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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31)화 (132/261)

어째선지 성이 난 오스카의 손에 산산이 부서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돌덩이….

‘성격 진짜 살벌하네.’

…였던 것을 일별한 에녹이, 떨떠름하게 오스카의 뒤를 따랐다.

미로처럼 생긴 유적.

하지만 갈림길이랄 게 없었기에, 둘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이내 멈춰 선 곳은 막다른 공간.

그러나 둘의 예리한 기감은 묘한 기운을 곧바로 느꼈다.

성물이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이 막힌 벽 너머에 있을 터.

‘젠장, 사람 귀찮게 하네.’

오스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러면 벽 너머로 이동 마법을 한 번 더 시전해야 할 듯한데….

사방이 돌로 된 벽이라 마법진을 그리기 마땅찮았다.

‘대체 그 성물이 뭐길래 이렇게 꽁꽁 싸 놨어? 별 거 아니면 확 다 무너뜨리고 가 버릴까 보다.’

생각하며, 오스카가 검지를 이로 물어뜯어 상처를 냈다.

피로 마법진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비켜, 마탑주.”

“……?”

그러나 에녹이 오스카를 제 뒤로 보내더니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한 번 크게 휘둘렀다.

쉬익―!

푸른 마나가 낡은 돌벽 위에 대각선을 그리며 충돌하자,

콰르르르―.

“아니, 미친.”

오스카가 입을 떡 벌렸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부서진 잔재에서 먼지와 연기가 너울처럼 피어올랐다.

“저기요! 이, 쿨럭, 무식한 행동 대체 뭔데?!”

오스카가 콜록거리며 손으로 뿌연 시야를 헤집었다.

“이러다 천장까지 아예 다 무너져 앉으면 어쩌려고 이래요? 성물이랑 같이 순장되시게?”

“이 정도에 무너질 유적이었으면 진작 무너졌어.”

…사실 그건 맞다.

유적이 숨겨진 채 몇천 년 동안 오롯이 유지되었던 이유는 강력한 보존 마법 때문이니까.

힘만 쓰는 줄 알았더니 감도 꽤 나쁘지 않네.

“와, 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스카가 무너진 벽 잔재를 훌쩍 밟고 넘어가는 에녹의 뒷모습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방식이 영 얌전하질 않잖아.

“이건가.”

에녹이 눈을 빛냈다.

허리 높이까지 솟은 원형 제단.

그 위에 제 주먹 크기의 돌덩이가 놓여 있었다.

‘심장?’

자세히 살펴보니, 평범한 돌덩이가 아니다. 마치 심장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생긴….

에녹이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섬찟한 고통과 함께 결이 다른 힘이 크게 충돌했다.

강력한 저항.

결계가 걸려 있었다.

“젠장.”

결계 마법.

이는 마법을 시전하는 자가 마법식의 암호를 직접 만들기에, 시전한 당사자가 아니면 해제할 수 없는 종류다.

시전자는 이미 오래전 죽어버렸을 고대 신관일 테고.

하지만.

‘상관없어. 나 아니면 못 했겠군.’

다행인 것은, 에녹 정도의 능력자라면 엄청난 양의 마나를 주입하여 억지로라도 깰 수 있다는 점.

무조건 뚫어야 한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에녹은 검을 쥐어야 할 오른손 대신에 왼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손이 타는 고통이 끔찍하다.

하지만 에녹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더 힘을 가했다.

조금만, 더.

“으악! 이 미친 인간아!”

그때.

뒤늦게 달려온 오스카가 에녹의 팔을 휙 잡아당겼다.

“와. 세상에. 와. 진짜.”

드물게 놀란 오스카의 눈은 빠질 것처럼 커져 있었다.

“진짜 미쳤어요? 여기에, 여기에 손을 집어넣는다고? 미친 거 아냐?”

“결계가 있어. 뚫어야 해.”

태연한 대답에 오스카가 침을 꿀꺽 삼켰다.

“…팔 하나 날려 먹고 가시게?”

에녹이라면 억지로 깰 수야 있겠지만, 당연히 손은 성하기 힘들다.

