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라서 멍해졌다.
테오를 살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온갖 방법을 찾으러 다녔던 고모부.
그는 당연히 불용 마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을 것이다.
체시어가 원작에서 오스카를 찾아 부탁했던 것처럼.
“모, 목숨이요? 목숨이 필요하면, 그러면… 테오 오빠가 살아나는 대신 고모부는, 고모부는 죽는 거구요?”
“그렇게 되겠지.”
나는 멍해졌다가, 놀라서 고모부의 멱살을 잡아버렸다.
“그, 그러면! 그러면 안 돼요!”
“아하하.”
부활의 조건을 알면서도, 고모부는 정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라도 테오를 살릴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기 목숨 내놓으면서까지 말이지.
‘이 눈물겨운 자식 사랑 어쩔 거야?’
고모부가 충격받은 표정의 나를 꽉 끌어안았다.
“미치겠네. 하지만 이제 괜찮아. 네가 테오를 낫게 해 줬으니까.”
“그, 그래도…. 고모부가 그런 생각을 한 게, 그게 너무 이상해요. 테오 오빠는 고모부가 돌아가셨으면 하나도 안 기뻤을 텐데….”
“하지만 부모 마음이라는 게 다 그래.”
역시 부모는 위대해. 어쩐지 나는 가슴이 찡해져서, 고모부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오진 않았지만, 원작에서도 고모부 성격상 테오가 죽고 나서 마탑 가서 깽판 쳤겠지. 오스카가 마법식을 안 알려 주니 결국은 못 살렸던 것 같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아마 처남도 나랑 같은 상황이었다면 고민도 안 했을걸. 이런 천사 같은 딸을 위해서 뭘 못 하겠어.”
고모부의 말에 멍해졌다.
아빠…?
그 순간 난, 지금까지 내 가슴을 여러 번 철렁하게 했던 아빠의 말들을 떠올렸다.
“공주가 죽은 줄 알았을 때 바로 따라 죽지 않은 것도, 복수해야 하니까 겨우 버틴 거지.”
“복수가 끝나면 따라 죽을 생각이었을지도 몰라.”
“아빠는 공주 없이 절대 못 살아.”
“아빠는 우리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궁금했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아빠가, 원작이 끝나고 어떻게 되었을지.
설마 정말로, 나를 따라 죽었던 것만은 아니길 바랐었는데.
‘궁금해. 내가 모르는….’
원작, 그 이후.
내가 죽고 난 다음의 이 세계는 어땠을지가.
* * *
마탑으로 돌아온 오스카는 이미 사라진 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리리스, 그녀가 죽고 난 이후.
제국은 평화로워졌다.
프리메라의 완전한 소멸.
이제 능력자들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계급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딱 한 명.
평화로운 제국을 만든 장본인, 에녹 루빈슈타인만 빼고.
“왜 내 딸을 위해서 싸웠지?”
그리 묻는 얼굴은 꼭, 시체처럼 창백했다.
남자는 미쳐버렸고, 오스카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살아있었고, 심지어 평생을 갇힌 채 고통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미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키웠습니다. 당신 대신.”
“…….”
“황제는 당신 딸의 자아를 빼앗았습니다. 그 편이 세뇌하기 쉬우니까. 탑 꼭대기에 갇힌 이후로 계속 백치였지.”
황제는 자신의 생명력은 아끼고 대신 에녹의 딸을 마음껏 부렸다.
그녀는 황제 대신 늙어갔다.
“황제가 처음 그 애에게 명령한 일은, 내게 복종의 제약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그 애의 수명이 한 삼십 년쯤 줄었죠.”
마탑이 에녹을 돕지 않고 오스카가 딸의 비밀을 그에게 알릴 수 없었던 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나는 몰래 그 애에게 많은 걸 가르쳤습니다. 이미 자아가 없는 상태라 쉽진 않았지만.”
“…….”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던 아이가 딱 하나는 절대로 잊지 않더군요. 내게 매일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오스카는 에녹이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말했다.
“아빠가 데리러 올 거라고.”
기어이,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게도 당신만큼 그 애가 소중했어. 그 애에게는 나밖에 없었거든.”
오스카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붉어진 눈시울로 웃는 얼굴은 참담했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 황제가 살아있는 한.”
프리메라 사이에는 힘의 섭리가 존재했다.
위 세대가 아래 세대의 프리메라를 지배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황제에게 정체를 들킨 순간부터 아이의 운명은 꼭두각시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멍청하게 빼앗겼지? 그 애를 평생 고통스럽게 만든 데는 당신 탓도 있어.”
“…….”
“알려 줘, 내게. 그 애의 이름을.”
오스카는 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수십, 수백 개의 이름을 붙여 불러 줬다.
하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리리스.”
리리스.
죽고 나서야 알게 된 이름이었다.
“살려 줘.”
“뭐?”
“내 딸을….”
에녹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이미 죽을 다짐을 한 사람의 눈빛.
그것을 본 순간.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오스카의 마음속에서는 무서운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다.
“살리고 싶다고? 프리메라를, 다시?”
“그래.”
“아주, 힘들게…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나라를 만들지 않았나? 고통받던 사람들을 구원했잖아. 이제 당신 때문에 모두 행복해하고 있잖아.”
