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6/261)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리리스가 달려왔다.

멍하니 서 있던 에녹이 달려온 리리스를 안아 들고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우리 공주….”

“아빠아아!”

“응, 우리 공주가….”

그간 못 본 이쁜 얼굴.

눈도 못 떼고 원 없이 보려는데 어째 리리스는 작은 몸을 파닥거리며 아빠 살피기 바빴다.

“가만히 있어 봐. 얼굴 좀 보게.”

“아빠, 어디 안 다쳤어?!”

“응? 아빠가 다치긴 어딜 다쳐.”

“괜찮아?”

“괜찮지, 그럼.”

“으, 으아아앙…!!!”

에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리스는 멀쩡한 아빠를 확인하고 안도했는지 세상 떠나가라 울어 젖히기 시작했다.

“아니, 공주야. 왜!”

놀란 에녹이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봤다.

저 대신 딸애를 마중 나갔을 가족들이 전부 못 말린다는 눈으로 부녀를 보고 있었다.

에녹은 그 사이에서 매형, 알렉세이 앙트라세를 찾아냈다.

둘은 입 모양으로 대화했다.

‘뭐야. 애한테 말했습니까?’

‘처남이 늦게 와서 그렇지!’

그건 맞다. 꼭두새벽부터 마중 나와 있었어야 할 아빠가 없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애가 왜 아빠는 없냐 물으니 괴물 잡으러 갔다 하면 당연히 놀랄 거다.

이렇게 걱정할까 봐서, 일부러 토벌 나가는 걸 비밀에 부쳤던 건데….

“으허, 으어아아앙!!!”

“아니, 공주야. 그런데. 잠깐만.”

막상 제 걱정에 울고불고 난리 피우는 딸을 보고 있자니 에녹은 어색했다.

“아빠는….”

“끄, 끄아아앙!”

“하.”

에녹 루빈슈타인. 그는―

열넷, 소드마스터가 되었고.

열여섯, 정식 서임을 받은 뒤 기사단장이 되었다.

‘다칠 걱정’을 마지막으로 받아본 게 언제였을까?

기억이 까마득했다.

매초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그나마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자신의 안위가 아닐까?

그것은 에녹도, 에녹을 아는 모든 이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서 에녹은 어색했다.

“히끅. 끅.”

혹시나 자기가 잘못됐을까 봐 마음 졸이는 이 작은 존재를 안고 있으려니 말이다.

“공주야? 아빠 진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걱정했어?”

“끅. 으응…. 아빠 괴물, 괴물 잡으러 갔는데 안 오니까….”

“미안해. 미안해, 공주야. 아빠 괴물 잡다가 다쳐서 늦은 거 아니야.”

에녹이 울다가 진이 다 빠진 리리스를 둥가둥가 안아 달랬다.

“그럼, 그러면 왜 늦었어….”

“응, 워프 게이트가 고장 나서 늦었어. 울 공주, 아빠가 데리러 가겠다고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끅. 아니야아. 그럼 됐어. 아빠 안 다쳤으면 괜찮아.”

“에고.”

에녹은 눈물 날 것 같았다. 아니, 조금 났다.

“리리스, 오랜만이다! 와, 너 정말 한 달 만에 졸업했구나? 안 본 새 엄청 많이 컸다?”

“아니 뭘 또 이렇게 눈물 콧물 다 뽑고….”

“우와아아! 필립 삼촌! 악시온 삼촌!”

리리스가 뒤이어 건너온 필립과 악시온에게 손을 흔들었다.

코를 훌쩍이면서도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에녹은 새삼 신기했다.

“하.”

작고, 잘못 만지면 깨질 듯 약하고, 말도 못하던 아이.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생명체라고 불러야 어울릴 것 같았던 그 아이가….

“아빠 모야! 울어? 어디 아퍼?”

“아니야. 아빠 안 울어.”

“거짓말!”

언제 이렇게 커서.

말도 하고, 울고 웃고, 아빠 없이 씩씩하게 양성소도 다녀왔다.

“아빠! 으헤헤.”

“응.”

