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거기 가만히 있거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주변에 파란색 실드를 씌웠다.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세 명이 한꺼번에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챙―!
할아버지는 묵직한 검 세 자루를 홀로 막아냈다. 버거워 보였다.
‘어떡해….’
그 다음부터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두려웠다.
검 세 자루가 쉴 새 없이 할아버지에게 쇄도했다.
할아버지는 그럼에도 밀리는 기색 없이 그들을 상대했다.
“그, 그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가 확실히 보였다.
중간중간 날아드는 푸른 검기와 까만 검기가 할아버지의 몸 곳곳에 상처를 냈다.
“크윽.”
“하, 할아버지!”
그때.
매섭게 틈을 노린 마검사의 검기 한 자락이 할아버지의 옆구리를 크게 베어냈다.
나는 곧바로 달려 나가 무릎 꿇고 무너진 할아버지의 앞을 막아섰다.
“그, 그만요! 그만해 주세요!”
친위대가 검을 내렸다.
나는 두 손을 꽉 맞붙잡고 빌었다.
“가, 가, 갈게요! 제가 갈게요! 가, 갈 테니까… 하, 할아버지, 그만. 그만…. 으.”
바보야.
울 때가 아닌데.
“그, 흑, 그만….”
나는 뿌옇게 흐려진 눈을 소매로 벅벅 훔치고 돌아보았다.
“으, 끅, 하, 하부지….”
“…리리스. 안 된다. 내, 큭, 내 뒤로 가서….”
“할아버지, 저, 저 가따 올게요. 안 다치구 얼른, 얼른 가따가 빨리 다시 올게요.”
“리리스! 큽.”
나는 쉴 새 없이 피가 흐르는 할아버지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상처가 아물었다.
할아버지는 멍하니 그것을 보다 재빨리 내 손을 붙잡았다.
“하, 할아버지. 흐끅. 저, 괜찮아요. 저 괜찮으니까 얼른 가따 올게요. 그니까 싸우지 마세요….”
“아, 안 돼. 안 된다. 어딜 간다는 게냐. 대체….”
할아버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떨며 나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뒤에서 거칠게 나를 잡아채는 손길에 놓치고 말았다.
“리리스!”
“할아버지, 우으. 거, 걱정하지 마세요. 가면, 가면 오라버니들도 있구 체시어도 있구 하니까… 저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이놈들! 그 손 놔라!”
할아버지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일어났다.
그러나.
척, 척.
성기사 두 명의 검이 할아버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부지….”
“이, 이게….”
할아버지는 젖은 눈을 크게 치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를 눈에 담았다.
“아!”
마검사가 나를 짐짝처럼 안아 들고 걸음을 돌렸다.
“리리스! 멈춰라! 네 이놈들, 멈춰!!!”
할아버지의 간절한 비명이 계속 귓가를 때렸다.
* * *
한순간에 품에서 놓쳐버린 손녀.
노르딕은 비틀거리며 책상으로 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펜을 쥔 손이 벌벌 떨렸다.
“허어, 허….”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침착해야 하는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상상에 좀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오른쪽 손목을 왼손으로 꽉 붙든 채.
노르딕은 종이 위에 글자를 한 자, 한 자 채워나갔다.
“이걸, 빨리….”
겨우 완성한 편지 한 장.
노르딕은 그것을 사병에게 건네며 버려진 검을 다시 주웠다.
“에녹에게… 어서, 어서 전해라.”
“예, 노르딕 님.”
소년병들이 출정하는 곳은 중부 위르겐이라 했다. 지체 없이 자신도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머릿수가 삼백이 넘어가는 오염된 성수들이라니….
그 무리를 단숨에 제압하고 리리스를, 그리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는 능력자는.
노르딕이 아는 선에서는 단 한 명.
제 아들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빨리 알려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위르겐으로 가자.”
“예!”
사병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편지를 받은 사병은, 나서기 전 울컥하며 푹 고개 숙였다.
“제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공작님께 노르딕 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 * *
친위대의 손에 끌려 나온 나는 바로 마차에 실렸다.
마차에는 나와 같은 옥타바 계급 능력자들이 타고 있었다.
성인도, 어린아이도 예외 없이.
다들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침착해. 침착해야 해.’
나는 심호흡을 하며 머리에 힘을 줬다.
한시가 바쁜 상황에 마냥 일곱 살 꼬마처럼 짜고 있을 순 없으니까.
‘원작이랑 달라졌어. 원래는 결말까지 살아 있는 마검사단장이 죽었으니까.’
마검사단장 사이언 경은 훗날 체시어에게 단장직을 넘기고도 계속 등장한다.
끝까지 살아남은 우리 편이었다.
‘그럼, 이번 성수들의 습격도 원래는 없었던 일인 거야.’
남부 올덴에 출몰했다는 오염된 성수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제도에 있던 현역 군인들이 전부 올덴으로 갔다.
‘그런데 아빠가 사령관인데… 왜?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지? 여기 병력을 안 남겨놓으면 어떡해?’
생각하다가, 나는 깨달았다.
“아.”
아빠가 그랬을 리 없다.
