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놀란 제라드가 테오를 구하려고 달려 나갔다.
쉬이이익―!
제라드가 검기를 날렸지만.
“젠장!”
성력의 검기는 이번에도 성수의 머리에 약간의 흠집만 냈을 뿐.
나는 좌절했다.
마수를 잡을 때는 그렇게 강하던 제라드였는데.
“제라드! 위험해!”
성수가 제라드에게 달려들려 하자, 나는 바로 실드를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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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씨. A급 유동형 실드 왜 이렇게 비싸! 초당 계속 생명력 닳는 거 봐라….’
억울했지만, 별수 없었다.
나는 제라드에게 소리쳤다.
“제라드! 실드 있으니까 잡아 줘! 쩔로 데리구 가서!”
지금 여기서 희망은 너뿐이다….
놀라서 나를 돌아보던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수를 반대쪽으로 몰고 갔다.
그는 제법 전투에 탁월했다.
앞발을 휘두르는 성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검기를 날렸다.
“아, 됐다!”
성수가 푸른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성력을 담은 검기로 여섯 번.
최소 여섯 번을 넘게 날려야 겨우 한 마리를 잡았다.
‘비효율의 끝판왕이다….’
제라드의 싸움을 지켜보며 문득 나는 아빠가 걱정되었다.
물론 아빠는 규격 외의 능력자인 주인공이지만….
그래도 성력계열 능력자인데 성수를 잡느라 고전하진 않을까?
“꺄아아악!”
그때 뒤에 있던 옥타바들이 소리쳤다.
뭔가 보니―
“저, 저게 모야!”
―바위틈에서 하나둘씩, 성수들이 고개를 빼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 나도 도와야 해. 리리스, 너는 여기에 있어.”
“오라버니!”
멍하니 제라드를 지켜보고만 있던 테오가 다시 검을 들었다.
‘으악, 맞다! 오빠도 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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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리의 성수가 한꺼번에 테오에게 달려들었다.
테오가 검기를 날렸다.
쉬이이익―!
“헐!”
나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번에는 새카만 검기.
성수들은 그걸 맞고 한 번에 타올라 재가 되었다.
‘와, 와…. 힘의 상성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성수를 한 번에 제거한 테오도 눈이 휘둥그레져 놀랐고, 지켜보고 있던 옥타바들도 환호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위틈에서 번뜩이는 푸른 눈이 수십 개.
“아, 세상에….”
나는 절망했다.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성수들이 수십 마리.
“뒤쪽으로 넘어가게 해선 안 돼! 제라드! 우리 선봉에 있는 애들 쪽으로 몰자!”
“네!”
성수들을 유인하기로 했는지 둘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호다닥 그들을 뒤따랐다.
“뭐, 뭐야?! 리리스! 오지 마! 너는 오지 마! 가!”
“아, 안 돼! 오빠, 나도 가야 해!”
테오는 나를 보고 사색이 되어서 멈췄다.
“형! 리리스도 같이 가야 해요. 지금 A급 유동형 실드 걸어줄 사람 리리스밖에 없어요! 멀어지면 우리 실드 끊겨요!”
“아.”
그래. 보통은 그렇다.
물론 프리메라인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거리가 멀어져도 실드가 계속 유지된다면 이상할 것이다.
나는 이 혼란한 와중에도 정체를 숨기기까지 해야 했다.
“나두 실드 썼으니까 괜찮아, 오빠! 빨리 가자! 빨리 저쪽 가서 다 없애 줘!”
급박한 상황.
테오는 하는 수 없이 내 손을 잡고 달렸다.
“형 마기가 제일 효율적이니까, 우리 성수들 최대한 많이 모아서 한 번에 잡아요! 검기 재사용 시간이 좀 되니까요!”
“알았어!”
제라드의 말에 나는 열심히 달리면서 경악했다.
‘검기 쿨타임 있는 거였어?’
부지깽이로 1초에 한 번씩 검기 날리던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그런 거 없었는데?’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우쒸!”
그건 제임스 브라운 씨만 가능한 것이었나 보다….
“이제 잡아요!”