그새 반쯤 흉측하게 그을려버린 손을 보며 오스카는 말문이 막혀 눈만 껌뻑거렸다.

“그래…. 진짜네…. 진짜로 팔 한쪽 내놓고 가져갈 생각이었네…. 미친 거야 알았지만, 불구로 평생 살 다짐을 이렇게 1초 만에 해 버리네….”

울컥 짜증이 치민다.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애 대신 죽으라고 하면 고민도 없이 죽겠어요?”

이전에도 지금도 한결같은 점이.

“그건 당신도.”

비아냥대는 오스카를 묘한 눈으로 지켜보던 에녹이 말했다.

“마찬가지잖아.”

“…….”

오스카가 날카로워진 눈만 들어 에녹을 보았다.

둘의 시선이 엉켰다.

* * *

‘헉!’

번쩍, 눈을 뜬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목을 더듬었다.

마지막 순간, 체시어의 검에 아마 목이 동강 났을 테니.

‘하아, 제대로 붙어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 크기도 얼른 확인해 봤다.

돌아왔다. 내 몸으로.

‘그런데 여긴 어디지?’

발치에 널린 수많은 책.

어지러운 주변.

둘러보니 처음 와 본 곳이었지만, 어디인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오스카가 보였기 때문이다.

‘마탑인가? 스승님 방?’

어째서인지 좌절한 표정으로 무릎 꿇은 채 엎드린 오스카.

“왜 안 되는 거야, 왜….”

그의 아래에는 복잡한 마법식들이 하얀색 분필로 어지러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이건, 나의 죽음 이후.

아마도 오스카는 나를 되살리려고 회귀 마법을 준비하는 중일 테다.

‘꿈 한번 더럽게 오래 꾼다, 싶었는데…. 이건 나쁘지 않아.’

나는 폴딱 일어났다.

오스카가 회귀 마법을 쓴 사실은 알지만, 대가로 그가 무얼 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하지만 이 꿈으로 알 수 있을 거다.

“기다려 봐요, 스승님. 나 똑똑하니깐 꼭 알아낼게요.”

대놓고 펼쳐진 책들.

오스카의 글씨가 가득한 종이.

분명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아.”

그러나 나는 뭔가 알아볼 새도 없이 좌절했다.

부활의 조건

불용 마법, 부활, 되살리기.

대상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목숨과 목숨의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지는…

오스카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마법.

회귀가 아닌 부활이었다.

‘대체….’

나는 멍하니 오스카를 바라보았다.

회귀는 몰라도, 부활의 조건은 아주 확실히 알고 있다.

목숨과 목숨의 등가교환.

‘처음부터 회귀 마법을 시도했던 게 아니라, 부활 마법을…. 그것도 자기 목숨으로….’

그러나 왜인지 실패했던 모양이다.

진실을 깨닫자 말문이 막혔다.

“하아.”

오스카는 수십 번 덧그린 마법진 위에 허탈하게 누웠다.

팔로 자기 눈을 가린 채.

악문 입술이 보였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

나는 찔끔 흐르는 눈물을 닦고 가만 그의 옆에 다가가 같이 누웠다.

“스승님….”

“…….”

“차라리 실패해서 다행이에요.”

이게 성공했으면 정말 끔찍했겠지.

나는 오스카의 목숨으로 부활해 살아갔을 테니까.

바보처럼 그런 그를 기억하지도 못했을 것 같아서, 나는 안도했다.

“진짜 다행이야….”

이윽고 시야가 빠르게 변화하는 바람에,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계속 부활 마법을 시도하려는지 분주한 오스카의 모습이 보였고, 이내.

“아빠!”

나는 마주 앉은 아빠와 오스카를 볼 수 있었다.

‘아, 세상에! 아빠 무사하구나!’

내가 죽고 난 이후의 세상은 어땠을까, 상상할 때마다 가장 걱정됐던 건 아빠였다.

“아빠는 나 죽고 나서 어떻게 살 거야?”

“뭘 어떻게 살아. 아빠는 못 살아.”

“공주 보고 싶으니까 바로 따라갈 거야. 아빠는 공주 없이 절대 못 살아.”

내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그 말.

