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야?
짐승 같은 속도로 도서관 로비를 가로지르며 달려가는 아빠!
아빠는 지금 반출 불가 도서를 훔쳐 달아나고 있었다….
“아빠! 이, 이거….”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했다.
“이거 도둑질이야!”
눈썹 휘날리게 달리던 아빠는 역시 마음 쓰였는지, 자기도 모르게 한 행동에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해줬다.
“그치만 최고야!”
“맞아! 벌금 좀 내지, 뭐!”
뒤에서 따라붙는 오스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라고! 이 미친 인간아!”
나는 아빠의 옆구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기도했다.
‘주님, 주인공이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그 누가 아빠를 막을 텐가.
순식간에 건물을 빠져나온 아빠는 타이밍 좋게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잽싸게 올라탔다.
그리고는 마부 아저씨 쪽에 달린 창을 열고 말했다.
목적지는 워프 게이트 있는 곳.
“얼른 갑시다! 신전으로! 잡히면 안 돼!”
“예? 추격전…입니까?”
순간, 나는 마부 아저씨의 눈이 번뜩이는 걸 발견했다.
“맞아여!”
나는 그의 질주 본능을 부추겼다.
“그렇다면 꽉 잡으십시오! 이랴!”
마부 아저씨가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가 출발했고, 나는 창 너머로 뒤늦게 따라온 오스카의 사색이 된 얼굴을 보았다.
포기 안 하고 한참 따라오던 그는 이내 입 모양으로 욕을 내뱉었다.
낭패라는 듯 멈춘 오스카가 점점 작게 보일 즈음에야 나는 안심하고 바로 앉았다.
“와아.”
옆을 보니, 탈영 다음으로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른 제임스 씨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달려들어 뺨에 마구 뽀뽀했다.
“아빠 최고! 완전 멋있어!”
“…공주야, 멋있으면 안 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도둑질은 나쁜 짓이야. 공주는 하면 안 돼?”
아빠는 나를 안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이건 신도 봐줄걸.
나는 조용히 주인공의 키워드를 추가했다.
#정의로운 도둑(←New!)
* * *
“젠장!”
눈앞에서 책 도둑을 놓친 오스카 마뉘엘은 좌절했다.
급히 도서관으로 돌아가 어떤 책을 훔쳐 갔나 살펴보니 가관이었다.
에녹 루빈슈타인….
이 미친 인간….
머리는 또 어찌나 비상하신지.
이 많은 책 중, 중요한 내용이 있는 것들만 아주 쏙쏙 골라서 훔쳐 가셨다.
“아, 나 진짜 돌겠네.”
불용 마법, 그중 ‘회귀’의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나온 책은 없다.
다만 불용 마법의 종류, 연구 사례, 시도한 이들의 행적은 기록되어 있기에 짐작할 수는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녹 루빈슈타인이라면 책 몇 권 읽고 바로 유추할 거다.
“빨리 없앨걸….”
오스카가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에녹이 마탑에 찾아온 날 어째 느낌이 싸해서, 관련 서적들을 다 폐기하고 다녔건만.
기어코 사달이 났다.
‘아니야. 괜찮아. 알아내 봤자 뭐, 지가 어쩔 거야?’
오스카는 소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켰다.
“저는 꼭, 끝까지 살아남고 싶어요. 아니, 살아남을 거예요. 절대 안 죽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거예요.”
“그때… 옆에 스승님도 있을 거죠?”
“없어도 제가 있게 할게요.”
정확히는 아이의 그 말이 마음에 걸려서 비밀을 숨기려 했다.
회귀했다는 사실은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 대가로 무엇을 바쳤는지까지는 알지 못하도록….
“괜찮아, 괜찮아.”
오스카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프리메라의 권능이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무언가가 가능하다면 주저 없이 제 생명력을 들이부을 아이.
그러니까 아이 혼자 알아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 아빠가 아는 쪽이 나쁘지 않겠지.
‘자기 딸은 끔찍이 아끼는 인간이니까, 괜찮을 거야.’
