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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48)화 (149/261)

‘많이 닮았군.’

니콜라스는 후작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예리하게 빛나는 적안.

눈빛에서부터 나오는 형형한 날카로움이 의심의 여지 없는 부자였다.

“어쩐 일로 부르셨는지.”

“아, 급할 거 없어. 천천히 이야기하지. 밤은 기니까.”

니콜라스가 웃었다.

* * *

서임식 후, 이틀이 지났다.

3월 중순의 어느 날.

‘음, 그러니까 테오가 죽었던 게 요맘때쯤이 맞겠지?’

나는 걱정이 많았다.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바람의 내음.

눈물겹도록 온 세상이 아름다웠던 봄의 끝에, 테오 앙트라세는 끝내 눈을 감았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의 시신 위에는, 그토록 입고 싶어 했던 성기사단의 푸른 망토가 덮였다.

삶은 병증과 고통의 연속이었으나, 바라던 기사로서의 죽음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체시어 루빈슈타인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원작에 따르면 정식으로 성기사가 되고 난 후에 죽는 테오.

사인은 마나 충돌이었다.

원래 테오가 겪고 있던 선천적인 질병이었고, 갈수록 발작이 심해지다 죽고 마는데….

‘다 해결했지.’

내가 제도에 오고 나서 테오에게 마수의 핵을 안겨 준 이후, 그는 한 번도 발작을 겪지 않았다.

그러니까 해결한 거다.

해결한 건데….

“오빠, 오빠, 오빠아아!”

“으아아, 리리스!”

휙 돌아본 테오가 내 뺨을 꽈악 쥐었다.

“오빠 진짜, 진짜, 진짜 괜찮아! 발작이라니 도대체 몇 년 전 얘기를 하는 거야? 응?”

“우브브븝!”

“아픈 데 하나도 없고, 밥도 잘 먹고 있고, 마수의 핵은 항상 꼭꼭 챙겨 다니고 있어요! 공주님!”

“아이이, 오바아아!”

아침부터 1시간 넘게 나한테 시달리다 보니 테오도 못 참겠나 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뺨을 놔준 테오가 푸스스 웃으며 내 머리를 헤집었다.

“아니, 근데.”

“그만!”

테오가 입술 위에 검지를 붙였다.

“오빠 훈련하러 갈 거야. 사흘 뒤에 토벌전 있는 거 알잖아. 정예군으로는 처음 출정하는 거라 엄청 떨려. 열심히 준비해서 가야 해.”

“으응. 귀찮게 해서 미안.”

“아니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근데 정말 뜬금없는 걱정이라 그래.”

뜬금없기도 하겠지.

그의 말마따나, 이제는 기억도 안 날 몇 년 전의 병 얘기를 다시 꺼내니….

“오빠 갔다 올게! 이따 점심 같이 먹어!”

테오는 씩 웃으며 나를 안아주고 뺨을 맞붙여 비비적거리고는 연무장으로 나가 버렸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며 현관에서 몸을 돌렸다.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근데 왜 이리 불안하담?’

내가 대놓고 개입해서 운명을 바꾼 테오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원래라면 그가 죽었어야 할 때가 오니 슬그머니 불안해지는 것이다.

왜, 그런 공포 영화가 있었다.

데스X네이션인가 뭔가….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이었지.

예지몽을 꿔서 죽을 운명을 비틀었지만, 끝내는 운명대로 어떻게든 다시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

‘으으, 무서워. 혹시 모르니까 이번 봄을 무사히 지날 때까지는 테오 옆에 꼭꼭 붙어 지켜봐야겠어.’

안전불감증보다는 안전과민증이 더 나은 법….

결심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재고해 달라고!”

“이게 최선이라니까?!”

버럭, 내지르는 두 남자의 목소리.

“깜짝이야….”

아빠의 집무실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 * *

에녹의 집무실.

대규모의 마수 토벌을 앞두고 전략 모의를 위하여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재고해 달라고!”

“이게 최선이라니까?!”

