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엄마.
엄마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 이렇게 갑자기?’
당황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쿵쿵쿵쿵쿵.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뭐라고 하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해? 만나서 반가워요? 아님 내 소개? 아는 척을 해야 하나?’
그대로 굳어버렸던 내가 한참 만에 입을 여는데―
“저어.”
탁. 엄마가 내 손에 들려 있던 공을 집었다.
그리고는 휙 뒤돌아서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 저기요, 잠깐!”
반사적으로 뻗은 손이 무색하게 엄마는 한참 멀어져 있었다.
‘뭐, 뭐지? 나랑 아는 척할 생각도 없는 건가?’
나는 그대로 멈춰 눈만 깜빡였다.
슬쩍 옆을 보니, 룸메이트들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흠흠.”
나는 헛기침하며 허공에 뻗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좀 이상했다.
* * *
‘뭐지.’
교정에서 리리스를 발견한 체시어는, 무심코 멈춰 서서 계속 그녀를 살폈다.
낯선 여자를 보며 창백한 얼굴로 떠는 표정이 평소의 리리스답지 않았다.
당황한 건 여자 쪽도 비슷해 보였다.
“저기요, 잠깐!”
리리스는 여자를 잡으려 했다.
왜인지 여자는 유령이라도 맞닥뜨린 사람처럼 급히 자리를 피해버렸지만.
‘아는 사람인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리리스의 표정에, 체시어는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씁쓸해 보이기도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일 있냐고.
저 사람 누구냐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고 싶은, 그런 얼굴.
항상 밝았던 리리스답지 않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 * *
‘공격’ 계열 반의 이론 교육 시간.
나와 체시어는 오후부터 다른 애들과 함께 수업을 받게 됐다.
‘되게 지루하네.’
나는 마법식 책을 팔랑팔랑 넘기면서 생각했다.
이론 교육은 별거 없었다.
공격 계열의 마법식을 직접 그려보고 달달 외우는 것뿐.
물론 머릿속에 마법식을 구현할 필요가 없는 내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이었다.
‘에휴, 그래도 정체를 안 들키려면 외우는 척은 해야 하니까.’
나는 마법식을 보고 공책에 옮겨 그렸다.
양성소 교재에는 B급부터 F급까지 마법식이 나와 있었다.
높은 급일수록 마법식이 복잡하고 구현이 까다로웠다. 물론 공격력도 그에 비례해 강력해진다.
‘와, 그런데 B급은 하나 외우는 데 한 일주일 걸리겠는걸?’
나는 황당해하다 곧 납득했다.
마법이 뿅 하고 쓸 수 있는 거면 다 신이게….
‘필요 없어도 외우자! 딴생각하지 말구! 리리스!’
나는 뺨을 찰싹 때렸다.
멍하니 있으면 자꾸, 아까 만났던 엄마 생각이 나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엄마의 그 눈빛은 뭐였을까?’
날 굳이 만나려 하지 않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혹시 내가 아는 척할까 봐서?
그래도 어쩌다 마주치게 됐는데 한 마디 대화도 없이 도망치듯 사라지다니.
뭔가 화가 났나?
내가 뭘 잘못했나?
머릿속에 물음표가 수십 개였다.
“…리스.”
“…….”
“리리스.”
“아, 으응!”
나는 체시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아까부터 왜 이렇게 멍해.”
“…내가?”
체시어가 내 공책을 턱짓했다.
분명 마법식을 그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난데없는 사람 그림이 있었다.
포니테일 헤어의 여자 그림.
망할 놈의 손가락이 무심코 엄마를 그린 모양이었다.
“으응, 그러네. 나 멍했네. 왜 그랬을까….”
“…….”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마를 마주친 충격이 컸나 보다.
‘아니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겠어. 엄만데. 태어나서 처음 만난 엄만데.’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아까 그 여자 아는 사람이야?”
“응?”
“아까 밖에서 네가 어떤 남자애 공 가져다줬잖아.”
“앗, 봤어?”
“어. 그때 여자 연구원 앞에서 너 표정이 좀 이상했는데. 아는 사람이야?”
“아아.”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리 엄마야.”
체시어의 눈이 커졌다.
“뭐? 그 사람이 엄마라고?”
“응. 나도 아까 처음 봤어.”
체시어에게 엄마 얘길 한 적은 있는데, 그게 누구라고는 안 했던지라….
그래서인지 체시어도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그때 서로 처음 봤어? 그런데 왜 네 엄만 아무 말도 안 하고 가 버린 건데?”
“그러게? …아! 애기가 울고 있었잖아. 그래서 당황했나 부지?”
“…….”
“그리고 어차피 같이 살 거 아니라서. 음, 그래서…. 그냥 아는 척 안 했나 봐.”
체시어가 중얼거리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에 뭔가 또 부끄럽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에잉, 모르겠다.”
