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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45)화 (345/353)

Side. 스승님이 용기를 낸다면? (2)

-여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여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핫!”

유은설이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또.

또 이런다.

그날 클랜 타워에서 나혜린이 작정하고 정곡을 찌른 이후, 유은설의 머릿속엔 틈만 나면 저 문장이 맴돌곤 했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어느새 귀신같이 스며들어온다.

그리고 유은설은, 왜 자신이 이토록 흔들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상하긴 했으니까요.”

과도하게 직설적이긴 했지만, 터놓고 말해서 나혜린은 틀린 말을 하진 않았다.

그동안 유은설의 행동은 분명 이상했다.

요즘 들어 개인 일정보다 클랜 일정을 우선할 때가 많았고, 그 클랜 일정 안에서도 유독 마스터가 해야 할 일들을 직접 도맡아 처리하곤 했다.

거기에 도재현의 특정 기념일 같은 걸 챙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형식 상으론 ‘아직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마스터가 너무 바쁘다-’는 이유였지만, 진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유은설도 잘 알고 있었다.

“재현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걸까요.”

이미 유은설과 도재현은 사제 관계다.

아마 연인 관계를 제외하면…

그의 인간 관계에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이.

하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의 일을 처리해주면서, 뭔가 다른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걸까?

한 번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게다가 나혜린의 말처럼.

요즘 <이블 헌터> 클랜원들이 도재현에게 관심을 가질 때면, 유은설 자신이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

이 또한 단순 부마스터의 관리라기엔 불필요한 행동 중 하나였다.

이렇듯 모든 상황이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내가 정말….”

정말.

재현을 좋아하는 걸까?

“아, 아닐 텐데요!”

순간 떠오른 자문에 유은설이 냉큼 고개를 내젓는다.

인정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나혜린은 ‘무조건’이라고 표현했지만, 유은설은 이를 결코 긍정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도재현의 스승이다.

남녀로서 마주한 순간보다 사제로서 마주한 순간들이 더 많았고, 지금껏 그에게 홀더로서의 능력들을 가르치며 이성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분명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이도….”

잘 알려진 도재현의 연인들은 모두 그와 동갑의 나이.

반면 유은설은 그보다 8살이나 연상이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 보니, 처음부터 그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

나혜린이 한 번 불을 지핀 감정은, 유은설의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활활 타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마치 꼭, 여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머릿속에 맴도는 나혜린의 말.

유은설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혜린이를 다시 만나봐야겠네요.”

불안정한 자신의 상태를 해결하려면, 일단 그 원인을 만나야 했다.

* * *

“드디어 인정을 한 거야?”

나혜린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팔짱을 낀다.

그 당당한 모습에 유은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거 아니야.”

“에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딱 자기 마음을 받아들인 얼굴인데.”

“…….”

“일단 계획을 세워보자.”

“계획…?”

뜬금없는 단어에 유은설이 되묻자, 나혜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떻게 하면 마스터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계획을 세워야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네네, 알았어요. 언니 맘 다 알겠으니까, 일단 계획을 세우자구.”

나혜린은 자연스럽게 마법가방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 자그마한 그림들을 그렸다.

처음엔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유은설도, 마지못해 보는 척 옆자리에 앉았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거야.”

“둘만의 시간?”

“응. 언니는 언니가 가진 최대 강점이 뭐라고 생각해?”

“…….”

뻔뻔한 질문에 유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자인 도재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이 철없는 동생은 이를 전제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거니까요.’

최근 들어 이상한 증세를 자주 보이는 스스로에 대한 자구책.

유은설은 그렇게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마쳤다.

그리곤 천천히 나혜린의 질문에 답했다.

“재현의 스승이라는 거…?”

“정확해! 역시 은설 언니, 할 땐 하는 여자구나?”

“…….”

나혜린의 태블릿에 줄이 좍좍 그어진다.

지지부진하던 진도가 순식간에 이어졌다.

“언니는 대외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마스터의 암살자 계열 스승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훈련 혹은 교육을 목적으로 마스터를 불러내면 되니까.”

“재현은 그렇게 막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번엔 유은설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재현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바쁜 인물이다.

단순히 <이블 헌터> 클랜의 마스터를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홀더 협회/3대 클랜 등 각종 국내 중요 단체들과 함께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또 <자유의 날개>를 비롯한 해외 클랜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찾는다.

국내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아성을 노리는 S급 홀더.

그게 지금의 도재현이었다.

나혜린은 그런 유은설의 반박에 손가락을 튕겼다.

“당연히 막 부르면 안 되지. 그러니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최상의 조건에서 불러내야지. 그리고 아무리 바쁜 마스터라고 해도… 하나뿐인 스승님이 꼭 같이 해야 할 교육이 있다는데, 안 나오고 배기겠어?”

