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초월자의 방: 파렐리스 (2)
-권한나가 드디어 미발견 던전을 찾았다!
그 소식은 빠르게 클랜 내부에 도달했다.
클랜 마스터로서 직속으로 이를 보고받은 나는 당일 곧바로 선발대를 편성했고, 하루 만에 탐색과 보고서 작성을 마쳐 공략 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지금은 아카데미가 방학에 들어갔기도 하고, 클랜 업무 역시 특별한 일 없이 한산하게 흘러가고 있기에… 이런 일이 나왔을 땐 속전속결로 처리해주면 좋았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덕분에 다음 날.
마스터인 나를 비롯해, 부마스터 유은설, 각 사냥팀의 팀장들.
그 외에도 운영팀과 기획팀 등 클랜 내 핵심 간부들이 모두 한데 모였다.
신규 미발견 던전 공략 브리핑.
우리 클랜이 창설되고 첫 미발견 던전…은 아니지만(그동안 내가 발굴한 던전들이 꽤 많다), 어쨌든 권한나가 단독 탐험가로서 처음 제 역할을 한 던전이기에 꽤 중요한 안건이었다.
장소는 클랜 타워 최상층 미팅 룸.
마스터 룸 바로 옆에 붙어있는, 클랜 내 최대 회의실이다.
…그리고.
“씨이, 나중에 다시 얘기해.”
“…….”
스쳐 지나가며 분한 듯 말하는 문가은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어제의 이야기는 당연하지만, 전혀 끝이 나지 않았다.
당시 문가은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그 하루의 순간으로 납득이 됐을 리 없었다.
워낙 클랜 입장에서 중요한 안건이 잡혀 잠시 미뤄졌을 뿐, 나와 유은설의 관계에 대해선 연인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
그리고 그를 방증하듯, 어딘가에선 싸늘한 눈빛도 함께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불꽃을 터뜨릴 법한 마법사와 강한 냉기를 뿜고 있는 마법사.
…다른 두 연인, 강주연과 김채은이다.
문가은은 이미 그녀들에게 언질을 다 준 모양이다.
‘도망치고 싶다….’
그녀들을 설득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아마 어떻게든 설득은 될 것이다.
어쨌든 그녀들도 동시에 날 좋아하게 된 입장이고, 최근 한국에선 다부다처제 법안도 통과가 됐으니까.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영역이다.
감정적으론, 마음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섬세한 과정에서 연인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다독이고 배려해주는 게 중요했다.
나는 이번 공략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그녀들을 잘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클랜원들도 모르고.’
그나마 다행인 건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는 사실.
문가은이 빠르게 두 연인에게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다른 클랜원들 중 우리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유일하게 아는 건 아까 마스터 룸에 같이 들어왔던 비서팀장 임혜영 정도?
유은설과 내가 굳이 교제 사실을 숨기기로 한 건 다 이유가 있었기에, 클랜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겐 천천히 알리고 싶었다.
특히 세 명의 장인어른들은…
진짜 어떻게 해서든 늦게 소식을 알리고 싶다.
“그럼 본격적으로 신규 미발견 던전, 가칭 검푸른 하늘에 대한 공략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실에 간부들이 모두 모이자, 기획팀장 한상진이 입을 열었다.
회의실 한쪽엔 탐험가 권한나가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이번 발견이 어지간히도 기쁜지 연신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마주쳤을 땐.
-마스터, 저 잘했죠?
눈으로 그렇게 묻는 것도 같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습니다.’
단독 탐험가로 그녀를 선임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부분.
권한나는 그 이유에 대해 홀로 멋지게 증명해냈다.
칭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 검푸른 하늘은 독특하게도 클랜 타워 7층 테라스에서 발견이 됐습니다.”
“테, 테라스에서?”
한상진의 보고에 몇몇 클랜원들이 당황한다.
사실 나도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황당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클랜 타워 허공에서 미발견 던전이 나오다니….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예. 권한나 클랜원의 능력 발현과 해당 지점이 교묘하게 겹치면서 던전이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발견이 어려운 던전이었다.
권한나의 특수 에픽룬으로 알려진 [마력의 특이점].
이 룬이 이번 발견에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탐험 관련 룬들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던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클랜 내부에선 발견을 마치자마자, 마스터 명령 하에 선발대를 구성했습니다. 바로 어제 급파됐던 선발대죠. 정예 클랜원들이 선발된 만큼 짧은 시간에도 충분한 탐색을 마쳤고, 바로 오늘 브리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됐습니다.”
미리 준비해둔 PPT가 곧장 띄워진다.
그 안엔 던전 내 괴수들의 등급 지형지물, 특수 조건 등 다양한 정보들이 상세하게 서술돼 있었다.
