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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33)화 (134/261)

“…마탑주?”

“아.”

에녹이 멀어지는 오스카를 보며 의아해했다.

“어디 가? 이리 와.”

정신을 차린 오스카가 허둥거리며 에녹의 손에 들린 성물을 가리켰다.

“꾸물대지 말고 빨리 그걸로 애나 깨워 봐요.”

“아아, 어. 그래야지. 그런데….”

에녹이 난처해했다.

“진짜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미치겠네.”

성물을 찾아오긴 했는데 도통 어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살아있는 듯 울컥울컥 박동하는 푸른색의 심장.

대체 이걸 어떻게….

“그런데.”

“응.”

심각하게 리리스를 들여다보던 오스카가 물었다.

“이거 지금 애한테 써도 후회 안 해요?”

“무슨 소리야? 후회라니?”

“구교파 사제.”

…자드키엘.

리리스는 미래에 성열을 앓을 그를 깨울 때, 이 성물이 필요하다 했다.

“그 애도 나중에 성열을 앓을 거 아닙니까? 혼자 못 일어난다며, 그땐 뭐로 깨우게? 그냥 죽게 둘 거예요?”

에녹이 멈칫했다.

리리스가 성열에, 그것도 황제의 능력으로 잠에 빠진 걸 알았을 때.

뒷일은 생각도 않고 곧장 오스카에게로 향했었다.

‘그래. 사제에게도 이 성물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흔들리는 눈으로, 에녹은 성물과 잠든 딸을 바라보았다.

* * *

그 시각.

자드키엘은 신관들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내쫓기는 중이었다.

“대신관님! 저도 원정에 따라가야 합니다! 부디 같이 가게 해 주세요!”

간절히 소리쳤지만, 파빌 신전의 대신관 티모시는 왜인지 파래진 낯빛으로 무시할 뿐이었다.

<하루빨리 온 대륙에 나의 은총을 떨칠 수 있게 하라.

그것이 곧 나의 힘을 강대하게 하며 나의 종들을 더욱이 굽어살피게 하리니.>

대신관, 티모시가 받은 신의 계시.

전쟁을 부추기는 목소리였다.

‘불쌍한 병자들을 살린 신께서 대체 왜 그런 계시를 내리셨지?’

의아했던 자드키엘은 곧, 이유를 깨달았다.

이틀 전.

신전에 봉사 왔던 리리스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제님. 실은 제가 또 신님 꿈을 꿨는데요, 대신관 할아버지가 받은 계시 그거 다 거짓말이래요!”

감히 거짓말로 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기만하다니.

하지만 다행히, 신은 또 리리스를 통해 계시를 내렸고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

자드키엘은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리리스가 시킨 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신관님! 제발!”

“썩 물러가시오, 사제! 성물을 찾는 원정은 아무나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신께서 제게 직접 내리신 계시입니다! 저 말고 누가 가야 한단 말입니까!”

“어서 사제를 내보내라!”

“대신관님!”

자드키엘이 끌려 나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 보던 티모시는 이내 사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늙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이 덜덜 떨며 입가로 올라왔다.

딱, 딱.

연신 손톱을 물어뜯는 표정이 일견 초조했다.

‘이, 이를 어쩌지. 내 거짓 계시를 밝혀내려는 진짜 계시라니…. 이를, 이를 어찌하면 좋나….’

벌벌 떨던 티모시가 곧 채비했다.

거짓 계시가 밝혀지면 아쉬운 것은 황제도 마찬가지.

일을 함께 도모한 황제에게도 이 사태를 알려야 했다.

* * *

꿈을 하도 오랫동안 꾸다 보니 시간 개념이 없어지고 있다.

‘10년 정도 흘렀나?’

나는 오스카의 방 한쪽 구석에 가만 앉아 생각했다.

‘바깥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걸까? 당연히 반나절도 안 지났겠지? 설마 깨고 나면 막… 우주도 개발돼 있고 외계인도 있고 나 냉동 인간 되어있고 그런 거 아니겠지?’

초조해졌다.

