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8/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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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입소일.

“리리스, 체시어. 편지할게. 밥 잘 챙겨 먹고.”

“꼬맹아! 누가 괴롭히면 바로 이 오라버니한테 편지 써. 아주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몸조심하렴.”

“열심히 하고 돌아오거라.”

나와 체시어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고 양성소로 떠났다.

양성소는 황실 소유인 중북부의 발키리 영지에 있었는데, 황궁 내의 워프 게이트로만 이동할 수 있었다.

도착해서 본 발키리는 심히 자연 친화적인 오지였다.

유치원쯤 생각했는데, 아니.

확실히… 군대였다!

<호국 요람>

이런 훈련소 디테일까지 똑같을 일인가?

나는 양성소 입구에 걸린 ‘호국 요람’ 네 글자를 읽고 황당해서 입을 떡 벌렸다.

작가는… K-군대의 모든 것을 착실히 능력자 양성소에 반영했음이 틀림없었다!

“딸….”

“어, 응. 아빠.”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본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던 아빠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떨고 있었다.

“모, 모야아? 울어?”

“하아.”

아침부터 우울해 있더니….

나는 황급히 아빠 어깨를 토닥였다.

“왜 울어어. 나 죽으러 가는 거 아니야. 열심히 해서, 한 달 만에 돌아가께. 응?”

“한 달을 공주랑 어떻게 떨어져 있냐….”

그건 그렇네.

태어나 처음이었다. 아빠와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게 되는 건.

“우리 딸. 맛없어도 밥 꼭꼭 챙겨 먹고?”

“응.”

양성소 선배인 쌍둥이 오빠들도 집 떠나오기 전 같은 당부를 했었다.

‘양성소 밥 더럽게 맛없나 보네.’

식사가 맛없어도 끼니 거르지 말라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당연하지.”

“아빠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응.”

“다치지 말고. 혹시 아야하면 바로 선생님들한테 말하고?”

“알써.”

그 뒤로도 한참 당부의 말을 남긴 아빠는 겨우 진정하고 나와 체시어를 꼭 안아주었다.

“맞다. 체시어 너, 아저씨가 말한 거 잊지 않았지? 명심해야 한다.”

“예.”

“그래. 몸조심하고.”

아빠와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받은 체시어가 슬쩍 내 눈치를 봤다.

혹시라도 내가 무슨 말이냐고 캐물을까 봐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응, 걱정하지 마. 안 물어볼 거야. 나는 이미 다 아니까.’

아빠는 체시어를 가르치면서 그의 특별함을 진작 알아봤을 것이다.

체시어의 특별함이란,

마력 100%의 능력자라는 것.

체시어는 성력과 마력이 일정 비율로 섞여 있는 보통 능력자들과는 달랐다.

그 말은 곧 최종 빌런인 황제, 즉 ‘프리메라’에게 통제당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란 뜻이다.

프리메라의 힘은 ‘성력’에 기반해 있는데….

성력을 조금이라도 보유한 능력자들은 전부 프리메라가 세뇌할 수 있다.

‘하지만 체시어는 아니지!’

그렇기에, 원작의 최종에서.

체시어가 황제와 나의 목을 벨 수 있었던 거다.

‘혹시라도 발각되면 큰일이니까 체시어한테 잘 숨기라고 했겠지, 뭐.’

나는 아빠의 당부를 나름대로 짐작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간 기다렸을까.

“1026기 특별 입소자들은 입소해 주십시오.”

드디어 양성소 관리자의 부름이 있었다.

“공주야,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씩씩하게 하고 돌아와?”

“응, 아빠. 가따 오께!”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굿바이 키스를 해 주고 체시어의 손을 잡았다.

드디어 입소였다!

* * *

양성소 대강당.

나와 체시어는 입소식을 하기 위해 입소복으로 갈아입고 대강당으로 향했다.

입소복은 활동하기 편한 하얀색 체육복 디자인이었다.

“우와! 친구들 많다.”

대강당 의자를 가득 메운 내 또래 아이들이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매년 3월에 있는 정규 입소일에 이미 입소한 아이들이었다.

“1026기 특별 입소자들은 준비해 주세요. 곧 위대하신 프리메라께서 당도하십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깐깐한 인상의 연구원이 우리를 일렬로 세웠다.

특별 입소는 정규 입소일을 놓친 능력자들이 간간이 따로 입소하는 경우다.

대개 자신이 능력자인지 모르고 살아온 평민….

그러니까 검문을 통해 발각된 귀족의 사생아나 조상 중 능력자의 피가 흐르는 3, 4세들이었다.

나는 옆에 서 있는 동기들을 힐끔 살폈다.

이번 특별 입소자들은 나와 체시어를 포함해 열한 명.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평민이었다.

‘흠.’

내 입소복 가슴팍에 달린 금색 명찰을 내려다보았다.

[리리스 루빈슈타인]

성씨가 적혀 있다.

[체시어]

체시어는 아니었다.

