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5/261)

충격받은 나를 보고 고모가 “어쩌지.” 하고 웃었다.

“뭐, 뭐지? 아빠 안 오셨어요?”

“응, 어쩐 일인지 집에 안 돌아왔거든. 너무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리 먼저 출발했단다.”

“집에 안 돌아오다니요? 아빠 어디 갔어요?”

고모가 멈칫하더니 고모부를 쳐다봤다.

“애한테 말 안 했어?”

“처남이 말하지 말라길래….”

진짜 뭐지? 어색하게 웃는 고모부와 고모를 번갈아 쳐다보는데, 할아버지가 말했다.

“요즘 네 아버지는 바빴다. 너 입소하고 나서 내팽개쳐 놨던 일을 하러 다녔으니.”

“무슨 일이요?”

“삼촌 마수 토벌하러 나갔지.”

레온이 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집에는 이틀에 한 번씩 돌아오셔서 잠만 주무시고 다음 날 다시 나가셨어.”

테오가 덧붙였다.

“그, 그랬구나.”

하긴. 지금 이 나라에서 제일 바빠야 할 사람을 꼽아 보자면 우리 아빠다.

이 넓은 제국 땅에는 마수들이 잡아도 잡아도 생겨나기 때문에, 주기적인 마수 토벌은 필수니까.

그리고 마수 토벌에 가장 효율적인 군대는 바로 성기사단.

현역 성기사단장인 우리 아빠가 지금까지 집에만 있던 게 오히려 이상했다.

‘나 입소하기 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 토벌 안 가고 있었나 봐….’

나는 섭섭해졌던 마음을 떨쳐냈다.

아니, 그런데.

“근데 왜 아빠가 집에 안 돌아오셨어요? 아빠라면 시간 맞춰서 꼭 오려구 했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게 이상하더라고. 엊그제 마지막 토벌 나가면서, 분명 오늘 새벽에는 돌아오겠다고 했었거든.”

고모가 의아해하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 아빠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에요? 괴, 괴물 잡다가 어디 막 다치구 그랬으면….”

절로 몸이 떨렸다. 사색이 되어 벌벌거리는데 주변이 조용했다.

뭔가 싶어 둘러보니, 다들 나를 보며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

내 걱정에 전혀 공감 못 하는 표정들이었다.

“얘야, 리리스. 걱정하지 마라.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그놈 걱정이다.”

“리리스는 아직 에녹을 잘 모르니까요, 아버지.”

동생이 연락도 없이 안 돌아왔다는데 고모는 웃기만 했다.

친남매 맞아?

“그, 그래도….”

“네 마음은 알지만, 진짜 걱정 안 해도 된다. 처남 말고 마수들 걱정을 해야지.”

“푸하하! 아버지, 그건 좀?”

레온이 킬킬거렸다.

“아냐. 진짜 걱정 좀 해야 해. 마수들 씨가 말라 버리면 처남은 일자리를 잃으니까.”

“아! 그런가?”

나는 장난처럼 주고받는 고모부와 레온을 보며 몸에서 힘이 쑥 빠졌다.

정말 나만 심각하구나….

“읏차.”

고모부가 나를 안아 마차에 태웠다.

“괜히 마음 쓰지 말고, 돌아가서 집에서 기다리자.”

“네….”

“너희들도 빨리 타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도 나를 뒤따라서 마차에 올라탔다.

내 옆에 앉은 체시어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아저씨가 다칠 일은 없을 것 같아. 네 선물 사서 오시느라 늦는 걸지도 몰라.”

역시. 내 걱정을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건 체시어뿐이었다.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창을 내다보았다.

중부에서 제도까지는….

‘반나절도 안 걸리겠지? 비싼 마차니까.’

귀족 마차는 말굽에 마도구가 달려있다. 보통 마차보다 네 배는 빠르게 도착할 거다.

‘그럼 아빠 돌아와 있겠지?’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세계관 최강자 주인공 걱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하아.”

