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51)화 (351/353)

Side. 연인들의 비밀스러운 연합

유은설에게 있어, 도재현과의 연애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일단 첫 번째로 나이.

10살 차이도 넘는 연인들이 흔한 시대에 8살 차이가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살면서 연애 경험이 없던 그녀에겐 이 정도 연하남을 만난다는 건 괜한 부담이 있었다.

물론, 사회적인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걸 신경쓰기엔 그녀나 도재현이나 한국에서 너무 높은 위치에 다다라 있었고, 둘 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기에 그런 시선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만, 혹시나 연인인 도재현이 이 부분을 껄끄럽게 느끼진 않을까 부담이 될 뿐이었다.

다행히 전혀 그런 모습 없이 애정을 표현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 관계.

기본적으로 사제 관계에 클랜에선 마스터와 부마스터라는 지위까지 갖춘 업무 관계.

그 관계를 뚫고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은설과 도재현.

두 사람 모두 용기를 내며 서로에게 다가갔기에 가능했던 관계 변화였다.

‘그래서 웬만한 건 다 해주고 싶어요….’

유은설은 도재현을 생각하니 또다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받아준 그에게,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고 싶다.

제대로 콩깍지가 씌인 유은설이었다.

…그리고.

“이씨, 지금 웃음이 나와요? 또 재현이 생각했죠!”

“우와- 나 부마스터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봐.”

“…불여우같아.”

이 관계가 도전인 세 번째 이유.

그녀를 가운데에 세우고 때 아닌 청문회를 여는 중인, 도재현의 기존 세 연인들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연인 관계를 이어왔던 세 사람.

이들의 견고한 틈을 뚫고 새로운 연인이 되려면,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유은설은 순간 도재현을 생각하며 흘러나온 웃음을 삼켰다.

어찌 됐든 눈앞의 세 여인은 자신에겐 선배나 다름없는 존재들.

그녀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미안해요. 아직 조절이 잘 안 돼서. 생각하면 자꾸 웃음이 나네요.”

그 모습에 세 여인들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암살자 계열 S급 홀더.

<이블 헌터> 부마스터.

사회적으로 최고의 지위를 지닌 유은설이 솔직한 말로 건네는 사과라니-.

그 대상이 누구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 가은아. 그렇게까지 말할 필욘 없잖아.”

“…맞아. 너무해.”

“아, 아니. 나도 막 뭐라 할 생각은 없었어!”

당황한 문가은이 허둥지둥 손을 내젓는다.

도재현의 연인으로서 선배 노릇을 할 생각이긴 했지만, 유은설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만큼.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많이 내려놓을 만큼, 그녀도 도재현을 좋아하고 있구나.

더 이상은 스승이 아닌, 여자로서 도재현을 좋아하고 있구나-.

그런 진심이 세 연인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흠흠. 아무튼 이번에 다부다처제 법안 개정된 건 아시죠?”

옆구리에 손을 올린 채 묻는 문가은.

그에 유은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듣긴 했는데….”

“미리 말해둘게요. 결혼은 우리가 먼저 할 거예요. 무조건.”

“네…?”

순간 유은설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럼….”

“치, 전에 설명도 다 들었고 이미 재현이한테 설득도 당했어요. 애초에 우리도 셋 다 동시에 좋아했는데, 부마스터를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거절하면 그림이 이상하잖아요.”

“아….”

그제야 유은설이 시선을 돌렸다.

강주연, 김채은, 문가은.

기존 세 명의 연인들은 이미 유은설을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 전부터 ‘스승님 유은설’이라는 존재가 도재현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던 그녀들이기에… 이번 설득은 더 이야기가 편했다.

사랑에 빠진 시기는 달라도-

그 정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그게 도재현을 좋아하는 연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 입어야겠어요.”

문가은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을 꺼냈다.

“옷…?”

“네. 부마스터는 가만 보면 외모 활용을 전-혀 못해요. 이렇게 예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는데.”

“헤헤. 맞아, 부마스터 은근 얼굴 낭비해.”

김채은이 맞장구를 치며 유은설과 팔짱을 꼈다.

붙임성 좋은 그녀답게 친해지는 속도도 역시 초고속이다.

“이따 재현이 만나기로 했죠?”

“아, 네. 우호 클랜 정기 세미나가 있어서….”

“따라와요. 우리가 오늘 부마스터 코디해줄게요.”

어느새 말이 없던 강주연도 문가은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그녀들은 오늘, 유은설의 변신을 책임질 준비가 돼 있었다.

“아, 대신 조건이 있어요.”

“네. 뭔가요?”

순간 주변을 살피던 문가은이,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진-짜 부마스터가 마지막이에요. 다른 여자들이 더 재현이 좋아하게 하면 안 돼요. 어떻게든 경쟁자들이랑 바람나지 않게.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한다구요.”

어제까진 적이었지만, 오늘부턴 동지다.

한 번 동지로 인정한 이상 철저하게 동맹 관계를 돈독히 해서, 앞으로의 찾아올 또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걱정 마요. 그거, 내 전문이거든요.”

