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뭐라고, 리리스?”
고개를 갸웃하는 테오를 보며, 내 가슴은 흥분으로 뛰었다.
테오가 죽은 지 몇 년은 지난 후에야 체시어가 알아내는 ‘성녀의 심장’이 가리키는 것.
애독자인 나는 당연히, 그 황당한 실체를 알고 있었다.
‘살리는 것뿐만이 아냐! 발작할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아프댔는데 이제 그것도 안 겪어도 돼!’
나는 들떠서, 제자리에서 달리기하듯 발을 굴렀다.
“오, 오, 오라버니, 오라버니!”
“응, 응!”
“나, 나, 나!”
“응, 응, 응!”
“나가서 이쁜 거 사 주라아!”
나를 빤히 바라보던 테오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다 사 줄게!”
* * *
토끼 인형, 공주 거울, 보석 반지….
의심 없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온갖 가게를 돌아다니던 나는 다음 목적지를 가리켰다.
“여기도 갈래!”
전직 마검사!
…가 아니라 전직 마검사의 시종 출신이 주인으로 있는 잡화점.
약 파는 듯한 간판이 영 못 미더웠지만.
‘그래도 주변 잡화점 중에는 가장 크니까, 그것도 팔겠지.’
분명 있을 거다.
성녀의 심장이.
“프리메라의 드높은 영광 있으라!”
야비한 콧수염이 딱 봐도 바가지 야무지게 씌울 법한 관상의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반겼다.
“귀하신 분들인 것 같은데 여기엔 어쩐 일로?”
“음.”
“아.”
쌍둥이는 들어와 놓고도 이게 맞나 하는 표정이었다.
용병들이나 찾는 잡화점에는 벽 한가득 대련용 목검과 질 낮은 하급 진검이 걸려 있었고, 토벌용 갑옷과 망토, 장화 같은 것들이 마구잡이로 진열되어 있었다.
‘이거다.’
나는 진열대를 빠르게 훑다가 탄성을 터뜨렸다.
“우아! 이거 이뿌다! 나 이거 갖고 싶어!”
모두의 시선이 내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가 이내 경악했다.
“으항항! 보라색이 꿀렁꿀렁~ 하는 게 넘무 신기해. 꼭 밤에 뜬 별 같다아….”
나는 투명한 유리 진열대에 눌린 찐빵처럼 뺨을 착 붙이고 감탄했다.
손에 닿기만 해도 온갖 찝찝함이 묻어나올 듯한 검보라색 구체들.
이게 뭐냐면.
“허허, 아가씨? 음….”
일단 돈 많은 귀족 어린이들에게 바가지 한번 씌워 보려던 주인도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마수의 핵이랍니다. 마수를 죽이고 그 사체에서 파낸 것이요. 귀족 아가씨들의 장난감으로는 매우 부적절한….”
“나 이거 사 줘!”
“이건 안 돼.”
레온이 내 팔을 쭉 끌어당겼다.
“응? 왜?”
“위험해.”
“뭐가?”
“마수의 핵에서는 마기가 계속 흘러나오거든. 가지고 있으면 중독돼. 마기를 제어할 만한 능력자들이나 지니고 다니는 거야.”
“예, 맞습니다.”
주인이 끼어들어 유리 진열대를 톡톡, 두어 번 두드렸다.
“요것도 평범한 유리가 아니라 마기를 일부 차단해 주는 ‘블록 글라스’라는 특수 유리죠.”
“괜찮아. 나도 능력자인걸?”
“뭐래? 아직 양성소도 안 갔다 온 꼬맹이 주제에.”
“에휴우, 진짜 괜찮다니까.”
“안 되는 건 안 돼. 떼쓰지 마.”
레온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에 없이 매서운 반응에, 나는 가만히 눈을 굴리며 고민했다.
‘닷새 후에 발작이랬지. 지금이 아니면 의심받지 않고 이걸 따로 구할 시간이 없어. 안 아플 방법을 아는데,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아.’
생각을 마친 나는 삐진 듯 뺨을 커다랗게 부풀리고 팔짱을 꼈다.
어린아이라 좋은 점이 있다면….
무작정 바닥에 드러누워 ‘엄마 나 이거 사죠!’ 찡얼댈 특권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 이거 안 사 주면 안 가.”
“이것보다 예쁜 게 밖에 널렸잖아!”
“이게 쩰로 이뻐.”
“대체 어디가? 꼬맹이 너 취향 무슨 일이야?”
“엥. 그걸 이제 알았어? 나도 털 달린 왕거미 좋아한다니깐?”
“아잇…!”
레온의 말문이 막혔다.
“아무튼 안 돼! 위험한 건 못 사 줘!”
“돼!”
“안 돼!”
“리리스 말했다! 이거 안 사 주면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인다!”
“응, 그래라! 내가 너처럼 쬐만한 꼬맹이 하나 못 들까 봐?”
“으앙?! 하, 하지 마! 오라버니, 하지 마아아!”
“…잠깐.”
레온이 나를 들쳐 메려는 순간.
떼쓰는 나를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테오가 진열대로 다가갔다.
“혹시, 제일 작은 크기로 글라스 안에 넣어서 펜던트처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아하! 그런 방법이? 뭐, 그렇다면 아가씨가 지니고 다니시기에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주인이 히죽 웃었다.
