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전시 상황에도 한결같이 평화로운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마탑.
연구실 상석에서 오늘도 쉴 새 없이 펜을 끼적이던 마탑주, 오스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뭔 개소리야?”
그의 보좌관, 로벨은 입을 다물고 목을 쑥 밀어 넣었다.
오스카의 성격상 곧 마탑 건물이 다 떠나가라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댈 거다.
“뭔 개소리냐고!!!”
역시.
로벨은 한껏 움츠러들어서 말했다.
“말씀드린 대로인데요….”
현역 능력자들이 전부 남부 올덴으로 출정한 상황.
제도의 방비가 취약한 이 틈에, 또 다른 성수 무리가 습격해오고 있다 한다.
황제는 남은 능력자들을 출정시키기로 했다.
현재 제도에 남은, 병역의 의무가 있는 능력자들은….
“애들을 거기에다 왜 보내?”
그래, 소년병뿐.
출정 경험도 별로 없는 아이들이다.
잔뜩 화가 난 오스카의 눈을 슬그머니 피하며 로벨이 대답했다.
“출정 순서를 따지면… 현역 다음에는 소년병들이긴 하니까요….”
“정신 나갔네, 진짜. 나라에 망조가 들었나? 왜 얌전히 있던 성수들이 미쳐 날뛰어?”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성수도 아닌데.”
“하아, 진짜.”
오스카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붙잡았다.
로벨은 그 모습을 보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 마탑주님….”
“뭐.”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뭔데.”
“화내지 마시고요. 소리도 지르지 마시고. 고정하고 들으세요.”
“아, 빨리 말해!”
“소년병의 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황제 폐하께서 4계급 옥타바 능력자들까지 소집하셨다고 하네요. 지금 전, 부….”
말을 잇던 로벨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루빈슈타인 공녀, 리리스를 꽤나 아끼는 오스카라 아마도 충격받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표, 표정 뭐야?’
상상보다 더.
오스카의 표정이 굉장했다.
“…뭐라, 고?”
누가 보면 나라라도 잃은 줄 알 것이다.
한계까지 치뜬 오스카의 금색 눈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공포? 두려움?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제, 젠장. 이, 이 미친놈이 기어코….”
“타, 탑주님?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스카의 손이 병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화는 많았어도 당황하거나 겁을 먹은 적은 없었던 남자다.
그런 오스카는 왜인지, 지금 놀라우리만치 이성을 잃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가, 가서 전해.”
“네?”
“내, 내가…. 마, 마탑에서 간다고 전해.”
“예?”
“젠장할! 좀 한 번에 알아들어라, 이 새끼야!”
오스카가 로벨을 향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내가 가겠다고! 제도는 마탑에서 막을 테니까! 애들, 애들 가만 놔두라고. 가서 황실에 전하고 와.”
“…….”
그의 독단적인 결정에 로벨이 입을 떡 벌렸다.
놀란 것은, 연구실에 모여 한참 마법식을 연구하던 연구원들도 전부 마찬가지.
“뭐, 이 자식들아.”
오스카가 당황한 연구원들을 보며 매섭게 말했다.
“제도가 위험하다는데. 여기서 마음 편히 엉덩이나 붙이고 앉아 있을래?”
연구원들은 사색이 되어 저마다 시선을 나눴다.
그들이 기를 쓰고 마탑에 들어오고자 했던 이유는 하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징병되지 않기 위함.
한데….
“표정 뭔데, 새끼들아. 전쟁터 몇 번 굴러보지도 않은 어린애들이 가서 죽는 꼴을 지켜만 보겠다고?”
“탑주님! 이, 일단 진정하시고. 우리 연구원들도 전쟁터 안 나가본 건 마찬가지….”
로벨이 팔을 잡고 말렸으나, 오스카는 대번에 내치고 덧붙였다.
“나 혼자 간다고 하면 머릿수 없다고 소년병들까지 내보낼 게 뻔해. 그러니까 너희도 일어나.”
오스카의 명령에도 연구원들은 머뭇거렸다.
“제발, 새끼들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한테 뭐 안 시킬 테니까….”
목소리가 호소하듯 간절했다.
“제발. 머릿수만 채워.”
당황하던 연구원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그, 그건 맞죠. 어린애들 보내는 것보다는… 우리가 가는 게 맞아요.”
“으응. 역시… 그렇지?”
그를 시작으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부 따르겠다는 의사에, 안도한 오스카가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고맙다. 너희 다, 내가 다치는 일 없게 하마.”
이윽고 오스카가 지체 없이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을 나섰다.
전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마탑 1층에 도착했을 때.
오스카의 걸음이 멎었다.
“뭐냐.”
무장한 두 능력자가 마탑의 출입문을 막고 서 있었다.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성법사 미르.
마법사 리온.
이 둘은 황제의 친위대였다.
5인으로 구성된 친위대.
종속 마법 때문에 매 순간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는 이들이다.
“뭐냐고, X새들아.”
“1급 전시 상황에, 마탑주 오스카 마뉘엘 님을 비롯하여 마탑의 연구원들을 보호하고자 왔습니다.”
성법사 미르가 말했다.
“뭐라고? 지나가는 개도 처웃을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누가 누구를 보호해? 네가 나를?”
