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가 힘을 숨김 (154)화 (155/261)

한참 나를 안고 토닥이던 오스카가 말했다.

“이제 무슨 일을 쳤는지 말해 봐.”

“아.”

나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테오를 가리켰다.

“테오 오빠가 죽을 뻔했어요. 치유 마법이 안 드는 치명상이라서 체시어가 저를 부른 거예요.”

“…….”

오스카가 가만히 눈을 껌뻑였다.

곧 쏟아질 잔소리를 예상한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저 거기 간 거 아무도 몰라요! 체시어가 조용한 데서 불렀거든요!”

“응, 그건 당연한 거고.”

오스카가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죽을 놈을 살려놓으라고 부른 거네?”

“…….”

“그 새끼 정신 나갔대냐? 프리메라가 여기 있소, 동네방네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가?”

“…….”

“대책은 있고? 너도 뒷일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쟤 살려 놓은 거지? 저기, 혹시 미치셨어요?”

“스, 스승님…. 웃으면서 말 안 해도 돼요. 어차피 말투가 너무 무서워서 하나도 안 상냥해 보여요….”

내 말에, 오스카가 웃음을 지우고 표정을 싹 굳혔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대책은, 그…. 지금부터 생각해 보려구요. 아직 토벌 끝나려면 시간 좀 남았으니까….”

“생각하면 대책이 나오세요?”

“이, 일단 생각해 봐야죠. 테오 오빠 치명상이었던 거 모르게 사람들 기억 조작 같은 걸 한다든가….”

오스카가 내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악!”

“거기 도스가 몇 놈인데, 뭐? 기억 조작?”

기억 삭제는 그럭저럭 가성비가 나쁘지 않지만, 조작은 상당한 생명력이 필요했다.

당연히 대상의 능력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생명력을 써야 하고….

“그치만 여러 사람 기억을 통째로 삭제해 버리면 분명히 이상하다는 말이 나올 테니까요. 아무래도 조작하는 게….”

“개소리야. 그냥 쟤 죽었다 치고 평생 어디에 가둬 살게 하는 게 제일 낫겠네.”

“…진심으로 하는 말이세요?”

“그럼 진심 아닌 것 같으세요?”

“와, 진짜 그건 좀.”

쯧쯧 혀를 찬 오스카가 누워 있는 테오에게 다가갔다.

“여기가 뭐 뚫리기라도 했었냐?”

“네에.”

갑옷이 깨지고 옷이 찢어져 훤히 드러난 테오의 복부를 살핀 그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완전히 멀쩡하게 되돌려 놨잖아? 이건 뭐, 변명할 수도 없게 해 놨네?”

노려보는 오스카의 시선을 피하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아, 진짜.”

오스카는 피곤한 듯 허공을 향해 고개를 젖히며 중얼거렸다.

“지 아빠가 맨날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해서 애가 저런가…. 정말로 건강하게 자라서 문제란 문제는 다 만들고 다니네….”

나는 입을 더 다물었다.

“제에발 얌전히 좀 커라, 응…?”

“네에.”

잠시 눈을 감은 채 뭔가 생각하던 오스카가 일어났다.

“내가 고친 거로 하자.”

“네?”

“이거 알려지면 난리 나. 토벌대가 돌아오면 높으신 분들이 얘 어떻게 살렸는지 소명하라고 하겠지. 지금 이 제국에 이런 수준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나는 당황했다.

“그치만 거기 있던 치유 성법사가 오빠 가망 없다고 했었대요. 마법도 안 드는 상태였던 거 다 알아요.”

“드는 마법이 있으면 되지.”

“…네?”

“뒤질 놈 부상도 완전히 복구할 수 있는 마법이 있으면 된다고. 네가 쓴 이 능력이랑 비슷하게 보이는.”

“세상에! 그런 마법도 있어요?”

너무 좋아서 환하게 웃는 나를 보며, 오스카가 따라 웃었다.

그러다가 또 표정을 싹 굳혔다.

“있겠냐? 지금부터 만들어야지.”

