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교정.
식사를 마친 아이들 몇몇이 산책하고 있었다.
나와 체시어는 교정 한쪽에 있는 파고라에 나란히 앉아 한참 말이 없었다.
“체시어, 너.”
“응.”
“그렇게 말 잘했었어…?”
자꾸 나만 보면 도망치는 엄마를 붙잡고 해명도 해 주고, 오해도 풀어 주다니.
물론 너무 공격적이라 좀 무섭긴 했지만.
이렇게 사이다 팡팡 터뜨릴 수 있는 성격이면서 왜 자기 일에는 입을 꾹 닫고 있을까?
참 알다가도 모를 애였다.
“고마워…. 진짜 너무 답답했는데 네가 말해 줘서 가슴이 시원해졌어.”
그리고 울적한 내 곁을 말없이 지켜주기까지.
새삼 울컥하고 말았다.
“있잖아, 체시어.”
“응.”
“내가 전에 너한테… 엄마 없어도 괜찮다구 했잖아….”
“응.”
“나 진짜 괜찮을 줄 알았거든? 근데 막상 엄마 얼굴 보고 나니깐, 음, 또 그게 아니더라구….”
“…….”
“나는 엄마랑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같이 안 살아도.”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조금 부끄러웠지만,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계속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구 물어보면 대답할 말도 생각해 놓고. 또, 동생…. 인사시켜 주면, 잘해줘야겠다구 마음도 먹었는데.”
“…….”
“그런데 방금 보니까, 엄마는 그러기 싫은가 봐.”
체시어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줘서일까. 입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직 어려서, 애도 안 낳아봤구…. 그래서 잘 모르지만.”
“…….”
“엄마니까. 나를 키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낳은 사람이니까.”
“…….”
“서로 인사하는 사이는… 그런 사이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생의 나는 고아였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 사랑받는 친구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원작을 되짚으려고 머리에 힘을 주고 전생을 떠올릴 때면, 항상 드는 감정이었다.
그런 감정이 드는 게 아빠한테 못내 미안하기도 했다.
난 이미 환생했고 전생과 달리 고아도 아닌 데다가 아빠한테 사랑 듬뿍 받고 있으니까.
“나 욕심쟁인가 봐.”
그 전생의 기억 때문일까.
분명히 아빠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를 본 순간.
나는 엄마한테도 다정하게 이름 불리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에휴우.”
나는 체시어를 보며 한숨 쉬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버림받은 체시어 앞에서, 정말 복에 겨운 하소연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해, 체시어….”
“애쓰지 않아도 돼.”
“응?”
체시어가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잖아. 자기 자식 버리는 사람도 있고,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도 있어. 같은 자식인데 차별하는 사람도 있고.”
“어, 응. 그치.”
“네 엄마도, 너랑 달리 아들은 직접 키웠으니까 더 애틋하겠지. 너까지 사랑해 줄 여유가 없을지도 몰라.”
“응….”
“그러니까 애쓰지 마. 널 사랑해 주지 않으려는 사람한테 사랑받으려고 애쓸 필요 없어.”
나는 멍하니 체시어를 보았다.
“게다가 너한테는, 널 충분히 사랑해 주는 아빠가 있잖아.”
“…맞아.”
지금 엄마 때문에 우울해하는 나를 보면 아빠는 속상하겠지.
엄마가 없다고 해서 아빠가 내게 못 해 준 것도 없는데.
“흠!”
나는 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맞아! 네 말이 다 맞아! 고마워, 체시어!”
그새 밝아진 내 표정이 마음에 드는지 체시어가 살짝 웃었다.
“너 근데 배 안 고파? 나 때문에 밥 다 안 먹구 나와버렸잖아.”
“아니야. 거의 다 먹었었어. 너는….”
말하던 체시어가 나를 보며 걱정하는 눈을 했다.
“식판 받아다 줄까.”
나는 체시어를 쳐다보았다.
저녁 달빛이 그의 붉은 눈이며 얼굴 위를 가만 비추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체시어의 눈은 공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보는 눈빛은 다정하기까지 했다.
“히히.”
그게 좋아서 나는 웃어버렸다.
“아니! 나도 다 먹었어. 글구 네 얼굴만 봐도 배가 빵빵해지는걸? 잘생겨서.”
“뭐래. 그런 말 좀 하지 마.”
