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9/261)

나는 쯧쯧, 혀까지 차 주고 다시 우리 애들을 살폈다.

“체시어! 내가 최대한 얘 못 움직이게 잡고 있을 테니까…! 알지?”

권갑에 마나를 실은 젬이, 식인 꽃의 두툼한 줄기를 찢듯 주먹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꽃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틈을 노린 체시어가 줄기를 밟고 재빨리 올라갔다.

“어, 어뜩해….”

나는 그걸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금방이라도 다시 아가리를 열고 체시어를 삼켜버릴 것처럼 꿈틀거리는 식인 꽃.

눈을 뗄 수도 없고, 계속 보고 있기도 무서운 상황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크에에엑!

체시어가 통통한 꽃봉오리에 검을 박아 넣자, 식인 꽃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날카롭게 마나를 입힌 검이 금세 식인 꽃의 잎을 갈랐다.

―캬아아악!

기괴한 소리를 내며 꽃봉오리가 열렸고, 꽃의 진액을 왕창 뒤집어쓴 제라드가 툭 떨어졌다.

‘돼, 됐어! 구했다!’

제라드가 안전히 밖으로 나오자마자, 체시어는 박아 넣었던 검에 불꽃을 피웠다.

식인 꽃은 사르르 재를 남기고 순식간에 타버렸다.

“제, 제라드! 괜찮아?”

가까이 가 보니, 제라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픈가 본데?’

최대한 안 아픈 척을 하고 있는데도 얼굴에서 티가 날 정도.

아마 식인 꽃의 진액에도 뭔가 있었던 모양이다.

‘염산 같은 건가?’

몸에서 하얗게 연기까지 피어오르는 게 꽤나 아파 보였다.

“맞다, 롬!”

“어, 어! 리리스!”

롬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뭐야.”

제라드가 경계했다.

“내, 내가 치, 치료해 줄게!”

“제라드 너, 지금 아프잖아. 너네 조원들 중에는 힐러도 없구. 괜히 자존심 부리지 말구 롬한테 치료받어.”

제라드가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롬, 빨리. 너무 아파 보여.”

“으응!”

롬이 곧바로 주저앉아 제라드에게 치유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꼼지락거리는 그림자.

우리들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향했다.

살금살금.

식인 꽃에서 나온 핵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브루스였다.

“저, 저 도둑놈이?!”

젬이 경악했다.

딱 걸린 브루스는 재빨리 핵을 향해 몸을 날리려다가―

화르르륵!

“으악!”

마치 경계선처럼, 바닥에 일자로 까맣게 피어난 불꽃에 막혀 버렸다.

체시어가 한 모양이었다.

“이익, 체시어 이 미친 새끼야! 내 머리 탈 뻔했잖아! 능력자들끼리 공격하면 안 되는 게 룰인 거 몰라?!”

“뭐라고, 이 도둑놈아?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네?!”

젬이 씩씩거리며 지지 않고 받아쳤다.

“도, 도둑놈? 천한 평민 주제에 지금 누구더러…!”

“야!”

그때, 제라드가 소리쳤다.

브루스가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손대지 말고 놔둬.”

양심은 있군….

제라드의 명령에, 브루스는 바로 어깨를 수그렸다.

“으응.”

그러자 체시어가 브루스를 노려보며 걸어가 핵을 주워 왔다.

“이 도둑놈!”

“저, 저게!”

젬이 혀를 쏙 내밀며 브루스를 한 번 더 놀렸다.

“…받아.”

돌아온 체시어가 핵에 묻은 진액을 제 옷에 쓱쓱 닦고는 내게 건네주었다.

“으음….”

감동이었다.

필드에 들어와 지금까지 내가 잡은 마수는 0마리.

“고마워, 체시어.”

체시어는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게 해 줬다….

“감동이야….”

“…….”

“근데 우리 같이 졸업해야지! 너, 나 준다구 C급 핵 안 먹고 모아 놨다며? 지금 빨리 다 먹어!”

“응, 알았어.”

나는 체시어가 남은 핵을 흡수하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

그 옆에, 여전히 제라드를 치료 중인 롬이 보였다.

“롬, 어때? 할 만해? 다 치료해 주기 힘들면 나머지는 내가 할까?”

“아, 아냐! 하, 할 수 있어!”

마나량이 한없이 작은 롬이다.

그래서인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데, 그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였다.

“이제 됐어. 그만해.”

“으, 으응? 괘, 괘, 괜찮아?”

대충 움직일 정도로는 나아진 모양인지, 제라드가 절뚝거리며 일어났다.

“제라드 너 괜찮아? 치료 더 안 받아도 되겠어?”

“…응.”

묻자, 제라드가 내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양심 찔리는 모양이구만.’

마나도 별로 없는데 그걸 다 쪽쪽 뽑아 가며 치료해 주는 롬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롬에게 말했다.

“롬, 제라드 이제 괜찮대. 수고했어. 진짜 잘했어.”

“헤헤, 뭘. 나, 나도 뭐, 뭔가 도, 도움이 돼, 돼서 기뻐.”

“히힛, 넌 최고야. 자, 그리구 이거 받아.”

“응?”

나는 들고 있던 1000점짜리 핵을 롬에게 건넸다.

