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초월자의 방: 파렐리스 (1)
<이블 헌터> 클랜의 R&D 팀.
이곳은 꽤 다양한 직업군의 클랜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초창기엔 그저 <이탈자의 방> 공략을 위해 급조된 팀이었다.
연금술사 계열과 대장장이 계열, 그 외 몇몇 특수 계열들이 섞여 만든- 일종의 ‘제작팀’이라고 봐도 무방한 팀.
실제로 이들이 제작한 [교란의 팻말]이나 [멘탈 포션] 같은 특수 아이템은 제7구역 공략에 엄청난 공헌을 하며 R&D팀의 존재 이유를 알려줬다.
-R&D 팀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클랜 마스터 도재현은 이들을 단순히 ‘제작팀’의 용도로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명칭은 아직 R&D팀에 불과하지만, 향후엔 특수 계열의 다양한 홀더들이 모두 모여 협력하는 팀.
고차원적인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내는 팀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팀 창설 후, 반년이 지났다.
이제는 시간도 꽤 많이 흘렀고, 클랜 내부 역시 깔끔한 정비 과정을 거친 상황.
그동안 방향성을 잡지 못했던 R&D팀도 이제는 확실한 개성이 생겼고, 소속 팀원들 또한 각자의 직업군에서 꽤 구체적인 역할들을 분담하게 됐다.
<권한나 클랜원,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탐험가’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R&D 팀원, 권한나는 출입증을 찍고 클랜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7층.
총 다섯 개의 층으로 구성된 R&D팀 사무실 중, 그녀의 담당 사무실이 있는 곳.
워낙 R&D팀에 기대도 많고 투자도 많이 하는 클랜 마스터 덕에 무려 한 층을 통째로 담당 사무실로 쓰고 있지만, 이는 권한나에게 그렇게 달가운 사실만은 아니었다.
권리와 복지가 많다면.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도 따르는 법.
-과한 기대는, 때론 부담감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하….”
권한나는 우울한 얼굴로 사무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다.
지금 그녀는 울고 싶었다.
“오늘도 허탕이네….”
벌써 몇 번째 허탕인지 기억도 안 난다.
클랜 지정 지역의 탐사나 개인 탐사를 나설 때마다 야심차게 움직여봤지만, 돌아오는 결과물은 전부 실패였다.
“탐험을 못하는 탐험가라니….”
앞서 말한 대로 그녀는 R&D 팀에서 ‘탐험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블 헌터> 클랜의 유일한 직업군이자 매우 중요한 역할에 속한다.
왜냐하면 R&D팀 내 탐험가의 주 역할은, 클랜이 앞으로 공략해야 할 ‘미발견 던전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발견 던전.
누구도 발견한 적이 없는 괴수들의 땅.
공략만 한다면, 온갖 보상과 아이템들을 찾아낼 수 있는 보고(寶庫).
발굴하는 것 자체로 언론에 기사거리가 되고, 협회 주관 하에 인정되는 던전의 소유권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대형 클랜에서는 이들을 찾아내기 위한 전문 팀을 구성하기도 하고, 경력이 많은 탐험가들은 상당히 높은 금액에 고용되곤 했다.
권한나 역시, 이러한 탐험가로서의 역량을 기대 받으며 <이블 헌터>에 특수 채용으로 가입하게 된 클랜원이었다.
“…아직 한 개도 못 찾았지만.”
물론 결과는 꽝이다.
권한나는 <이블 헌터>에 들어온 후 단 한 개의 미발견 던전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찾아내기는커녕, 오히려 클랜 마스터가 직접 찾아낸 던전이 훨씬 많다.
마스터 덕분에 <이블 헌터>가 소유권을 갖게 된 던전은 벌써 무려 5개.
…사실상 이 클랜의 탐험가는 마스터 도재현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마스터는 대체 내 뭘 보고 단독 탐험가로 뽑으신 걸까….”
그런 걸 생각하니 더 자괴감이 든다.
한숨을 푹 내쉬는 권한나의 표정엔 우울함이 가득했다.
도재현이 권한나를 특수 채용 클랜원으로 뽑고 난 후,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R&D 탐험 부문에 적극적인 지원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의구심도 들었다.
스스로에게 정말 탐험의 재능이 있긴 한 건지.
마스터는 자신의 뭘 보고 단독 탐험가로 뽑은 건지-.
비록 권한나가 [마력의 특이점]이라는 매우 독특한 에픽룬을 보유하곤 있지만, 이 능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아카데미 특수 계열에서 배운 3년 내내, 어떤 교수도 그녀의 능력을 꽃피우지 못했었다.
빛 좋은 개살구.
지금의 그녀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었다.
“하아….”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권한나가 테라스로 나왔다.
각종 마도구들을 모아 만든 R&D 팀 사무실답게, 고층 건물인데도 밖으로 잠시 나갈 수 있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
“대체 난 왜 못 찾는 거야, 왜애-.”
