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니야!”
일단 냅다 소리부터 지르고 본 나는 아빠를 피해 침대 끄트머리로 도망갔다.
“어이쿠, 어딜 도망가? 우리 공주, 아- 해 봐. 아빠가 한 번만 볼게.”
“이 안 흔들려!”
“진짜? 거짓말하면 새벽에 이빨 괴물이 찾아와서 우리 공주 이 다 뽑아간다?”
“…….”
음흉하게 웃은 아빠가 침대 위로 올라와서 나를 단숨에 낚아채 안아 들었다.
“으앙악!”
“자, 자. 공주님, 아- 해 보세요. 아빠 한 번만 보여 줘.”
나는 아빠 품에 안겨 두 손으로 입을 꼭 막고 말했다.
“보기만 하기야…. 약속….”
“그러엄.”
나는 손을 내리고 소심히 입을 벌렸다.
“오, 세상에.”
내 입술을 당기고 아랫니를 확인하던 아빠가 말했다.
“…뽑아야겠는데?”
“아, 안 돼!”
“공주, 튼튼한 새 아랫니가 얼른 나오고 싶나 봐. 지금 아야 하는 아랫니를 막 밀고 있어.”
“아빠, 제발.”
나는 두 손을 간절히 모았다.
“쫌만 나중에 하께….”
“나중에? 그러다가 튼튼한 아랫니 못 나와서 공주 이 못생기게 되면 어떡해?”
“그런다구 안 못생겨져….”
“흐음. 뽑으면 아프니까 그래?”
“으응. 아야 아랫니가 혼자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을래?”
“아빠는 기다릴 수 없는데?”
“아빠, 제발.”
“공주, 혹시 체시어 봤어? 체시어는 혼자서 아야 하는 이 용감하게 뽑는다?”
“체시어는 체시어구 나는 나야….”
아빠는 고민하다가 씩 웃었다.
“알았어. 아야 아랫니 혼자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자.”
“와! 고마워!”
“그럼 아빠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게. 아- 해 보세요.”
“아아.”
나는 알겠다고 말하는 제임스 브라운 씨를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검지로 내 입술을 당겨 아랫니를 확인하는 것 같던 아빠는―
뚝.
―1초 만에 아랫니를 뽑아갔다.
“……?”
너무 순식간이라 고통도 한 템포 늦게 찾아왔다.
“으아아아아앙악!!!”
아파아아아! 방 안에 내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됐어, 됐어! 이쁜 내 새끼! 장하다! 괜찮아! 하나도 안 아프다!”
“으아아아앙!”
아빠는 후다닥 일어나 나를 둥가둥가하며 서둘러 티슈를 찾아 입 안에 물려 줬다.
“자, 피 멎게. 함, 다무세용.”
“으우으으응!”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나는, 내 믿음을 배신한 아빠에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절로 시큰해지는 눈을 부릅뜨고 아빠를 째려봤지만.
“아하하하하!”
거짓말쟁이 제임스 브라운 씨는 그저 웃을 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아빠를 믿고 입을 벌려 줬는데!
욱신거리던 입 안이 조금 견딜 만해지자, 나는 있는 힘껏 아빠의 가슴 위로 주먹을 내질렀다.
“아빠 바보야! 아빠 거짓말쟁이! 아빠 세상에서 제일 나빠! 아빠랑 안 놀아!”
“으으으음. 안 돼, 안 돼! 공주는 아빠랑 평생 놀아야 돼!”
아빠는 킬킬거리며 내 입에서 티슈를 빼고 이가 뽑힌 자리를 한참 확인하더니 침대로 다이빙했다.
“캬, 울 공주.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용감하게 이도 뽑고 그래?”
“우쒸.”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
뺨을 대빵만 하게 부풀리고 누워 있으려니 이불을 덮어 준 아빠가 옆에서 턱을 괴고 흐뭇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내 새끼.”
“…….”
“엄청 빨리 자라네.”
뭐지? 중얼거리는 아빠 목소리가, 왜인지 답지 않게 우울했다.
그래서 10분 정도 더 화난 채로 있으려던 나는 마음을 풀고 아빠의 옆으로 꼬물꼬물 붙었다.
“빨리 크면 좋은 거 아니야? 아빠 표정 왜 구래….”
“아, 그렇지! 맞지! 울 공주 쑥쑥 자라면 당연히 좋지!”
아빠는 표정을 풀고 덧붙였다.
“울 공주, 지금보다 키 더 크려면 빨리 자자. 잠을 많이 자야 무럭무럭 자란답니다.”
“으응.”
아빠는 내 뺨에 쪽 뽀뽀하고 바로 누웠다.
나는 그런 아빠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흠.’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빠는 요새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인다.
계시 소동이 일어나고 난 다음부터였나?
구교파의 빠른 득세는, 분명 아빠에게 좋은 일일 텐데.
왜인지 아빠는 계시가 이루어진 당일에도,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도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어두웠다.
“아빠아아.”
“응.”
“무슨 일 있어?”
“엥.”
아빠가 나를 돌아봤다.
“오늘도 그렇구, 요즘 아빠 얼굴이 어두워 보여…. 신전 사람들 싹 다 나은 날에도 별로 안 행복해 보였는데….”
“헉.”
아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하하 웃더니 내 코끝을 툭 건드렸다.
“우리 공주, 눈치 무슨 일이야?”
“몬 일 있구나?”
