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6/261)

* * *

이튿날.

나는 제티가 전해 준 리코의 답신을 읽고 있었다.

[해독약이 필요했던 친구는 지금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가씨 얘기를 했더니 꼭 한번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죠.

고맙습니다.]

“히힛.”

여동생의 안부를 묻긴 했지만, 정말 답을 해줄 줄은 몰랐는데….

리코는 생각보다 다정한 성격일지도?

[아가씨가 궁금해하신 ‘조제프 뤼트먼’은 지금 중부의 발테락 영지에 있습니다.

2년 전 가족을 전부 잃고 제도를 떠나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금은 반쯤 미쳐서 살고 있죠.

발테락 시가지의 도박장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서 매일 시간을 보내니까요.

영 폐인인지라 이자를 쓰려면 사람 좀 만들어야 할 겁니다.]

놀라운 점은, 리코가 조제프 뤼트먼의 거취를 순순히 알려줬다는 사실.

정보는 기브 앤 테이크가 원칙 아니었나?

[거래 대금은 선불이 원칙이지만, 아가씨는 특별 손님이니 외상 처리 해드립니다.]

살짝 감동이었다. 눈물 날 뻔.

[정보를 아버지에게 전하실 생각이라면 제티에게 부탁하십시오.

그리고 승마 대회에서 좋은 성적 거두시길 바랍니다.

생일도 미리 축하드리고요.]

나는 답신을 다 읽고 ‘승마 대회’부터 ‘축하드리고요’까지를 제티에게 오려 달라고 부탁했다.

증거 인멸을 위해 종이는 태워야 하는데, 그 부분이 좀 아까웠다. 따로 간직해야지.

“공작님께는 뭐라고 쓰면 될까요, 아가씨?”

제티는 리코의 답신을 태운 뒤에 새 양피지 한 장을 꺼내 펼쳤다.

나는 받아 적으려는 제티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은 들어라!”

“…네엑?”

제티가 삐끗하더니 허허 웃었다.

“너, 너무 건방지지 않을까요?”

“괜찮아여.”

“어휴, 네에.”

제티는 다시 펜을 들었다.

<붉은 매> 길드원들은 다들 유능한 점이 하나씩 있었는데, 필체가 여러 개인 제티의 재주는 퍽 유용했다.

“우와! 완벽해요!”

이윽고 겉멋 잔뜩 든 혁명문처럼 완성된 편지를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음….”

제티는 한참 편지를 들여다보다 그것을 접어 봉투에 넣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 아가씨, 뭐 하나만 여쭈어봐도 될까요?”

호기심 가득한 제티의 표정에 나는 멈칫했다.

‘음. 편지 내용을 봤으니 의문이 들 만도 하겠지.’

그녀는 설레는 것 같기도,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아가씨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일단 인생 2회 차는 맞으시죠?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아니고서는 이건 절대…. 아니, 그보다. 이 편지, 제가 생각하는 게 맞나요? 그럼 아가씨는 설마….”

“언니.”

“네, 아가씨.”

편지 내용이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인지 내 대답을 기다리는 제티의 눈은 충직한 신하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붉은 매>, 철칙 1번.”

멍하니 입을 벌린 제티가 이내 푸스스 웃으며 축 늘어졌다.

“정보를 원하면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내놓을 것. 네에…, 제게 아가씨 정체를 들을 만한 정보가 어디 있겠어요. 알겠어요. 안 궁금해할게요.”

“으항항.”

* * *

루빈슈타인 공작저, 연무장.

훈련 중인 사병단을 멍하니 지켜보는 에녹은 생각이 많았다.

“나는 아빠만 있으면 돼.”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

워낙 눈치가 빠르고 어른스러운 리리스였다. 아마 걱정할 아빠를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거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없어도 아빠인 자신이 잘하면 그만이라 생각해 왔는데….

‘아빠로서는 못 해주는 게 분명 있겠지. 앞으로 자라면서도 생길 거고. 특히나 여자애니까.’

아들이면 몰라도 딸. 셀레나를 만나 새삼 느낀 엄마의 부재가 에녹에게는 퍽 심각하게 다가왔다.

“하아.”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한숨을 푹 내쉬던 에녹이 멈칫 옆을 보았다.

휴식 중인 체시어가 있었다.

“…….”

체시어는 왜인지 불편한 표정이었다. 혀로 연신 입 안을 건드려 뺨이 불룩불룩 솟고 있었다.

“왜 그러냐? 어디 아프냐?”

“아뇨.”

짧게 답한 체시어가 대뜸 손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왼쪽 송곳니 어디쯤을 잡는 듯하더니―

“야, 야! 너 뭐…!”

―그대로 분질렀다.

에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번 입을 오물거린 체시어가 퉤, 바닥에 피와 함께 이를 뱉어냈다.

“…….”

그리고는 대수롭잖게 들고 있던 천을 물었다. 피를 멎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녹이 이내 깨달았다.

“아.”

“…….”

“너 아직 젖니 다 안 갈았구나.”

이가 흔들려서 뽑은 모양이었다.

무섭지도 않은지 제 손으로 한 번에.

‘자, 잠깐. 울 공주도….’

그때, 싱글대디 에녹 루빈슈타인은 딸의 아랫니 두 개가 귀엽게 뿅 올라왔던 감동의 순간을 떠올렸다.

얼마나 신기하고 예뻤던지 눈물이 다 났는데….

이웃이었던 수잔과 죠 부부는 젊은 아빠가 주책이라며 나중에 빠진 젖니들 다 모으는 거 아니냐고 깔깔댔었다.

‘울 공주도 곧 젖니 빠질 텐데!’

“너, 너. 체시어. 지금까지 이렇게 혼자 이 뺐어?”

“네.”

“안 무서워?”

“…이게 뭐가 무섭죠.”

“녀석, 용감하네? 아니, 그보다.”

에녹이 허둥지둥 체시어의 턱을 잡아 입 안을 살폈다.

“처음 이 빠진 게 언제냐? 지금 몇 개나 빠졌고?”

“…….”

체시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여섯 살 때 아래쪽 앞니가 제일 먼저 빠졌어요. 지금은 맨 안쪽 몇 개 빼곤 거의 다 빠진 것 같은데요.”

“그, 그르냐.”

여섯 살? 에녹이 멍해진 머리를 붙잡았다.

* * *

파라라락.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그 길로 집무실에 돌아온 에녹의 책상 위에는 육아 서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육아 상식!

~유치(젖니) 빠지는 시기~

-보통 6~7세쯤 유치가 빠지기 시작하여 영구치가 난다.

-12세쯤 유치가 모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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