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70/261)

“네가 준 선물 동네방네 자랑해야지!”

“하아. 필요도 없는 걸….”

마법 전공인 나는 필요 없는 게 맞다.

하지만 말했듯, 웅장한 이펙트를 위해 챙겨 왔단 말씀.

“그게 또 아니야. 자, 봐바. 저 부러워하는 눈빛들 안 보여?”

나는 분홍색 마법봉을 더욱 높이 치켜들었다.

주변에서 라라 공주 마법봉을 알아본 여자아이들 몇이 “와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히히. 얘들아, 수업 잘 받구 이따 봐.”

“…그래.”

“응, 이따 봐!”

체시어와 젬이 각자의 수업 구역으로 가고, 나도 [마법부] 팻말이 세워진 곳으로 향했다.

내가 가까이 가자, 모여 있던 애들 몇이 숙덕거렸다.

“쟤 엊그제 온 특별 입소자잖아. 왜 벌써 실기 들으러 와?”

“기초 교육을 벌써 이수하진 않았을 텐데. 설마 그냥 통과시켜 줬나?”

“아하, 그랬겠다. 그런데 루빈슈타인은 그렇다 쳐도 아까 그 남자애는 평민이잖아.”

“그럼 걔는 천잰가 보지.”

조용히 귓속말한다고는 하는데 다 들렸다.

졸지에 빽으로 기초 교육을 프리패스한 바보 금수저가 된 나….

‘하, 내 실력을 보여줘야 하나.’

나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곧 마법부 실기 담당 연구원이 왔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실기 수업은 간단했다.

양초에 불붙이기.

통통한 양초 스무 개가 나란히 놓여 준비되어 있었다.

성냥을 칙칙 그어 심지에 불을 붙이면 참 쉽겠지만, 마법으로는 어렵다.

불 피우는 ‘플레임’.

특정 위치를 설정하는 ‘캐스팅’.

두 가지의 마법식을 머릿속에 그린 뒤 마나를 운용하며 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무 개씩이나 되는 양초에 동시에 불을 붙이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다.

“소피아 터너. 세 개.”

연구원은 차트에 아이들의 성적을 기록했다.

세 개가 나오자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최고 기록이었다.

소피아 터너라는 여자애는 우쭐해져서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여태껏 무심한 표정으로 차트를 넘기던 연구원이 갑자기 방긋방긋 웃었다.

“리리스 루빈슈타인 공녀님?”

“아, 넵.”

생판 다른 연구원의 태도에 아이들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차별이야.”, “기초 교육도 안 받고.” 어쩌고 하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나가, 첫 번째 양초 앞에 서서 라라 공주 마법봉을 들이밀었다.

‘나 생각보다 관심종자였나 봐.’

화려하게 불을 피울 방법이 생각났지 뭔가.

나는 마법봉을 겨누어 첫 번째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옆으로 걸었다.

화라라라락―

스무 개의 양초에 차례대로 불이 붙었다.

“헉!”

“우아, 세, 세상에…!”

“뭐, 뭐야, 저거?”

빙글 돌아보니,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아이들의 눈이 빠질 듯 커져 있었다.

‘우헤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리, 리리스 루빈슈타인. 스무 개. 정말 대단하세요, 공녀님!”

연구원이 차트에 내 성적을 기록하고는 호들갑 떨었다.

웅성거리던 목소리들이 멎고, 찬물 끼얹은 듯 고요해진 강당.

멀리 있던 체술부 아이들까지 놀라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

짝, 짝, 짝―.

묵직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고개가 강당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뭐, 뭐야. 당신이 거기서 왜 나와?’

나는 눈을 쓱쓱 비볐다.

황제.

황제였다.

“허억! 위, 위대하신 프리메라를 뵙습니다!”

“프리메라를 뵙습니다!”

당황한 연구원들이 황제를 향해 절했고 아이들도 일제히 고개를 수그렸다.

‘아니, 황제가 무슨 뒷골목 시장 상인도 아니고 왜 아무 데나 싸돌아다녀? 한가한가 보지?’

나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물론 자기 집에서 워프 게이트 한 번만 타면 양성소라지만.

‘보나 마나 또 퍼포먼스하러 온 거겠지.’

황제는 전부 숨을 죽인 고요한 틈을 가로지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투명한지.

“역시 루빈슈타인이군. 대단하구나, 공녀.”

“과찬이심니다!”

“겸손할 것 없다. 위대한 능력자라면, 자신의 월등함을 자각하는 태도 또한 필요한 법이지.”

뭔 소리람. 참 좋은 거 가르친다.

“이리 오너라.”

황제는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나를 또 달랑 안아 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연구원에게 물었다.

“공녀의 학습 속도가 어떻지?”

“매우 탁월하십니다. 기초 교육을 어제 하루 만에 이수하셨고, 바로 이론 교육에 들어가셨습니다. 오늘 실기에서 1등 성적을 내셨고요.”

“대단하구나.”

황제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없이 다정해 보이겠지만, 나는 그의 눈빛에 가득 찬 비열한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달 말에 계급을 받을 수 있겠군.”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황제는 내가 얼른 능력자 배지를 받고 졸업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래야 완벽하게 징병 대상으로 낙인찍어, 울 아빠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을 테니까.

