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261)

“이, 이거 놔주세요!”

뒷덜미가 들렸을 때보다야 나은 형편이었지만, 짐짝처럼 허리가 잡힌 모습도 썩 달갑진 않았다.

나는 손과 발을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놔달라구여!”

“에녹 루빈슈타인은 어디 있지?”

“그게 누구…!”

이리저리 들리느라 속이 울렁거려 딴생각을 할 수 없던 나는, 그 이름을 곱씹어 보고 놀랐다.

‘그 이름이 지금 왜 여기서 나와?’

에녹 루빈슈타인 (주인공)

1. 소설 <도스의 반란>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 군대인 ‘도스 성기사단’의 기사단장.

2. 능력자 계급 중 최상위인 ‘도스(Dos)’.

3. 성기사 겸 소드마스터 겸 공작.

4. 또 다른 남자 주인공 ‘체시어 루빈슈타인’의 양아버지.

5. 설정상 세계관 최강자.

6. 젊은 시절, 제국 황실에 의해 어린 딸을 잃은 뒤 복수의 칼날을 갈았음.

그러니까 딸을 잃고 복수를 결심하다 여차저차 남주인 체시어를 거두고 그를 키워내는 남자로, 투톱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제목이 <도스의 반란>인 이유도 ‘도스’ 계급인 그가 양아들인 체시어와 함께 제국 황실을 치고 끝내 승리를 쟁취해서이니까.

‘에녹 루빈슈타인이랑 그 딸을 찾는 거로 봐선, 지금 스토리가 원작 시작 전인가 봐. 아직 딸이 안 죽었을 때.’

그런데 나랑은?

아무 상관 없다.

“저기여, 아저씨! 잠깐, 잠깐! 몬가 엄청나게 오해하구 계세요!”

“뭐?”

기사단장이 쓱 눈썹을 올리며 나를 보았다.

“구, 구런데 일단… 머리에 피가, 피가 쏠려가지구요…. 쫌 똑바로 앉혀 주시면 안 될까요…?”

“…….”

잠시 침묵하던 기사단장은 나를 자신과 마주 보게끔 말 위에 앉혀 주었다.

기사단장의 특이한 보랏빛 눈을 마주하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흑발에 자안이라. 이렇게 생긴 등장인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아차. 지금 내 코가 석 자다.

나는 휙휙 고개를 젓고 황급히 물었다.

“그 성기사에 소드마스터인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님 말씀하시는 거 맞져? 은발에 파란색 눈동자?”

“그래.”

“제가 은발에 파란 눈이라 닮았다구 잘못 생각하셨나 본데, 울 아빠 이름은 제임스 브라운이고 에녹 어쩌고가 아님니다. 제 머리 색이랑 눈동자는 옛날에 집 나간 엄마 닮은 거랬어요.”

“…….”

느릿하게 눈을 껌뻑이며 나를 보던 기사단장이 피식 코웃음 쳤다.

“애 교육은 똘똘하게 잘해놨군.”

“네?”

“리리스!”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휙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웬 부지깽이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아빠아아아!”

“지금 뭐 하는 거지?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딸 내려놔.”

……?

나는 당황했다.

‘아, 아빠가 미쳤나?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는 건가?’

능력자, 그중에서도 최상위 계급 ‘도스(Dos)’들이 지휘하는 성기사단은 다들 고위급 귀족이었다.

능력자들만 귀족 작위를 가질 수 있고 비능력자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이 세계관.

고로 먹이사슬의 최하위, 비능력자인 울 아빠는 방금 이들에게 반말한 것만으로도 즉결 처형감이다.

한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고작 부지깽이 하나 들고 죽고 싶냐고 협박까지 하다니?

‘세상에. 아빠가 미쳤어요.’

등골이 섬찟해진 나는 곧바로 납작 몸을 말고 굽신거렸다.

“서, 선생님. 아빠가 저 없으면 죽고 못 사시는 분이라 잠깐 정신이 나가셨나 봅니다. 너그럽게 봐주시면 평생의 은혜로 알겠슴니다요!”

나는 귀여운 외모를 십분 활용하고자 애교 섞인 눈웃음을 지으며 기사단장 허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쬐만한 손으로 아빠를 가리켰다.

“자, 그럼 보시져! 마침 등장한 저분이 바로! 제 아버지입니다! 널리고 널린 평민 남자들의 상징, 갈색 머리와 갈색 눈!”

“…….”

기사단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삐질삐질, 등에 식은땀이 났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요,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지나가는 제국민 1에 불과하져. 산골 마을에서 어린 딸과 힘들게 나무 해서 먹고 사는 27살 미혼부예요.”

“…….”

“…저어, 선생님? 저기여? 으앙!”

기사단장은 옆에 있던 부하에게 나를 던지듯 넘긴 뒤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 안 돼! 울 아빠한테 그러지 마세요!”

나는 허리가 붙들린 채로 손만 허우적거렸다.

기사단장은 아빠 옆에 떨어져 있는 마카롱 담긴 상자를 힐끔 보며 비웃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왜 왔지?”

