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저번에 놀러 나갔을 때! 내가 이쁘다구 했더니 테오 오라버니가 사 줬어.”
“테오가?”
아빠가 묻자, 테오가 움찔했다.
좀 비쌌지….
“고모, 이거 실은 엄청 비쌌는데… 제가 너무 가지구 싶어서 떼썼어요. 오라버니 혼내지 마세요.”
“오, 아니야. 아가. 아니야.”
고모는 테오의 발작이 멎었다는 사실에 마냥 기쁜지 촉촉한 눈을 훔치며 나를 안아줬다.
“누님, 신관을 불러서 테오의 상태를 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응? 아는 병이잖니. 신관은 왜?”
“아무래도 발작이 잦아든 이유가 저 펜던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냥 장신구가 아니라 마수의 핵이군요.”
“뭐, 뭐?”
고모가 놀랐다.
테오도 어리둥절해져서는 제 손에 들린 펜던트를 내려다봤다.
아빠의 묘한 시선은 왜인지 펜던트가 아니라 나를 향해 있었지만….
‘휴, 어쨌든 성공. 역시 주인공은 절대 고구마를 먹이는 법이 없지.’
새삼 아빠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 * *
그날 오후, 신관들이 루빈슈타인 공작저에 방문했다.
그리고… 몇 세기에 걸쳐 능력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희귀병인 ‘마나 충돌’을 상쇄할 방법이 밝혀졌다.
“일시적으로 몸 안의 마력 수치를 높여 힘의 충돌을 가라앉힌 것으로 보입니다.”
초조해하던 오르디아가, 펜던트를 보고 중얼거리는 신관의 팔뚝을 붙잡았다.
“그럼, 그럼 이것만 지니고 다닌다면 우리 테오가 더는 발작하지 않을 거란 말인가?”
“예, 부인. 아시겠지만 마나 충돌은, 몸 안에 지닌 성력과 마력의 수치가 정확히 50 대 50인 능력자들에게 발병합니다. 보통은 어느 한쪽이 아주 조금이라도 우세한데 말이지요.”
검사들을 성기사와 마검사로 구분 짓는 기준도 더 우세한 쪽의 힘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오는 그 희귀하다는 50 대 50의 수치를 가진 능력자였다.
“마수의 핵에 깃든 마기가 영식의 마력 수치를 높여 두 힘이 충돌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몇 년을 고생해 왔던 아이인데, 치료법이 고작 그것이었단 말인가?”
오르디아만큼이나 초조한 마음으로 곁을 지키고 있던 노르딕이 묻자, 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도 외부의 마기가 이런 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만, 일단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대안으로 보입니다.”
“오, 신이시여…. 우리 아가, 이제….”
“누님.”
오르디아가 입을 틀어막고 무너지자 에녹이 그녀를 부축했다.
안도하는 모습에, 신관이 빙그레 웃었다.
“다만 성력과 마력의 수치는 다시 동등해지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마수의 핵을 구해 지니고 다니심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더는 발작할 일이 없을 겁니다.”
“아아, 이럴 수가…. 고맙네, 정말 고마워….”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드립니다. 마나 충돌은, 저희 신전 치료국에서도 항상 골머리를 앓고 있던 불치병이었는데….”
신관이 에녹을 보며 덧붙였다.
“공작님께서 연락을 주셨지요? 대체 마수의 핵으로 마나 충돌을 없앨 생각은 어찌 하셨습니까?”
신관이 놀라워하며 묻자, 에녹이 멈칫했다.
말마따나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마수들이 지닌 마기는 인간의 것과 다를뿐더러, 외부의 마력이 내재된 마력에 감응할 수 있는 줄도 몰랐다.
‘리리스….’
에녹은 잠시 딸애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렸다.
“우연이었소. 우리 딸애가 이걸 장난감처럼 지니고 있었지. 마침 딸애가 다가가니 조카의 상태가 나아졌기에.”
“오, 그렇군요. 그러한 우연이야말로 신의 응답이 아니겠습니까. 앙트라세 부인의 기도가 신께 닿았던 모양입니다.”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지금 내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요즘은, 정말 감사한 일들뿐이야. 에녹도 돌아왔고…. 그리고 리리스, 그 작은 애가…. 우리 테오를….”
노르딕이 다가와 달래자 오르디아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었다.
크나큰 걱정을 내려놓은 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다.
사이에서 에녹만이 묘한 눈빛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리리스….’
딸애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예뻐 보여서 지니고 있었다 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펜던트를 꺼내던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발작하는 테오를 보고 놀란 기척도 없이 달려가기까지.
‘정말 그저 우연이었나?’
