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떡 벌린 오스카를 보고 나는 힘없이 웃었다.
“그치만 이제 체시어를 이상한 눈으로 안 보도록 노력할 거예요….”
“정말?”
“네, 정말. 이 마음 고이 접어 놓구 죽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예요. 이거는 그냥, 지나가는 일곱 살 아기 리리스의 풋내기 마음일 뿐이니까요….”
나는 쓱 코를 훔치며 씁쓸해진 마음으로 창밖을 쳐다봤다.
제법 감성적인 것 같다, 나.
“어른처럼 말하네.”
어른이니까요….
“그런데 굳이 접을 필요 있나?”
“네?”
오스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애 아버지인가 뭔가, 거슬리면 그냥 죽여 버리면 되지. 너 못하는 거 없잖아.”
“헉!”
나는 놀라서 오스카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네가 애야?”
“애 맞져, 그럼! 저 일곱 살이에요!”
“어이가 없네.”
“스승님, 앞으로는 교육적인 말만 해 주세요.”
나는 한숨 쉬며 덧붙였다.
“그리구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저는 능력 쓰면 생명력 깎인다구요. 아빠랑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삶에 대한 의지 하나는 마음에 드네.”
“솔직히 제 능력은 진짜 쓸모없어요. 뭐 해볼려구 해도 생명력 왕창 들구.”
“뭐 하는데 생명력이 그렇게 많이 드는데?”
“음, 뭐냐면.”
나는 오른쪽에 차고 있던 오스카의 팔찌를 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진짜 좋아요. 어떻게 만드셨어요?”
“원래 있는 건데, 네가 쓸 수 있게 살짝 개조한 거야. 원래는 착용자들의 코어와 감응하는 마도구지. 능력 쓸 때 코어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량을 알려주는 거고.”
“아하! 그럼, 그럼. 이거 혹시 여기 뜨는 거 스승님은 보여요?”
“아니. 나도 안 보여.”
“글쿠나.”
나는 한숨 쉬며 생각했다.
‘오스카의 금제를 풀려면?’
-
팔찌에는 작대기 하나만 떴다.
불쌍한 오스카의 금제를 풀어 주고 싶어서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본 질문이었다.
“지금 여기 짝대기 하나만 뜨거든요…. 아마 제 생명력을 다 써도 안 된다는 거겠죠….”
“무슨 마법인데?”
“말할 수 없지만, 스승님은 똑똑하니까 짐작해 보세요. 저 스승님에 관한 걸 생각했어요.”
“아하.”
대충 눈치챘는지, 오스카가 턱을 괴며 픽 웃었다.
“그건 프리메라 할아버지가 와도 안 돼.”
“죄송해요. 저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에요.”
“뭘 또 그렇게까지.”
“하지만!”
시무룩해져 있다가 나는 이내 만세를 불렀다.
“제가 못 하는 건 황제 폐하도 똑같이 못 한다는 것!”
나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간 팔찌로 여러 실험을 해 보며 깨달은 바가 많았다.
“아, 나 뭐 하나 궁금한 거 있다.”
마침 오스카가 물었다.
“네 아빠한테 종속 마법 거는 데 생명력 얼마나 드냐? 대체 뭐가 얼마나 필요하길래 그렇게 눈독 들이면서도 황제가 손 하나 까딱 못 하는지….”
“으항항.”
바로 그거다.
나는 팔찌를 보았다.
282years
“282년이요.”
“뭐?”
오스카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럼 141년 한 번에 늙는 건가? 와, 거의 즉사네.”
“네! 이제 울 아빠 건드릴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세계 최강이에요!”
만세! 신난 나를 보며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 * *
수업을 마치고-정말 삼차함수를 했다- 스승님 오스카는 낄낄거리며 돌아갔다.
“크하하학! 너, 금단의 사랑 해서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고 싶지 않거든 정신줄 잘 잡아라! 오빠 생기는 거 미리 축하한다!”
그것도 조언이랍시고 하는 건지.
역시 얄밉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하아.’
리리스 루빈슈타인, 일곱 살.
펼쳐보지도 못한 마음을 접어야 하는 속이 쓰리구나….
“리리스.”
그때 옆에 앉은 체시어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흠칫 굳었다.
우리는 지금 아빠 집무실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으응.”
뻣뻣한 목을 돌려보니 체시어가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왜?”
쿵쾅쿵쾅쿵쾅.
의식하니 더한달까?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너….”
체시어가 갑자기 내게 손을 뻗어왔다.
“모야, 모야!”
나는 기겁하며 몸을 물렸다.
체시어가 허공에 손을 뻗은 채 눈을 깜빡였다.
“왜, 왜 그러는데?”
“너 머리카락 먹었어.”
“아?”
입가를 더듬어 보니 과연.
몹쓸 잔머리 같으니.
나는 호다닥 머리카락을 빼고 바로 앉았다.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지 체시어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르릉쿵쿵콰과광.
‘아니, 진짜 왜 이래?’