그래도 열 일 제쳐놓고 나를 보러 오려 했을 아빠의 부재가 이상해서 나는 안심할 수 없었다.

‘어?’

그때.

나는 창밖으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눈을 쓱쓱 비볐다.

‘저거 조제프 아저씨 아니야?’

조제프 뤼트먼.

아빠와 내가 도박장까지 가서 포커 치며 포섭하려고 애썼던, 원작 속 주요 인물.

에녹 루빈슈타인의 책사.

‘왜, 왜 여기 있지?’

나는 황급히 조제프의 주변을 살폈다.

그는 배가 산만 하게 나온 귀족 아저씨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귀족 아저씨는 초면이었지만, 아마 오늘 퇴소하는 능력자 중 한 명의 부모일 것이다.

‘누구야?’

나는 곧 브루스를 찾아냈다.

‘와. 세상에.’

브루스의 아버지라면 챔버 후작.

그리고 조제프는 대체 왜인지, 우리 아빠가 아니라 챔버 후작을 찾아간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 *

그 시각, 에녹은…….

“스읍. 하아.”

답답한 마음에 머리만 쥐어뜯고 있었다.

“끄응. 이거이… 왜 이렇게… 안 차…?”

“조금만… 끄응. 힘을 더… 내 보셔요….”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명의 노신관이 워프 게이트 앞에 쪼그려 앉아 낑낑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에녹과 악시온, 필립. 최정예 3인 성기사들은 바로 어젯밤, 남부 아르고니아 영지에서 토벌을 마쳤다.

새벽에나 끝날 거라 예상했던 토벌은 훨씬 빠르게 끝났다.

오늘은 공주님 퇴소일.

얼른 데리러 갈 생각뿐이었던 아빠 에녹이 미친놈처럼 영지 곳곳 들쑤셨기 때문이다.

나올 생각도 없던 마수들까지 털어 없애고 나니, 당연히 토벌은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저, 신관님들. 아직 멀었습니까?”

“으, 으응? 뭐라고오? 내가 늙어가지고, 귀가 잘 안 들려어….”

“아직! 멀었습니까?!”

“으응? 여기가 머냐고? 멀지, 그럼….”

“으아아!”

에녹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포효했다.

그래, 문제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이곳 신전에서 발생했다.

남부 깡촌, 아르고니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오지.

그래서 아르고니아 신전의 식구들은 노신관 둘이 다였다.

“분명히, 분명히 오늘 새벽이면 충분히 충전된다고….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으응? 뭐, 뭐라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계속하십시오!”

워프 게이트는 충전형이다.

신관들이 성력으로 충전해 두어, 항시 가동될 수 있게 준비해 놓아야 했다.

하지만, 찾는 이가 없는 오지 신전.

노신관들은 워프 게이트를 꽤 오래 방치했고, 돌아가려고 보니 방전된 상태였다.

“큭큭. 아우, 어떡하냐. 우리 단장님. 진짜 큰일 났네.”

뒤에서 막간을 이용해 도시락을 먹고 있던 필립이 꼬리에 불붙은 것 같은 에녹을 보며 웃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제발 좀 가만 앉아서 기다려라. 그렇게 재촉한다고 충전이 되나?”

같이 식사 중이던 악시온이 쯧쯧 혀를 찼다.

“아아니! 그러니까 내가! 내가 하면 되는데!”

답답한 에녹은 제 가슴을 퍽퍽 두드리다가 신관들에게 말했다.

“신관님들, 그냥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금방 충전할 수 있습니다.”

“떽!”

주신관이 호통쳤다.

“요것은 우리 일이여! 요 와프 게이트로 말할 것 같으면은… 주신 프리메라의 선물이고….”

“아니, 좀. 제발.”

“아무튼지 간에! 외부인이 막 함부로 만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부정 타….”

계속 말귀 못 알아듣다가 이럴 때만 귀가 밝다.

에녹은 미칠 것 같았다.

워프 게이트 방치. 업무 태만도 모자라 어째 노신관들은 꽉 막혀있기까지 했다.