‘탐험가’들의 던전 발견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마력제어] 룬과 궁수 계열들의 탐색류 보조룬으로 불리는 [탐색] 룬, 그리고 탐험가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발굴] 룬.
이 세 가지 룬을 활용해 잘 조합하면, 갈라져 있는 미세한 마력의 틈을 발견해낼 수 있다.
이 조합을 얼마나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하느냐.
혹은 어떤 지점에서 이 능력들을 사용할 것이냐-.
이런 점들이 탐험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치들이 된다.
물론 권한나 역시 이 능력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활용할 줄은 모르지만, 에픽룬 [마력의 특이점]까지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 번도 던전을 찾아본 적이 없다.
“경력 문제인가….”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이유.
아카데미를 졸업한지 이제 막 1년이 된 프로 홀더.
권한나는 새내기 탐험가였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그 유명한 S급 홀더 도재현이, 직접 자신을 선택한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권한나는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열이 뻗친 권한나가 허공에 마구 손을 내저었다.
오늘 예측지역에서 펼쳐봤던 탐험류 룬 활용.
그 안의 스킬들이…
아무것도 없을 클랜 타워 7층 테라스에서 펼쳐졌다.
“에잇! 다른 탐험가나 마스터는 뻥뻥 찾아내는 던전을 왜 난 못 찾아!”
허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펼쳐본 마력.
당연히 이런 곳에서 뭔가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똑같이, 탐험류 룬들을 조합하기만 하면….”
그런데 그 순간.
고요하던 권한나의 눈앞에, 웬 정보창 하나가 격하게 나타났다.
[대기에 감춰진 놀라운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마력의 비틀림은 때때로, 당신이 숨쉬고 있는 평범한 공간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력의 특이점’ 룬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어, 어…?”
드디어.
탐험가 권한나를 향한 클랜 마스터의 믿음이 발하는 순간이었다.
* * *
클랜 타워 최상층, 마스터 룸.
마스터로서 업무를 처리하고, 휴식을 취하는 클랜 타워 내 유일한 공간.
나는 그 안에서 괜히 헛기침을 하며 앞을 봤다.
내 앞엔, 비서팀장 임혜영이 있었다.
“혜영 씨, 아까 말한 것처럼….”
“네, 혼자 잠깐 쉬고 싶으시다고. 네 번째 말하셨습니다.”
“흠흠. 그렇게나 많이 말했었나…? 아무튼 정말 급한 일 아니면 저 찾지 마시고, 마스터 룸에도 다른 클랜원들 들이지 마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럼.”
임혜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마스터 룸을 나갔다.
역시 일 잘하는 비서팀장답게, 구태여 질문을 더하지 않고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렇게 임혜영이 나가고 대략 3분쯤.
나는 헛기침을 몇 번 더 하며 주변을 살폈다.
시선이 닿은 곳은…
마스터 룸 내부에 자리한 ‘프라이빗 룸’.
“흠흠. 나오셔도 될 것 같아요, 스승님.”
내 말에 곧장 한 여자가 프라이빗 룸을 나와 모습을 드러낸다.
국내에 여섯 명밖에 없는 S급 홀더.
<이블 헌터> 클랜의 유일한 부마스터.
그리고…
내 암살자 계열 스승님이자, 이제는 내 연인이 된 여자.
유은설이었다.
“미안해요, 재현. 나 때문에 너무 눈치 보죠.”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요. 언젠가 밝힐 거지만, 지금은 이게 편하니까 숨기는 거잖아요.”
“그래도요….”
유은설은 괜히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부끄러움을 타고 있다.
나는 스승님의 이런 모습이 낯설어서 신기하면서도, 너무 귀여워서 다가가 꼭 안아줬다.
“좋아해요.”
“…저도요.”
스승님이 용기를 냈던 그날 이후.
우리는 결국 만나기로 했다.
상대를 사제관계가 아닌 이성으로 보고 있던 건, 비단 스승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스승님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었고, 그 감정은 그녀가 마음을 고백했을 때 비로소 고개를 내밀며 나타났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상, 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은 비밀이긴 하지만.’
대신, 우리가 만나는 건 잠시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이유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일단 대외적으로 우린 사제관계이기도 하고, 클랜 내에선 마스터와 부마스터에 해당하는 중요 직책.
그런 이들이 갑자기 연애를 한다고 하면, 클랜은 물론 국내 홀더 계 전체에 큰 혼란이 찾아올 수 있었다.
때문에 일단은 세 명의 연인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세간에 비밀로 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연애 사실을 밝힐 예정이다.
아마 당분간은 어떤 클랜원도 우리의 관계를 못 알아볼….
“재현아, 재현아! 아직 소식 못 들었지! 드디어 한나가 미발견 던전을….”
“무, 문가은 클랜원! 분명 마스터 명령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서로를 껴안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유은설과 나.
그리고 분명 막아뒀던 마스터 룸에 들이닥친 문가은.
-당황하며 따라 들어온 비서팀장 임혜영.
뭔가 대처할 틈도 없이 곧바로 일어난 상황.
나는 그들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좆됐다.’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