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서러운 걸까.
리리스는 목놓아 울었다.
“뭐, 뭔데…. 그만 울어.”
굳어있던 오스카는 겨우 손을 들어 아이의 등을 달래듯 천천히 쓸어내렸다.
“안 아픈데 우리 공주 왜 이렇게 울지? 나쁜 꿈 꿨어?”
“히끅.”
다정하게 걱정하는 아빠 목소리에 힐끔 돌아보더니, 오히려 울음이 더 커진다.
“으아아앙!”
“어이쿠,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우리 공주 서럽다, 서러워. 응?”
힘도 좋게 울어 젖히는 걸 보면 확실히 아픈 데는 없는 모양.
에녹은 오히려 안도했다.
“야….”
여전히 걱정스러운 오스카는 제게 꽉 들러붙은 리리스의 얼굴이라도 살펴보려 했지만.
“시, 싫어요! 으으, 가지, 가지 마. 으허어엉…!”
떼어내려 손에 힘만 주면 놀라서 파고드는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얘가 대체 왜 이래.’
난처해서 에녹을 쳐다보니, 그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
친아빠 멀쩡히 놔두고 영 이상한 그림이지만, 하는 수 없이 오스카가 아이를 안고 달래던 그때였다.
“에그머니나!”
“아가씨익!”
문을 열고 하녀 둘이 들어왔다.
리리스의 전담 하녀인 제티와 쥰.
성열에 걸린 리리스 때문에 눈물 콧물 쏙 뺀 둘의 얼굴도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런.’
에녹은 당황했다.
물그릇이며 수건을 챙겨온 걸 보니 잠든 리리스를 보살피러 온 모양인데….
‘좀 곤란한데.’
흠칫한 오스카와 에녹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어 당연히 뒷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이긴 했지만….
아이 방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지, 누군가 봤다면 난처할 상황이었다.
갑자기 귀족 집 어린 아가씨 방에 뿅 나타난 마탑주라니?
게다가 성열에 든 리리스는 반나절도 안 되어 깨어났고?
‘애가 혼자 깨어났다는 사실도 지금 황제 귀에 들어가선 안 돼.’
재빨리 머리를 굴린 에녹이 하녀들에게 다가갔다.
“놀랐지?”
제티와 쥰은 당황한 얼굴로 이게 웬 상황인지 가늠하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주, 주인님. 아가씨는 괜찮으신 거예요?”
“그보다 저분, 아니, 마탑주님은 여기 왜…? 언제 오신….”
“쉿.”
조용히 하라는 듯 에녹이 입술에 검지를 딱 붙였다.
“나가서 조용히 얘기 좀 할까?”
난처하게 웃는 에녹의 얼굴.
눈치 빠른 두 하녀는 곧바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주.”
에녹이 나가기 전 오스카를 돌아보았다.
“방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할게. 잠깐 공주 좀 봐 줘.”
“아아. 예, 뭐….”
“그리고 나 돌아올 때까지 가지 말고 기다려. 이것저것 일 처리 좀 하고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당부한 에녹은 제티와 쥰을 데리고서 방을 나갔다.
* * *
바보 같다.
눈물이 안 멈춰….
“끅.”
분명 해 줄 말이 많았는데.
오스카와 눈만 마주치면 저항 없이 눈물이 나는 탓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엉엉 울기만 20분째.
결국 울 기운도 없을 만큼 지치고 나서야 겨우 눈물이 멎었다.
“체력도 좋다.”
오스카는 침대에 나와 나란히 앉아, 우는 내내 인내심 있게 눈물이며 콧물을 다 닦아 줬다.
“흥, 해.”
또 삐질 흐른 콧물 위로 손수건을 갖다 댄 오스카.
“크으으응!”
“어우, 드러워.”
“으항.”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스카는 별 더럽다는 기색 없이 손수건을 다시 자기 옷 안에 푹 집어넣었다.
“이제 다 울었냐?”
“네에….”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놀랐다.
“근데 스승님 왜 여기 있어요?”
“와, 빨리도 물어본다.”
뒤로 손을 짚고 몸을 살짝 젖힌 오스카가 말했다.
“한 번만 말한다. 귀찮으니까 바로 알아들어라.”
“네!”
“너 방금 성열에 들었다가 깨어난 거야. 황제 수작이겠지. 혼자서 못 깨어날 거 아니까, 남부에서 성물을 찾아와서 억지로 깨웠어. 네가 아빠한테 남겨놓은 편지에 방법을 적어 놨더라고.”
“……?”
와!
상상도!
못 한!
대답이 나와서, 나는 입을 떠억 벌리고 말았다.
‘어, 어쩐지 일어나자마자 아빠가 이상하더라.’
운 것처럼 눈이 빨개져서는 연신 내 상태를 확인하느라 정신없었지.
어쩐지 잠든 기억도 없는데 꿈을 꿔서 이상하다 싶었다.
‘와, 정말…. 황제 놈….’
그러니까 잠들었다기보다는 성열 때문에 거의 기절한 게 맞았다.
‘정말 끈질기게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구나….’
오스카의 도움으로 황제의 눈에 내 옥타바 계급까지 똑똑히 박아 줬건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를 쥐고 흔들 최고의 목줄은 나뿐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있다.
숨 막혀….
“자, 잠깐만여. 그러면 일케 혼자 일어난 거 황제 폐하한테 걸리면 안 될 텐데…. 이거 어뜨케야 하지….”