그러면 큰일 나는데.

‘에휴, 나쁜 대신관 할배 거짓말도 빨리 밝혀야 한단 말이야.’

전쟁하라는 신의 계시 때문에 잠들기 전 난리가 났던 제도.

황제와 대신관이 짜고 친 거짓말 때문에 아빠는 난처할 거다.

전쟁하면 안 되는데….

‘아냐, 걱정하지 말자. 자드키엘 사제님이 알아서 잘해 주시겠지.’

자드키엘을 보러 신전에 간 날, 이미 손을 써 두었었다.

원작을 또 유용하게 써먹었지.

‘불안해하지 마.’

생각하다 문득 나는, 꿈꾸는 와중에도 아빠 걱정, 사람들 걱정, 전쟁 걱정…, 걱정, 걱정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음, 나 제법 정의로운 꼬마 같다.

과연 주인공 딸이랄까.

“저기요, 신님. 보고 계세여?”

제국민이라면 방에 하나쯤 꼭 두는 프리메라 여신상.

“아직 안 튄 거 맞죠? 꿈도 꾸게 하는 거 보면 말이에요.”

나는 오스카의 책상 위에도 있는 신상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이케 열심이라구여. 원작 다 알려준 것도 저더러 뭔가 해 보라는 거였잖아요. 맞죠?”

신은 하필 내게 능력을 주고 평범한 삶은 빼앗았지만….

사실 그마저도 큰 그림일 테니, 어쨌든 평화를 바라는 존재는 맞는 것 같다.

“제가요, 제가 그래도… 원작도 알고 미래도 알고,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요.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많고.”

나는 처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해 봤다.

“그니까 갈 땐 가더라도…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신님도 좋구, 저도 아빠랑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좀 더 오래 볼 수 있어서 좋구.”

맞지?

“이런 걸 상부상조라구 하져….”

뿌듯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친 순간.

“자, 맘마 먹자.”

문을 열고 들어온 오스카에, 나는 흠칫했다.

‘에휴.’

아빠 목숨으로 되살아난 나.

오스카는 그런 나를 벌써 일주일째 돌보고 있었다.

살아난 나는 다시 아빠를 살리려 했고, 오스카는 그런 나를 위해 회귀 마법을 썼겠지?

그 당연한 짐작은 들어맞았다.

그는 일주일 내내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계속 책상 앞에 매달려 있었다.

회귀 마법에 대해 알아보고 준비하기 위해.

웃긴 점은―

“더 안 먹어? 한 입만 더 먹자.”

종일 오스카의 침대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는 내 식사는, 꼬박꼬박 챙겼다는 것이다.

“배불러요….”

“그러지 말고 딱 한 입만.”

“아빠는 언제 볼 수 있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매일같이 오스카를 재촉했다.

‘진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나 자신이 저렇게 얄밉다니.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래서 아빠만 찾는 건 알겠는데.

“조, 조금만 기다려. 금방이면 돼. 너 나랑 약속했지? 이상한 생각 안 하기로?”

“네….”

“말 안 들으면, 아빠 못 본다? 너 죽고 나서 아빠 살아나 봐야 아무 의미 없다고 했지? 아빠 무사히 만나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

내가 아빠 얘기를 할 때마다 오스카는 창백하게 질려 벌벌 떨었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생명력으로 아빠를 살릴까 봐.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그는 다시 일어나, 수많은 책 속에 파묻혔다.

‘진짜… 못 봐주겠네.’

괴로웠지만, 나는 오스카가 책상 앞에 있을 때면 꼭 옆에 다가가 그가 연구하는 것을 엿봤다.

회귀의 대가.

그게 뭔지, 알아내야 했기 때문에.

‘회귀하는 것까지 보고 나면 꿈에서 깰 수 있겠지? 그 뒤부터는 내가 다 아는 기억이니까.’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오스카의 쉬지 않는 손을 응시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스카는 준비를 마친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써낸 유서 같은 내용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1. 회귀 마법의 시전자만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음.