서른 마리쯤 되는 성수가 우리 앞을 막고 섰다.
테오가 검기를 날렸다.
쉬이이익―!
푸른 검기….
‘으악! 살려 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도박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아, 이런.”
“젠장!”
테오와 제라드는 동시에 패닉에 빠졌다.
이제는 내가 잡아야 했다.
‘A급 공격 마법으로 이걸 한 번에 잡으면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생명력이 얼마나 드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 정체를 의심받게 되는 것.
그것이 문제였지.
나는 울고 싶어졌다.
‘대체 왜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서 막 튀어나오냐고! 너희 친구들한테 가! 이 나쁜 놈들아!’
“어어?”
그때, 테오가 놀랐다.
웬일인지 멈칫한 성수들이 갑자기 뒤돌아 도망치는 게 아닌가.
동시에.
1hour
내 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한 시간? 내가 방금 뭘 했길래?’
재빨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내 깨달았다.
성수들은 도망치는 게 아니다.
‘너희 친구들한테 가! 이 나쁜 놈들아!’
자기들 무리로 가고 있는 거다.
내가 바란 대로 말이다.
“아.”
나는 놀라서 휘청거렸다.
‘성수들을 조종할 수 있잖아?’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프리메라가 조종할 수 있는 건 ‘성력’을 지닌 능력자들인데….
‘인간은 아니지만, 성력계 괴수라 내 조종이 먹히나 봐!’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충격에 빠졌다.
프리메라가 성수들을 조종할 수 있다면….
‘와, 이거. 다 황제가 벌인 짓이겠구나.’
어쩐지 갑자기 성수들이 미쳐서 날뛴다니 이상하더라.
전부 황제의 짓인 게 분명했다.
나 하나를 위험에 몰아넣기 위해.
그래서 아빠를 자극하기 위해.
황제는 자기가 그렇게 아끼는 땅을 망치고 능력자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런 판을 짠 것이다.
‘미친 인간….’
절로 욕이 나왔다.
그때, 멀어지던 성수들이 까만 불에 화르륵 타올라 재가 되었다.
그 사이로 체시어가 달려왔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한데 왜 여기까지 얘를 데리고 와!”
그는 한달음에 내 앞으로 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놀란 얼굴. 걱정하는 게 보였다.
“나 괜찮아. 체시어….”
“뒤쪽에서 성수들이 나왔어. 여기로 유인하는 게 제일 안전해서 어쩔 수 없었어.”
제라드가 설명하자, 체시어가 겨우 진정했다.
레온도 다가왔다.
“오빠!”
살펴보니, 선봉에서 싸운 둘은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다.
“으하하! 끝!”
레온이 환하게 웃으며 만세했다.
“네? 끝이요? 앞에 벌써 다 잡았어요?”
“엣헴. 내가 누군데!”
제라드가 놀라자 레온이 우쭐했다.
“와, 이렇게 마나 탈탈 다 털어서 싸워 본 적 진짜 오랜만이다. 그래도 뭐, 다 잡았으니까 괜찮아!”
그때 낯선 얼굴이 다가왔다.
“얘들아, 안녕! 난 아론! 야, 너희 얘네 둘 못 봤지? 진짜 대단했어! 실드만 주니까 얘네 둘이 거의 다 하더라니까?”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
곧 현역으로 뛰게 될 듯한 그는, 아마 체시어와 레온을 서포트해 준 방어 계열의 도스인 모양이었다.
“으흐흐. 꼬맹아, 오빠 대단하지? 완전 세지?”
“응! 오빠 최고야!”
“하하하하!”
레온은 내 어깨에 척 팔을 두르고 좋아했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
선봉에 있던 100여 명의 소년병 전부 생존.
정말로 체시어와 레온이 일당백을 했는지, 몇몇은 무기를 든 적도 없는 듯했다.
“나랑 체시어는 이제 마나 찰 때까지 완전 힘없어…. 업어 줘, 꼬맹아….”
“으항항! 좋아, 좋아! 업어 줄게!”
“푸하하! 아니, 장난이지! 네가 날 어떻게 업냐?”