미쳐 날뛰는 심장 소리가 체시어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폴딱 일어나 쪼르르 체시어의 맞은편 소파로 가 앉았다.
체시어는 여전히, 그런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리리스.”
“으응.”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아니?”
“그런데 왜 그래.”
“뭐가?”
“방금 나 피했잖아.”
“아닌데?”
“…….”
“진짜 아닌데…. 그냥 좁아서 자리 옮긴 거야.”
당연히 체시어는 안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더 묻진 않았다.
‘어흐흑.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네가 나랑 가족 하고 싶다고 했잖아….’
나는 그렇게 속으로 체시어를 탓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전생 기억하는 김에 정신연령도 그대로 맞춰 줬으면 참 좋았을 거다.
그럼 열한 살인 체시어를 의식했을 리 없으니까.
‘일곱 살 싫어…. 짜증 나….’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전생을 떠올리지 않으면 마냥 일곱 살 같아지는 몸.
잘생긴 얼굴로 무자각 플러팅을 날리는 또래 오빠에게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날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준 체시어의 옆얼굴이 보였다.
잘생겼네….
‘작가는 왜 로맨스는 하나도 없는데 주인공들 얼굴을 잘생기게 설정한 걸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데.
“얘들아!”
때맞춰 아빠가 왔다.
“많이 기다렸지? 할아버지한테 좀 다녀오느라.”
아빠는 내 뺨을 톡톡 두드리며 옆에 앉았다.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
아빠가 손에 쥐고 온 종이 한 장밖에는.
저건 입적 서류다.
이제 체시어의 이름만 올라가면 효력이 발생할….
‘으아아앙!’
나는 양손으로 뺨을 붙잡으며 속으로 절규했다.
리리스 루빈슈타인, 주인공과 남매 되기 10분 전.
“체시어, 아저씨가 왜 오라고 했냐면. 음.”
아빠는 잠시 말을 골랐다.
“실은 아까 네 아버지가 찾아왔거든.”
“예, 알아요.”
“응? 알아?”
“응, 아빠. 아까 후작 아저씨 울 집 연무장까지 왔거든. 체시어 데려간다구 했어.”
쪼르르 일러 주자 아빠가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하나.”
아빠는 지그시 눈을 감고 화를 참다가 다시 체시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직접 네 얼굴까지 보러 갔다니, 묻자.”
“…….”
“너 혹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
“아니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나오는 체시어의 대답에 아빠가 웃었다.
“그래. 그럼 아저씨랑 리리스랑 계속 살자. 좋지?”
체시어는 잠깐,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하하하!”
아빠는 소리 내서 웃으면서 들고 있던 입적 서류를 턱, 테이블 위에 올렸다.
‘끄아아악!’
나는 눈을 돌려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분명히 처음 체시어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얌전히 남매 될 생각이었는데!
외롭고 상처 많은 체시어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게… 뭐예요?”
체시어가 입적 서류를 멍하니 들여다보며 물었다.
“지금은 아저씨가 네 후견인이잖아. 그래서 네 친아버지가 너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하면, 내가 도울 수가 없다. 널 집으로 돌려보내야 해.”
뚫어져라 서류 위로 박혀 있던 체시어의 시선이 번쩍 들렸다.
내게로.
나는 흠칫 놀랐다.
‘뭐지. 왜 저렇게 놀란 표정이지? 아까 대충 가족 하자고 말하면서 눈치 줬는데?’
이렇게 빨리 입양 절차를 밟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걸까?
“너는 아직 작위를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가문의 성과 법적인 보호자가 필요해.”
“…저에게 아저씨 성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아저씨 아들이 되라고요?”
어째선지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은 체시어의 반응에 아빠가 멈칫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나도 아빠를 마주 봤다.
‘뭐지? 우리 집 별론가?’
‘나도 몰라?’
우리는 눈으로 대화했다.
아빠가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체시어를 돌아보며 물었다.
“표정이 왜 그러냐? 싫으냐?”
“…….”
체시어는 말이 없었다.
그냥 빤히 한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바로 나.
아빠는 체시어의 타는 듯한 시선을 느꼈는지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체시어?”
아빠가 대답을 재촉하자, 체시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를 보면서.
“가족이….”
가족이?
“가족이 이 가족을… 말하는 거였어?”
“응?”
그럼 가족이 가족이지, 이 가족도 있고 저 가족도 있어?
“아.”
체시어는 뭔가 혼란한 듯, 눈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한참 만에 벌떡 일어났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런데 안 될 것 같아요.”
“응?”
“저는 아저씨 아들 하고 싶지 않습니다. 리리스 오빠도 하고 싶지 않고요.”
“뭐?”
아빠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단호한 체시어의 대답에 적잖이 충격받은 듯했다.
내가 언젠가 ‘아빠 딸 아니야!’라고 소리쳤을 때 보여 줬던 그 표정….
물론 나도 놀라서 멍해졌다.
“죄송합니다.”
“잠깐! 체시어!”
체시어는 그 말을 남겨놓고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