2. 그러나 시전자는 금제로 인해 미래의 일을 발설할 수 없다.

3. 대가는 목숨이 아닌, 시전자 존재 자체의 소멸.

4. 대가를 내는 시점은 회귀한 날이 다시 돌아올 때.

‘목숨이 아니라고? 존재 자체의 소멸?’

놀라서, 절로 손이 떨려왔다.

만약 오스카가 회귀의 대가로 내건 것이 목숨이었다면, 내 힘으로 그를 부활시키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멸…이 대체 무슨 뜻이야? 아예 사라진다는 거야? 시체도 없이?’

나는, 회귀의 대가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부활보다 크지는 않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회귀는 고작 한 명을 살리는 부활보다 더 값어치 있는 마법이다.

시간을 돌림으로써 수십 수백 명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회귀에 더 큰 대가가 따르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 어떻게 해…. 그럼, 그럼 내 힘으로 어떻게 막지? 막을 수 있긴 한 거야?’

눈앞이 새하얘졌다.

‘아니야. 이러면 안 돼. 정신 차려, 바보야!’

나는 고개를 크게 한 번 흔들어 눈을 부릅뜨고, 꿈속에서도 계속 차고 있던 팔찌를 들여다봤다.

‘소멸하는 존재는 어떻게 살려? 사라지는 걸 막게 하려면, 생명력이 얼마나 필요해?’

생각해 봤지만, 어째선지 팔찌는 먹통이었다.

꿈속이라서일까?

내 능력 밖의 일일 때도 작대기 모양을 띄워 꼬박꼬박 알려 줬던 팔찌인데.

“…이제 됐다.”

그때, 오스카가 펜을 놓았다.

마지막에 쓰인 한 줄.

1789년 9월 4일. 회귀.

나는 재빨리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1789년 9월 4일.

오늘이다.

오스카는 지금, 회귀하려 하고 있었다.

‘이, 이건 10년 후의 미래야. 꿈 밖은 1779년 겨울이니까. 그럼, 그럼 10년 후에는….’

대가를 내는 시점은 회귀한 날이 다시 돌아올 때.

오스카에게 남은 시간.

딱, 10년.

“스, 스승님! 잠깐만요!”

놀라 뻗은 손은, 오스카의 뒤로 그저 허우적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리스! 이리 와 봐. 이제 아빠 보러 가자.”

“우와! 정말요?”

침대에 앉아 무료하게 발을 구르고 있던 나는, 오스카의 말에 활짝 웃었다.

달려온 나를 팔 벌려 안아주며 함께 웃는 오스카.

“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서서,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정말 아빠 보러 가요?”

“그으래. 내가 꼭 아빠 만나게 해 준다고 했잖아.”

“우와아아!”

나는 오스카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얼굴 곳곳에 마구 뽀뽀했다.

“와, 아빠 보여준다니까 뽀뽀도 받아 보네. 그렇게 좋냐?”

“네에!”

오스카는 씨익 웃었다.

매일 인형처럼 시무룩하게 앉아만 있던 나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언제 가요? 지금? 지금?”

“어어, 응.”

오스카는 웃던 입꼬리를 내리고 머뭇거렸다.

“그런데, 잠깐. 조금만….”

“네?”

재촉하는 내 어깨를 잡고 지그시 눈을 맞춘 그는,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게 마지막일 테니까.

내 얼굴을 눈에 담으려는지, 한참.

“리리스….”

아쉬워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자꾸 돌아보는 사람처럼.

“내 부탁도… 하나만, 들어주라.”

“네!”

“어차피 아빠 만나면 이제 계속 볼 건데, 내일….”

“…….”

“내일 갈까?”

“네?”

“딱, 하루만….”

하루만이라도 더 보고 있자.

슬픈 눈으로 내뱉은 부탁이 무슨 뜻인지, 지금의 나는 알아도 저 때의 나는 몰랐다.

바보처럼 그의 마음도 모르는.

“흐, 흐아아앙!”

야속한 순수함.

내일이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오스카가 급히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 장난이야.”

그는 애써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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