또 반말? 아빠 진짜 왜 저래?

기사단장의 검 쓱싹 한 번이면 아빤 머리가 날아가고 말 거다.

이토록 초조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기사단장을 향해 부지깽이를 겨눴다.

“내 딸, 이리 보내.”

“에녹 루빈슈타인. 기사단에 당장 복귀하여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아아니,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에녹 어쩌고가 아니라니까여!”

울먹거리며 소리치는데 멀리서 아빠와 내 눈이 마주쳤다.

불쌍하게 잡혀 있는 나를 보고 단단히 화가 났는지 이를 악문 아빠 턱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7년이다. 이만하면 나들이는 마칠 때도 되지 않았나.”

“…….”

“그대가 가장 잘 알겠지만, 파빌리온 군법에 따라 탈영병은 즉결 처형 대상이다. 도주 시에는 생사 확인이 될 때까지 수배자의 신분이며, 1급 범죄자로 간주하지.”

아니….

“그러나 자비로우신 황제 폐하께서는, 그대가 헌신했던 행적과 능력치를 높이 여기셨다. 명백히 군법을 위반한 자임에도 수배령을 내리지 않으셨고, 그대의 작위와 재산 또한 몰수치 않으셨지.”

저기요….

저 기사단장은 대체 왜, 산골 마을 엑스트라 1을 잡아 놓고 입 아프게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해 대는 걸까?

“지금까지 그대가 저지른 모든 위법 행위를 눈감아주고 기다렸으니,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었다. 명령 불복종은 죽음뿐. 다시 한번 황제 폐하의 말씀을 전하겠다.”

기사단장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애먼 사람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에녹 루빈슈타인. 오늘부로 기사단에 복귀하여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

“큭.”

아빠가 비웃었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폐하의 주둥이는 예나 지금이나 참 번지르르하시군.”

나는 서서히 벌어지는 입을 가만 틀어막았다.

누, 누구의 주둥이요?

설마 이 절대 황권의 최상위 포식자, 황제 폐하의 주둥이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빠가 진짜 미쳐버렸나 봐….’

귀족 기만에 황족 모독까지, 울 아빤 이미 갈 데까지 다 갔다.

“조금 솔직해질 때도 되지 않으셨나. 언제든 돌아와야 할 개를 위해, 개집을 비워놓으신 것뿐이겠지.”

주둥이 어쩌고 한 뒤로부터는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빠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거침없이 나불거리는 저 입을 막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뿐.

나는, 나를 잡은 기사의 손등을 있는 힘껏 꽉 물었다.

“윽!”

순간 기사의 팔에 힘이 풀렸고 나는 말 위에서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리리스!”

떨어지면서 심하게 찧은 엉덩이가 얼얼했지만 지금은 신경 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짧은 다리로 아빠를 향해 전속 질주―!

“아빠아아억!”

―하다 잡혔다.

기사단장의 손에 뒷덜미가 잡힌 나는 대롱대롱 매달려 컥컥댔다.

아빠가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빌어먹을! 그 손 놔!”

“컥, 잠까… 아빠, 조요, 조용히.”

다행히도 기사단장은 어린아이에 대한 자비 정도는 있는 사람인지, 나를 곱게 고쳐 안았다.

“콜록, 콜록. 저기요.”

나는 두 손을 맞붙이고 파리처럼 빌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

“저, 정말 죄송해요. 울 아빠 살려주세요. 제 머리 색깔이 이래서… 네. 왜 오해하시는지 다 알아요. 제가 갈게요. 제가 가서, 네? 조사도 다 받구요. 그럼 아니라는 거 아실 거예요. 그리구….”

갑자기 서러워졌다. 그리고 주인공이 미워졌다.

에녹 루빈슈타인 그 새끼는 왜 하필 나랑 닮아서.

“끄으…. 그, 제가 사실 에녹 어쩌구 그 사람 아주 잘 알아요. 다 불게요. 지금 어디 숨어있나 본데 찾는 거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우리 아빠 한 번만 봐주시구, 제가, 제가 따라갈 테니까요….”

마치 고문에 못 이겨 독립군의 정보를 파는 배신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의 안위 따위가 아니라 울 아빠의 목숨이니까.

“제바, 제발요….”

그 순간.

기사단장이 흠칫하며 검을 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뒤에 있는 아빠를 향해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돌아보았다.

‘…아빠?’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

꼭 검처럼 겨눈 아빠의 낡은 부지깽이 위로 푸른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저, 저게 뭐야?’

아빠의 주변에만 요상한 기류가 흘렀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아빠의 머리카락과 옷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엑스트라 1의 상징이었던 아빠의 갈색 머리와 갈색 눈이….

서서히 바뀌었다.

“헐.”

누가 봐도 ‘나 주인공이야!’ 하고 외치는 눈부신 은발과 번뜩이는 푸른 눈동자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사람 잘못 보셨다고 열심히 울어 젖혔던 내 입이 민망해지는 순간.

‘저, 저기요?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산골 마을 27세 미혼부….’

…제임스 씨? 이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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