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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14)화 (115/261)

오스카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탈영까지 감행하게 만든, 소중한 자식.

아마 에녹 루빈슈타인은, 남들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의 사랑으로 그 딸을 저만큼 키워냈을 것이다.

‘정말, 미친놈….’

황제는 포기한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에녹의 목줄을 만들고 있었을 뿐.

“저쪽은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루덴도르프 후작 부인일세. 아이의 친모지.”

“…….”

오스카는 사색이 된 셀레나를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셀레나 루덴도르프.

그녀는 상당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창일 현역의 나이에 양성소 연구원이 되었다.

어린 아들의 병역까지 면제받았다.

전례 없는 황제의 특혜.

이유가 뭘까. 모두 의아해했다.

그리고, 이 순간.

‘저 여자는 알고 있었구나. 에녹 루빈슈타인이 어디에 있는지.’

오스카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에녹의 위치를 발설하는 대가로 얻어 낸, 자신과 아들의 안위였다.

“폐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셀레나는 파래진 입술로 말했다.

그녀는 왜인지 오스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중요한 얘긴가?”

황제는 눈치채고 오스카를 내보냈다.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오스카는 나가면서 눈이 마주친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이 복잡하게 되었네.’

황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

딸이 인질이 되었으니, 에녹 루빈슈타인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칼을 쥐게 될 것이다.

듣기만 했으나, 대단한 자라 했다.

그만 돌아온다면, 오스카가 비협조적이더라도….

“그대의 도움 없이도 전쟁은 예정대로 진행될 걸세.”

“젠장.”

피바람이 불 것이다.

한참 기다리던 오스카는 황제의 집무실을 나온 셀레나를 마주쳤다.

들어왔을 때와 달리, 아이 없이 혼자였다.

운 모양인지 그녀의 눈이 붉었다.

“비겁하게.”

오스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남편이랑 애 팔아넘겨 놓고 지금까지 두 다리 쭉 뻗고 잘 잤어요? 뭘 잘했다고 질질 짜, 짜긴?”

셀레나는 왜인지 병적으로 떨고 있었다.

“알아도 모른 척, 조용히 있으면 되지. 내 목숨만 인간 목숨이고 다른 목숨은 개미 목숨인가?”

“…….”

“당신이 뭔 짓 한 줄이나 알아요? 이제 당신 때문에 수백 수천이 죽어 나가게 생겼다고.”

비아냥거리는 오스카에게 대꾸도 못 하고, 셀레나는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진짜 이기적인 여자네.”

셀레나의 뒷모습을 보며 오스카가 중얼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셀레나가 곧 불어닥칠 피바람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죄책감을 느낄 거였으면 딸자식 판 그때 느꼈어야지. 왜 이제 와서 새삼?’

그리고 다시 황제를 마주한 순간.

오스카는 어째서인지 혼란해하는 황제의 얼굴과 그에게 안긴 아이를 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몸이 본능적으로 감지한 위험.

“…이야기는 아까 다 끝났던 것 같은데. 더 할 말 있으십니까.”

“그래, 마탑주.”

황제는 고개를 까닥였다.

동시에 집무실 안의 공기가 불안하게 뒤틀렸다.

누구도 나갈 수 없고, 들어올 수 없고, 엿들을 수 없다.

프리메라의 힘으로 일순 봉쇄된 공간.

“뭡니까? 가둬 놓고 패시게요? 그래 봤자….”

“그대의 생각은 안 바뀌겠지.”

“예. 잘 아시면서 이건 무슨.”

황제는 대꾸하지 않고, 제 품에서 떨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다시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했지?”

“…….”

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오스카를 쳐다보았다.

“아.”

동시에,

심장 쪽을 꽉 조이는 강한 힘.

그것이 바로, 오스카에게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걸린 순간이었다.

* * *

“아, X발!”

“깜짝악!”

잠든 오스카에게 담요를 덮어 주던 로벨이 화들짝 놀랐다.

“너 뭐야!!!”

“뭐, 뭐긴요! 추우실까 봐 담요 덮어 드리려고 했죠!”

“하아.”

오스카가 식은땀이 흥건한 이마를 훔쳐냈다.

“또 악몽 꾸셨어요?”

“어. 아아, X같네, 진짜.”

“에휴.”

꿈에서 느낀 분노가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오스카를 괴롭혔다.

셀레나의 뒷모습….

그녀가 그때 느끼고 있던 그 새삼스러운 자책은, 리리스 때문이었다.

황제의 손에 넘어간 프리메라가 어떤 꼴이 될지 예상했을 테니까.

‘그냥 죽여 버릴까?’

그러고 싶어도 이미 모두 사라진 시간이 되었으므로, 그녀를 탓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내 기분이 X같은 건 어쩌라고?’

전부 기억하고 분노하는 건 오스카뿐.

