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초월자의 방: 파렐리스 (3)
특돌이(특수 계열 홀더)들을 갈아 넣으면 뭔가 나온다.
이미 <이탈자의 방> 공략 때부터 경험했던 이 사실은, 이후 클랜을 운영하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동안 허탕만 쳤던 권한나 정도를 제외하면, R&D팀은 한 번도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으니까.
이번 공략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특수 구조물, [마도 비행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종은 비행이나 승마 관련 룬이 있는 홀더만 할 수 있지만, 탑승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동력은 당연히 마력석으로 충원되고, 아마 이틀 정도는 문제없이 비행할 수 있을 거예요.”
최아린이 가볍게 [마도 비행선]에 대해 설명한다.
대장장이 및 연금술사 계열 홀더들과 특수 제작과 관련된 R&D팀 팀원들이 모두 합심해 제작한 [마도 비행선].
이는 홀더들로 하여금 공중전을 가능케 해주는 특수 마도구였다.
이름 그대로, 홀더들이 탈 수 있는 하나의 비행선이다.
이 마도구가 필요한 이유는, 이번 <검푸른 하늘>의 던전 특수성 때문이다.
이번 미발견 던전 <검푸른 하늘>은 출현하는 괴수들 대부분이 공중형인 데다가, 던전 내부 구조물이나 지형지물 역시 공략을 위해선 공중 비행이 필수 불가결. (탐색을 맡았던 선발대도 이런 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렇기에 홀더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마도 비행선]은 그 자체만으로 공략에 커다란 힘을 실어줬다.
“그럼 지금부터 검푸른 하늘 던전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R&D팀의 지원 하에 오늘 바로 출정을 시작했다.
멤버는 소수 정예로 뽑았다.
나와 부마스터 유은설.
직속 사냥팀 3인방 김채은, 강주연, 문가은.
5팀 팀장 박진우와 팀원 카밀라.
그리고 신성 계열 홀더 중 진예은 클랜원이 참여했다.
다른 클랜원들은 모두 유대감이 깊은 홀더들이지만, 진예은이라는 신규 클랜원은 아직 클랜에서 많은 전투를 치러보진 못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파티원들의 수가 적은 게 불안한 듯 내게 물었다.
“마스터, 공략 인원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
3계열 당 1명 정도를 골라, 딱 8명만을 선발한 공략 파티.
사실 클랜 단위 공략이라고 보기엔 너무 적은 숫자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 인원만 선발한 데엔 이유가 있다.
“애초에 많이 선발할 수가 없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설명한다.
처음부터 많은 인원을 담을 수가 없었다.
<검푸른 하늘>은 전투 형태 자체가 공중전 위주로 펼쳐지는 특수 던전이다.
아무리 [마도 비행선]이 20명가량의 홀더들을 태울 수 있다곤 해도, 이런 한정적인 공간에선 최소한의 인원만을 담아 전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팀원들도 최상이고.’
특히 이번에 뽑은 인원들은 <이블 헌터> 클랜의 최정예 홀더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와 유은설은 클랜 내 유이한 S급 홀더였고, 직속 사냥팀의 연인 3명은 모두 상위 A급 홀더.
5팀 팀장 박진우는 클랜 내 세 번째 S급 홀더에 도전 중인 최상위 A급 홀더다.
카밀라와 진예은이 B급 홀더이긴 했지만… 전자는 탱킹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A급 최상위와 비빌 수 있었고, 진예은은 최근 클랜 내 신성 계열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유망주이다.
클랜 최고 실력자들과 기대주의 적절한 조합이었다.
“맞아요~ 뭐가 걱정이에요. 우리 마스터는 예전에 부마스터랑 ‘단 둘이서’ 초월자의 방도 공략했었는데. 아하하. 그쵸, 마스터?”
문가은이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진예은에게 부연 설명했다.
부드러운 스킨십이지만 말에는 뼈가 담겨있다.
덕분에 내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유은설도 순간 몸을 움찔했다.
“흠흠. 아무튼 바로 출발합시다.”
…아무래도 이 살얼음판을 녹이려면, 하루 빨리 공략을 마치고 연인들을 설득해야 할 것 같다.
* * *
쾅, 콰가강-!!
끼이이이-!!
강렬한 폭발음이 공중에서 들려오고, 주변에 있던 괴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공략이 시작된 지 고작 3시간.
우리는 던전 내 일반 괴수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후, 순식간에 보스 룸까지 도달해 있었다.
심지어 S급으로 추정되는 보스 괴수, ‘질풍의 드래고니안’조차 파티의 협공에 쓰러지기 직전이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덕분에 함께 공략에 참여했던 신규 클랜원 진예은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3시간 만에 미발견 던전 내부를 전부 클리어하고, 보스 룸까지 공략 직전이라니-.
충격적으로 빠른 속도긴 하다.
아마 국내 모든 클랜을 다 둘러봐도, 이 정도로 빠른 타임 어택은 없을 거다.
게다가 신규 클랜원인 그녀는 <이탈자의 방> 공략에도 참여하지 못했었기에, 이런 광경이 더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캬아오오-.
쿠, 쿠우웅.
그리고 마침내.
던전 보스였던 ‘폭렬의 드래고니안’이 쓰러진다.
시야 한쪽에서 [룬 사냥꾼]의 룬 획득 메시지가 뜨는 걸 보면 확실한 처치.