손톱을 딱딱 물며 방법을 생각해 보는데, 오스카가 내 머리를 툭 건드렸다.
“애는 머리 굴리지 마, 좀.”
“네?”
“야. 네 아버지 이제 다 안다. 너 프리메라인 것도 알지, 아주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다 떠먹여 주는 네 편지까지 가지고 있지.”
“…….”
“행동이 좀 무식하고 과격하긴 한데, 네 아버지 멍청한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뭐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아빠 믿고 기다려.”
오스카는 맘에 안 드는지 인상을 쓰며 계속 말했다.
“네 일이면 진창에서도 구를 인간이라고. 열심히 구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데 왜 안 굴리고 네가 뭘 하려 하냐?”
“그치만….”
“그치만 뭐, 뭐!”
버럭 소리친 오스카가, 흠칫한 나를 보고 조금 수그러졌다.
“그냥 네 아빠가 어떻게든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
“너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 좀.”
오스카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에서 내 걱정이 빤히 보여, 또 코가 시큰해졌다.
“네에. 그럴게요.”
“그런데 왜 울었는데? 아픈 거 아냐?”
“아!”
그래.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스승님.”
“어.”
“엄…. 있죠, 지금 제 비밀 알려 드릴게요. 스승님한테만.”
“내가 모르는 네 비밀도 있나?”
오스카가 큭큭 웃었다.
“이건 모르실걸여?”
“뭔데.”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고르고 말을 시작했다.
“스승님, 사실 저 여기 말구 엄청 신기한 세상에서 살다 왔어요.”
“뭐?”
“마차 대신 자동차가 있구요, 새 대신 비행기도 있구…. 그런 세상이었어요.”
내 말에, 오스카의 눈이 놀란 듯이 커졌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그에게서 눈을 떼고 천천히 다시 말했다.
“정말정말 행복했어요. 친구도 많이 있었구,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스승님처럼 아기들 공부 가르쳐 준 적도 있어요.”
“…….”
“음, 공부 가르쳐 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어요. 그래서 맛있는 것도 많이많이 먹어 보구, 요기조기 놀러 다니기도 해 봤어요.”
“그랬, 어?”
끊기듯 나오는 오스카의 목소리는 안도하고 있었다.
돌아본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하지만, 희미한 미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가 언젠가 바랐던 대로, 내가 행복한 기억을 갖게 된 게.
“좋았겠네.”
“네. 정말정말 좋았어요. 슬픈 적도 없었구 아프지도 않았어요.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또 그 사람들이 다들 저를 좋아하고 사랑해 줘서 정말 행복하게 지냈어요.”
“…다행이네. 아빠도 있었어?”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족은 없었어요. 그래서… 좋은 친구들도 많구 선생님들도 많구 그랬는데…. 가족은 없으니까 쪼끔, 아주 쪼끔 외로웠어요.”
“아빠가, 없었어?”
나는 오스카를 돌아보았다.
외로웠다는 내 말에, 그의 눈은 그새 안타까운 듯 흔들리고 있었다.
오스카는 내가 아빠랑 같이 행복하길 바랐었는데.
“네. 없었어요.”
울컥할 뻔했지만, 나는 꾹 참고 활짝 웃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왜 아빠가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
“아빠도 있구 가족도 있었으면 정말, 그 세상에서 사는 게 너무너무 행복해서…. 그래서….”
“…….”
“계속 거기 있고 싶었을 테니까요. 근데 나는 여기 와서, 돌아와서, 아빠 다시 만나야 하니까. 또.”
결국 참지 못하고, 또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스승님도 다시 만나야 하니까.”
오스카가 멍하니 나를 보았다.
“스승님. 제가, 제가 다 잊어버려서 죄송해요…. 바보같이, 아무것도 기억 못 해서, 스승님 잊어버려서 죄송해요….”
놀란 오스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치만 저…. 제가 스승님을 잊어버린 거 있잖아요? 절대로, 절대로 스승님이랑 있었던 시간이 아프고 괴로워서 잊어버렸던 거 아니에요.”
“너….”
“진짜로 아니에요. 저, 흐윽. 이 말, 해 주고 싶었는데….”
그가 내게 했던 마지막 인사.
이제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이번 생에서 괴로웠던 기억은 전부 잊어.”
하지만, 당신은 절대 내게 괴로운 기억이 아니야.
너무나도 소중한….
“저는요, 저는 스승님이랑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아빠도 없고, 황제 폐하는 무섭고. 너무… 너무 외롭고 힘든데, 근데, 끅.”
“…….”
“스승님이 맨날 옆에 있어 줘서. 나, 보러 와 줘서. 이쁘다고, 사랑한다고 해 줘서…. 그래서, 그래서 버틸 수 있었어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나는 오스카를 보고 웃었다.
발갛게 젖은 그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저는 스승님 없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스승님 기억하려고, 스승님이 옆에 있어 줘서 너무 행복했다고. 그렇게 말해 주려구….”
나는 눈물을 삼키고, 일어나 오스카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려고, 다시 돌아왔어요.”
그는 놀랐는지 거칠어진 숨으로, 떨리는 손으로 한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
이내 오스카는 여전히 떨리는 팔로, 천천히, 나를 꽉 끌어안았다.
“하….”
한숨인지, 울음인지.
가슴 북받치는 듯한 그의 숨이 내 귓가에 스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