명찰의 색도 나와 다른 하얀색.

‘대단하네.’

생각하면서, 나는 대강당 의자에 모여 앉은 아이들도 살펴보았다.

제각각 가슴팍에 달린 명찰의 색이 달랐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 흰색….

나와 같은 색은 안 보였다.

‘정말 대단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제국의 능력자라면 9살에 모두 의무적으로 입소하는 양성소.

이곳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성을 기르게 될 유치원 내지는 초등학교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놀랍게도 양성소는 이 적폐 제국의 계급제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작은 사회였다.

아이들을 명찰의 색으로 구분 짓는 이유?

가문의 힘과 계급의 차이를 가장 먼저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응, 혁명에 성공하면 아빠한테 이 정신 나간 양성소부터 터뜨리라고 해야겠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게 이 모양 이 꼴이니 다들 계급 사회에 세뇌되어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황제 폐하 납시오!”

그때 쩌렁쩌렁한 기사의 목소리가 황제의 등장을 알렸다.

소란스럽던 대강당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나도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앞문이 열리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황제가 걸어 들어왔다.

상앗빛에 가까운 금발과 오묘한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가진 젊고 아름다운 남자….

황제, 이 소설의 최종 보스.

니콜라스 폰 파빌리온이었다.

‘……?’

황제는 어째선지 준비된 단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곧바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로.

가까워지는 동안 황제의 얼굴이 더 선명히 보였다.

‘역시 프리메라.’

평균 수명이 일반 능력자들의 두 배. 분명 나이깨나 먹었을 텐데도 우리 아빠만큼 젊었다.

“허억!”

“뭐, 뭐야?”

곳곳에서 놀라 숨을 삼켰다.

나도 놀랐다.

황제가 아름다운 얼굴로 환하게 웃더니 바로 내 앞에 다정히 눈높이를 맞춰 앉는 게 아닌가.

“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인사했다.

“드디어 보는구나, 아가야.”

“…….”

친한 척하기는.

일부러 눈을 맞추지 않으려 고개 숙이고 있는데 황제의 손이 불쑥 뻗어졌다.

그리고는 꼭 아빠가 딸을 안듯이 나를 한쪽 팔에 앉히고 일어났다.

“헉.”

“세상에….”

아주 가까이에 보이는 황제의 얼굴.

심장이 콩콩 뛰었다.

원작에서 나를 감금하고 평생 힘을 착취한 어마어마한 악당.

이제는 내가 깨부숴야 하는 최종 목표.

그와의 첫 대면이었으니까.

“내 너를 무척 기다렸단다.”

웃는 얼굴은 한없이 다정했지만, 나는 그 표정이 꼭 간사한 뱀처럼 느껴졌다.

“…영광이에요, 폐하!”

나는 경계라곤 없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황제에게 매달렸다.

그의 뒤로 보이는 아이들은 전부 가지각색의 표정이었다.

놀람, 당황, 부러움….

황제의 이 행동은 명백히 나와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이었다.

절대권력자, 프리메라인 황제가 총애하는 가문.

그에 감히 맞먹을 생각 따위 하지 말라는 완곡한 표현.

“내 가장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루빈슈타인의 핏줄. 충성스러운 신하, 성기사단장 에녹 경의 유일한 여식.”

대놓고 신상 공개까지….

“너에게 프리메라의 무한한 사랑과 이 제국의 영광 있으라.”

빙긋 웃은 황제가 지그시 눈을 감고 나와 이마를 맞댔다.

동시에 맞닿은 머리로부터 차갑고 이질적인 느낌이 확 스며들었다.

‘……!’

온몸의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뻗어 나가는 생경한 감각.

“헉.”

심장이 쨍, 하고 울렸다.

‘됐다.’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프리메라의 힘으로만 각성할 수 있는 능력자들의 ‘코어’가 개방되었다는 걸.

“불편한가?”

황제가 다정히 물었다.

나는 방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감사합니다.”

“그래.”

황제가 반쯤 고개를 틀고 뒤에 있던 연구원들을 향해 말했다.

“교육 기간에 공녀에게 각별히 신경 쓰도록.”

“예, 폐하.”

“분부 받들겠습니다.”

황제가 나를 안은 그대로 옆에 있는 다른 동기들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그 순간.

코어가 개방된 이후라서인지 마나의 흐름이 아주 분명하게 느껴졌다.

“으아.”

“와….”

나처럼 생경한 감각을 느낀 아이들 몇이 가슴팍을 붙잡고 탄성을 터뜨렸다.

그들도 코어가 열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거 광역 스킬이었어?’

모아놓고 한 번에 코어 개방을 시킬 수 있었으면서.

특별대우를 보여 주려고, 황제는 굳이 나를 따로 안고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하아.’

나는 부러움 가득한 눈의 아이들을 쳐다보며 속으로 한숨을 터뜨렸다.

다들 황제와, 그의 품에 소중히 안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떼잉, 쯧. 친구 편하게 사귀긴 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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