악시온과 에녹은 지도를 펼쳐 두고 벌써 몇 시간째 입씨름 중.

“저기, 두 분. 진정 좀 하시고요. 악시온 경, 사령관님 명령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에녹 경이 전투를 모르는 분도 아니고.”

둘 사이에서 눈치 보고 있던 젊은 남자가 말했다.

푸른색 장발을 느슨하게 묶은 이 사내의 이름은 율리안.

도스 성법사단장으로, 이번 마수 토벌대의 핵심 간부다.

“아버지, 저도 사령관님의 전략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체시어도 끼어들었다. 그는 마검사단장으로서 처음 참여하는 전략 모의였다.

“…….”

두 단장 모두 에녹의 편을 들자, 악시온이 흔들리는 눈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응시했다.

“…체시어는 지휘관이 처음이야.”

“그래. 네가 전황을 모르는 놈도 아닌데 왜 이리 뻗대나 했다. 그냥 애가 걱정되는 거라고 대놓고 말을 하지 그러냐.”

에녹이 피곤한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격전지를 중심으로, 각각 네 명의 지휘군이 4방위로 진군하며 마수를 섬멸하는 전략.

악시온은 첫 지휘를 맡은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너랑 율리안 경이 맡은 동, 서에 각각 사십. 내가 가는 북에는 이십. 그리고 체시어가 맡은 남쪽에는 팔십을 뒀어. 애가 첫 지휘인 거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다 감안한 거야.”

가장 토벌이 쉬운 남쪽 구역에 제일 많이 배치된 병력.

이 같은 병력 배치는, 지휘관이 처음인 체시어를 과할 만큼 배려한 전략이었다.

물론 악시온도 그 사실을 안다.

지휘관이 체시어만 아니었다면….

그는 군말 없이 따랐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과해. 단장직을 달자마자 지휘를 맡기다니. 체시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 내가 같이 가지.”

“무슨 소리야. 그럼 동쪽은 어떻게 하라고?”

“폐하께 병력 충원을 요청하면 안 되나? 성권사단장 놀고 있잖아.”

에녹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 비행형 마수가 태반인 거 몰라? 권사들 단체로 끌어가서 무덤이라도 만들어 줄 셈인가?”

검기를 날릴 수도 없는, 근거리 전투에 특화된 권사들이 이번 토벌에 배제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악시온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냥 체시어가 걱정되는 거다.

“미치겠네, 진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

새벽부터 시작된 이 전략 모의는 벌써 여섯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 * *

‘싸우나?’

엿들으려고 집무실 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서 있는데.

“으앙!”

갑자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갸우뚱, 기운 몸이 누군가의 팔에 폭삭 안겼다.

번쩍 고개를 들어 보니 체시어.

“쉿.”

그는 당황했다가, 슬쩍 뒤를 돌아 눈치를 보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

“끝났어?”

물으니 체시어가 고개를 저었다.

“…한참은 더 걸릴 것 같아.”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새벽부터 모였는데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인걸?”

“그게….”

체시어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저씨랑 아버지랑… 의견이 좀 안 맞아서.”

아빠랑 악시온이?

원작에서 마치 한 몸 같았던 둘이었기에, 좀 놀라웠다.

“뭐가 어떻게 안 맞는데?”

“…형들은?”

체시어는 잘 쉬지도 않는 한숨을 계속 푹푹 내쉬며 쌍둥이의 거취를 물었다.

“둘 다 훈련하러 나갔어.”

“그래.”

체시어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슬쩍, 문을 향해 고갯짓했다.

“잠깐 나갈래?”

* * *

“…그렇게 된 거야.”

“흐음, 그렇구나.”

얘기를 마친 체시어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려놨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연무장 흙바닥에 세심하게 그림까지 그려 가며 설명해 줬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삼촌이, 자꾸 아빠가 짠 전략에 토를 단다 이거지? 이유는 네가 걱정되어서고?”

“응.”