“황제 폐하의 말씀 전합니다.”
오스카가 삐딱하게 반응하건 말건, 미르는 계속 말했다.
“마탑의 연구원들은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능력자들이다. 국가 위급 상황에, 그들의 절대 안전을 위해 이 시간부로 마탑을 봉쇄하고 목숨 바쳐 보호하라.”
“하하하하! 이런 미친.”
어이없다는 듯 허공을 향해 웃던 오스카가 표정을 싹 굳혔다.
“역시 주둥이에 기름칠 하나는 잘해. 감금당하라는 소리를 이렇게 곱게 하네.”
“오스카 마뉘엘 님. 여기서부터는 한 발자국도 나가실 수 없습니다.”
미르와 리온이 오스카의 앞을 막고 섰다.
피식 웃은 오스카가 그들의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붙이고 속삭였다.
“날 막고 싶었으면, 니네 친구들 다 데려왔어야지. 나머지 셋은 어디 보냈냐?”
“…….”
“…….”
“고작 둘로 나를 어떻게 막을래?”
오스카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미르와 리온이 속절없이 쿵, 무릎을 찧으며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봉쇄당한 움직임.
둘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등신들.”
그것을 지켜보던 로벨은 혀를 내둘렀다.
고위 능력자 둘을, 손짓 한 번에 단숨에 제압하다니.
‘맨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어서 그렇지, 역시 무서운 인간이야.’
오스카가 미르의 어깨를 발로 밀어 넘어뜨렸다.
“꺼져.”
그리고는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 뭐야, 이게….”
출입문 위에 손을 올린 순간.
오스카의 눈앞이 새하얘졌다.
출입문부터 시작해 마탑 전체를 에둘러 봉쇄하고 있는 강한 힘.
이번에는 그가 어찌할 수 없는.
“하?”
프리메라, 황제의 능력이었다.
절대 자신을 내보내지 않겠다는 강한 황제의 의지를 느낀 순간.
오스카는 깨달았다.
현역 능력자들의 부재.
소년병들의 출정.
4급, 옥타바에게까지 내려온 소집 명령.
아귀가 맞물리듯 치밀하게 벌어진 이 상황에서, 황제가 노리는 것은 바로 하나였다.
리리스.
그 아이를 제멋대로 움직여, 에녹 루빈슈타인을 길들이기 위함이겠지.
“으아아.”
손이 떨렸다.
분노, 그리고 공포.
전장에 내던져져 두려움에 떨 그 작은 아이, 리리스를 떠올린 순간.
오스카의 핏발 선 눈이 젖었다.
“으아아아악!!!”
혼란에 빠진 비명이 고요한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아빠가 출정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우리 집에는 무장한 세 능력자가 들이닥쳤다.
성기사 둘에 마검사 하나.
“폐하의 친위대가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나.”
할아버지는 벌벌 떠는 나를 뒤로 숨기며 그들에게 물었다.
황제의 친위대.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
‘황제한테 세뇌된 능력자들이야.’
친위대들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빠나 스승님 오스카처럼 강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적당한 생명력으로도 종속 마법을 걸 수 있는.
황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부릴 수 있기에 선택된, 5인의 능력자다.
‘마지막에 나왔었지.’
이들은 원작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종속 마법이 걸려 있기에 아빠와 체시어의 앞을 막고 황제를 지키다 죽는….
“4급 옥타바 능력자들을 소집해 중부 위르겐으로 출정시키라는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가운데 서 있던 마검사가 말했다.
나는 놀라서 흠칫했다.
“…괜찮다, 리리스.”
할아버지는 나만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아무리 황제 폐하라지만, 근본이라고는 없는 명령이군. 4급 능력자는 병역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소. 이는 명백히 제국 법전에 나와 있는 군법 내용이오.”
“1급 전시 상황입니다. 현역 능력자들이 전원 출정하여 제도에 남은 병력이 없는 지금, 황제 폐하는 소년병들의 출정을 명하실 수 있습니다.”
“내 손녀는 소년병이 아니오. 4급 능력자이니 병역을 질 필요 없소.”
“현재 제도로 습격 중인 성수의 수가 삼백 남짓입니다. 소년병들로만 대적할 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에, 폐하께서 4급 능력자들까지 소집하라 명하셨습니다.”
“우습군. 고위 능력자는 마탑에도, 능력자 양성소에도 있소. 전투 훈련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4급 능력자를 왜 출정시킨단 말이지?”
“마탑과 양성소의 능력자들은 고급 인력입니다. 제국 황실은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대우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징병을 계속해서 거부하실 경우, 저희 친위대는 황제 폐하의 뜻에 따라.”
셋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어 할아버지에게 겨누었다.
“무력으로 노르딕 님을 제압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하, 할아부지….”
눈앞이 새하얬다.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침착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강해도, 저 세 명은 다 못 이겨.’
나는 할아버지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하, 할아버지. 저….”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할아버지는 뒤돌아 집무실 벽을 향해 걸어갔다.
벽에는 검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은퇴한 할아버지의 현역 시절, 손에 쥐고 다녔던 검.
오래 쥐어 손잡이가 닳은 검을 잡은 할아버지가 다시 내 앞을 막고 섰다.
그리고는 친위대에게 검을 겨누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재주껏 데려가 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