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가 힘을 숨김 (152)화 (153/261)

* * *

‘제발, 제발….’

등에 업힌 몸이 식어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체시어는, 테오를 업고 협곡 새를 헤치며 쉴 새 없이 달렸다.

‘바보 같았어.’

어린 지휘관을 걱정했던 악시온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 줘….”

자신의 실책이었다.

테오가 이렇게 된 건.

그렇게 리리스의 도움이 필요 없다 말해 놓고도, 결국 그녀를 부르러 가는 이 순간.

지독한 자책까지 들었다.

* * *

“위험한 일이 생기면, 이걸 깨.”

하늘색 조개껍질 모양의 마도구.

체시어는 두 번 생각도 않고 그걸 도로, 리리스에게 내밀었었다.

“필요 없어.”

“가지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깨면? 위험하단 사실을 네가 알게 되는 거야? 그럼 나한테 오게? 아니면, 네 능력을 쓰게?”

“그래야지.”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리리스다.

이 애는, 이게 깨졌을 때 자신이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는 걸까?

아니, 모를 리가 없지.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이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깰 일 없어.”

체시어는 그게 화가 났다.

나는 네가 최후의 최후까지 무사하기를,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계속 칼을 잡고 있는데….

모두가 너 하나를 지키려고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너는 왜, 네 목숨을 이토록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지.

“프리메라의 능력이 필요한 일이라면, 아마 죽을 위기밖에 없겠지. 그러면 그냥 죽을 거야. 그러니까 깰 일 없어.”

“와,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리리스는 도리어 화를 냈다.

“왜 이렇게 죽는다는 소리를 쉽게 해? 듣는 내 기분 생각 좀 해 줄래?”

“화 나?”

“당연하지!”

“그래, 리리스.”

체시어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 나도 느끼고 있어. 너무 화가 나.”

“…….”

“전쟁터 한복판에서 이걸 깨서 너를 부르는 게 무슨 의민데. 정말 내가, 네 목숨을 팔아서 살아남을 거라 생각해?”

리리스는 드물게 화를 내는 체시어를 보며 당황했다.

“제발, 이러지 마.”

체시어는 욱했던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리리스의 시선을 피하며, 내놓기에는 부끄러운 진심을 말했다.

“너… 내 삶의 목표가 뭔지.”

오직,

너의 생존.

“…모르는 거 아니잖아.”

“…….”

결국, 리리스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아냐. 괜히 마음 어지러울까 봐 말 안 하려 했는데, 테오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길 것 같아서 그래.”

“…….”

“넌 죽을 일 없을 거 알아. 강하니까. 그런데 나는, 너 말고도 걱정되는 사람이 많아. 테오 오빠는 그중 하나야. 이번에 너랑 테오 오빠, 계속 붙어 있을 거라고 하니까….”

리리스는 어떻게든 그 마도구를 제 손에 쥐여 주고 싶은 것 같았다.

“나도 안 깨졌으면 좋겠어. 깨지 마. 절대 깨지 마. 근데 정말, 혹시 모르니까.”

“…….”

체시어는 끝내 리리스가 제 손에 들려 준 마도구를 보며 생각했다.

내 말은 다 진심이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를 위험에 빠트리는 짓은 안 할 거야.

―그렇게.

* * *

“체시어. 그래도, 나도 도슨데…. 뒤에 숨어 있는 건 안 내켜. 너랑 같이 앞에서 싸울게.”

“형, 숨으라고 보내는 거 아니야. 병력이 엄청 많고 내가 후방까지 다 통솔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뒤는 형한테 맡기는 거야.”

체시어는 테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그리 말했지만, 다들 알았다.

몸 안에 성력과 마력이 동일하게 공존하는 테오.

그의 체질이 전장에서는 언제든 돌발 상황을 일으킬 수 있고, 그걸 걱정한 체시어가 테오를 안전한 곳에 두려 한다는 걸.

“하, 하아….”

왜 그랬을까.

체시어는 지치는 것도 모르고, 깊은 곳으로 숨으며 생각했다.

차라리 위험해도, 그냥 내 눈앞에 두고 형을 살피면서 싸울걸.

멍청하게, 나는 왜 그랬을까.

전장에서는 예상외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몇 년간 지겹도록 가르침 받아 왔으면서.

“미안해. 미안해, 형….”

벌써 4년이나 칼을 잡았지만, 가까운 전우의 죽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체시어는 평정을 찾아야 하는데도, 그럴 수 없었다.

“제발, 조금만….”

제 등에 업힌 테오의 몸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자신이 지쳐서인지, 숨이 다해 가는 테오의 몸이 늘어져서인지….

알 수 없었다.

“…….”

제 군대와 한참 떨어진 곳.

인기척 없는 협곡 틈의 동굴 같은 요새를 찾아낸 체시어는 테오를 바로 눕혔다.

