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힌 청어? 그거 맛있어?”
레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으음, 맛없을 것 같은데. 그걸 꼭 먹어야겠어, 리리스?”
“으응, 나 그거 먹으려고 온 거란 말야….”
말리는 테오에게 나는 시무룩한 척 말했다.
평범한 귀족 어린이들의 대화였지만, 여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귀를 세우며 듣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이 대화로 눈치챘을 거다.
쌍둥이는 이 정보 길드의 정체를 모르고, 용건이 있는 쪽은 어린 여자아이라는 걸.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여자가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메뉴는 따로 팔지 않습니다만, 손님께서 원하시면 만들어드릴게요.”
“앗, 정말요? 만들어 주세요!”
“리리스, 존댓말 쓰면 안 된다니까.”
“냅둬, 바보야.”
조잘거리는 쌍둥이 사이에서 나와 여자는 눈으로 대화했다.
“혹시 손님께서 특별히 원하는 조리법이 있으신가요?”
“네. 직접 보면서 알려드릴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요.”
나는 의자에서 쑥 내려왔다.
“오라버니들, 잠깐 기다려. 나 주방에 좀 갔다 오께.”
“쟤는 취향부터 입맛까지 진짜 특이하네.”
“리리스, 같이 갈까?”
테오가 따라오려 하자 나는 코를 쥐었다.
“으윽. 청어 냄새 엄청 심한뎅…. 오라버니 괜찮겠어?”
“아….”
역시나 모태 귀족인 테오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히히, 바로 요기 주방인데, 모. 이 언니랑 손잡구 가면 돼. 얼른 갔다 오께. 쫌만 기다려.”
“으응, 그래. 알았어.”
테오를 의심 없이 자리에 앉히고 테이블을 벗어난 나는 여자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여자는 나를 곧바로 주방과 연결되어있는 반지하로 안내했다. 식당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리코, 손님이 왔어.”
하나 덩그러니 있는 문.
몇 분의 침묵이 흐른 후 그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들여보내.”
여자는 문을 열어주었다.
캄캄한 내부를 촛불 두어 개가 밝히고, 길드장 ‘리코’는 그 가운데 앉아 있었다.
탁.
여자는 나를 들여보낸 뒤 문을 닫고 사라졌다.
‘으으. 분위기 무서워.’
나는 천천히 리코에게 다가갔다.
원작에서 묘사됐던 대로, 리코는 검은색의 기괴한 피에로 가면을 쓰고 있었다.
능력자를, 귀족을, 그리고 제국 황실을 치 떨리게 혐오하는 정보 길드 <붉은 매>의 마스터, 리코.
리코는 제도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다.
또한, 귀족들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목숨 걸고 수집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우리 아빠의 충직한 조력자가 될 친구지. 지금부터 몇 년은 지난 후의 일이겠지만.’
아빠는 반역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이 정보 길드의 존재를 알고 리코를 찾아낸다.
내가 거래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도, 원작에서 아빠가 여길 찾을 때 썼던 방법을 따라 한 거다.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당.”
인사한 나는, 조금 높은 소파에 손을 먼저 짚고 힘겹게 올라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잠시만요. 제가 긴장을 좀 해가지구.”
“…….”
리코는 나를 살피고 있었다. 탐색하는 분위기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잉? 그게 궁금하세요?”
나는 뺨을 긁적였다.
“대답해드릴 수야 있지만….”
거래의 원칙, 1번.
정보를 구매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돈이 아닌, 구하려는 정보에 상응하는 ‘정보’로.
“궁금하시면 저한테 뭔가 쓸 만한 정보를 하나 주셔야져?”
그 원칙은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게 아니었던가.
공짜로 물어보면 안 되지.
“아.”
리코가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가면 아래로 약간 놀란 반응이 느껴졌다.
곧 그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됐습니다. 굳이 값을 치르면서까지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리코가 착 다리를 꼬며 그 위에 손을 모았다.
“저는 선금을 받습니다.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먼저 거래 대금을 주십시오.”
쓸 만한 정보를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나는 흠흠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흠, 모가 좋을까…. 아! 7년 전에 사라졌던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님이 제도로 돌아오셨대요! 알고 계세요?”
“알고 있습니다.”
“아항, 아시는구나. 그럼 다른 거! 저는 그 사람의 딸이에요. 일곱 살, 이름은 리리스 루빈슈타인!”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오오. 그것도 아시는구나아.”
“장난하러 오셨습니까?”
“아녀, 아녀.”
나는 손을 젓고 말했다.
“사실 저는 정보를 사러 온 게 아니구요, 부탁을 좀 드리려구 찾아왔습니다! 정보라면, 이미 알 만한 건 다 알고 있거든요. 으음, 예를 들면은….”
“…….”
“…오닉스 후작 아저씨한테 숨겨둔 아들이 있다는 거?”
“……!”
“으항항! 지금 완전 놀라셨죠! 이거 꽤 고급 정보일 텐데~?”
권총 쏘듯 양쪽 검지를 당기며 능청을 부리자 리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 완전 놀랐습니다. 평생 제논에서 자기 신분도 모르고 살다가 고작해야 나흘 전에 처음 제도에 온 루빈슈타인 공작의 일곱 살짜리 딸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 무슨 목적으로 저를 찾아왔는지 무척 궁금해지는군요.”
“헉.”