에녹은 아이가 허튼짓하도록 두고 볼 인간이 아니니까.
아무리 오스카가 안타까워도 딸 수명 깎는 멍청한 짓은 안 할 거다.
제발, 그래야 했다.
바보짓은 부녀가 의미 없이 서로를 위해 죽으려 했던 그때로 족하니까.
‘널 어떻게 다시 살렸는데….’
리리스를 떠올리며 오스카는 초조하게 입술을 물었다.
* * *
아이의 죽음 이후.
에녹이 찾아왔을 때.
이미 오스카는 몇 번이고 자신의 목숨으로 아이를 부활시키려다 실패한 상태였다.
부활에 필요한 제물은 같은 능력자의 목숨.
그러나 단순한 목숨 대 목숨으로 이루어지는 등가교환이 아니다.
능력치가 낮은 능력자를 제물로 그보다 높은 능력자를 부활시킬 수는 없었다.
프리메라는 능력치를 규정할 수 없는 존재.
하지만 일반적인 능력자로 치환한다면, 아이는 오스카의 능력치를 한참 웃도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자라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에녹을 본 순간.
“그 애를 위해서 대신 죽을 수도 있어?”
“얼마든지.”
욕망에 휩싸인 오스카는 망설임 없이 아이 아빠의 목숨으로 아이를 살려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열일곱 살, 제 나이로 다시 눈을 뜬 아이.
그간 능력을 쓰며 소모했던 생명력도 전부 되돌려받았기에 겉으로는 열 살이 안 되어 보였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확실한 의사소통이 되는 채로 멀쩡하게 되살아난 아이….
오스카는 감격에 전율했다.
이제는 그토록 궁금해했던 아이의 이름도 불러줄 수가 있었다.
“…리리스.”
그러나 아이가 맨 처음 찾은 것은 아빠였다.
“아빠는요?”
내내 곁을 지켰던 오스카에 대한 기억은 자아를 빼앗겼던 때라서인지 드문드문했다.
아이가 선명하게 가진 기억은 딱 하나.
자신을 사랑으로 7년간 기른 에녹과의 추억뿐이었다.
“아빠, 아빠는….”
아이는 오열했다.
울고 소리치며 애타게, 아빠만 찾았다.
“괜찮아, 울지 마. 응? 아빠는 너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라고 했어. 그러면 아빠도 기쁠 거야. 울지 마. 그리고, 내가…. 내가 있잖아.”
“…….”
빛을 잃은 아이의 눈은 텅 비어있었다.
아무리 달래보고 애원해 봐도….
눈이 마주치질 않았다.
아이는 꼭 살아 움직이기만 하는 인형 같았다.
텅 비어버린 아이는 멍하니 자기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안 돼!”
오스카는 놀라 아이의 손을 붙들었다.
능력을 쓸 때마다 소모하는 생명력을 알려주는 팔찌.
되살아난 아이에게 오스카가 처음으로 줬던 선물이다.
“하, 하지 마….”
오스카는, 아이가 제 아버지를 다시 살리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아빠….”
“기, 기다려. 잠깐, 제발.”
“…….”
“너, 너 바보야? 이러면, 이러면 아무 의미 없어. 아빠 살려 봤자 넌… 금방 다시 죽게 될 거야.”
“괜찮아요.”
“제발!!!”
오스카는 아이를 다그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비로소 평화로워진 세계.
되살아난 아이.
에녹의 목숨 하나로 전부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알았어. 아빠, 아빠 다시 만나게 해 줄게. 그러니까 기다려. 이런 짓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에녹 같은 이를 살리려면 아이는 제 수명을 거의 들이부어야 했다.
오스카는 결국, 아이에게 아빠를 돌려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세 가지의 불용 마법.
부활, 창조, 회귀.
그중 유일한 방법이 회귀였다.
에녹이 이 땅에 비로소 이룩한 평화, 행복.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되겠지만….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시전의 대가와 그 결과가 명백히 기록되어 남아있는 부활, 창조와 달리 회귀 마법에는 정보가 없었다.