정말로 아빠가 나쁜 생각을 하면 어쩌지, 계속 걱정했는데.

‘진짜 다행이야.’

나는 얼른 달려가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꿈을 오래 꿔서인지 오랜만에 보는 아빠 얼굴에 울컥.

“아니, 아빠. 근데 얼굴이 왜 이래….”

반의반의반의반쪽이 된 얼굴.

눈빛에는 생기도 없고.

‘속상해 죽겠어.’

만져지지도 않는 아빠를 향해 손을 뻗는데.

“살려 줘.”

난데없는 말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딸을….”

이게 무슨 소리야.

“살리고 싶다고? 프리메라를, 다시?”

나는 오스카를 돌아봤다.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시전한 부활 마법의 연이은 실패.

그 때문인지 반쯤 죽어있던 오스카의 눈빛이 번뜩이는 걸 본 순간.

“스승님? 잠깐만요.”

내 심장이 덜컥 떨어졌다.

설마. 설마. 아니지?

어째선지 귀가 먹먹해져서 둘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 아빠…. 그, 그러지 마.”

왜. 왜 모르지?

아빠의 목숨으로 살아나 봤자,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 텐데.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 버린다면, 난 고민도 없이 다시 아빠를 되살릴 것 같아.

그러니까 정말, 정말로 쓸데없는 짓이야. 정말로.

“그 애를 위해서 대신 죽을 수도 있어?”

오스카가 물었고.

“안 돼요!”

나는 의미 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아빠의 앞에서 막 소리쳤다.

“아빠! 싫어! 싫어! 하지 마!”

“얼마든지.”

하지만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나온 아빠의 대답.

“아, 안 돼….”

다리에 힘이 풀려서, 나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 *

짧은 시간 말없이 묘하게 엉켜 있던 에녹과 오스카, 둘의 시선.

오스카는 조소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뭐, 그래. 이 눈치 빠른 남자가 모를 리 없지.

리리스 하나 때문에 다시 이 거지 같은 시간을 반복하는 걸 감수하고 회귀한 사실이든 뭐든, 다.

“당신이랑 입씨름할 시간 없어.”

이내 팽팽한 분위기를 에녹이 먼저 끊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깨. 나만 할 수 있어.”

다시 제단 위로 왼손을 집어넣으려는 에녹을 오스카가 붙잡았다.

“아니, 이봐요. 이렇게 무식하게 굴 거면 애초에 왜 나랑 같이 왔습니까?”

묘한 발언에 에녹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말이지?

설마 또?

“설마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당신 양성소 안 나왔어요? 결계 마법 해제하는 법 안 배우셨나?”

“마법식 반대로 그리면 되지.”

“…? 잘 아네. 그런데?”

“몇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이 그린 마법식을 어떻게 알고 반대로 그려? 무슨 암호로 그렸을지 알고?”

“…….”

“…….”

침묵.

‘아, 맞네. 이 사람은 당연히 모르겠구나.’

어쩐지.

아차 싶었던 오스카가 느릿하게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에녹의 시선을 피했다.

“뭔데.”

말없이 제단으로 다가간 오스카가 미리 상처 냈던 검지로 뭔가 그리기 시작했다.

“설마….”

에녹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동 마법 때처럼, 또 뭔가 혼자만 아는 방법?”

대답이 없었다.

맞는 모양이었다.

마법식 그리는 데 열중하는 오스카의 뒷모습을 보며, 에녹이 물었다.

“혹시 거기 걸린 결계 마법식을 해석하고 있는 건가? 마탑주, 남이 만든 마법식 암호를 알아낼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예리한 에녹의 질문에 오스카는 또 대답이 없었다.

이것도 맞는 모양이었다.

“하.”

“뭐, 뭐. 왜요. 뭐.”

황당하다는 에녹의 코웃음 소리가 들리자 오스카가 마법식을 그리면서 투덜거렸다.

“인성 쓰레기 마탑주가 음침하게 맨날 마탑에만 틀어박혀서 유용한 마법이란 마법은 다 만들어 혼자만 알고 있으니까 재수 없어서 한 대 때려주고 싶어요?”

흠칫한 에녹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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