그걸 본 체시어와 젬의 눈이 놀라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자기 조원들에게로 돌아가려던 제라드까지 멈춰 서서 나를 돌아봤다.

“뭐야? 그걸 왜 얘를 줘?”

“리, 리리스? 너 지금 46점이야.”

“리리스.”

제라드와 젬, 체시어가 차례대로 말했다.

입을 떡 벌리고 당황하던 롬이 놀라 손사래 쳤다.

“아, 아니야! 아니야! 나 필요 없어! 나, 나는 아,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뭘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제라드 완전 아팠는데 치료해 줬잖아. 나는 괜찮으니까 이거 빨리 흡수해.”

“아, 아냐! 제, 제발 이, 이러지 마! 나, 나, 나는 조, 졸업 느, 늦어져도 사, 상관없어! 지, 진짜야!”

정말 당황했는지 롬은 평소보다 말을 두 배는 더 더듬었다.

“리리스.”

그때.

체시어가 드물게 화난 표정으로 다가와 내 팔을 휘어잡았다.

“집에 빨리 가자고 했잖아. 지금 이거 롬한테 주면 너 여기에 한 달 더 있어야 해.”

“으으응. 아냐.”

나는 씩 웃으며, 들고 있던 마법봉으로 저 멀리 60m 절벽 위에 보이는 곰 마수를 가리켰다.

“저거 잡으면 돼.”

“뭐?”

“롬, 그거 빨리 흡수해!”

나는 롬에게 핵을 안기듯 건네주고 걸음을 옮겼다.

덥석, 또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았다.

제라드였다.

“모냐. 또 방해냐.”

“저건 지금 우리 중에 아무도 못 잡아. A급 캐스팅해야 해.”

“후아, 그걸 아는 사람이!”

나는 허리에 척 손을 얹었다.

“우리 점수 못 모으게 마수 다 잡아 버리구 방해했어?”

“…….”

제라드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비틀었다.

나는 한숨을 폭 한번 내쉬고, 키를 맞춰 달란 뜻으로 제라드의 팔을 톡톡 쳤다.

“제라드.”

제라드가 엉거주춤 몸을 낮춰주자 나는 그의 어깨에 짧은 팔을 척, 두르고 속삭였다.

“너 이 자식. 꽃한테 막 먹혀가지구 다 죽을 뻔했는데, 응? 우리 애들이 뒤도 안 돌아보구 달려가서 구해준 거 잊지 마.”

“…….”

“있지, 브루스랑 네 조원들은, 너 먹혔는데도 한 발짝 움찔두 안 했다?”

제라드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턱 끝에 작은 상처가 보여서, 가볍게 한번 쓸어주니 아물었다.

“아.”

비로소 그의 잘생긴 얼굴이 멀끔해졌다.

“일케 이쁜데!”

“…….”

“이쁜 얼굴만큼 마음씨도 이쁘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그치?”

나는 마지막으로 제라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고 다시 곰 마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들 전부 입을 다물고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흠, 어디 보자.”

나는 절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섰다.

‘내 키가 지금 108cm니까….’

그리고 거리를 가늠하며 천천히 한 발자국씩 뒤로 물렀다.

‘한, 이 정도쯤?’

대충 자리를 잡고 선 나는, 까마득히 위에 있는 곰 마수를 올려다보았다.

저걸 잡으려면 제라드의 말대로 A급 캐스팅을 해야 한다.

하지만 A급 마법식은 양성소에서 안 배웠으니, 쓰면 안 된다.

‘그럼 C급 캐스팅해야지, 뭐.’

하위급 캐스팅으로 저 높이에 마법을 쓰려면, 식이 매우 복잡해진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모든 것은… 수학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절벽의 높이를 친절하게 새겨 놓은 이유였다.

C급 캐스팅으로 저걸 잡으려면.

지금 내가 있는 위치와 마수가 있는 위치 사이, 대략의 직선거리가 필요했다.

그 거리를 누가 알까. 아무도 모를 거다.

나 빼고.

‘하지만 나는 K-중학교 2학년 교육 과정에 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해 삼각형 빗변의 길이를 구할 줄 아는 몸!’

현재 양성소 아이들 수준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1000점짜리 곰 마수.

하지만 나는, 마탑주 오스카가 직접 선행학습을 시켜준 몸이다.

C급 캐스팅으로 저걸 잡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 혹시 이런 일이 생길 것도 다 예상하셨나요…?’

나는 속으로 오스카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곰 마수를 향해 마법봉을 척 겨눴다.

“얍.”

화려한 이펙트를 위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꽉 쥐고 있던 라라 공주 마법봉이 활약할 시간!

“팡!”

나는 가볍게 곰 마수의 머리를 태워 줬다.

하얀 불꽃이 마수를 녹였고, 이내 보라색 핵이 절벽을 타고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쉽구만.”

나는 타박타박 걸어가 그것을 주웠다.

그리고 돌아보니―

“엣헴!”

지켜보던 아이들 모두, 눈이 빠질 것처럼 커져 있었다.

나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핵을 쏙 흡수했다.

동시에, 스코어 마도구 화면이 바뀌었다.

리리스 루빈슈타인: 1046점

체시어: 1000점

젬: 1050점

롬: 100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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