성공한 자도, 시도한 자도 없다.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록할 수 없었던 거겠지.’
회귀 마법식은 분명 존재했다. 한데 시전한 이가 없었을 리 있나.
회귀에 성공했어도 그 결과를 글로, 말로 남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금제다.
또한, 죽은 것도 아닌데 돌연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선조들이 꽤 있었다.
그것은 대가다.
사라진 이들이 아마, 회귀한 자들이었을 테지.
오스카는 깨달았다.
시간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바쳐야 함과,
돌린다고 하더라도 강한 금제에 무엇 하나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여기 들어가면 돼요? 그럼 아빠 볼 수 있어요?”
수천 개의 마법식으로 만들어 낸 회귀의 마법진.
마냥 들뜬 얼굴로 그 안에 서는 아이가 참 야속해 보였다.
“아니. 거기 들어가는 건 나야.”
“……?”
아이는 마법의 원리를 전혀 모르면서도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다.
오스카도 제 아빠처럼 사라질까 무서웠던 거겠지.
걱정하는 표정….
그것만으로도 오스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잘 들어. 이제 아빠 만나게 해 줄 테니까.”
곧 사라질 시간을 전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시전자인 오스카뿐.
하나 금제로 인해 개입에 한계가 있다. 시간을 돌려 봤자 비극을 반복하는 꼴이었다.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러나 아이는 프리메라다.
“그냥, 머릿속으로 바라기만 하면 돼. 모든 걸 기억하게 해 달라고.”
오스카는 부탁했다.
“네가 모르던 바깥의 시간들, 전부. 네 아빠가 너를 위해 뭘 했는지, 네가 갇혀 있는 동안 밖에서는 어떤 시간이 흘렀는지, 그걸 전부.”
“…….”
“다 알아야 해. 기억해야 해. 그래야만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
“…….”
“모든 걸 기억하는, 너의 모습을 상상해 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는 마지막으로, 떨고 있는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번 생에서 괴로웠던 기억은 전부 잊어.”
마지막 인사.
아이는 눈물 고인 눈으로 물었다.
“당신도… 있어요?”
“…….”
“아빠처럼 사라지지 않을 거죠?”
“그래.”
오스카는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만나러 갈게.”
* * *
“일곱 살 때 저걸 푸셨다구요?”
“그래.”
“천재시다아.”
“맞아. 너는 둔재고.”
오스카는 다시 만난 아이와의 첫 대화를 떠올리며 큭큭 웃었다.
밝고 예쁘게 자란 아이.
아빠 곁에서 행복해 보였다.
“저 문제 다시 풀어 볼게요.”
“네가?”
“네. 제가 맞히면, 아빠랑 할아버지에게 예의 없이 말한 걸 사과해 주세요.”
전부 기억하는 게 맞나.
무사히 제도로 돌아온 걸 보면 맞을 텐데.
어째선지 제 얼굴을 보고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는 아이가 의아해 일부러 시험해 보았다.
“마탑주님은 열일곱 살이에요.”
어려운 문제를 술술 풀던 아이.
분명 모든 걸 기억하는 듯했다.
그런데 왜일까.
왜 나만 잊어버린 거지?
“아.”
생각하던 오스카는 문득, 폐기하려 책장에서 꺼낸 책들을 와르르 떨어뜨렸다.
“와, 설마.”
“이번 생에서 괴로웠던 기억은 전부 잊어.”
그 마지막 인사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괴로웠던 기억.
아빠와 헤어지고, 엄마 손을 잡은 채 황제에게 넘겨지고, 탑에 갇히고, 능력을 착취당하고….
아이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린 거다.
자신의 부탁 때문에.
“야! 근데 나는 아니지!”
어이없어진 오스카가 소리쳤다.
괴로운 기억에 나도 포함이야?
허탈하게 웃으며, 오스카는 떨어진 책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했다.
‘뭐, 그런데 나쁘지 않을지도.’
만약 탑에 갇힌 그 십 년을 기억한다면.
아이에게 자신은 조금 더 소중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헤어지기가 더 힘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어쩌면 잘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스카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