“…스승님이 하나뿐인 것도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 스승님은 언니 한 명 맞잖아?”

“…….”

밑도 끝도 없는 나혜린의 논리에 유은설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과장이 좀 포함되긴 했어도…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없었다.

-나혜린이 원래부터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든 쓸데없는 이야기는 제쳐두고, 우리의 명분은 어디까지나 교육이라는 거야. 일단 교육을 목적으로 마스터를 불러낸 후에, 그 다음부터 다시 세부 계획으로 들어갈 거야. 오케이?”

“…….”

“오케이?!”

대답이 나오지 않자 눈을 크게 뜨며 재차 묻는 나혜린.

그 모습에 유은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일명.

‘용기를 낸 스승님이 제자를 유혹함’ 작전이었다.

* * *

평화로운 아카데미의 교정.

암살자 계열 건물에 자리한 계열 행정실.

막 방학이 시작돼 한산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나는 행정실 직원과 작은 서류를 주고받았다.

“네, 도재현 홀더 특별 행정 처리에 의해 조기졸업 요건 대부분 맞춰졌네요. 아마 다음 학기에 수업 이정 시간으로 20시간가량만 채우시면 자동 처리될 거예요.”

직원의 간단한 설명에 내가 되물었다.

“그럼 이후에 따로 행정실 안 찾아와도 되나요?”

“네네. 어차피 도재현 홀더는 특별 행정 처리 대상이라서, 저희가 꾸준히 졸업 요건이랑 이수 시간 체크할 거예요. 더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전화로 연락주시면 돼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다음엔 졸업생 도재현 홀더로 봬요!”

행정실 직원의 밝은 인사를 받아주며, 나는 그대로 건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여전히 사람이 없어 조용한 아카데미 내부.

그 안에서 나는 기지개를 활짝 폈다.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 여기도.”

<이탈자의 방> 공략 이후.

벌써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일이 있었다.

<이블 헌터> 클랜만 놓고 보면 <블루 아쳐>, <타이탄스> 두 클랜을 합병하며 클랜 거대화와 내실 다지기를 동시에 진행했고, 대외적으로는 클랜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에 집중했다.

다행히 워낙 유명했던 사건을 단독에 가깝다시피 처리했었기에, 클랜의 몸집을 키우는 건 반년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던전도… 거의 네 개 정도는 발굴한 것 같고.”

클랜이 활약할 수 있는 곳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던전이다.

그중 던전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미발견 던전’.

나는 원작에서의 지식과 클랜원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그동안 미발견 던전을 네 개나 발굴했다.

공략도 당연히 단독으로 진행했기에 해당 던전들의 소유권은 모두 <이블 헌터>로 귀속됐다.

대형 클랜치고는 살짝 부족했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챙겨가는 뛰어난 성과.

덕분에 우리 클랜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개인적인 일이 다 끝나가네.”

반년 간 외적으로는 클랜 일에 집중했다면, 내적으로는 아카데미 졸업에 최선을 다했다.

탁원호 교수가 내게 제시했던 ‘특별 조교’로서의 시간을 성실하게 채우며, 나에게만 주어진 조기졸업 요건을 완벽에 가깝게 충족할 수 있었다.

덕분에 2학년 2학기가 끝이 난 지금.

이제 내게 남은 아카데미의 시간은 대략 20시간밖에 없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아카데미 생활에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으다다다!! 이제 클랜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구나.”

클랜의 성장이 꽤 가시권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클랜 몸집과 클랜원들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여전히 괴리가 있다.

이제 아카데미 일에서도 거의 완전히 벗어났으니, 조금 더 클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스승님께 미안했는데….”

사실 아직은 학생인 내가 마스터인 탓에, 그동안 부마스터인 스승님이 꽤 고생을 하셨다.

마스터로서 해야 할 일도 많이 떠넘겼었고, 날 대신해 그녀가 처리해준 일도 상당히 많았다.

스승님께서 괜찮다고 하셔도 난 그런 점들이 괜히 미안했는데, 이젠 그 짐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우웅-!

그런데 스승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다.

딱 스승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유은설 스승님] 재현…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나요?

“토요일?”

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이야 당연히 된다.

어차피 아카데미 일도 모두 끝났고, 이제부턴 나도 본격적으로 클랜 일에 집중할 생각이니까.

다만 스승님께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시간을 내달라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오는 문자는 더 가관이었다.

[유은설 스승님]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새 단검술 배우고 갈래요?

“……?”

갸웃해진 내 고개가 더 휘어진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수업하자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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