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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09)화 (110/261)

“…….”

오스카는 아빠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말했다.

“멀쩡하네.”

그리고는 뒤돌았다.

“간다.”

“자, 잠깐! 잠깐만여, 스승님!”

나는 호다닥 일어나 오스카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혹시….”

“뭐.”

“아니, 혹시 아니구 맞다! 저 죽었을까 봐 걱정해서 오신 거 맞죠!”

“…….”

오스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확실했다!

대체 이 시간에 난데없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내 얼굴을 봐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뭐야, 뭐야.”

아빠가 다가왔다.

“우리 공주 무사한지 보러 왔어? 공주 오늘 위르겐 가서? 혹시 다치기라도 했을까 봐?”

“…….”

“그것도.”

아빠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면서 바로 옆에 있는 시계를 가리켰다.

“열한 시에? 다 잘 시간에? 어? 진짜? 이거 진짜야?”

“저기요.”

오스카가 잔뜩 놀리려는 아빠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나 아빠는 오스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덧붙였다.

“아니, 그렇게 애가 걱정되면 마탑에서 좀 나오지. 애들 대신 구르면 죽기라도 하나? 엉?”

“…….”

오스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얘가 뭐라고!”

“뭐긴 뭐야! 은둔형 외톨이라고 소문 자자한 마탑주를 마탑에서 나올 수도 있게 하는 소중한 공주님이지!”

“아오, 씨.”

오스카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 말했다.

“주접 그만 떨고, 애 좀 잘 봅시다. 일곱 살에도 일차방정식 못 푼 공작님이랑 달리 공작님 딸은 천재니까.”

“고럼, 고럼. 울 딸이 천재는 맞지.”

“천재가 빨리 죽으면 국가적 손실 아닙니까. 그리고 내가 얼마나 공들여서 가르친 줄 알아요? 아깝게 이 나이에 세상 하직하면 어떡해?”

“이야.”

아빠가 짝짝짝, 손뼉 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밤 열한 시에 눈썹 휘날리며 달려와 놓고는, 그냥 걱정돼서 왔다고 하면 될걸. 같은 소릴 이렇게 얄밉게 하네.”

“뭐요?”

“아하하하하!”

아빠가 호탕하게 웃으며 오스카의 흐트러진 옷자락을 친근하게 정돈해 주었다.

“뭐야, 치워요!”

오스카는 아빠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쳤지만, 아빠는 그가 나를 걱정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드는지 히죽 웃었다.

나도 좋아서 호다닥 오스카의 다리를 잡고 뺨을 비비적댔다.

“으항항! 스승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빠를 대할 때와는 달리, 나를 보는 오스카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그는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한 번 푹 누르고는 걸음을 돌렸다.

“알았다. 간다.”

“이, 일케 바로 가여?”

“어어, 그래. 기왕 온 거, 집에 방 많으니까 자고 가.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같이 먹고.”

아빠가 권했지만, 오스카는 됐다며 손을 흔들고 나갔다.

입을 쭉 내민 아빠가 옆에서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렘에게 “배웅해 줘.”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스승님, 잘 가여!”

“오냐.”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아빠는 웃으며 나를 안고 침대로 돌아갔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네, 진짜. 이 시간에.”

“아빠, 아빠!”

“응, 공주야.”

“있잖아, 스승님 엄~청 좋은 사람이야.”

“하하, 그래?”

“응! 스승님이 저번에 모라구 했냐면, 내가 부탁하는 거면 뭐든 다 들어준다구 했다?”

“정말?”

“응응! 뭐든 다! 소원권 한 개 있는 거야!”

나는 이 틈을 노려 아빠에게 말해 두기로 했다.

혁명에 동참해 달라는 말을 오스카에게 해 보라고!

“그래서 내가 그 소원권 아빠한테 넘길라구 스승님한테 말해 놨어!”

“응?”

“그니깐 아빠가 혹시 스승님 도움이 필요하면 가서 얘기해 봐! 그럼 뭐든 다 들어줄걸?”

“…….”

아빠는 눈을 몇 번 껌뻑이다, 이내 피식 웃었다.

“그렇구나.”

“으항항! 부탁할 거 있으면 아무 때나 스승님한테 가서 말해! 알았지?”

“그래, 그럴게.”

아빠는 웃으며 내 뺨에 입을 맞췄다.

“고마워, 우리 공주.”

“응!”

우와. 엄청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하루지만….

다행히, 걱정 한 줌은 내려놓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우응….”

아직 해님이 인사하지도 않는 이른 새벽.

어쩐지 옆이 허전하게 느껴져 깨 보니 아빠가 없었다.

‘어디 갔지? 아.’

잔잔한 새벽빛이 드는 방 안.

아빠는 검은 제복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눈을 비비며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아.’

울컥, 일그러진 표정.

눈물을 참으려 일그러진 이목구비에서, 지금 아빠가 느끼는 감정들이 파도처럼 내게도 밀려왔다.

추모식을 앞둔 지금.

아빠는 죽은 전우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떡해….’

나는 제도로 돌아오기 전, 전쟁터에서의 삶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던 아빠가 생각났다.

“전쟁터는… 아주아주 끔찍한 곳이야.”

“어제 인사했던 친구가 오늘… 죽어서 내게 돌아와. 나는 그 친구를 땅에 묻으면서 생각해.”

“내일은 또 누가 죽게 될까. 나는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전생에서도, 전장의 참상을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죽어야 할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또, 이 나라에 끝내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주인공인 아빠에게 다시 칼을 쥐게 했지만.