“나, 다녀왔어!”

코를 삼키며 배시시 웃은 리리스가 에녹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말한다.

“…보고 싶었어.”

아빠는 울컥하며 딸의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응, 아빠도.”

* * *

중부에서 제도로 오고, 아빠 빨리 보려고 먼저 신전 가서 기다리고, 아빠 만나서 집에 돌아오고….

그 한나절 넘는 시간 동안.

‘진짜 아무도 안 물어봐?’

나는 어이없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뭘 묻지 않았냐고?

‘대체 왜 내 계급을 아무도 안 궁금해해…?’

바로, 내 계급.

양성소를 졸업하고 돌아온 내게, 가족들이 가장 궁금해할 이슈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혹시 고모부가 미리 말했나 해서 슬쩍 물어봤는데―

“말할 시간도 없었다.”

―라고 했다.

반면 체시어의 계급을 들은 모두 경악했다.

“도스라고?! 와이 씨. 너 진짜야? 대단한데?”

“축하해! 그런데 난 체시어가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어. 삼촌이 괜히 가르치시진 않았겠지?”

“정말 신기하구나. 이런 경우도 있네. 앞으로 엄청나게 주목받겠는걸?”

“수고했다. 더 열심히 해라.”

나는 그 틈에서 내 계급을 밝힐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가족들이 내 계급을 궁금해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도스일 테니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랬다.

그리고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

“어이구, 울 공주. 누가 이렇게 이쁘래. 응?”

취침 전. 직접 세수까지 시켜 준 아빠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쪽 뽀뽀했다.

“자, 치카치카도 하고 얼굴 뽀득뽀득도 다 했으니까 이만 자러 갑시다!”

나는 아빠와 나란히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

“자기 전에 우리 공주, 어디 친구 많이 사귀었는지 아빠가 들어 볼까?”

“아빠.”

“응.”

“왜 안 물어바?”

“응? 뭘?”

“나 무슨 계급 받았는지!”

“…….”

아빠가 가만히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는 하하 웃었다.

“아하하, 그걸 굳이 물어봐야 하나? 울 공주 천재니까 제일로 좋은 거 받았겠지?”

“좋은 거? 도스?”

“응, 그렇지. 우리 딸 똑똑하니까.”

“그르쿠나. 그게 제일 좋구나.”

내가 시무룩한 척하자 아빠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공주야?”

“응.”

“배지 어디 있어?”

“보여 줄까?”

“응.”

“알써!”

나는 호다닥 일어나 방 한쪽에 둔 곰돌이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팔에 녹색의 랭크 슬릿을 차고 배지는 아빠에게 가져다줬다.

“짠!”

“…….”

가만히 그걸 보던 아빠가 한참 눈을 껌뻑껌뻑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누구 거야?”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

“내꺼!”

“…뭐라고?”

“정말이야. 나 천재 아니었나 봐. 아빠랑 안 똑같아서 실망했어?”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빠는 한참 손에 쥔 내 4급, 옥타바 배지를 쳐다봤다.

한 5분쯤.

그리고 그때부터 손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서서히 입이 벌어지더니 한참 만에 나와 눈을 맞춘다.

“옥타바…, 라고? 네가?”

“으응, 미안. 좋은 계급이 아니라서.”

“아니! 오, 젠장!”

아빠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가 혼자 화들짝 놀라서는 입을 틀어막았다.

“미안해, 공주야. 아빠가 너무 놀라서 그만 나쁜 말을 쓰고 말았어.”

“괜찮아.”

“말도 안 돼. 이게. 이게 대체. 대체 어떻게….”

아빠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기 머리를 꽉 붙잡았다.

이내 온몸에 힘이 풀렸는지 침대 위로 쓰러지듯 앉은 아빠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아니. 와.”

사람이 이렇게 좋아할 수도 있구나….

그런 표정이었다.

‘하아. 이 정도니. 실은 프리메라라서 걸리면 죽음인 걸 알면 울 아빤 얼마나 마음고생할까.’

그러니까 걱정과 속앓이는 나만 해야 했다.