나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책상 위로 무너뜨렸다.
* * *
이제 마주칠 일 없겠지, 뭐.
“뉴냐!”
…라고 생각한 게 몇 시간 전이었는데.
저녁을 먹으러 온 식당에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카일이 배시시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단풍잎처럼 작은 아이의 손에는 사탕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나 주는 거야?”
“응! 뉴냐 머거!”
아무래도 아까 내가 공을 가져다준 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히 아이의 손에서 사탕을 집었다.
“고마워.”
“응, 뉴냐!”
우렁차게 대답한 카일이 몸을 돌려 도도도 멀어졌다.
‘동생….’
나는 뽀작뽀작 걸어가는 카일의 뒷모습을 멍하니 눈으로 좇았다.
몰랐을 때는 아무 느낌 없었는데.
반은 같은 피가 섞인 동생인 걸 알고 나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
카일이 쥐여준 사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내 눈에, 문득 식판 위에 놓인 주스가 들어왔다.
나는 얼른 그걸 집어 카일에게로 달려갔다.
“우응?”
“있잖아, 사탕 고마워. 잘 먹으께! 그리구, 자! 나는 이거 줄게!”
카일은 큰 눈을 깜빡거리며 내가 내민 주스를 보다가 곧 환하게 웃고는 받아들었다.
“고마오, 뉴냐!”
“응, 히히.”
“…카일!”
흠칫.
‘엄마다.’
몇 번 들어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귀에 익은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바짝 굳었다.
급하게 달려온 엄마가 카일을 낚듯이 안아 들었다.
“엄마! 뉴냐가 이고 조써!”
“…….”
아까와 달리 카일은 마냥 해맑았지만,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은 전보다 더 창백했다.
‘대체 왜 저러지? 아니, 날 이렇게까지 경계할 필요가 있나?’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니?”
“네?”
“아니면… 얘가 뭘, 잘못했을까?”
“……?”
나는 당황하다가 손사래 쳤다.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이 애한테 사탕을 받았어요. 음, 그래서 주스는, 고마워서 준 거구요….”
“…….”
“뭐, 뭔가 문제가 있나요?”
말없이 내리꽂히는 시선이 따가워 나는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받으렴.”
“아.”
“으앙! 내 쥬쑤!”
엄마는 카일의 주스를 다시 내 손에 되돌려줬다.
그리고는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말했다.
“저, 있지. 아이가 아직 뭘 모른단다. 네게 또 말을 걸면… 그냥 가라고 해. 그리고 혹시 할 말이 있다면, 아이 말고 내게 말하렴.”
“…….”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내가 카일에게 이상한 소리라도 할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아까 낮의 일은, 더 묻지 않을게. 앞으로 그러지 말아 주렴. 부탁이야.”
낮의 일?
힘없이 눈을 내리깔고 있던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역시. 아까 내가 카일의 공을 뺏고 괴롭혔다고 오해하는 모양이었다.
“저기 아까는….”
하지만 해명할 새도 없었다.
엄마는 또 뒷모습이었다.
“으으, 저기, 잠깐만요!”
제발 그만 좀 피해! 붙잡고 해명하려는데―
‘체시어?’
체시어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식사 중이었던 그가 어느새 엄마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저기요.”
체시어는 드물게 화가 난 목소리였다.
“쟤가 뭐 잘못했어요?”
“응?”
“쟤가 뭐 잘못했냐고요.”
뒤에 선 나를 가리키며 말하는 체시어에, 엄마가 당황하며 돌아보았다.
“아까 낮에 아줌마 아들이 다른 애한테 공을 빼앗겨서 울었어요. 리리스가 그 공, 도로 가져다줬고요.”
“…….”
“그리고 조금 전엔 그 애가 먼저 리리스한테 간 것 같은데요. 또, 저 주스는.”
체시어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에서 주스를 빼앗았다.
그리고 카일에게 건넸다.
“쥬쑤!”
“저녁 식사로 방금 나온 거예요. 독, 안 들었어요.”
공격적인 체시어의 태도에 나는 놀랐다.
엄마도 당황했다.
“아, 그렇구나. 미안해. 낮엔 내가 오해했던 모양이네. 그리고 주스, 이건. 그런 뜻이 아니라 난….”
“얘 잘못한 거 없어요. 아줌마 아들 괴롭힐 마음도 없고요.”
엄마의 말을 자른 체시어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무서운 눈빛으로 엄마를 노려보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짜증 나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얘 눈치 보게 만들지 말라고요.”
“…….”
“아들이 그렇게 걱정되면, 리리스 옆에 가지 말라고 아줌마가 알아서 잘 가르치시고요.”
나는 쏟아붓는 체시어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가자.”
체시어는 말을 잃은 엄마를 두고 내 손을 잡아 식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