준비하던 건 까먹었어?”

또다시 촌철살인 같은 질문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건 유은설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그건 스승으로서 제자의 3학년 진학을 축하하는…”

“아니, 어떤 스승이 학년 올라간다고 제자한테 선물을 줘. 졸업 선물도 아니고.”

“…….”

생각해보니 살짝 과한 것 같기도?

“백 번 양보해서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쳐. 근데 언니, 왜 클랜원들한텐 왜 그렇게 철벽을 치는 건데.”

“뭐가. 난 그냥 클랜원들이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아니야.”

나혜린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끊었다.

“언니 분명 오늘 일도 그렇고, 저번에 면접 볼 때도 그렇고- 클랜원들이 마스터한테 조금만 관심 가지면 엄청 예민하게 반응한다니까? 평소엔 다정한 부마스터인데, 마스터 얘기만 나오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마치 꼭….”

그리고 묘한 눈빛으로 유은설을 본다.

그 눈빛엔 은근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여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

유은설의 눈이, 당혹스러움에 물들며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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