그것이 대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애써 나를 다독였지만.

‘나는 정말 불효녀야.’

이토록 괴로워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슬펐다.

“아빠는 무서워.”

“너를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제야, 아빠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은 아주아주 끔찍하다.

괴수들을 죽이는, 합당한 명분이 있는 전쟁도 이처럼 많은 희생과 괴로움이 따르는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침략 전쟁은 얼마나 하기 싫겠어.’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서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훌쩍였다.

“공주야?”

내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아빠가 놀란 눈으로 달려왔다.

“뭐야! 우리 공주, 왜 그래? 유령 꿈 꿨어?”

“아, 아니…. 아빠 친구들 때문에 슬퍼하는 거 같아서….”

“…….”

“아빠, 미안해….”

아빠는 멍하니 무릎 꿇고 앉아 나를 바라봤다.

“내가 괜히, 괜히 제도로 돌아오자구 해서, 그래서… 그래서 아빠 이렇게….”

“공주야.”

힘없이 웃은 아빠가 나를 안았다.

“아니야. 아빠는 후회 안 해. 우리 공주가, 공주 친구들…. 체시어랑, 쌍둥이랑…. 또 고모랑 할아버지랑 삼촌들도, 다 같이 행복하게 지내면서 기뻐하니까.”

“…….”

“그리고 우리 공주 앞으로도 행복하고 씩씩하게 지내려면 아빠 여기에서 사업해야 해. 아빠는 돌아온 거 좋아. 정말 좋아. 아니.”

아빠는 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쳐 주며 웃었다.

“공주랑 같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을 거야.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

“에이, 그만 울고. 대답해야지?”

“…으, 으응. 알았어.”

아빠의 위로에도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 울었고, 아빠는 그런 나를 한참 달랬다.

툭, 투둑, 툭.

밖에서는,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하늘도 슬퍼하는 것 같았다.

* * *

황실, 추모관.

수많은 관이 놓여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하나같이 색을 잃은 검은 옷차림으로, 죽은 이들을 위해 묵념하며 슬픔을 삼켰다.

“흐윽….”

에녹은 오열하는 황제, 니콜라스의 등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는 누구보다 슬퍼했다.

수백 개의 관에 하나하나 헌화하며 눈물을 흘렸다.

역겨운, 거짓 눈물을….

“야, 야.”

옆에 서 있던 악시온이 소스라치며 조용히 속삭였다.

돌아보니 당황한 얼굴.

“뭔데, 이 살기?”

“…….”

에녹은 그제야 자신이 분노를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손을 펴니, 손바닥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꽉 쥔 주먹 때문에 손톱이 파고든 탓이다.

“…악시온.”

“뭐.”

에녹은 그를 불러놓고, 말없이 다시 황제의 등을 바라보았다.

악하고, 한없이 강한 자.

그는 성수들을 이용해 이번 사태를 치밀하게 꾸렸다.

제도 한복판에도 성수들을 불러내 직접 위험을 막아내며, 병력을 비워 술렁일 뻔했던 민심을 가라앉혔고….

전장을 이탈한 사령관 에녹에게, 외려 소년병과 옥타바들을 구해 낸 공을 치하했다.

황제는 이번 사태로 잃은 것이 하나 없었다.

뜻대로, 에녹에게만.

언제든 딸을 쥐고 흔들 수 있음을 똑똑히 각인시켜주었을 뿐.

“죽일, 생각이다.”

에녹이 읊조렸다.

그 말에 악시온이 흠칫했다.

그리고는 살며시 제 목을 감싸 쥐며 말했다.

“…이유나 알고 죽자.”

“…….”

에녹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 말고.”

그가 어딘가를 턱짓했다.

추모관을 나서는 황제의 뒷모습.

“오.”

그곳을 가만 바라보던 악시온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내 상관이 이번엔 진짜로 미쳤나 보군.”

“성공하면 살고, 실패하면 죽는다.”

“…….”

목소리가 진지했다.

그제야 심각함을 인지한 악시온이 마른 입술을 훑으며 속삭였다.

“어, 알았으니까. 계속 주어랑 목적어는 빼고 말해.”

“동참하지 않으면 산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

“강요 안 해.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그래. 네가 무슨 말 하는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너무 충동적이야. 생각을 좀 더….”

“아니.”

에녹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무조건, 죽여야 해.”

그에게는 고민할 틈도, 선택권도 없었다.

황제는 프리메라다.

딸, 리리스도 프리메라다.

프리메라 사이에는 힘의 섭리가 있다. 너무나도 확실한.

그렇기에.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하나뿐인 딸이.

리리스가.

에녹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가.

“하아, 이런 미친놈.”

단호한 에녹의 눈빛을 보며 혀를 쯧쯧 찬 악시온이, 못 들은 척 그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는 관 앞에서 헌화했다.

에녹은 그런 악시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욕심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결국, 홀로 검을 쥐어야 할 최후를 상상하며….

그렇게 싸워야 한다.

“후.”

헌화를 마친 악시온이 에녹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파빌리온 제국 기사단 철칙 제1조 1항.”

“…….”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지 않는다.”

에녹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복하면 죽음뿐.”

슬쩍 고개를 기울여 에녹과 눈을 맞춘 악시온이 피식 웃었다.

“어쩌겠냐. 상관이 말씀하시는데.”

“…….”

“까라면 까야지.”

그 말을 남겨 둔 채, 악시온이 먼저 추모관을 나섰다.

“하.”

에녹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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