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1/261)

* * *

마탑주, 오스카 마뉘엘은 황제의 부름을 받고 입궁해 있었다.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제가 직접 자신을 불러 논할 일이라곤 하나뿐이었다.

“루빈슈타인 공녀를 마탑에 들일 생각이라지?”

황제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역시.

웃고 있지만, 그는 오스카가 못마땅할 것이다.

황제는 리리스의 군역을 면해주는 대가로 에녹의 목줄을 쥐고 싶어 했다.

하지만 리리스가 군역 면제나 다름없는 마탑의 연구원이 되면, 계획이 전부 허사가 되고 마니까….

“예, 맞습니다. 과연 루빈슈타인의 핏줄이더군요. 마탑에서 일한다면 제국에 큰 보탬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냥 두게.”

“예?”

오스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능청 떨었다.

“마탑의 일원을 채용하는 사안은 저의 자율적인 권한이 아닌지…. 이는 폐하께서 직접 허하신 부분입니다만.”

“그대의 권한에 참견할 생각은 없네만, 루빈슈타인은 논외일세.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글쎄요. 제가 어찌 폐하의 큰 뜻을 헤아리겠습니까. 저는 그저 마탑의 발전을 위해 인재를 수확할 뿐입니다.”

시치미를 떼는 오스카의 반응에 황제가 픽 웃었다.

“뜻 따위야 헤아리지 못해도 상관없네. 그냥 이번만 내 요구를 수용하면 되는 걸세. 공녀는 건드리지 말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폐하.”

오스카는 지지 않고 대꾸했다.

“왜 마탑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역대 황제들이 마탑에 자유와 특혜를 허락해 왔는지 그 이유를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그래. 내 잘 알지.”

마법의 근원이 프리메라를 낳는 황실이라고 한다면.

마탑은 그 마법을 쓸모 있게 시전하고 다룰 수 있게 하는 제작소와도 같았다.

수많은 마법식이 전부 마탑에서 만들어졌다.

이 순간에도 마탑에서는 강하고 복잡한 마법들이 새로이 생겨나고 있을 터.

“능력자들이 아무리 강해봤자, 그 힘을 효율적으로 부리지 못하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마탑은 폐하께서 바라는 강대한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습니다만.”

입술을 모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오스카가 덧붙였다.

“이리 자유를 제한하려 드시면 저로서는 조금 섭섭한데요.”

“언짢다면 유감이지만, 나도 쉬이 물러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막무가내의 태도에 오스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젠장, 황제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마탑과 척지면서까지 에녹 루빈슈타인의 목줄을 쥐려 한다?

예상 밖이었다.

여유롭던 오스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니까 한 가문을…, 정확히는 고작 한 명의 능력자를 발아래 두기 위해 저와의 원만한 관계쯤은 내버릴 마음이 있다. 이렇게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오스카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조용히 물었다.

다시 찻잔을 든 황제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마음대로.”

* * *

황제의 집무실을 나와 묵묵히 걷던 오스카가 다짜고짜 벽에 주먹을 내질렀다.

쾅―!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보좌관 겸 마탑 영재관리부서 총책임장, 로벨의 입이 떡 벌어졌다.

“늙은이가 빨리빨리 뒈지지도 않고 X랄이야, 진짜.”

“히익…! 쉿, 쉿!”

로벨이 빠질 듯 커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허둥지둥 오스카의 앞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하세요, 제발!”

“…죽일까.”

“아윽, 입! 제발 그 입 좀! 황궁 복도 한복판에서 지금 뭔 소릴 하시는 겁니까아!”

로벨이 발을 동동 굴렀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데요. 공녀님을 마탑으로 스카우트 못 하게 되어서요?”

로벨은 이해가 안 됐다.

오스카의 인재 수집벽이야 알고 있었지만….

리리스가 마탑에 못 오게 된 것이 이렇게나 화낼 일일까?

대놓고 황제에게 욕을 할 만큼?

“아무리 마탑이 배짱 있는 곳이라지만, 마탑주님도 엄연한 제국민이십니다. 황제 폐하의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다고요.”

“…….”

“앞으로 마탑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루빈슈타인만 가만 놔두라는데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오스카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로벨이 뭘 알겠나.

리리스를 마탑으로 못 데려와서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오스카는.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

그러니까, ‘돌아온 자’.

오스카 마뉘엘은.

비극이 반복되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될, 책임이 있었다.

“솔직히 손 아프죠?”

무심코 벽에 갖다 박은 주먹을 만지작대는 오스카를 보고 로벨이 물었다.

오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드럽게 아프다.”

“그러니까 성질 좀 죽이세요.”

“그러고 보니….”

다시 걷던 오스카가 우뚝 멈춰 섰다.

“여기서 워프 게이트 타면 바로 양성소지.”

로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 왜, 뭐요. 양성소 가서 공녀님 납치라도 하시게요? 진짜 미치셨나요?”

“납치라니, 걔 아버지한테 뒈질 일 있나.”

오스카가 혀를 내둘렀다.

에녹 루빈슈타인….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 딸이 제 목숨보다 중했던 인간.

누구보다 이타적이면서도 결국 최후의 순간에 고민조차 없이 딸을 되살리는 이기적인 선택을 했던 인간.

“그건 진짜 아니고. 일단 가자. 걔 얼굴 보고 할 말 있어.”

“저, 저기요?!”

오스카가 휘적휘적 앞서 걸었다.