한상진이 바로 말을 잇는다.
“던전 내 주요 괴수들은 그린 와이번, 워 그리핀, 피닉스… 대부분 공중형 괴수에 최소 B급 이상의 괴수들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나온 점들만 종합해도 최상급 던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내가 질문하자 망설임 없이 답이 나온다.
“용의 숨결이 닿는 강, 혹은 죽음이 가까워진 방과 비슷한 수준의 던전입니다.”
“아…!”
“오….”
클랜원들의 감탄이 튀어나온다.
지금껏 많은 미발견 던전들을 공략해왔지만, 그 정도 수준의 최상위 던전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던전은 명백한 최상급 던전.
리스크가 있는 만큼 보상도 확실할 던전이다.
정말 오래 기다려 온 권한나의 첫 던전인데, 처음부터 대박이 터진 것이다.
<이블 헌터> 입장에서도, <이탈자의 방> 공략 이후 꽤 오랜만에 출격할 법한 고위 던전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지형지물에 대한 건데….”
그렇게 대략 1시간 정도 브리핑이 이어졌다.
워낙 고위 던전이기에 평범한 던전 공략처럼 접근하면 오히려 클랜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철저히 안전한 구도 속에 공략을 이어가야 했다.
대략 모든 설명이 끝이 난 후.
나는 가볍게 탁자를 내리치며 선언했다.
“오케이. 그럼 특수 부대 편성해서 바로 출발합시다.”
“바, 바로 말입니까?”
그러자 자리에 모인 모든 클랜원들이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게, 한 던전의 공략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다.
탐색과 준비 과정에서부터 최소 사흘 길면 일주일까지 준비하는 클랜도 있고, 브리핑과 본격 공략 과정으로 넘어가면 최소 2~3주에서 한 달을 본다.
아주 예전에 내가 <불의 심판> 인턴을 할 당시, <뱀이 뒤덮은 숲> 공략에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됐는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나는 속전속결을 선언했다.
하루는 탐사, 그 다음 하루는 바로 공략.
이유는 명확했다.
“어차피 이 던전, 공략할 수 있는 클랜원 수가 정해져 있거든요.”
나는 씨익-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결코 연인들의 타박이 두려워 빨리 진행하려는 건 아니었다.
* * *
“도와줘, 아린에몽.”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마스터.”
최아린은 내 말에 강하게 툴툴대면서도 나를 연구실로 이끌었다.
어린 나이에 클랜 R&D팀 팀장을 맡게 된 최아린.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그 직책에 어울리는 인재다.
번뜩이는 감각과 탁월한 제작 능력, 그리고 팀원들의 능력을 잘 융화시킬 수 있는 리더십까지.
그녀의 꽤 냉철한 판단력 덕분에, R&D팀은 그동안 별다른 문제없이 순항하며 클랜을 원조해왔다.
이번 <검푸른 하늘> 던전 공략에 필요한 ‘마도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예요.”
“오….”
최아린이 8층 특별 제작 공간 안으로 날 들인다.
그 안엔 기묘할 정도로 많은 수의 마도 물품들이 안치돼 있었다.
딱 봐도 엄청난 위력을 뽐낼 것 같은 특수 무기들부터 시작해, 공성에 활용될 것처럼 보이는 대형 병장기, 최근 들어 연구 과정에 급물살을 탄 ‘골렘’들까지-.
우리 클랜이 꽁꽁 숨겨두고 있는 비밀병기 팀답게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물품들은 모두 제작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면 직접 전투 계열이라고 봐도 될 만한 수준이다.
“아린아. 이거 네가 다 만든 건 아니지?”
“…마스터, 진짜 절 도라에몽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아니야?”
“하아….”
최아린이 뭔가 포기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 방금 뭔가 크게 상처받은 것 같은데.
“전 포션이나 특수 마도구 제작에 특화돼 있고, 골렘이나 대형 병장기 제작 담당 팀원들은 따로 있어요. 마스터가 뽑았는데도 기억 못 하면 어떡해요-.”
“그랬었나.”
“네. 그리고 루덴아크 학파 척살 이후 그 성과들 중심으로 제작 연구에 힘을 쓰고 있다고, 보고까지 올렸었어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쪽으로 오세요.”
공방 안을 쭉 들어가니 새로운 공간이 또 나왔다.
대략 20명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법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홀로 채우고 있는 무언가.
그곳엔…
정말 거대한 크기의 ‘비행선’ 같은 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맞죠? 마스터가 찾는 거.”
공중형 괴수들이 던전의 반을 차지하고, 지형지물 자체도 허공을 떠돌아야 하는 <검푸른 하늘>.
이 비행선은, 그 던전을 공략할 핵심 마도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