“뭐, 영재라고 해서 마탑주가 친히 방문해 재능을 확인하고 갔단 말은 들었습니다만.”
“아니, 와아.”
세상에나….
리코는 역시 모르는 게 없었다. 새삼 그의 정보 수집 능력에 소름이 돋았다.
“리코리코씨!”
“…흠, 네.”
“저는 그 애를 구하고 싶어요!”
“…….”
내 말에 리코는 잠시 침묵했다.
구하고 싶다는 발언 하나로 그는 깨달았을 거다.
오닉스 후작이 은밀히 숨겨둔 사생아의 존재, 그리고 그 사생아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내가 전부, 알고 있다는 걸.
“방금 제가 말한 후작 아저씨 비밀 말인데요, 아저씨 아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한테 익명으로 전해 주세요!”
“아하, 전달책이 필요한 거였군요. 누구에게 전하려 합니까?”
“울 아빠요.”
“예? 아빠라면,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
“네. 아빠가 지금 아는 건 그 애 얼굴뿐이라서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아빠는 오랜만에 제도에 왔구… 그래서 아직 이쪽 일을 잘 모르거든요.”
나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 가며 덧붙였다.
“거기에 가문 일도 하고, 곧 기사단에도 돌아가야 하고…. 많이 바쁜 사람이에요.”
“흐음, 도무지 모르겠군요.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혼자서 나를 찾아왔을 리는 없고, 당연히 공작의 지시이겠거니 했는데?”
리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에요. 저 혼자 왔어요.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요.”
“뭐, 그렇겠죠. 모르고 있으니 내게 익명으로 정보를 전달하라 했을 테고.”
“네.”
“직접 말하면 되는 걸, 왜?”
“그럼 제가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아빠한테 말해야 하니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아빠한테 몰래몰래 알려줄 게 많아요.”
“아하…. 아가씨에게 뭔가 비밀이 있는 모양이군요.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아빠에게도 숨기고 싶은.”
“딩동댕!”
“뭐, 그렇다면 왜 저를 찾아오셨는지는 이해가 됐습니다. 저를 전달책 삼아 공작에게 풀고 싶은 정보들이 있다― 이거죠?”
“네! 직접 말하면….”
“수상해 보이니까요.”
내 말을 받으며 리코는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는 가면에 가려 안 보이는 눈으로 나를 살피고 있을 거다.
정보 길드의 존재와 거래하는 법을 아는 것도 모자라….
현실적으로 일곱 살짜리 꼬마가 절대 알 수 없을 오닉스 후작의 비밀을 꿰고 있다는 것도 놀라울 거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시네용….”
“예. 묻고 싶은 게 산더미지만, 제가 정해놓은 규칙 때문에 맨입으로는 물을 수가 없군요.”
“그쵸!”
픽 웃은 리코가 소파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덧붙였다.
“오닉스 후작은 12년 전 가문의 하녀와 정을 통한 적이 있습니다. 하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도망쳤죠. 왜냐면.”
리코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일곱 살이 듣기에 덜 충격적인 말을 고르고 있는 듯했다.
“…귀족들은 사생아를 만들지 않으려 하니까요.”
죽기 전에 도망쳤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밖에서 후작의 사생아를 낳아 혼자 기르다가, 반년 전에 아이만 후작가로 보냈습니다. 이름은 체시어.”
나는 리코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에 놀랐다.
과연 수완 좋은 정보 길드장….
“평판에 누가 되니 아무도 모르게 갇혀 길러지고 있고, 이복형제에게 학대당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우와.”
짝짝짝….
나는 손뼉 치며 감탄했다.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에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거면 충분해요!”
“자, 그럼.”
리코가 바로 앉으며 내 가까이 상체를 숙였다.
“이를 공작에게 전하는 대가로, 저는 당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대체 아가씨의 정체가 뭡니까? 그냥 영재 수준이 아닌데?”
“으으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수지가 저언혀 안 맞는데여? 익명으로 그거 하나 전하는데 제 비밀을 알려 하시다니. 절 상당히 띄엄띄엄 보셨군여.”
“…예?”
“알 만한 분이 애기한테 눈탱이나 씌울라 하구 너무합니다. 장사 하루 이틀 하신 것도 아니면서.”
“…하, 하하하하…!”
순간 멍해 있던 리코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제 비밀은 많이 비싸요. 그니까 괜히 궁금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구…. 대신에! 앞으로 쭉 거래하자는 의미로 제가 선물 하나 가지구 왔거든요?”
말하며, 나는 토끼 가방을 뒤적거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오직 정보로만 거래합니다. 돈 많은 집 아가씨인 건 압니다만, 제가 금화 몇 닢에 휘둘릴 만큼 나쁜 사정은 아니라.”
“돈 아녜여. 저는 모르는 거 없다니까요. 리코 씨 이미 돈 많이 버신 것두 알아요.”
사실… 오늘 내가 여길 찾아온 목적은, 체시어의 상황을 아빠에게 알리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게 뭡니까?”
리코.
귀족을 혐오하는 정보 길드장.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적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몹쓸 중독 마법에 걸려 있다.
전부 능력자인 귀족의 횡포 때문이었다.
“선물!”
나는 테이블 위에 천 꾸러미를 턱 하니 내려놓고 마약 거래상처럼 음흉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자아, 선생님. 함 열어보시져? 만족하실 겁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