그까짓 성력이야 빵빵한 놈이 아무나 넣으면 될 것을….

굳이 관례를 지켜야 한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어차피 토벌도 빨리 끝냈겠다, 새벽에는 충분히 충전이 끝난다기에 얌전히 기다렸건만.

“으궁. 늙은 게 죄야…. 옛날에는 말야. 응? 나 어땠지?”

“우리 주신관님…. 마나가 넘쳐 흐르셨지요….”

“홀홀. 그랬지, 그랬지….”

“으아아아!”

에녹이 제 뺨을 뜯을 듯 쓸어내리며 조용히 절규했다.

악시온과 필립은 그 모습을 보며 웃기 바빴다.

“엇!”

주신관이 갑자기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배고픈데 밥이나 먹고 할까….”

“끄응. 그럴까요…?”

“와, 세상에.”

에녹의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그냥 모른 척 확 밀쳐 버리고 제 성력을 넣어 버릴까?

연장자에 대한 공경도 정도껏 해야지. 이제는 한계였다.

정말로 밥 먹고 할 생각인지 깡마른 다리를 후들거리며 일어나는 두 신관에게 에녹이 잽싸게 달려갔다.

“제가 하겠습니다.”

“떽!”

“지금 이렇게 식사하러 가시면 저는 집에 언제 갑니까?”

“뭐를 좀 먹어야 마나가 찰 거 아닌가…. 젊은 양반아….”

“미안허이. 우리 주신관님이 젊었을 때는… 마나가 넘치셨는데…. 알지? 늙으면 마나고 성력이고 팍팍 줄어가지고…. 능력자들도 다들 은퇴하고 그르지….”

“예, 예. 그러니까 제가 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하고 싶습니다.”

“떽!”

“신관님!”

이번에는 에녹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저에게, 저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하나 있습니다….”

“으응? 따알?”

“예. 오늘이 양성소에서 퇴소하는 날입니다.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못 가고 있어요. 딸이 울면서 저를 찾을 텐데….”

“뭐여? 그럼 말을 허지!”

주신관이 워프 게이트를 가리켰다.

“넣어 봐, 그러면.”

“뭐라고요?”

장난하나. 딸 얘기 한 번이면 되는 거였어?

에녹은 억울했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 빠르게 움직였다.

급한 마음에 워프 게이트 충전구에 성력을 왕창 들이부으니.

파지지직―!

어째 불길한 소리와 함께 워프 게이트가 파랗게 빛났다.

“뭐시여! 이거 뭐를 이렇게 많이 집어넣어!”

“끙. 젊은 양반이 힘이 아주 장사네요…. 저 젊었을 때 보는 줄….”

“이거 이거 고장 난 거 아녀?! 비싼 거여, 이거!”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주신관이 에녹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었다.

그러나 어쨌든 워프 게이트는 가동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에녹이 마음 급해진 다리를 달달 떨며 뒤의 악시온을 가리켰다.

“도스 성기사단 부단장, 악시온 리브르에게 연락하십시오.”

“아니, 사고는 지가 쳐 놓고 왜 나한테….”

악시온이 발끈하며 일어났다.

“주신관님, 그러지 말고 빨리 보내 주자고요…. 딸 보러 가야 한다는데….”

부신관이 허허 웃으며 느릿느릿 워프 게이트 화면을 살폈다.

행선지를 찍어야 하는데….

“어이고, 눈이 침침…. 오랜만에 봐 가지고 뭐가 뭔지….”

“제가! 하겠습니다!”

잽싸게 끼어든 에녹이 화면에 뜬 지도에서 파빌 신전을 찾아 찍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워프 게이트를 건너갔다.

‘우리 공주 진작 집에 왔겠다. 빠르게 집으로 간다. 가서….’

건너가는 그 짧은 시간에 머리 굴리던 에녹이 그대로 굳었다.

제도, 파빌 신전.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다.

“아빠아아아!”

딱 한 명.

사랑하는 딸만 보였다.

“…공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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