깨진 갑옷. 처참하게 뚫린 복부의 상처는 심각했다.

단 1분, 아니, 1초 만에도 넘을 수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테오.

체시어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꺼낸 리리스의 마도구를 부쉈다.

* * *

‘이상해.’

에녹은 빠르게 말을 몰면서 생각했다.

왜일까?

토벌이 시작되었지만, 자신이 맡은 동쪽에는 마수들의 수가 예상보다 현저히 적었다.

게다가 몇몇은 공격하기보다 마치 토벌군의 움직임을 관망하듯 허공을 뱅뱅 맴돌기만 했다.

‘분명히 경계하고 있었다. 꼭 뭔가 지키려는 것처럼.’

멀찍이 거리를 두고 날갯짓만 하던 마수 무리.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제 꾼 꿈부터….

‘마수들이 뭔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새끼일 테지.’

근처에 산란장이 있을 수 있다.

그 위치는 미리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토벌 중에 자주 맞닥뜨리곤 하는 돌발 상황이었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혹 남쪽에 산란장이 있었다고 해도, 체시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사, 사령관님!”

남쪽 토벌 구역에 도착했을 때.

에녹은 마주한 광경을 보고 숨을 삼켰다.

‘역시.’

속이 텅 빈 동굴 요새.

마수의 산란장이 보였다.

그러나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알은 한 번에 베어낸 듯 깨져 있었고, 주변에 사체가 즐비했다.

이미 소강된 상태.

다행히 토벌군도 거의 다 무사해 보였다.

“사령관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저는 도스 성법사단 소속의 치유 계열 성법사 레이언이라 합니다.”

“그래. 여기 산란장이 있었나 보군.”

“예. 그런데 지휘관님께서….”

“해결했지?”

“맞습니다. 체시어 경이, 그, 엘레바도를….”

레이언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엘레바도(Elevado).

검의 경지에 다다른 소드마스터가 구사하는 기술.

체시어는 며칠 전에 엘레바도를 완성했다.

그게 바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오면서도 에녹이 내심 괜찮을 거라 믿었던 이유고.

“한데, 사령관님.”

레이언이 급히 덧붙였다.

“산란장 토벌은 마쳤지만, 지휘관님이 군의 대기를 명령하시고 전선을 이탈하셨습니다.”

“뭐?”

겨우 안도했던 에녹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 여기에 없단 뜻인가? 어디로 갔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하셔서, 명령을 따를 수밖에….”

“그래도 이유는 물었어야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테오 경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테오?”

“예. 실은 산란장을 처음 발견한 분이 테오 경이었습니다. 군 후방에 배치되셨는데, 뭐라도 하시겠다며 협곡 안을 직접 꼼꼼히 살피셨거든요.”

“아.”

산란장을 지키는 어미가 있었을 거다. 보통은 개중에서도 가장 강한 개체다.

에녹은, 테오에게 벌어졌을 상황을 직감했다.

“설마, 테오가 부상을 당했나? 치료는 되었고?”

“그게… 죄송합니다. 제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레이언은 고개를 숙였다.

“경은 모탈(*치유 마법이 들지 않는 상태. 내부 장기가 치명상을 입은 죽음 직전을 가리킴)이셨습니다.”

“…뭐, 라고?”

에녹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치유 마법에 통달한 도스 계급의 성법사가 치명상이라 진단했다면.

곧, 죽음이었다.

숨이 붙어있었더라도 손쓸 도리가 없다는 말.

“그게, 대체….”

당연히 체시어도 테오를 살릴 수 없다. 한데 왜, 테오를 데리고 난데없이 전선을 이탈했을까.

혹시나 따라붙을 군에게는 대기를 명령하고, 홀로 비밀스럽게….

“아.”

에녹이 머리를 붙잡았다.

체시어는 어떻게든 테오를 살리려 했을 거다.

무언가 방법이 있기에, 치명상을 입은 테오를 데리고 혼자 움직였을 테지.

그렇다면, 무슨 방법?

죽음을 코앞에 둔 인간을,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살릴 수 있나?

그래, 신만이 살릴 수 있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프리메라만이.

“설마….”

에녹의 숨이 거칠어졌다.

대체 체시어가 어떻게 하려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도움을 구하려 했다면 분명 리리스일 것이다.

‘어떻게…?’

새하얘진 머릿속에, 내내 밤잠을 설치게 했던 불길한 꿈이 떠올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전장.

포효하는 마수들 사이에서 벌벌 떨고 있던 내 아이, 리리스.

에녹은 죽을힘을 다해 아이에게 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끝내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아빠!”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순식간에 나타나, 그 뱀과도 같은 역겨운 웃음을 짓는 황제의 손에.

아이는 속절없이 끌려갔었다.

“아, 안 돼….”

또다시, 누구보다 강한 남자를 한없이 약하게 만드는 두려움이 목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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