유은설은 암살자 계열 S급 홀더.

…‘뒷공작’의 신이었다.

* * *

<이블 헌터>엔 국내에 몇 없는, 꽤 독특한 모임이 하나 있다.

우호 클랜 정기 세미나.

일명 ‘클랜 공동 연구’라고도 불리는 모임으로, 말 그대로 <이블 헌터>와 우호 협정을 맺은 클랜들이 소속 클랜원들을 파견해 다같이 모임을 갖는 것이다.

연구 주제는 주로 최근 홀더 계의 동향 혹은 던전 공략의 트렌드.

종종 룬이나 능력치 등의 개발 방식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즉, 학술 및 실무 주제가 겸해져서 이뤄지는 고급 세미나였다.

“게다가 국내 4대 클랜이 같이 모이는 자리니까요.”

내 옆을 에스코트하듯 따라붙은 유은설이 말을 꺼냈다.

어쩐지 오늘따라 화사하고 눈에 띄는 의상을 갖춘 그녀.

아까 혹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기분 좀 내봤다는 답변만 돌아왔었다.

…분명 누군가 도와준 듯한 코디인데.

“그 4대 클랜이라는 말, 이젠 진짜 통용되나 보네요?”

“애초에 3대 클랜이라는 것도,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면서 시작된 거니까요.”

우리 클랜은 어느새부턴가 본격적으로 ‘국내 4대 클랜’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개별 전력만 놓고 봐도 S급 홀더가 둘이나 있고, 클랜 규모는 두 차례의 합병을 통해 크게 증가했다.

거기에 공략 성과나 보유 던전 등의 자산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사실 더 이른 시점부터 4대 클랜에 들어갔어야 하는 게 우리 <이블 헌터>였다.

어쨌든 그러한 우리의 우호 클랜은, 여타 4대 클랜에 더해 <자유의 날개>.

워낙 멤버가 화려한 탓에 세미나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현, 이 세미나엔 굳이 왜 참석하는 거예요? 어차피 팀장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모임이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스터인 내가 참여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그 정도면 애초에 타 클랜에서도 마스터급이 참여할 것이다.

“오늘 반가운 얼굴이 온다고 해서요.”

다만, 오늘은 예외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멤버 중 <불의 심판>에서 꽤 반가운 얼굴이 온다고 하기에, 나는 특별 참석자 명목으로 세미나에 가고 있었다.

부마스터 역시 당연히 안 와도 되지만, 유은설은 이를 핑계로 나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 따라왔다.

어쨌든 그렇게 도착한 세미나 룸.

“오랜만이다, 신유나.”

“엇! 도재…!! 아니, 이블 헌터 마스터!!”

세미나 룸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와 있었다.

<불의 심판> 소속 클랜원, 사냥 5팀의 신유나.

한때 내가 인턴 생활을 할 때 날 가르쳐줬던 신입 클랜원으로, 격투를 활용한 전사 계열 능력에 재능이 있는 홀더였다.

한창 바빠진 이후론 연락할 틈이 없었는데, 이번 세미나 참석 인원에 있길래 얼굴도 볼 겸 찾아왔다.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가끔 너 뭐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나야 뭐, 클랜 생활 똑같지. 난 뉴스로 네 소식 접할 때마다 매번 놀랐어.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길래 가끔 현실감이 안 들더라.”

“하하. 그런가.”

사실 인턴 생활을 했던 건 고작해야 두 달인데, 이렇게 그녀를 만나니 마치 오래된 친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세미나 룸에 앉아, 즐겁게 회포를 풀던 도중.

어디선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아보니, 함께 왔던 유은설이었다.

“신유나 홀더, 국내 4대 클랜의 마스터를 뵙는 자리예요. 개인적인 친분은 잠시 뒤로 하고, 예의를 갖춰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넵! 알겠습니다!”

한껏 신나서 대화하던 신유나가 금세 기 죽은 얼굴을 했다.

S급 홀더의 카리스마는 목소리만으로 묻어나오는 법.

그 차가운 목소리에, 일반 홀더들은 고개를 제대로 들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한번으로 끝이 아니다.

“신유나 홀더, 자리가 너무 마스터와 가까운 것 같아요.”

“신유나 홀더, 손을 맞대는 건 삼가주세요. 제가 불편한 게 아니라, 다른 클랜원들이 보면 오해할 수도 있는 그림이라서요.”

유은설의 지적은 쉴 틈이 보이지 않았다.

세미나 시작 전부터 중간부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지치지도 않고 신유나에게 크고 작은 지적들을 건넸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뭐, 뭐야. 왜 이래…?’

이걸 보고 나니 아까의 기시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이거.

분명 어딘가의 세 여인이 해준 코디 같은데….

분명 어딘가의 세 여인이 했던 행동과 말인데….

그리고 분명.

그녀들이 직접 가르쳐준 듯한 멘트와 말투인데….

의심이 가지만 말은 꺼낼 수 없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났다.

만약 그녀들 사이에 왠지 모를 연합이 구성됐다면….

유은설은, 마치 그 연합군의 선봉장과 같은 모습으로 앞장을 서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