퉁명스럽게 내뱉는 체시어에게 나는 슬쩍 가까이 붙었다.
“정말 고마워, 체시어. 나 이제 완전 괜찮아졌어. 네 말대로 엄마는 없어도 나한테는 아빠가 있으니까.”
“그래.”
“그리구.”
나는 체시어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너도 있고.”
“…….”
어깨를 내어준 체시어는 그렇게 한참 또 내 곁을 지켜 줬다.
슬쩍 내려다본 그의 오른손이 자꾸 움찔거리길래,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 머리 쓰다듬어 줘!”
고민하고 있던 체시어의 손이 내 머리에 닿았다.
쓰다듬는 손길은 서툴렀지만, 다정했다.
“히히.”
그렇게 저녁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다 문득, 나는 아빠가 보고 싶었다.
“울 아빠 지금 모 하까.”
“벌써 보고 싶어?”
“음, 벌써라기에는….”
절로 입이 삐죽거렸다.
“사실 어제부터 보고 싶었어. 나 아빠 없이 혼자 자는 거 무섭구 어색해….”
체시어가 한숨 쉬었다.
“일하고 계시겠지.”
“응, 그렇겠지….”
* * *
사아아악―!
한 줄기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허공을 갈랐다.
백 마리쯤은 되어 보였던 마수 무리는 정확히 그 일격 한 번에 피를 터뜨리고 무너졌다.
엘레바도(Elevado).
마나를 수많은 검의 형상으로 날려 수백 수천의 적들과도 대적할 수 있는, 검의 경지에 다다른 이들만이 구사하는 능력.
‘여전히 미쳤군.’
도스 성기사단 부단장, 악시온 리브르는 봐도 봐도 믿기지 않는 단신의 전력을 체감하며 혀를 내둘렀다.
옆에 있던 부하 필립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선명했다.
“단장님은 진짜… 뭘까요?”
필립이 들고 있던 제국 지도를 펼쳐 X자를 그려 넣었다.
지도 위에는 벌써 X 표시가 일곱 개나 되었다. 토벌을 마친 지역들이었다.
필립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되네.”
에녹 루빈슈타인은 딸이 양성소에 입소하자마자 검을 잡았다.
그리고 꼭 미룬 숙제라도 처리하려는 사람처럼, 제국 전역의 마수 출몰지마다 출정 계획을 세웠다.
“부단장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그래.”
“저희 지금 토벌 나온 지 며칠이나 됐나요?”
“웬 며칠. 열여덟 시간째다.”
필립이 뜨악했다.
그 시간마저도 워프 게이트를 찾아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는 데에 걸린 시간.
정작 마수들과 맞닥뜨리면 토벌에 드는 시간은 10분도 안 됐다.
“하나만,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그래.”
“저희 토벌대가 지금 몇 명으로 꾸려져 있나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알지만, 믿기지가 않아서죠.”
“너, 나. 그리고, 쟤.”
악시온이 멀리서 다가오는 에녹을 가리켰다.
“노노놀랍네요, 정말….”
보통 토벌대는 최소 50명에서 많으면 300명까지도 꾸린다.
거기에 방어나 치유 계열 능력자들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 원칙.
그만큼 마수 토벌은 위험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물론, 저 마수보다 더한 괴물 에녹 루빈슈타인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원칙이지만.
“……!”
크르르르―.
그때, 협곡 위쪽의 바위틈에서 마수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악시온과 필립이 재빨리 위를 쳐다보았다.
“아….”
그러나 놀라운 일이었다.
들개 모습을 한 마수는 침을 질질 흘리며 떨고 있었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지능이 없는 마수들은 겁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뭘 두려워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악시온은 순간, 잡아 죽여야 할 마수를 보면서 측은함이 들었다.
참 기이한 감정이었다.
“그래…. 너도 살려고 그랬을 텐데….”
필립도 마찬가지인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늘어뜨리며 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필 개같이 생겨서 떨고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이는 듯도 했다.
“우쭈쭈. 녀석, 불쌍해라. 하필 단장님 떴을 때 나와가지….”
샥―!
그 순간, 마수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필립이 침을 꼴깍 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에녹이 필립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애완동물이라도 필요한가.”
“아, 아님다!”
군기가 바짝 든 필립이 허리를 세웠다.
못마땅한 듯 필립을 쳐다보던 에녹이 검집에 검을 넣고 둘을 쌩 스쳐 지나갔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