“…….”
“근본적인 문제가 프리메라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프리메라가 다시 존재하게 되면, 언제가 됐든 이 나라는 또 썩어.”
능력자와 비능력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다.
비능력자는 능력자에게, 손쉽게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와 다름없어진다.
능력자는 비능력자를 하찮게 여길 것이고, 머지않아 사라진 계급이 부활할 것이다.
“그런데도?”
“살려 줘. 제발….”
대의를 위해 한결같이 희생적이었던 남자는 없었다.
고민도 없이, 제 딸을 되살리겠다는 이기적인 아버지만 남았을 뿐.
“그럼 묻지. 그 애를 위해서….”
하지만 이기적인 것은 오스카, 그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죽을 수도 있어?”
곧이어 들려온 대답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얼마든지.”
* * *
“와하하! 리리스, 이것 봐라! 나 이제 권갑에서 마나 나간다!”
늦은 저녁의 교정.
젬은 신나서 주먹을 휘둘렀다.
내 1등급 수학 과외와 체시어의 특훈으로 젬은 무기에 마나를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오구, 오구! 우리 젬, 잘한다!”
나는 파고라에 앉아 훈련하는 체시어와 젬을 구경했다.
“이야, 근데 체시어 너는 진짜 대단하다. 나랑 같은 6급인데 왜 이렇게 잘해?”
체시어가 검기 날리는 시범을 보여 주자, 젬은 혀를 내둘렀다.
체시어는 일취월장이었다.
벌써 마수 네다섯 마리는 한 번에 거뜬히 없앨 듯했다.
‘역시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네.’
나는 문득, 체시어를 보며 착잡해졌다.
“표정이 왜 그래.”
옷을 당겨 턱 끝에 맺힌 땀을 닦으며 내 옆으로 온 체시어가 물었다.
“응? 표정? 내 표정이 왜?”
“울 것 같은데.”
와. 억지로 웃으면서 최대한 밝은 척하고 있었는데, 귀신이네.
과연 주인공이었다.
“음.”
나는 체시어의 빤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체시어.
나를 죽이는 주인공.
‘나, 살 수 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황제를 죽이려면 우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빠에게는 합당한 명분을 만들 시간이.
체시어에게는 황제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시간이.
‘언제까지 황제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내 정체를 숨길 수 있다지만….
언제고 황제는 이상하게 느낄 거다. 다음 대의 프리메라가 안 나오니까.
‘그럼 나, 걸릴 수도 있겠지? 걸리면 원작대로 되어버릴 거고.’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을 하는 기분.
나는, 혹시나 내 정체를 들킬 때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했다.
“체시어. 있지, 나 모 하나 물어봐두 돼?”
“뭔데.”
죽고 싶지도 않지만, 죽어서도 안 된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빠….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할지 장담 못 하니까.
“있잖아, 내가 만약…. 진짜, 진짜 만약에 말이야.”
“응.”
“완전 무시무시한 악마가 됐어.”
나는 긴장하며 체시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 막 죽이구 그래. 근데, 그런 나를 막을 수 있는 게 너뿐이야.”
“…….”
“나를 죽이면 돼…. 그럼 넌, 어떻게 할 거야?”
물어놓고서는, 대답을 듣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체시어의 팔을 덥석 잡고 덧붙였다.
“주, 죽이지 마! 죽이지 말구… 절대, 절대 죽이지 말구 혹시, 다른 방법을 찾아줄 수 있어? 어떻게든 나를….”
“리리스.”
어느새 나는 벌벌 떨고 있었다.
체시어가 내 손을 탁, 잡아 떼며 말했다.
“미안한데 난, 너처럼 안 착해.”
“어?”
냉정한 대답에, 나는 멍해졌다.
“무서워하지 마.”
덧붙인 체시어는, 떨쳤던 내 손을 깍지 껴 잡으며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그랬어. 사람 목숨은 무게를 달 수 없다고. 하지만 백 명의 목숨이랑 한 명의 목숨이 있을 때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괴로워도 백 명을 살리라고 했어.”
아빠다운 가르침이었다.
“알겠다고 대답했어. 아저씨가 밥도 주고 재워 주니까. 그런데 이해할 수는 없었어. 나는, 너나 아저씨처럼 착하지 않거든.”
“…….”
“얼굴도 모르는 백 명보다, 내가 아는 한 명이 더 중요해. 그런 상황이 오면 고민하지 않을 거야.”
체시어가 나를 돌아봤다.
“리리스, 너는.”
“…….”
“내 옆에 계속, 있어 줄 수 있어?”
“…응?”
“날, 버리지 않을 수 있어?”
체시어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항상 버림만 받아왔던 그도, 지금 내 대답을 기다리며 떨고 있었다.
나는 시큰해진 눈가를 쓱쓱 쓸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절대 안 버려. 계속 옆에 달라붙어 있을 거야.”
“그래.”
체시어는 작게 웃었다.
“나도야.”
“…….”
“절대 내가 먼저 놓치지 않을게.”
그는 잡은 손을 들어 보였다.
“만약 네가 악마가 된다면….”
붙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같이, 지옥에 떨어져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