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스승님이 용기를 낸다면? (3)
“…….”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스승님의 집에 와 있는 상태였다.
일단 이유는…
[매화검법] 이후 새로운 단검술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인데.
“어, 어서 와요. 재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인사하는 스승님을 보니, 그게 전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부탁할 거라도 있으신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무소속 홀더들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해왔고, <이블 헌터> 부마스터를 맡으면서 리더의 성향이 더욱 강해진 스승님.
그녀는 업무와 관련된 게 아니라면, 어지간해선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있는 위치에 대해 자각하고 있고,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주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뜬금없이 ‘새로운 단검술’이라는 핑계로 날 불러낸 게… ‘뭔가 부탁할 게 있어서’라는 합리적인 이유로 연결됐다.
‘그냥 말하시면 바로 들어줄 텐데.’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삼켰다.
사실 스승님이 부탁하는 거라면, 그게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
그녀는 [매화검법]을 비롯해 내 암살자 계열 능력 대부분을 극한에 가깝게 끌어올려준 장본인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홀더 중 한 명이다.
함께해 온 시간만큼 더욱 각별한 사이였고, 그녀가 원하는 게 있다면 다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다만, 클랜 마스터와 부마스터라는 직장 상의 관계 때문에 부담을 가지시는 것 아닐까… 하는 추측도 들었다.
“스승님 집은 처음 와보는 것 같아요.”
나는 잡념을 떨쳐버리고 스승님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스승님이 살짝 놀라며 몸을 떠는 게 느껴진다.
“그, 그렇죠?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초대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바보처럼 되물었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초대한 적이 없다니.
그럼 그 흔한 집들이조차 안 했다는 건가?
…집이 이렇게 넓은데?
내 의아한 얼굴을 본 스승님이 그제야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설명했다.
“가족들 말고는 딱히 올 사람들이 없는데, 가족들도 어지간해선 절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아무래도 사회적인 위치도 있고, 워낙 유명하다 보니까….”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곧바로 이해했다.
스승님 정도 되는 국내 최고의 홀더들은, 개인 소유의 집 자체만으로 큰 화제가 된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이사 전엔 김채은과 같은 아파트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그 위치가 알려지고 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들이나 홀더들이 찾아오곤 했었다.
연예인들의 삶이 프라이버시가 없고 고달프다곤 들었지만, 설마 홀더인 나조차 그런 생활을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일까?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도 날 터치하거나 우리 집에 잘 찾아오려고 하시지 않았다.
내가 엄청난 명성을 보유한 홀더라는 것도 알고 있기에, 찾아오거나 간섭해봤자 당신들만 피곤해질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시간을 내서 시골 집에 들르는 게 훨씬 빠른 방편이었다.
아마 지금의 스승님도 비슷한 케이스 같았다.
“그럼 제가 스승님 집에 방문한 첫 손님이네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제는 조금 편안해진 스승님의 대답과 함께, 나는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가 집을 구경했다.
스승님의 집은 아파트가 아닌, 거대한 단독 주택이었다.
주변에 관상용 초목들이 들어서 있긴 하지만 그 양이 많진 않았고, 오히려 다른 건물들이 곳곳에 즐비해 있어… 빌딩 사이에 우뚝 솟은 자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서울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이라곤 해도, 건물들 사이에 홀로 이런 거대 자택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동안 스승님이 버는 돈에 비해 꽤 소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투자는 전부 부동산으로 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가 연무장이에요.”
“와, 와… 집에 연무장도 있어요?”
“재현에게 집에서 단검술을 가르쳐준다고 했잖아요.”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스승님의 스케일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 * *
-일단 집에 초대해야 해.
-지, 집에?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언니. 언니는 스승으로서 마스터를 가르칠 권한이 있는 홀더잖아. 뭐든지 가르쳐준다고 하고, 일단 집으로 데려와.
마치 강압과도 같은 조언에, 유은설은 일단 도재현을 집으로 불렀다.
그러면서도 나혜린의 혜안에 살짝 감탄했다.
‘우리 집에 연무장이 있는 건 어떻게 안 걸까…?’
물론, 나혜린은 그런 내부 사정 따위 모른다.
그 어떤 사람이 집에 개인 연무장을 갖췄을 거라고 예상할까.
그저…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집으로 부르고, 그 안에서 뭔가 더 진도를 빼보자-!
그게 나혜린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은설의 입장에선 그녀의 통찰력이 놀랍게 느껴질 뿐이었다.
‘어쨌든 재현과 더 가까워지려면, 새 교육이 필요하긴 하니까…요?’
순간 생각을 이어가던 유은설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무, 무슨! 이건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단지 확인 과정이에요. 요즘 들어 이상해진 내 상태에 대한 확인 과정.’
결코 다른 의도는 없었다.
나혜린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러한 확인 과정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넓은 집 구경이 모두 끝이 난 후.
스승과 제자는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와 서로를 마주했다.
“이제 매화검법에 대해선 더 가르칠 게 없어요. 어쩌면 이젠 저보다 재현이 더 이해도가 높을지도 모르죠.”