“공주야.”

울컥한 아빠가 나를 끌어안았다.

“잘했어. 너무 잘했어. 우리 공주, 수고했어. 졸업하고 계급 받은 거 축하해.”

“나 잘했어? 이거 4등이라구 하던데….”

“아, 그럼! 잘했지! 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잘했지! 4등이면 뭐 어때? 아빠한테는 우리 공주가 1등인데!”

“으히힛.”

아빠는 아직도 안 믿기는지 자꾸 내 배지를 들여다보고, 나를 안고 뽀뽀하고, 아주 오랫동안 감격에 젖었다.

그러다 일순, 나는 아빠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걸 발견했다.

‘어이쿠, 무시무시한 생각 하고 있구만.’

이제 아빠에게는 약점이랄 게 없다.

나는 강제로 황실 정예군에 속할 의무가 없는 4급.

아무리 황제라도 계급이 낮은 능력자를 억지로 입대시킬 수는 없었다.

그건 황제와 능력자들 간의 암묵적인 약속과도 같으니까.

‘멋대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귀족들은 불만을 품겠지.’

안 그래도 강제 징병제 때문에 자식들 전쟁터 보내면서 피눈물 흘리는 귀족 부모들이 많다.

나는 문득 퇴소한 제라드를 보고 눈물 지었던 슈미트 공작을 떠올렸다.

위로 있었던 아들 둘 다 전사해 버린….

‘나쁜 황제 놈. 꼬시다.’

못하는 거 하나 없는, 신과도 같은 프리메라면 무엇 하나?

능력자들의 수가 훨씬 많은데.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덤비면 황제도 별수가 없다.

그래서 원작에서 아빠의 반란도 성공했던 거고.

‘아, 맞다!’

반란 하니까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어떻게 이 중요한 걸 까먹을 수 있지? 나는 머리를 붙잡고 경악했다.

“아빠, 아빠, 아빠!”

“응?”

“나, 조제프 아저씨 봤어!”

“그래?”

어째선지 아빠는 태연했지만, 나는 초조한 마음에 미처 아빠 반응을 신경 쓰지 못했다.

분명 원작에서는 아빠의 둘도 없는 책사였던 조제프.

그가 딴마음이라도 먹었다면 실로 대참사라 할 수 있으니까!

“응. 아빠, 들어 봐. 있자나. 내가 양성소에서 싸운 친구가 있거든?”

“엥. 친구랑 왜 싸웠어.”

“아주아주 나쁜 친구였어! 막 평민 친구들 괴롭히고 빵 가져오라구 시키고 그랬다?”

“정말? 그럼 잘 싸웠네. 공주가 막 뭐라고 해 줬어?”

“응, 그랬지! 아무튼, 엄청 나쁜 애였거든? 걔 아부지한테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치. 가정교육 잘못 받았네. 이름이 뭔데?”

“브루스! 브루스 챔버!”

챔버 가문의 이름을 들은 아빠 얼굴이 살짝 굳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근데, 근데. 조제프 아저씨가 그 애 아부지랑 친구를 할 건가 봐!”

“…….”

아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최대한 눈치껏 설명했는데, 아빤 똑똑하니 알아들었겠지?

꼬시던 책사가 어째 애먼 놈의 줄을 잡은 듯하니 빨리 확인해 보라고 말이다.

제발!

“아빠! 조제프 아저씨가 아빠 친구 안 하고 다른 아저씨 친구 하면 어떡해?”

“공주야.”

아빠가 나를 불렀다.

어째선지 묘한 눈으로, 아빠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나는 그때.

주인공의 예리한 눈빛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조제프 아저씨는 걱정 안 해도 돼. 사실, 조제프 아저씨는 먼저 아빠를 찾아왔거든.”

“아.”

“근데 아빠 궁금한 거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돼?”

아니, 묻지 말아 줘.

내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혹시 아빠한테 편지 쓴 거 공주야?”

“응? 편지? 무슨 편지…?”

씩 웃은 아빠가 허공에 힘차게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다.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은 들어라!”

헐.

“―하고, 시작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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