우리는 승리를 만끽했다.
“체시어! 너두 고생했….”
그때.
체시어에게 가려던 나는 멈칫했다.
어째선지 그는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저 멀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큰 모래바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성수들.
다 잡은 것이 무색하게, 새로운 무리가 이곳을 향해 돌진해 왔다.
수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미치겠네….”
멍하니 읊조린 레온이,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쓸며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레온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
“저걸, 어떻게…. 하.”
전부 말을 잃어버린 순간.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만 작고 어린 게 아니다.
적으면 아홉 살. 많아 봐야 열다섯 살.
죽음의 공포에는 익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다.
몇몇이 눈물을 터뜨렸다.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이제는 막을 수 없고, 가만히 서서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그나마 희망이었던 도스들은 전력이 거의 다한 상태.
체시어도 가망이 없음을 느꼈는지 텅 빈 눈이었다.
“리리스.”
그럼에도 나를 안심시키려는지 그가 손을 잡아 왔다.
“괜찮아. 너는 괜찮을 거야. 내가….”
“…….”
“내가 지켜 줄게.”
체시어는 흩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다가오는 성수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팔찌를 보았다.
10hours
저 성수들을 전부 조종하는 데 드는 내 생명력, 열 시간.
이 정도면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보는 눈이 수백 개.
갑자기 성수들이 홀린 듯 조종당한다면, 그 묘한 사태는 분명 황제의 귀에 보고될 것이다.
내 능력을 쓰는 순간.
분명 의심받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 정체가 드러나겠지.
정체를 들키는 것은, 나에게 죽음과도 같다.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해?’
아는 얼굴들만 데리고 몰래 숨어 있자.
실드 치고 버티다 보면, 살 수 있을 거다.
성수들이 제도까지 뒤집어놓는 건 바라지 않을 테니, 방어선이 뚫리면 황제도 이 짓을 멈추겠지.
‘하지만 이 애들은 전부 다치거나 죽을 거야.’
나는 죽음의 공포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모르는 애들이야.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알량한 희생정신으로 내 능력을 썼다간, 나 혼자 죽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해?
왜? 왜?
눈물이 나서, 시야가 흐려졌다.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았다.
‘나는 황제한테 들키기 싫어. 그럼 죽는단 말이야. 나는 아빠랑 평생, 평생 행복하게 살 거라구….’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적인 욕망이 나를 괴롭혔다.
‘모르는 애들, 죽는다고 해도 나는 하나도 안 슬프니까….’
“으허엉.”
결국, 눈물이 터졌다.
“아저씨가 그랬어. 사람 목숨은 무게를 달 수 없다고. 하지만 백 명의 목숨이랑 한 명의 목숨이 있을 때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괴로워도 백 명을 살리라고 했어.”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이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나 보다.
“울지 마. 괜찮아.”
체시어가 내 눈물을 닦아 주며 힘없이 웃었다.
“체시어, 있잖아….”
“응.”
“나, 나 살려 주라.”
“…그래.”
“나 절대,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 줘야 해?”
“그럴게….”
체시어는 지금을.
그리고 나는, 황제에게 잡힌 후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질문과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 절대 죽이지 마….”
“응.”
웃고 있는 체시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곧 나를 뒤로 보내고 힘겹게 검을 잡았다.
“으아아아.”
“흑! 어허엉….”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성수들은 어느새 우리를 향해 바짝 다가와 있었다.
‘미안.’
죽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까.
아이들이 얼마나 겁먹었는지 알면서도, 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버틸 생각으로 우뚝 섰다.
성수들과 우리의 거리.
고작 10m 남짓.
체시어와 레온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이이익―!
어디선가 날아온 바람 한 줄기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
돌진하던 성수들이 그 자리에서 일제히 멈추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푸른 피를 왈칵 터뜨리며 무너졌다.
“뭐, 무슨…?”
누군가가 놀랐고.
나는 성수들의 사체 너머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흑색 군마를 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
성수들을 한 번에 쓰러뜨린 검을 가로로 뻗은 채.
멀리서도 나를,
오롯이 쳐다보는 남자.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끅. 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