이미 도재현은 [낙화의 미학]이라는 궁극스킬을 직접 만들어냈다.
그것도 정식 무공룬이 아닌, 열화판 무공룬 [매화검법]을 통해서.
그것 하나만으로 룬에 대한 이해도가 최상에 다다라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은설의 말에 도재현은 민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여전히 스승님이 더 뛰어나시죠. 제가 궁극스킬을 만들긴 했어도, 디테일한 부분에선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아직 룬 레벨이 Max가 아니기도 하고요.”
“재현은 늘 겸손하네요.”
이런 겸손한 태도가 그를 정상의 자리로 올려다 놓은 걸까?
자신보다 한참 어리고, 제자인 홀더지만…
유은설은 그를 볼 때마다 배워가는 게 많았다.
그리고 문득, 나혜린이 제안한 다음 과정이 생각이 났다.
-일단 진짜 가르치는 게 있어야 해.
-진짜 가르치는 거?
-응. 왜냐하면 언니가 단검술을 가르쳐주면서, 직접 마스터의 몸을 터치해야 하거든.
-…단검술 가르칠 때 그런 과정은 필요 없어.
-안 돼. 없어도 만들어야 해. 그게 이번에 언니가 해결해야 할 과제니까. 예로부터 신체적 반응은 마음의 거울. 직접 부딪혀보고, 마스터와 언니 모두의 반응을 얻어내 봐.
딱히 내키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추는 것도 애매했다.
어쨌든 통찰력 있는 나혜린이 추천한 방법이니 뭔가 효과는 있을 것이다.
유은설은 그런 생각으로 자신의 제자에게 새로운 무술을 가르쳤다.
“오늘 가르칠 건 송운검법이라는 무공이에요. 매화검법 때와 비슷하게, 과거 중국 청성파에서 전수됐던 송풍검법을 단검술 열화판으로 만든 무공이죠. 이 검법에서 첫 번째로 사용되는 초식은….”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자, 유은설은 극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 도재현을 불러냈던 진짜 목적.
수업 도중에 마음을 확인하라던 나혜린의 조언-.
그런 것들은 막상 교육에 들어가니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체득하고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제자에게 쏟아내 알려준다.
유은설은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다.
아무리 사적인 일로 제자를 불러냈다곤 해도, 그를 가르쳐야 할 순간엔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고 싶었다.
“아! 어느 정도 느낌은 알 것 같아요.”
그 진심이 제자에게도 닿은 걸까.
도재현은 진지한 태도로 수업에 집중하더니, 이내 자신의 [클로우 숏소드]를 꺼내들며 배운 내용을 직접 소화해보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 모습에 유은설은 얕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바로 연습해볼래요?”
“네. 엉성하긴 해도 일단 해볼게요.”
자세 좀 봐주세요-.
그런 말을 덧붙이며, 제자는 단검을 들고 연무장 중앙에 섰다.
…그리고.
파아앗-.
연무장의 분위기가, 공기가 달라진다.
딱히 마력을 쓴 것도 아니고, 아이템 효과가 발동된 것도 아니다.
단지 무기를 들었을 뿐인데.
방금 배운 초식을 시연해보려는 것뿐인데.
도재현의 주변에선 단단한 ‘기세’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마침내 도재현이 [송운검법]의 초식들을 시연했을 때.
수수하지만 내실이 있는 동작들이 그의 몸에서 춤을 출 때.
유은설은 곧장 깨달았다.
자신의 제자는.
분명 당장은 완벽하지 않아도, 언젠가 저 초식들을 완성해낼 거라고.
언젠가 이 [송운검법]이라는 무공 또한,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거라고.
검을 든 자세와 열정이 담긴 눈빛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다.
“…재현.”
“흡!! 네? 부르셨어요, 스승님?”
그래서 유은설은 궁금해졌다.
“재현은… 왜 그렇게 열심인 건가요?”
“네? 그게 무슨….”
“이미 완벽한 홀더잖아요. 국내 최고의 자리를 가졌고, 어쩌면 스승인 날 뛰어넘는 것도 금방일 텐데… 왜 이런 별것 아닌 무공에도 진심을 다해 배우려 하는 건가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달려가게 만드는 걸까.
이미 완벽에 가까운 그일 텐데…
어떻게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순수하게 그런 의문들이 들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처음엔 의아한 얼굴을 하던 도재현이…
이내 질문을 이해한 듯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항상 부족함은 남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훈련하고, 매일 새로운 걸 배워요. 스승님이 이 단검술을 제게 가르쳐 주려고 하신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부족한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역시 스승님이니까요.”
“아…!”
그녀의 바보 같은 질문에도, 제자는 이미 답을 내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 단검을 집어들었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해볼게요! 송운검법, 룬으로는 못 만들더라도 몸으로 체득해볼…”
“재현.”
“네?”
그리고.
“좋아해요.”
“…네?”
“좋아하고 있어요. 재현을.”
그 눈부신 제자의 모습에…
스승님도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
유은설은.
그제서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