* * *

어제는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오스카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고, 팔찌의 사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이 팔찌, 완전 나를 위한 아이템이야. 오스카는 확실히 내 정체를 알고 있어.’

팔찌는 내가 능력을 쓸 때마다 소모하는 생명력을 보여줬다.

나는 수명이 일반인의 두 배 남짓.

그러니까, 팔찌에 뜨는 시간의 대략 절반만큼 곧바로 성장한다.

30분짜리 마법을 쓰면 15분 성장.

1년짜리 마법을 쓰면 6개월 성장.

‘A급 공격 마법에는 생명력이 얼마나 들까?’

나는 팔찌를 들여다봤다.

30min

30분. A급 마법을 쓰면 15분 늙게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모되는 생명력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직접 마법을 써 보면서 생명력 소모량을 가늠하려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졌고.’

또, 능력을 쓸 때마다 시간이 뜨는 팔찌를 누가 보면 정체를 들킬까 염려스러웠는데.

‘오스카는 그것까지 생각하고 이걸 만들었고.’

혹시 팔찌에 뭐가 보이지 않느냐 물었더니, 룸메이트들 전부 고개를 갸웃.

생명력 소모량은 오직 시전자인 내 눈에만 보였다.

‘대체 어떻게 내 정체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스카는 다 알아. 그러니까 얼른 만나야 해. 만나서….’

협상? 아니.

바닥에 무릎 꿇고 손 딱 붙이고 파리처럼 빌어야 한다.

제에발 내 정체를 함구해 달라고.

다행히도 오스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내게 호의적이지만, 혹시 마음을 달리 먹는다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러니까 그는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얘들아, 저거 마탑주 아냐?”

“헉, 맞아. 하얀 머리에다….”

“저번에 우리 입소식 때 봤었지, 그치?”

나는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뭐, 뭐야? 뭔데 이렇게 타이밍 딱 맞춰 나타났어?’

야외 실기 교육 중이었는데.

멀찍이서 담당 연구원과 대화하는 오스카를 발견한 나는 당황했다.

공사다망하신 마탑주께서 삐약이들이 교육받는 양성소에는 왜?

“마탑주 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던데.”

“응. 나도 들었는데 말수도 없고 차갑고 그렇대.”

아이들이 두런거리는 말을 들으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좀 근본 없는 소문이었다.

첫 만남에 꺼어억 트림을 하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이윽고 오스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우리 애기, 오랜만.”

……?

왜 이러세요.

“마침 궁에 들를 일이 있어서 우리 애기 생각난 김에 왔지.”

“아니, 저기.”

나는 슬쩍 게 눈으로 옆을 봤다.

역시. 아이들 전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와 오스카를 보고 있었다.

“연구원 선생님한테 허락받았는데, 잠깐 조용한 데 가서 얘기나 할까?”

“네, 네! 스승님, 저두 할 말 있슴니다!”

나는 그가 이상한 말을 하면서 더 주목받기 전에 황급히 다리를 떠밀었다.

다행히 오스카는 순순히 떠밀려 주었다.

“스승님!”

훈련장 뒤편으로 돌아온 나는 대뜸 무릎부터 꿇었다.

오스카가 흠칫 놀랐다.

“뭔데?”

“지금까지 제가 너무 기어오르구 그랬죠. 공부도 안 할라 그러구, 막. 정말정말 죄송해여.”

“풉. 푸하하하학…!”

오스카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무릎을 탈탈 털어주며 눈을 맞췄다.

“왜. 팔찌 써 봤나 봐?”

나는 꼴깍, 침을 삼켰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눈물도 날 것 같았다.

긴장하며 입술만 꼭꼭 씹고 있자, 오스카가 내 뺨을 툭 건드렸다.

“쫄지 마. 아무한테도 말 안 해.”

“네?”

“애초에 소문낼 생각이었으면 그런 마도구는 왜 만들어서 널 줬겠냐.”

“저, 정말이에요?”

“어, 정말.”

“왜요? 있죠, 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물어봐도 돼요?”

“음, 대답할 수 있는 거면 대답해 줄게.”

“어떻게 아셨어요?”

“아, 이런. 첫 질문부터 좀.”

오스카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이거.”

그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괜찮으려나.”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이거, ‘금제’라서.”

그와 동시에 오스카가 헉, 숨을 삼키더니 가슴팍을 붙잡았다.

“커헉…!”

왈칵,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 무, 무슨. 왜, 왜….”

“컥, 크윽! 헉!”

목까지 붙잡은 그가 무릎을 꿇고 무너졌다. 입으로는 쉴 새 없이 피를 토했다.

‘이, 이러다 죽겠어.’

나는 오스카를 낫게 할 생각을 하며 팔찌를 보았다.

1year

‘미친, 세상에. 1년이나 필요해? 그럼 나 6개월 한 번에 자라?’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그러나 고민할 새가 없었다.

‘까짓거 1년! 오스카 살려!’

이미 죽고 난 후에 되살리려면 더 많은 생명력이 필요할 테니까.

“하아, 하아.”

아주 천천히, 오스카의 거친 숨이 가라앉았다.

피도 멎고 표정도 평온해졌다.

동시에 나는 내 시야를 살짝 가린 앞머리를 느꼈다.

‘으, 머리카락 자랐다….’

황급히 손바닥을 펼쳐 이리저리 뒤집어 봤다. 다행히 몸이 자란 건 크게 티가 안 나는 듯했다.

“너 미쳤어?”

꽉, 오스카가 그대로 기어 와서는 내 손을 덥석 잡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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