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3/261)

* * *

남부 제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천재 도박사를 아는가?

포커의 신!

심리전의 달인!

그 이름은….

‘죠 아저씨!’

나, 리리스 루빈슈타인은 그에게 포커를 비롯한 각종 카드 게임을 전수 받은 수제자였다.

드디어 죠 아저씨도 경악하게 만든 내 청출어람의 실력을 뽐낼 때가 온 것!

나는 속성으로 아빠에게 포커 룰을 알려 주고 계략을 짠 뒤, 도박장으로 입성했다.

도박장 안은 테이블마다 둘러앉은 사람들이 뻑뻑 내뱉는 담배 연기로 너구리굴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아빠가 걸어준 마법 때문에 시야만 좀 답답했을 뿐이지만.

“그 아저씨 얼굴은 알어?”

“응. 초상화 봤어.”

나를 안고 테이블 사이를 가로지르던 아빠가 “저기 있다.” 하고는 성큼성큼 걸었다.

한창 포커 중인 다섯 명의 남자들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아빠가 테이블 위를 똑똑 두드리자 남자들이 전부 우리를 쳐다봤다.

“조제프 뤼트먼 남작, 맞습니까?”

묻자, 옆의 다른 남자들 시선이 일제히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조제프였다.

‘어이쿠, 역시 폐인 같구나.’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세상만사 흥미 없어 보이는 텅 빈 눈.

홀쭉한 뺨.

그럼에도 묘하게 날카로운 분위기가 엑스트라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조제프 뤼트먼일세. 무슨 용건이지?”

“시간을 좀 내 줄 수 있겠습니까?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조제프가 픽 웃었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 재떨이에 지져 끄고는 옆에 손짓했다.

“담배 좀 끄시게들.”

찰나에 조제프의 음울한 시선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조제프가 나 때문에 담배를 껐다는 걸 알았다.

“누가 보냈지?”

“자리를 옮기죠.”

“그럴 필요 없어. 뭐, 귀족 나리들이 날 데리고 오라고 사람 보낸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서.”

“…….”

“당신도 돈이 궁해서 하는 일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때와 장소는 가려야지. 어린애까지 데리고 어딜 오나.”

조제프는 손을 휘휘 저었다.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 난 여기서 나갈 일 없으니.”

“대화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버티자 조제프가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위험한 분위기.

조제프와 아빠는 가만히 서로를 응시했다.

아빠의 남다른 눈빛을 읽기라도 한 건지, 조제프가 웃음을 걸친 채 몸을 젖혔다.

“정 그렇다면 기다리게. 게임이 끝나고 내가 도박장을 나갈 때까지.”

“언제 끝납니까.”

“이런 곳엔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이나 할 질문이군.”

조제프가 의자 밑에서 묵직한 꾸러미를 꺼내 턱,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가진 돈을 다 잃어야 게임이 끝나지.”

옆의 남자들이 킬킬 웃었다.

도박장 프로가 저 많은 돈을 쉽게 잃겠나.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응, 여기까지 다 생각했어.’

나는 아빠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그러자 아빠가 의자를 쑥 빼고 앉았다.

“그럼 저도 같이 한 게임 하죠.”

* * *

조제프는 음울한 눈으로 아이를 훔쳐보았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마냥 해맑은 표정으로 아빠의 품에 안겨 웃고 있었다.

‘엘라….’

오랫동안 불러 보지 않았던 딸의 이름이 입에서 맴돌았다.

그의 딸, 엘라도 저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지금은 여덟 살이 되었겠지.

“전부 숙지했습니다.”

자신을 제임스라고 소개한 어리숙한 남자는 카드 게임이 처음이라고 했다.

20분이나 딜러에게 게임 룰을 배운 뒤에야 긴장한 표정으로 카드를 받았다.

‘머저리 같은 놈.’

욕심 많은 높으신 분이 또, 조제프를 꼬셔 데려오라고 돈 몇 푼 쥐여주고 고용한 자일 터.

‘내 소문을 알고 일부러 딸을 데려왔나 보군.’

아내와 딸을 잃은 조제프였다.

아이를 보고 마음이 약해질 거라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더 괘씸하지 않은가.

“콜록. 콜록.”

아이는 담배 연기가 매운지 연신 기침을 해 댔다.

“레이즈. 5만 더.”

조제프는 짜증스럽게 외치면서 판돈을 훅 올렸다.

빨리 저 궁색한 사내의 전 재산을 따내, 아이에게 유해한 이 도박장에서 내쫓아야 했다.

“폴드.”

“…폴드.”

“콜?”

“폴드!”

한데 게임이 진행될수록 조제프의 이마에 빠직 핏줄이 섰다.

과연 초보는 초보.

도무지 베팅이라는 것을 하질 않는다.

소심하게 게임을 포기하거나 한두 푼이나 걸 뿐이었다.

‘젠장. 이딴 식이면 아주 여기서 밤을 꼴딱 새우겠군.’

조제프가 초조한 눈으로 자꾸 콜록거리는 아이를 걱정스럽게 훑었다.

“어어, 콜?”

그때. 제임스가 조제프의 패를 보며 눈을 빛냈다.

‘걸렸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우와아! 아빠, 아빠! 우리 숫자 두 개 똑같은 거 있자나!”

“어어. 쉿, 쉿. 공주야.”