생각에 잠긴 에녹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그날 오후, 체시어는 테오의 방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귀동냥한 바로, 테오는 선천성 희귀병을 앓고 있고 이렇게 발작하는 것이 월례행사라고 했다.
‘대체 무슨 병이길래 그렇게 심한 거지.’
나아졌는지 궁금하면서도 테오의 방 문을 두드릴 용기는 없었다.
‘아니다. 얹혀사는 평민 주제에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야.’
체시어는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야, 야, 야!”
“체시어어!”
레온과 리리스였다. 둘의 옆에는 오르디아와 하인들도 함께 있었다.
“테오 보러 왔냐?”
“체시어, 테오 오라버니는 지금 나아서 자구 있어!”
“아, 어.”
체시어는 대답하며 힐끗, 그들의 옆에 서 있는 오르디아의 눈치를 봤다.
공작의 누이….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귀부인은 기품이 철철 흘렀다.
“네가 체시어구나. 에녹이 데려왔다는.”
“…예.”
체시어는 난처했다.
에녹이 공작가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어른들에 대해 말해 줬지만, 되도록 마주칠 일은 없게 하자고 다짐했었다.
에녹은 몰라도 다른 어른들은 분명,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까.
“네가 하인들이 올 때까지 우리 테오를 도와줬다며. 레온에게 들었단다. 고마워.”
그걸 도와줬다고 할 수 있나.
고통을 못 이겨 자해하는 팔과 다리를 잡아 뒀을 뿐이었다.
“이런.”
체시어는 순간 놀랐다. 무릎을 살짝 굽힌 오르디아의 얼굴이 가까이 와 있었다.
“상처가 났구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턱 아래쪽과 목 근처가 시렸다. 테오를 잡다 그의 손톱에 긁힌 상처였다.
“저는 괜찮….”
“아이를 치료해 주렴.”
“예, 오르디아 님.”
하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체시어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다.
평민인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도 없고, 웃는 얼굴에는 담백한 상냥함이 있었다.
‘역시 이 집안 사람들은 다 조금씩 이상해.’
말투와 손짓 하나하나에 귀족의 태가 풀풀 흐르는 사람치고는 의아한 태도였다.
“고모, 고모!”
그런 체시어의 표정을 보고 있던 리리스가 쿡쿡 웃으며 오르디아의 손을 잡았다.
“오늘 디저트로 사과 퓨레가 나온대요. 이따가 저녁 같이 먹어 주시면 안 돼요?”
“어머, 우리 귀염둥이 부탁인데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자꾸나.”
“아빠랑 체시어도 같이요!”
리리스가 체시어의 손을 잡았다.
“야, 나는!”
“오라버니는 당연히 나랑 같이 먹어야지!”
금세 표정이 환해진 레온이 리리스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오르디아가 짝, 손뼉 쳤다.
“저녁에도 선선하게 날씨가 좋으니 바깥에 테이블을 차리는 건 어떨까?”
“와아, 좋아요!”
가족처럼 다정히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를 가만 듣다, 체시어는 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씩 웃는 리리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가슴께가 살짝 간지러웠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 * *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흘러.
벌써 나흘이 지났는데도 공작저는 계속 축제 분위기였다.
평생 테오를 괴롭혔던 희귀병의 해결책을 찾았으니 말이다.
앙트라세 공작, 그러니까 내 고모부가 곧 제도로 돌아올 거란 소식도 들었다.
‘중앙 귀족인 사람이, 가문도 팽개치고 타국 원정 중이었다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들 사랑이 극진한 고모부는 테오의 치료법을 찾는다고 온갖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었단다.
다행히 고모부는 이제 가문에 아주 복귀할 수 있게 됐고, 고모도 쌍둥이도 그 사실에 기뻐했다.
후후. 다 내 덕택이었다.
“히야, 좋구나아….”
나는 볕이 잘 드는 정원에 누워 옆에 앉은 테오를 올려다보았다.
“으항항.”
“하하.”
마주 웃던 테오가 나를 따라 벌렁 드러누웠다. 테오는 그날 이후 내 옆에 찰싹 붙어 다녔다.
“리리스, 곧 생일이라며?”
“응!”
“선물 뭐 사 줄까?”
“괜찮아. 오라버니 싹 다 나아서 이제 안 아픈 게 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야.”
“아, 리리스….”
“오라버니이….”
“어휴, 놀고 있네. 진짜.”
오늘도 어김없이 레온이 감동적인 남매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체시어 이 자식은 어딜 간 거야?”
“여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목에 맨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뒤에서 체시어가 불쑥 등장했다.
“체시어어!”
나는 준비해 놨던 수통을 들고 체시어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