황제는 리리스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던 셀레나를 죽이지도, 세뇌하지도 않았다.

명분 없이 고위 능력자를 죽이면 황제도 곤란해진다.

또, 그녀를 세뇌하자니 생명력이 꽤나 들어 아까웠을 것이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셀레나를 잘 알고 있던 황제는, 그녀를 그저 말 몇 마디로 복종하게 했다.

‘그 여자만 빨리 마음을 고쳐먹었어도….’

오스카가 절대 셀레나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자신처럼 프리메라의 힘에 강제당하지 않았으면서도.

셀레나는, 그 오랜 비극 속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이튿날, 황실.

처음 황제의 집무실에 와 본 나는, 호화로움에 기함했다.

‘우리 집은 검소했네….’

업무 보는 방이 이렇게 화려할 필요 있을까?

문고리부터 벽, 책상, 장식품까지 휘황찬란한 금과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게다가 한쪽 벽에 거대하게 걸린 대륙 지도….

‘정복왕’ 타이틀을 위해 뭐든 하는 황제를 알고 있었지만, 그걸 보니 그가 정말 미쳤다는 게 확 와닿았다.

심지어.

‘대체 저 옆에 군인들 영정은 왜 좌르륵 걸어놓은 거야…?’

전사자들의 초상화까지 걸려있다.

내 옆에 앉은 아빠가 그쪽으로 애써 눈을 돌리지 않으려는 게 보였다.

매번 황제를 알현할 때마다 집무실에 올 아빠.

아빠에게 여긴,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겠지.

“안녕하세요….”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일어나, 수줍게 웃으며 허리까지 숙여 나와 아빠에게 인사했다.

황제의 금발과 녹안을 꼭 닮은 아이.

프란츠 폰 파빌리온.

그는 13황자이자, 곧 황태자가 될 예정이다.

“안녕하세요!”

나도 호다닥 일어나 그와 똑같은 자세로 인사했다.

“헤헤.”

나를 보며 배시시 웃은 프란츠는, 곧 수줍은지 옆에 앉은 황제의 품에 안겼다.

황제가 허허 웃었다.

“녀석. 공녀가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

입이 귀까지 찢어진 황제와 달리 아빠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표정 관리 좀 하지….

“인사도 했으니 슬슬 출발해 볼까?”

황제가 프란츠를 안고 일어났다.

아빠가 멈칫했다.

“…어디를 가십니까?”

“아, 능력자 양성소에 가 봐야지.”

“예?”

순간, 아빠가 굳었고 나도 놀랐다.

양성소라고?

“왜? 아이 계급을 확인해 봐야 하니, 가야지.”

“굳이 확인하실 필요 있습니까? 프란츠 전하께서 능력을 어찌 쓰시는지 보면 다 아실 텐데요.”

“뭐, 그야 그렇지만, 관례라는 게 있잖나.”

황제는 웃으며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프리메라가 안 나와 다들 얼마나 불안해했나?”

“…….”

“오늘 굳이 그대를 부른 이유도 그래서네. 프리메라가 탄생하는 이 영광의 순간을, 함께 지켜보면 좋잖아?”

그때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능력자 양성소….

그곳에는 계급을 확인할 수 있는 마도구가 있다.

나는 떨리는 손을 감췄다.

‘태연하게 굴자. 여기서 표정 관리 못 하면 끝이야.’

나는 아빠의 팔을 잡고 웃었다.

“우리도 가자, 아빠! 오랜만에 선생님들도 보구!”

“…….”

왜인지 아빠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러나 이내 웃고는, 나를 안고 몸을 일으켰다.

* * *

‘와, 근데 엄마는 생각 못 했다.’

제국 능력자 양성소.

마나포말 룸.

13황자, 프란츠는 계급 측정 중이었다.

양성소 연구원들이 전부 참관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엄마도 있었다.

나는 황제와 얘기하는 아빠와, 멀리 선 엄마를 번갈아 살폈다.

둘은 눈도 안 마주쳤다….

누가 보면 아는 사이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 위르겐 사태 때 공녀의 활약이 대단했다던데.”

황제가 인자한 웃음과 함께 나를 바라보았다.

흠칫.

‘설마 의심하려나?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쩔 수 없었는걸.’

위르겐에서, 수백 명의 옥타바들 앞에서 A급 실드를 썼었다.

A급 방어 마법식은 일곱 살 꼬마 머리로는 외우기 힘들다.

‘그치만, 외워 놨으니까 괜찮아.’

나는 긴장한 걸 숨기고 칭찬받는 게 좋은 아이처럼 웃었다.

“공녀가 아니었으면 옥타바들이 전원 생존하기는 힘들었겠지. 공녀의 전공은 내 잊지 않고 있다가, 나이가 차면 꼭 포상하겠다.”

“감사합니다!”

황제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프란츠의 계급이 측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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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미보유

비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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