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261)

계속되는 주접을 더 못 보겠는지 악시온이 망토를 휙 휘날리며 워프 게이트 앞에 섰다.

“지체하지 말고 바로 출발하지.”

아빠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계속 나를 쳐다보며 싱글벙글이었다.

“내 새끼. 뽀뽀. 움.”

“그믄흐르그.”

나는 차례로 게이트를 통과하는 성기사 삼촌들을 보며 자꾸 뽀뽀하려는 아빠의 입술을 밀어냈다.

와중에 우리는 워프 게이트를 쑥 지나쳤다.

“헉.”

그리고 나는, 한순간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마법을 경험하고 감탄했다.

높은 천장.

성스러운 벽화.

웅장한 기둥.

그리고 저마다 놀란 표정을 한, 신성한 얼굴의 신관님들.

‘마, 마법 최고네, 진짜.’

제도인 파빌 신전의 게이트실이었다.

“에녹 경.”

신관들의 가운데 있던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왔다.

“정말로 돌아오셨군요.”

“오랜만입니다, 대신관님.”

대신관 할아버지를 비롯해 그의 뒤에 선 다른 젊은 신관들도 전부, 아빠의 귀환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안겨있는, 누가 봐도 에녹 루빈슈타인의 딸인 내 존재도.

“프리메라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나를 멍하니 보던 대신관 할아버지가 인사하며 급하게 비켜섰다.

그러자 아빠는 더 볼 일 없다는 듯 휘적휘적 그들을 지나쳐갔다.

당황한 신관들이 졸병처럼 아빠 뒤에 따라붙었다.

“저… 에녹 경, 바로 귀가하실 예정인지요?”

“복귀식을 약식으로라도 치러야 하지 않을지.”

“돌아오실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고 준비해 놓았습니다만….”

아빠는 문을 나서기 전, 휙 돌아섰다.

“어차피 황실에서 복귀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뵙지요. 오늘은 여행길이 길어 딸애가 피곤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제야 신관들은 힐끔거리기만 하던 나를 대놓고 살폈다.

전부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가 7년 만에 다시 나타난 에녹 루빈슈타인.

그리고 7년 전, 그와 함께 사라졌던 딸.

아마 당분간은, 꼭 신전만이 아니라도 온갖 곳에서 나를 주목할 게 분명했다.

눈치 빠른 어린아이인 나는 신관님들을 향해 공손히 손을 모았다.

그리고 바로 습득한 인사를 했다.

“프리메라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신관님들은 놀라고 감격했다.

“오오, 감사합니다!”

“공녀님께도 프리메라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 * *

제도 중심에 있는 신전을 나오자, 곧바로 시가지 한복판이었다.

“우, 우와아….”

남부 깡촌 산골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게 제도 파빌의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 진짜 많다아아.”

다닥다닥 붙어 있는 높고 세련된 석조 건물.

저마다 다른 차림새를 하고 북적이는 사람들.

화려한 마차를 끌며 시가지 곳곳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관리 잘 된 명마들까지….

“애기야, 나중에 또 봐.”

“리리스. 잘 지내.”

“웅. 잘 가여, 삼촌들.”

임무를 마친 공무원들은 퇴근할 시간.

나는 내게 따로 인사해주는 필립과 벤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딴 데로 새지 말고 곧바로 귀가하도록.”

“제도까지 와서 새긴 어디로 새. 빨리 가라. 훠이.”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젓는 아빠에게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며 돌아가는 악시온을 끝으로….

드디어 나와 아빠만 복작복작한 제도에 남겨졌다.

“음, 공주야.”

“응.”

“진짜 마차 안 탈 거야?”

“응.”

“집까지 가려면 15분은 걸어야 하는데? 다리 아프니까 그냥 아빠가 안아줄까?”

“에휴우, 아빠. 아빠가 계속 안고 다녀서 나 걷는 법 다 까먹었어. 이제 걷고 싶어. 걸을래. 제도 구경도 하구.”