아이가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자 제임스가 허둥거리며 슬쩍 눈치를 봤다.

조제프는 코웃음 쳤다.

‘원 페어(*값이 같은 2장의 카드)군. 받을 카드가 한 장 남았으니 운 좋아도 트리플(*값이 같은 3장의 카드)이나 뜨겠지.’

저 멍청한 초보가 고작 9등 패를 쥐고 눈을 빛내는 이유는, 상대 조제프의 패가 형편없기 때문이었다.

제임스가 보고 있는 조제프의 패는 2, 10, Q.

노 페어.

제멋대로 중구난방인 꼴등 패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감춰둔 조제프의 패는 올 스페이드로, 전부 모양이 같은 플러시.

실제로는 까 보면 5등 패였다.

“올인.”

조제프가 제 돈 꾸러미를 전부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제임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걸겠단 말입니까? 그 패로?”

“그런데?”

제임스가 자기 패를 가리켰다.

Q, 7, 7.

“난 이미 7이 두 장입니다. 원 페어요.”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숨긴 패가 원 페어보다 높을 수도 있잖나.”

“거짓말하지 마시죠. 쓰레기 패로 괜히 겁주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 해도, 무슨 상관이지? 그게 포커의 묘미인데.”

조제프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숨겨진 패가 무서우면 게임 포기하면 되잖나. 별거 아닌 것 같으면 당신도 올인하면 될 거고.”

그 말에 제임스는 고민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에 훤히 드러나는 얼굴.

정말이지 초보 중의 상초보였다.

‘질러라, 제발. 가진 돈을 다 잃으면 싫어도 여기서 나가야겠지.’

조제프는 제임스가 얼른 저 어린 딸을 데리고 여기서 나가 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하겠습니다. 올인.”

제임스가 떨리는 손으로 제 돈 꾸러미를 전부 올렸다.

‘좋아. 끝났군.’

조제프가 피식 웃으며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딜러가 뒤집혀 있던 조제프의 패를 하나하나 까기 시작했다.

플러시, 5등 패였다.

“아니!”

놀란 제임스가 벌떡 일어났다.

“뭐, 뭡니까?!”

“흥분하지 말고 앉아. 베팅은 무를 수 없는 거 알겠지.”

조제프가 턱짓하자, 딜러는 제임스의 패를 열기 시작했다.

뒤집혀 있던 한 장을 까니,

놀랍게도 7이 나왔다.

7, 7, 7.

트리플, 7등 패.

조제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째선지 제임스의 입꼬리가 씨익, 솟았다.

동시에….

* * *

아빠는 시킨 대로 잘했다.

이미 나에게 다 배웠지만, 처음인 척 딜러에게 다시 규칙을 들었고.

까딱.

내가 새끼손가락을 테이블에 두드리면,

“폴드.”

게임 포기.

까딱.

약지를 두드리면,

“콜.”

판돈 받고 넘기기.

“좋은 패가 들어올 때까지 아주아주 소심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 아빠는 베팅 절대 하지 마.”

“응, 알겠어.”

“기회가 오면 내가 신호를 줄게. 그전까지는 무조건 체크, 콜, 폴드만 외쳐.”

판돈이 올라갈 만하면 패를 버리고 도망치는 아빠의 플레이에 다들 지루해했다.

‘저 소심한 초보가 또….’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중간중간 나를 힐끔거리는 조제프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어 줬다.

“콜록. 콜록.”

마법 때문에 담배 연기는 맡아지지도 않았지만, 기침하는 척은 덤.

콜 몇 번 외치며 기회를 보느라 가진 돈이 절반 정도 줄었을 때.

‘왔다.’

기회가 왔다.

조제프의 패로 봤을 때, 아무리 잘 나와 봐야 5등 패인 플러시.

‘그럼 끝났네.’

나는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내가 꽉 주먹 쥐면 그건 기회야. 아빠가 뭘 질러도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지!”

신호를 보내면 마음껏 질러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뭐, 뭡니까?!”

“흥분하지 말고 앉아. 베팅은 무를 수 없는 거 알겠지.”

아빠는 조제프의 패를 확인한 뒤 충격받은 연기까지 했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 해?’

나는 진지하게 몰입하는 아빠를 보며 겨우 웃음을 참았다.

7, 7, 7.

그리고, 우리가 가진 세 장의 같은 카드가 공개된 순간.

조제프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 우리 패를 주시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을 거다.

왜냐면 내가 아까….

“우와아! 아빠, 아빠! 우리 숫자 두 개 똑같은 거 있자나!”

…은근슬쩍 함정 발언을 흘렸으니까.

‘실은, 똑같은 숫자는 이미 네 개였지만.’

내가 뭘 모르는 애라서 먹히는 페이크였다.

7, 7, 7.

트리플이 나온 상황에서, 딜러가 아빠의 마지막 카드를 공개했다.

“이게 무슨!”

동시에 조제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허억.”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입을 틀어막고 숨을 삼켰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아빠는 어깨가 한껏 솟아 내 뺨에 움움 하고 입을 맞췄다.

마치 내 연기를 칭찬해 주는 듯한 모습.

“…하, 애한테 별걸 다 가르쳤군.”

그걸 본 조제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는.

……하트 7.

7, 7, 7, 7.

아빠는 화려한 패를 손으로 착 훑으며 말했다.

“포 카드. 제가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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