“요 블록 글라스 단가가 어마어마한데, 괜찮으실까요?”
* * *
[구매품: 하급 마수의 핵 1개, 블록 글라스 6장.
+세공비 추가
청구 금액: 56,000,000 Terr]
“너는 이제 엄마한테 디~졌다.”
“상스러운 말 좀 쓰지 마, 레온.”
앙트라세 공작가로 청구된 계산서를 들여다보는 테오의 표정이 창백했다.
일시불 카드값이 대략 5천 6백만 원 정도 되는 상황이랄까?
하지만 목숨값치곤 싸게 먹힌 거다. 곧 모두가 그걸 알게 되겠지.
“오라버니야.”
“응.”
나는 작은 유리 상자 안에 넣어 펜던트처럼 세공한 마수의 핵을 목에 걸고, 테오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넘 이뽀….”
“마음에 들어?”
“응, 오라버니가 최고야. 나도 용돈 받으면 선물 사 주께.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으음.”
잠시 고민하던 테오가 씩 웃으며 자기 뺨을 톡톡 두드렸다.
“그럼 오라버니 뽀뽀해 주라.”
“으앙, 좋아!”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인 테오의 뺨에 쪽 뽀뽀했다.
“헤헤.”
“히히.”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뒤에서 레온이 툴툴거렸다.
“놀고 있네, 진짜.”
“일로 와 봐. 오라버니도 해 주지.”
“…정말?”
“아아~니! 거짓말!”
“뭐? 이게!”
“으항항!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나는 짧은 팔을 파닥파닥하며 오늘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13, 3, 3….’
평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발렌틴 구역의 루먼 스트리트 13.
음식점들이 포진한 이 거리의 세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세 번째 건물.
주인공 에녹 루빈슈타인이 13, 3, 3으로 외우며 찾아갔던,
바로 그곳이다.
<리코 식당>
나는 여지없이 허름한 나무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호호, 내 기억력 칭찬해.’
나는 뿌듯함을 감추며 말했다.
“우리 여기서 먹을까?”
“와, 근데 진짜 없어 보인다. 평민들은 정말 이런 데서 식사한단 말이야?”
“몰래 나오길 잘했다. 엄마나 할아버지가 우리 이런 데 온 걸 아시면… 큰일 나겠는걸.”
레온과 테오가 음식점 외관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근데 오라버니들, 진짜 괜찮아? 나랑 같이 이런 거 먹어 줘도?”
눈치 보며 말했더니 쌍둥이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야, 꼬맹이. 나 아무거나 다 잘 먹어. 걱정하지 마.”
“맞아, 리리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야지.”
“헤헤, 고마워.”
둘은 의심도 안 하고 따라 들어왔다.
평민들 가게에 귀족들의 등장…!
‘어이쿠, 역시 주목받는군.’
가게에 들어서자 저마다 모여 앉아 있던 평민들이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들에게 절을 하고 인사한 평민들은 자리로 돌아가 우리를 힐끔거렸다.
“너… 진짜? 제논에서 살 때는 진짜 이런 걸 먹었단 말이야?”
“이런 게 진짜 맛있어, 리리스?”
“맛있는뎅….”
메뉴판을 뒤적거리며 기함하는 쌍둥이를 보고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코를 긁적였다.
“여기, 주문 좀 받겠어?”
잠시 후, 테오가 우아하게 손짓하자 테이블 사이를 가로지르던 붉은 머리 여자 종업원이 급히 달려왔다.
“예, 손님. 뭐가 필요하실까요?”
“여기 있는 메뉴 다 내줘. 계산은 두 배로 할 테니 신경 써서 조리해줬으면 해. 동생이 무척 기대하고 있거든.”
테오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자 여자가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언니! 잠깐만요!”
나는 돌아가려는 여자를 불렀다.
그러자 여자가 멈칫했고 주변의 경악한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어어, 리리스.”
테오가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그, 있지…. 밖에서 이렇게 평민들에게 말을 높이면 안 돼.”
“헹, 깐깐하게 굴지 마, 테오. 할아버지도 없는데, 뭐. 리리스는 아직 적응 못 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빨리 적응해야지. 나중에 할아버지 앞에서 실수하면 혼날 수도 있잖아.”
둘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귀족들처럼 갑질했다간 큰일 나지.’
생각하면서, 나는 토끼 가방에서 주섬주섬 금화 하나를 꺼냈다.
제국의 금화는 한쪽 면에 나라 이름이, 다른 한쪽 면에는 황제의 옆모습이 양각된 형태였다.
‘역시.’
갑자기 금화를 꺼낸 내 행동에 여자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메뉴에 없어서 그런데….”
나는 여자의 표정을 계속 살피며, 금화를 테이블 위에 턱 올렸다.
정확히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면을 아래로.
조롱하며, 바닥에 처박듯이.
“삭힌 청어 있어요?”
황제가 즐겨 먹는다는 청어. 그런 청어를 ‘삭힌’ 메뉴.
황제의 얼굴을 바닥으로 처박으며 삭힌 청어 요리를 주문하는 것은, 황실을 조롱하는 행태이며….
평범한 음식점을 가장한 비밀 정보 길드 <붉은 매>에서, 거래를 요구하는 방법이었다.
길드의 정보원이 분명할 여자는 나를 탐색하는 눈으로 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