“그래, 그럼. 대신 다리 아프면 바로 말해?”

“알아쏘.”

나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늦은 오후의 시가지를 걷기 시작했다.

‘자, 이제 시작이야. 정신 바짝 차리자.’

딸의 복수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진 주인공, 에녹 루빈슈타인.

원작 시작도 전에 원작이 시작할 여지를 없애버린 아주 큰 사고를 친 나다.

그러므로 수습도 내가 해야 했다.

‘무조건 원작대로 진행시켜야 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성기사님, 안녕하십니까. 프리메라의 드높은 영광과 은혜가….”

“그만.”

“항상 감사합니다. 프리메라의 드높은….”

“됐다.”

…음, 그냥 마차 탈 걸 그랬나.

걸으면서 생각 좀 하려 했더니 벌써 한 열 번쯤, 귀찮고 피곤한 상황이 반복됐다.

귀족이고 평민이고 가릴 것 없이 아빠에게 와서 절을 하는 사람들.

‘도스’ 계급을 상징하는 아빠의 푸른 망토 때문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심하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나라이길래 길바닥에서 무릎 꿇고 인사를 하지?’

황당했다.

하지만 이만큼 인권 감수성 말아먹은 세계관의 소설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이 혁명을 일으킬 일도, 내가 논문 소재로 가져다 쓸 일도 없었겠지.’

나는 쬐만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짚으며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또 다른 주인공, 체시어를 찾아내 아빠와 만나게 하는 것.

아빠 혼자서는 이 적폐 제국에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

체시어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그렇다면, 체시어 루빈슈타인.

그가 누구냐 하면.

1. 계급, 도스(Dos).

2. ‘도스 마검사단’의 검사단장.

3. 마검사 겸 소드마스터 겸 루빈슈타인 공자.

4. 설정상, 에녹 루빈슈타인과 함께 투톱 세계관 최강자.

5. 주먹이 느리게 보임.

6. 원래는 모 귀족의 사생아로 학대당하며 살다, 우연한 계기로 에녹 루빈슈타인의 눈에 들어 양자로 입적됨.

‘문제는, 그 우연한 계기가 뭐냔 말이지!’

아빠와 체시어의 첫 만남은 소설 속에 따로 나오지 않아서 알 수 없다.

다만 딸이 버젓이 살아있는 지금, 아빠는 체시어에게 관심 두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고로 내가 할 일은, 둘의 만남을 인위적으로 주선하는 건데….

‘사막에서 바늘 찾기네.’

나는 인구 과포화 상태의 시가지를 둘러보며 절망했다.

그때.

“아빠?”

왠지 조용하길래 이상해서 보니, 아빠의 시선은 어딘가로 빤히 향해 있었다.

길 건너편의 으슥한 골목이었다.

“왜 구래? 저기 모 있어?”

아빠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다가, 그냥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잠깐.”

눈치 빠른 어린이는 아빠를 붙잡았다.

“먼데 그래?”

“아냐, 그냥. 시비가 붙은 것 같길래. 어차피 치안대도 돌아다니니까 우린 신경 안 써도 돼. 갑시다, 공주.”

“저기에서 누가 싸워? 그럼 말려야지?”

“그건 그렇지만, 우리 공주 괜히 위험해지면 안 되니까.”

“…….”

나는 말문을 잃었다.

내가 아는 에녹 루빈슈타인은 이런 상황을 모른 척 지나쳤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문제지, 내가 문제야. 어휴.’

나는 내가 주인공의 정의감에 큰 방해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지 말구 가 보자. 응? 아빠 엄청 쎄니까 괜찮겠지, 모.”

“그럼 그럴까.”

역시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아빠는 내 손을 잡고 냉큼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선 순간.

“흐익!”

나는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 소설이라면 뭐, 뻔하게 능력자들이 비능력자나 괴롭히고 있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이었다.

정확히는 중학생 정도 되어 뵈는 아이들이 초등학생 한 명을 무자비하게 패고 있었다.

“너, 너네 지금 모해!”