그와 동시에 다른 클랜원들의 주변 괴수 사냥도 모두 끝이 났다.
완벽한 클리어였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나네.”
“재현이 네가 스킬을 다 퍼부으니까 그렇지.”
<검푸른 하늘> 던전의 공략은 생각보다 쉬웠다.
사실 이런 종류의 던전은 이미 <구름을 가린 둥지>에서 경험해보기도 했고,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괴수들을 처치하는 건 또 <이블 헌터> 클랜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다.
경험과 실력이 동시에 뒷받침해주니, 평소보다 공략 난이도가 확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마, 마스터? 이게 대체….”
물론, 아직 새내기에 불과한 클랜원 진예은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달랠 말을 꺼내봤다.
“그냥 받아들여. 익숙해지는 게 너도 편할 거야.”
<이블 헌터>에 처음 오는 클랜원들 대부분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가, 나중엔 자기가 더 적극적으로 공략에 나선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면, 홀더는 적응의 괴물이다.
그 어떤 환경에도 가장 잘 적응하는 게 홀더들이었다.
“그보다 가은아. 시작하자, 이제.”
“응.”
문가은을 부르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부산물을 정리하고, 레스트 룸으로 가서 보상을 확인하는 게 공략 루트지만… 그에 앞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파아앗-.
부우우으-.
문가은이 품 안에서 증폭 보조 마도구를 꺼내, 천천히 탐색류 룬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직접 마력을 운용해도 되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선 궁수 계열인 문가은이 더 전문가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내 눈에도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맴돌았다.
‘드디어 찾는구나.’
이번 <검푸른 하늘> 던전 공략을 애써 서두른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다.
선발대를 구성해 미리 탐사를 보냈을 때 감지했던 특이 현상.
마력의 흐름이 특정 지점에서 불규칙적이고 강하게 뭉쳐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따라 마력 전문가들을 파견했을 때, 비로소 확인이 완료됐다.
이 던전은, 단순히 고위 괴수들만이 있는 미발견 던전이 아니었다.
“찾았어, 재현아.”
“벌써?”
“응. 어제 왔을 때도 간략하게 확인해놨었거든.”
공은 공, 사는 사.
문가은은 업무적인 면에서 완벽한 처리를 보여주며 내게 싱긋 웃었다.
그 모습에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찾아낸 특수 마력 지점으로 다가갔다.
나뭇가지들로 뒤덮인 거대한 둥지의 작은 구멍.
그 안에 천천히 손을 집어 마력을 불어넣는다.
[위대한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특수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조건을 만족하는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문이 열린 상태에서 동료들을 함께 데려갈 수 있습니다.]
<초월자의 방: 카날레스> 이후.
대략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찾아낸 던전.
위대한 존재들의 영역.
성스러운 드래곤 레어.
‘세 번째 초월자의 방’이었다.
* * *
‘마, 말도 안 돼. 내가 초월자의 방에 들어오다니.’
진예은은 새로운 던전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이게 지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동안 소문과 기사로만 접해왔던 <초월자의 방>.
소속 클랜의 마스터와 부마스터, 그리고 강주연 선임 클랜원이 공략을 했었다는 전설의 던전.
카날레스 이후 1년 넘게 발견이 되지 않으면서 역사 속으로 묻히는 던전일 줄 알았는데, 지금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놀라운 업적! 위대한 존재의 영역, 모든 존재가 경외하는 공간. ‘드래곤 레어’와 맞닥뜨렸습니다. 고대의 신비와 유구하고 경건한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전설의 한 공간을 목격한 당신의 시야는, 더 넓고 새로워집니다.]
[업적의 성향으로 모든 일반 능력치가 2씩 상승합니다.]
당장 아까 확인했던 정보창만 봐도 그렇다.
놀라운 업적, 위대한 존재, 드래곤 레어….
하나같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어들이었고, 이는 지금 진예은이 맞닥뜨린 던전이 정말 <초월자의 방>이 맞다는 걸 증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입장만으로 모든 능력치를 2씩 준다니… 사기잖아, 이거.’
모든 일반 능력치를 2씩 상승.
그것도 공략 보상이 아니라, 입장 보상….
진예은은 살면서 이런 보상은 처음 봤다.
애초에 ‘놀라운 업적’이라는 종류의 업적도 처음 겪어본다.
평범한 B급 신성 계열 홀더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 클랜 정예 멤버들과 함께하는 던전 공략은 모든 게 새로운 영역이었다.
그리고….
[위대한 존재의 용맹한 권속들이 침입자들을 경계합니다. 침입자들의 정신, 내구가 크게 하락합니다!]
거대한 황무지.
그 위의 하늘에…
어마어마한 양의 공중형 괴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수백?
아니, 수천?
다 세기도 힘들 정도로, 하늘을 모두 메울 정도로.
너무 많은 수의 괴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를 본 진예은의 머릿속 또한 아득해졌다.
‘도, 도망가야 해.’
이길 수 없다.
아무리 강한 홀더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곤 해도, 고작 해야 10명도 채 되지 않는 파티다.
이 정도로 불리한 숫자 싸움에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눈빛이 클랜 마스터 도재현에게 향한다.
모든 지휘권은 그에게 있었다.
그리고….
“오. 이번 초월자의 방은 물량 공세? 의외로 쉽겠는데.”
“……?!”
그는.
이 미친 상황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