“나는 삼촌 완전 이해되는데. 옆에 어른들 없이 네가 지휘하는 건 처음이잖아.”

“지휘라고 하기도 민망해. 남쪽은 지형 때문에 토벌하기 쉽고 제일 안전하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언제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알아?”

“그래서 아저씨가 남쪽에 병력을 팔십이나 두는 거야. 낭비인 줄 알면서도, 나 때문에.”

체시어는 무릎을 그러안고 또 푹 한숨을 쉬었다.

“…난, 잘 모르겠어. 아버지가 왜 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면서까지 나를 걱정하는지.”

그는 악시온의 과보호가 영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아니야, 체시어. 너 강한 거 다 알지. 근데 실전은 또 다르니까. 괜히 경험 많은 사람이 지휘관 맡는 거 아니잖아.”

“그렇지만 언젠가는 맡아야 해. 그 경험이란 거, 쌓으려면.”

그것도 맞지. 그래서 아빠가 체시어에게 중책을 맡겼을 테고.

‘아빠도, 삼촌도 다 이해가 된다.’

체시어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는 악시온을 떠올렸다.

‘최고의 아버지!’

사실 나는 그가 체시어를 이렇게까지 아껴줄 줄은 몰랐다.

원작에서는 딱히 둘만의 진득한 접점이 없기도 했고.

하지만, 그간의 유대 때문일까?

악시온은 꼭 피를 나눈 진짜 아들처럼 체시어를 생각해 줬고,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아빠보다 악시온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의 마음이 너무 이해되니까!

품 안의 자식은 아무리 커도 아이 같고, 뭘 해도 걱정되는 법.

하물며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 가는 것인데….

“근데, 일단 들어가자. 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

“아, 그래.”

뭐 좀 먹고 다시 생각해 봐야지.

체시어와 다시 집으로 들어온, 바로 그때.

“어, 그래! 너 알아서 하라고!”

“얘기 끝내고 가!”

우리는 놀라 현관에서 얼음처럼 땡 얼어붙었다.

1층에서, 악시온과 아빠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말다툼하고 있었다.

“내가 사사건건 이러겠대? 이번은 애한테 좀 많이 이르다고, 한 번만 재고해 달라고 했잖아.”

“다른 방법이 있어? 병력은 최대한으로 뽑아왔고, 그중에 체시어가 제일 월등하니까 지휘관으로 둔 거야. 체시어는 자기 실력 충분히 증명했어. 내가 설마, 애 죽으라고 거기 보내겠어?”

“그건 또 모르지. 네 아들 아니니까.”

“뭐?”

오….

점점 높아지는 말의 수위….

나는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고 옆에 선 체시어를 슬쩍 봤다.

그는 묘한 표정이었다.

“구를 대로 구른 놈이 왜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해. 너도 네가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고 있다는 거 알잖아.”

“이성적이지 못 해서 미안하네. 한데 너는 한결같이 이성적일 수 있나? 그래서 탈영했나 보지?”

“뭐?”

우와….

너무 쎄, 너무….

“네 딸이었어도 똑같았을까?”

“갑자기 리리스 얘기가 왜 나와.”

“생각해 보라고. 네 딸이었으면, 이른 나이에 정예군 배지 달자마자 지휘관으로 보냈을 건가?”

“하, 둘이 같아?”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갑자기 큭큭 웃던 악시온이 일순 표정을 싹 굳히곤 몸을 돌렸다.

“…….”

그는 그제야 현관에 서 있던 나와 체시어를 발견하고 멈칫했지만.

“서라. 명령이다.”

“…누구는 탈영도 하는데 서라는 명령 불복쯤이야.”

곧, 아빠 말에 한껏 비아냥거리며 나가 버렸다.

‘와, 대박이다….’

아빠는 악시온이 나간 문을 노려보다가, 이내 사납게 몸을 돌려 집무실로 가 버렸다.

“어, 어떡하지…?”

“…….”

체시어도 별수가 없어 보였다.

이거 진짜 어떡하니?

흔들리는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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