황제의 명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그렇다면 모든 상황이 아귀가 척척 들어맞는다.
소년병을 출정시킬 수 있도록.
위급 상황이라며 옥타바 계급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황제는, 일부러 제도의 병력 전부 남부로 보내버린 것이다.
“왜!”
…나 때문이겠지.
계급과는 상관없이, 나를 언제든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걸 아빠에게 알려 주려고.
“하.”
내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동시에 마차가 황실에 도착했다.
“다들 내려.”
친위대 마검사의 지시에 따라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황실 연무장.
출정을 앞둔 소년병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콩콩 뛰는 가슴을 애써 무시하며 걸었다.
대열이 가까워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레온과 테오….
양성소에서 퇴소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보는 제라드….
그리고 체시어까지.
전부 있었다.
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던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나는 울컥해져서 달려갔다.
“리리스? 왜….”
낯빛이 파리해진 체시어가 나를 향해 멍하니 손을 뻗었다.
“뭐야!”
그러나 레온이 먼저 번개같이 달려와 나를 붙들었다.
“너, 너 뭐야? 꼬맹이 네가 여길 왜 와?”
“오, 오라버니….”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꼭 참으며 레온에게 안겼다.
그때 친위대 마검사가 끼어들었다.
“소년병 103인으로는 성수 토벌을 감행할 수 없습니다. 하여 옥타바 계급 능력자들을 지원하니 함께 출정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십니다.”
“뭐, 이 미친놈아?”
레온이 대번에 화를 냈다.
“부족하면 니네가 같이 가면 될 거 아니야!”
“저희는 황제 폐하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하는 친위대입니다. 황제 폐하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 이 씨….”
“위르겐 성수 토벌대 사령관, 마검사단 소속 레온 앙트라세 군. 시급히 토벌 전략을 꾸리고 출정하십시오. 30분 후 위르겐 신전으로 워프 게이트를 열겠습니다.”
“하.”
레온이 비틀거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장한 소년병들과 달리 갑작스레 끌려온 옥타바들은 일상복 차림으로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드레스 차림인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황당하고 우스운 모습….
나와 같은 생각인지 레온도 주변 능력자들을 하나씩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이게 뭐야….”
“오라버니….”
열두 살.
사령관이 되어 모두의 목숨을 떠안고 선봉에서 검을 쥐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 * *
그 시각.
남부, 올덴.
과연 제도의 병력 전부를 보내야 했을 만큼, 올덴의 상황은 심각했다.
오염된 성수들은 미쳐 날뛰었고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어느 정도 제압한 것 같으면, 30분을 주기로 어디선가 새로 튀어나왔다.
벌써 다섯 번쯤.
도합 천 마리가 훌쩍 넘는 성수 무리를 정리했을까.
“돌겠군.”
에녹은 막사 안에서 지도를 펼쳐 놓고 고뇌했다.
다음 성수들이 나오기까지 30분.
다들 숨을 돌리는 와중 에녹만은 쉴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본거지를 찾아야 해.”
“좀 이상하지 않나. 성수들이 이렇게 무리 지어 다니면서 공격적으로 구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
같이 지도를 살피고 있던 악시온이 말했다.
그래, 말마따나 이상한 상황이다.
성수. 성력에 기반한 힘을 쓰는, 본래는 성스러웠던 존재들.
지금은 오염되긴 했으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인간을 위협하거나 민가를 공격하는 일도 드물다.
한데 대체 왜….
“처남. 이제 악시온 경도 후방으로 보내. 성능력자들은 개죽음이겠어.”
그때, 뒤에 있던 알렉세이가 에녹에게 말했다.
그는 어깨와 옆구리에 붕대를 감은 채 오르디아에게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만하고 마나 아껴. 이런 건 침 바르면 싹 나아.”
“뭐라는 거야?”
오르디아가 알렉세이의 어깨를 짝, 때렸다.
“아.”
“다 죽어서 피 철철 흘리면서 와 놓고는 한단 소리가!”
“아니, 그럼 어떡해? 권사가 상처 하나 없이 성수들을 어떻게 잡아?”
에녹은 주고받는 부부를 지켜보며 난색을 띠었다.
마력계 능력자가 마수를 상대하기 힘들듯, 성력계 능력자들은 성수들을 대적하기 힘들다.
하여 선봉에는 마단을, 후방에는 성단을 배치했다.
그러나 마검사단이 전원 전사한 지금.
“조금만 더 고생해 주십시오.”
선봉에서 가장 고전하고 있는 것은 마권사인 매형, 알렉세이였다.
“아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보다는 악시온 경이나 뒤로 보내라니까.”
선봉에 있는 성력계 능력자는 둘.
에녹과 악시온뿐이다.
“그래. 그게 낫겠다. 다음번에는 너도 후방에서 남은 놈들 정리해.”
“됐어. 아직 멀쩡해.”
그렇게 말하는 악시온의 상태도 썩 좋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에녹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그때였다.
“각하!”
막사 안으로 누군가 뛰쳐 들어왔다.
아는 얼굴.
공작가의 사병이다.
“뭐야. 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
사색이 된 사병의 얼굴을 본 순간.
에녹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