‘응, 미안한데 당신 생각대로는 안 될 거야.’

나야말로 배지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내 계급을 보고 처참하게 일그러질 황제의 표정을 너무나도 보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것은 네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구나.”

황제가 내 마법봉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덥석, 마법봉을 쥔 내 손을 겹쳐 잡았다.

그러자, 순간.

까드드득―

마법봉에 달려 있던 가짜 보석이 뒤틀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조악했던 보석 모형은 순식간에 세공되어 아름답게 번쩍거렸다.

“우와아.”

“머, 멋지다….”

겉모습만 그럴싸해진 것이 아니었다.

빨간 모형은 진짜 루비, 투명한 모형은 진짜 다이아로 바뀌었다.

연금술이나 다름없는 능력.

단순 마법으로는 불가하고, 프리메라인 황제나 할 수 있었다.

“이제 좀 어울리는군.”

황제가 웃었다.

모두 입을 벌린 채, 부러운 얼굴로 황제에게 안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때려주고 싶다, 진짜.’

나는 속마음과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섞이지 않도록 신경 쓰며 조심조심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왜 멋대로 우리 체시어 선물 업그레이드하고 난리야, 이 XXX! XXXX!’

* * *

“자, 봐바. 요 마법식은 정사각형 모양이지? 근데 한 변이 3이야. 그럼 마법식 전체의 넓이는 모가 될까?”

“3 곱하기 3 하면 돼? 그럼 9.”

“딩동댕! 아주 잘했어요. 그럼 이제 이 정사각형 모양 마법을 넓이 9인 요기부터 요기까지 쓸 수 있다?”

“와, 알겠어!”

그날 저녁부터 시작된 맞춤형 1 대 1 수학 과외.

나와 젬은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한참 곱셈 공부를 했다.

“왜 걔한테 그렇게까지 해 주는 거야?”

지켜보고 있던 앨리샤가 뺨을 불퉁하게 부풀렸다.

“신경 끄시지?”

젬이 바로 받아쳤다.

“너, 너어!”

“싸우지 마, 싸우지 마.”

나는 직접 써 준 구구단 표를 젬에게 주고 일어났다.

“선생님들이 젬한테는 안 가르쳐 준대. 내가 도와주려구.”

“피이. 넌 너무 착해, 리리스.”

“으항항. 내가? 글쎄.”

순진한 앨리샤. 인재들만 골라골라 버스 탈 생각 중인 내 음흉한 속도 모르고….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주고, 침대로 올라가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내일 수업이나 준비해야지.

‘엇, 맞다! 오스카가 준 팔찌.’

가방 싸던 중에, 나는 잊고 있던 오스카의 선물을 발견했다.

진주 체인에 빨간색 하트 모양 수정은 다시 봐도 유치했다….

‘흠, 그래도 선물이니까 써 줄까.’

나는 쿡쿡 웃으며 팔찌를 오른쪽 손목에 찼다.

“그런데 리리스! 너 오늘 실기 때 엄청 대단했다며? 소문 다 났어.”

“아, 맞아! 우린 오늘 교육 없어서 못 봤는데.”

내 침대 건너 2층에 있던 앨리샤와 다이앤이, 생각났다는 듯 호들갑 떨었다.

“엣헴. 그쯤이야, 뭐.”

“힝, 나도 보고 싶어어. 우린 다 치유계라 리리스 너랑 수업이 하나도 안 겹치잖아.”

미셸이 1층에서 투덜거렸다.

“히히. 그럼 좀 보여줄까?”

“와아, 지금?”

“응, 보여줘! 볼래!”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또 나의 내면에 깃든 관심종자 DNA가 고개를 쳐들었다.

“흐음, 뭘 보여 주지?”

생각하다가,

화르르륵―!

허공에 하트 모양의 불꽃을 그려냈다.

“우와아!”

“대, 대단해! 완전!”

“멋지다아!”

나는 쓱 코를 훔쳤다.

그러다 문득,

‘엥. 이게 뭐지?’

오스카의 팔찌.

하트 모양 수정 위에, 전에 없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3sec

그것은 이내 사라졌다.

‘3초? 뭐지? 아니, 그런데 이거 전자 팔찌였어?’

과학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세계였다니.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팔찌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아무리 봐도 기계는 아니었다.

건전지 넣는 구멍도 없고.

‘진짜 이게 뭐람? 가만있자, 방금 내가 뭘 했더니 숫자가 떴지? 아!’

나는 문득 깨닫고 손끝에 작게 불꽃을 피워보았다.

1sec

이번에는 하트 안에 ‘1초’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

세상에.

마법을 쓸 때마다 떠오르는 ‘시간’.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거 마도구야.”

“정말요? 무슨 마도구인데요?”

“양성소 가 보면 알게 될 거야. 소중히 차고 다녀라.”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팔찌를 쳐다보았다.

‘이거, 설마….’

마법을 쓸 때마다 나는 생명력을 소모한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건 내가 마법을 시전하여 사용한.

‘수명’을 보여 주는 마도구였다.

쿵쿵쿵쿵쿵.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나는 가슴을 붙잡았다.

‘마, 마, 말도 안 돼.’

나의 정체를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선물.

마탑주, 오스카 마뉘엘.

그는.

‘다 알고 있었어…?’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