“응. 아빠 표정에서 그렇게 티가 났구나. 아빠 요즘 너어무 피곤해서 그래.”
“아항!”
음, 맞지. 피곤할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느릿느릿 10년은 훨씬 넘게 걸렸을 아빠의 사업은 득세한 구교파의 흐름을 타고 훨씬 빨리 진행될 것이다.
당연히 아빠는 바빠질 테고 이것저것 피곤할 일도 많겠지.
“우리 공주.”
“응!”
아빠가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있잖아.”
“응.”
“아빠가 열심히 사업해서, 우리 공주 아무 걱정도 안 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줄게. 아빠 믿지?”
“응! 믿지!”
“아빠가… 아빠가 우리 공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게. 그러니까 우리 공주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
“그냥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친구들이랑 열심히 놀고…. 그렇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공주야?”
사업 준비로 마음이 심란해진 걸까?
어째선지 계속 우울하게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에, 나도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 * *
새근새근.
세상모르고 잠든 딸아이를 보며 웃은 에녹이 조용히 방을 나섰다.
집무실로 향해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니, 드러난 얼굴은 창백했다.
“…….”
비틀대며 걷는 걸음도 위태로웠다.
‘리리스….’
딸애는 부쩍 자랐다.
양성소에 다녀온 다음부터였을까?
또래보다 성장이 늦어 아빠를 걱정시켰던 게 무색할 만큼.
“하아.”
손이 꼭 겁에 질린 듯 바들바들 떨렸다. 에녹은 크게 심호흡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그럼에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프리메라….’
에녹은 프리메라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그저 신과 가장 가까운, 전능함을 지닌 존재다―라는 사실만 알 뿐.
그들이 어떤 사고를 하는지.
이 세계의 어떤 섭리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았다.
“도망치지 말구 제도로 돌아가자.”
“나도 아빠 따라 제도 갈래. 가서, 능력자 양성소도 들어가구 능력자 배지도 받을 거야.”
제도로 돌아오고.
에녹 루빈슈타인 공작은 들어라!
이 나라는 바뀌어야 한다!
기꺼이 칼을 쥐기로 결심하고.
생각해 보면, 자신을 움직이게 한 모든 일의 시작점에는 딸이 있었다.
“아빠! 이 애 기억나?! 후작님이 얘도 초대했나바!”
“응? 이 펜던트? 이거 저번에 놀러 나갔을 때! 내가 이쁘다구 했더니 테오 오라버니가 사 줬어.”
프리메라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특별한 아이, 체시어. 그를 구해온 것….
조카 테오의 불치병을 단숨에 낫게 했던 것….
모두 리리스다.
그것이 전부 우연이었나?
아니,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다.
에녹은 최후의 최후까지도, 그저 딸이 조금 똑똑하고 눈치 빠를 뿐인, 평범한 존재이길 바랐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세뇌했다.
바보같이.
“딴 나라 쳐들어가는 전쟁 있잖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땅도 막 뺏고, 죽이고 그러는 전쟁.”
“…….”
“아빠는 그런 거 안 하지?”
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신념을 버리고자 했던 아빠를.
“옥타바…, 라고? 네가?”
“으응, 미안. 좋은 계급이 아니라서.”
그리고.
그런 아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 하아….”
숨이 턱 막혔다.
죄이는 목깃을 꽉 쥔 에녹이 비틀거리며 책상 가까이 다가갔다.
프리메라 신상이 보였다.
“왜….”
그는 무너지듯 그 앞에 무릎 꿇었다.
확신을 하게 된 것은, 이번 계시 사건 때.
계시를 받았다는 사제, 자드키엘의 눈은 분명 거짓이었다.
그렇게 순수한 아이가 거짓을 고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알아보는 게, 무엇이 어려웠으랴.
“사제님은 착한 사람이니까, 진짜 신이 기적을 주셨을 거야. 그니까 걱정 말고 코 자구 내일 사제님 보러 가자.”
하지만, 딸의 걱정 말라던 그 말만큼은 진실이었다.
아마도 그 ‘기적’은 자신이 만들 생각이었겠지.
처음 세라프 신전을 찾아갔던 날.
멀리서 아빠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자드키엘을 데리고 몰래 막사를 나서던 딸의 뒷모습을….
에녹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리리스….”
딸에게 물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 천사 같은 아이는, 아빠 걱정하는 게 싫어 끝내 거짓말을 할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모르는 척해선 안 됐다.
“왜….”
무너진 에녹이 고개를 들고 프리메라 신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신을 경외하는 제국에서 신의 축복을 받은 강한 능력자로 태어났으나.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기도해 본 적 없었다.
뿌리까지 썩어버린 황실에 자신의 권능을 허락한 신.
황실만큼이나 추악한 존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
에녹은 처음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핏발 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신이 세계를 구원하고자, 더러운 황실을 외면하고 새 핏줄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왜….”
내 아이여야 하는지.
에녹은 황제를 떠올렸다.
탐욕 어린 눈빛.
자신의 더러운 정의를 이 나라에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악하고, 또 한없이 강한 존재.
그가 딸의, 리리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아, 아.”
끔찍한 상상이 에녹을 공포에 떨게 했다.
무엇 하나 두려운 것이 없었던 남자는,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극한의 공포를.
“신이시여.”
간절히 붙잡은 손.
에녹은 바닥에 이마를 붙이고 울며 빌었다.
“부디….”
부디 내게.
끝내 무사히, 아이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