다섯 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나는 울컥해져서 소리쳤다.

“이이… 어린노무 시키들이!”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끼어들려던 아빠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차.’

일곱 살 여자애의 대사라기엔 좀 위화감이 있었다.

“기, 기사님? 안녕하십니까. 프리메라의 드높은 영광과 은혜가….”

“그만.”

가운데 있던 남자애가 아빠의 푸른 망토를 알아보고는 당황해서 바로 엎드렸다.

“뭐 하는 거지?”

“아! 혹시 소란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저 평민이 인사를 하지 않기에….”

“이, 인사 안 했다고 사람을 패? 것두 애를?”

욱해서 쏘아붙이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던 남자애가 말했다.

“저어… 사제님? 저 옥타바(*Octava: 능력자 6계급 중 4번째 서열)인데요?”

“와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니, 능력자면 이렇게 사람 패도 돼요?”

“…….”

“…….”

또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애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패도 되냐고? 그치. 패도 되지.’

나는 실소했다.

이건, 이 몹쓸 세계관에서 아주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만약 저 평민 아이가 정말 인사하지 않은 거라면, 잘못한 쪽은 슬프게도 평민 아이다.

집단으로 폭력을 가했지만, 가해자들에게는 전혀 죄가 없는 상황.

그들이 능력자고, 귀족이기 때문이었다.

말을 잃은 나를 대신해 아빠가 앞으로 나섰다.

“소란 피우지 말고 가라.”

“예, 옙!”

“프리메라의 드높은 영광…!”

“가라고.”

“아, 넵!”

아빠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갑자기 ‘왜 숨을 쉬지?’ 하고 뭐라 할 수 없듯이….

분명 범죄였지만, 그냥 숨 쉬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

‘진짜 혁명이 시급하다, 아빠야.’

이 암담한 세계관의 현실을 몸소 느껴보니 참 씁쓸했다.

“제도 진짜 살기 조으다….”

비꼬듯 중얼거리자, 아빠가 내 앞에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공주야, 있잖아.”

“아, 잠깐!”

맞고 있던 아이가 생각났다.

나는 급히 달려갔다.

“너 괜찮아? 으, 으앙! 피….”

남자애는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 앉으며 터진 입가를 손으로 훔쳐냈다.

그리고는 표정이라곤 조금도 없는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색이 예쁜 붉은 눈동자.

하지만 눈빛은, 꼭 삶에 의미라곤 없는 사람처럼 텅 비어있었다.

‘이, 이게 이 나이에 나올 수 있는 눈빛이야?’

나는 한숨을 삼키며 일단 피부터 닦아 주려고 입고 있던 사제복을 뒤졌다.

아빠가 사 준 토끼 손수건을 챙겨놨었다.

“저기, 있잖아. 요기 피부터 좀… 앗!”

탁!

입가에 손수건을 가져가는데 남자애의 팔이 내 손을 매섭게 치고 지나갔다.

나는 맞은 손등을 붙잡고 멍하니 남자애를 바라봤다.

표정은 없었지만 무슨 심리 상태인지는 알 수 있었다.

마치 털을 바짝 세우고 경계하는 고양이 같은….

“미, 미안…. 갑자기 만져서 미안해. 여기 둘게.”

나는 조심히 남자애의 허벅지 위에 손수건을 올렸다.

그는 움직임도 없이, 그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남자애를 가만히 마주 보다가 문득.

‘어라?’

뒤늦게야 전체적인 생김새를 눈에 담고 놀랐다.

묘했다.

‘방금까지 맞고 있던 어린애를 보고 이런 생각 해서 미안하지만….’

잘생겼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직 덜 자란 나이에 이런 또렷한 인상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심지어.

‘검은 머리, 빨간 눈.’

나는 입을 틀어막고 휘청거리다 콩,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리리스!”

놀란 아빠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기가 막히게 잘생긴 아빠 얼굴이 보인다.

나는 잊지 않기로 다짐한 철칙을 떠올렸다.

‘잘생긴 엑스트라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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