* * *

“으항항! 간지러워요!”

“아, 움직이지 좀 마! 반듯하게 안 잘리잖아!”

테오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뭐지?’

마지막 기억은, 마수의 산란장.

숨겨져 있던 수백 개의 알을 발견하고 놀랄 새도 없이, 그곳을 지키고 있던 성체에게 공격당했다.

칼을 뽑기도 전에 마수의 발톱에 복부가 뚫렸던 기억이 선명한데….

“아!”

벌떡, 일어난 테오가 제 복부를 더듬거렸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고, 옷까지 갈아 입혀져 있었다.

“앗! 오빠 일어났다! 몸은 좀 괜찮아?”

“…리리스?”

고개를 들어 보니, 리리스가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웬 가위를 들고 리리스의 머리를 잘라 주고 있는….

‘마탑주?’

말은 한 번도 제대로 섞어 본 적 없지만 아는 얼굴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낯선 곳에서 눈을 뜬 것도 당황스러운데, 갑자기 마탑주랑 리리스라니?

어리둥절한 상황에 눈만 껌뻑이고 있는데, 리리스가 뛰어들어 안겼다.

“아픈 데 없지? 괜찮지?”

“어? 으응. 그런데 나, 왜 여기 있어?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테오 앙트라세.”

그때, 오스카가 척 팔짱을 끼고 서서 테오를 불렀다.

“나 누군지 알지?”

“아아, 예.”

모를 리 있나.

대대로 마탑의 주인이었던 마뉘엘 가문, 그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이.

능력자들에게 마법식을 제공하는 대단한 권력자라,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여기 이 사람 집인가?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테오는 날카로워 보이는 오스카의 눈빛에 긴장하며, 괜히 제 품에 안긴 리리스를 끌어안았다.

“잘 들어라.”

오스카는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넌 이번에 토벌을 나갔다가 죽을 뻔했고, 그런 너를 내가 살렸다.”

“…예?”

“예후를 살펴봐야 하니까 오늘은 닥치고 이 방 안에만 갇혀 있어.”

대체 무슨 소리지?

눈이 휘둥그레진 테오가 더 설명이 필요한지 리리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리리스는 왜인지 어색하게 웃으며 “으응, 맞아. 스승님이 오빠 살려줬어….”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라.”

오스카는 퉁명스럽게 말을 맺었다.

테오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눈만 껌뻑거렸다.

* * *

‘테오가 죽을 뻔한 건, 정말 내가 걱정한 대로 운명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

제발 후자여라….

고민하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해결해야 할 게 있지. 운명이니 우연이니 걱정할 때가 아니야.’

테오를 살린 상황을 모두 납득할 수 있게 하려면, 그를 고친 마법이 존재함을 증명해야만 했다.

망가진 장기가 완전히 복구된 상태.

죽는 게 당연했던 사람을 살릴 만한 희귀한 치유 마법은 없었지만….

“스승님, 제가 뭐 도울 거 없어요?”

“없어.”

…지금 오스카가 만드는 중이다.

그는 서류 볼 때 쓰는 듯한 안경까지 끼고 작업에 몰두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오스카는 1분도 쉬지 않고 펜을 놀렸다.

‘와, 진짜 천재네.’

나는 새삼 혀를 내둘렀다.

오스카의 펜이 지나간 자리에는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 고대 문자 같은 것이 거침없이 돋아났다.

대체 마법으로 프리메라의 능력을 어떻게 구현하려고 하는 거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골자는 부분적인 회귀야. 나 바쁘니까 더 묻지 마.”

오스카는 그렇게만 말해 줬다.

그래도 나는 대충 이해했다.

‘장기를 아예 다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원리란 거지?’

나는 걱정돼서 물었다.

“근데 스승님, 회귀 마법 쓰면 대가 필요하지 않아요?”

“회귀 수식의 기본 뼈대만 빼 와서 원래 치유 마법식이랑 접목하는 거야. 불용 마법의 성질이 적용되는 부분은 없으니까 괜찮아.”

오….

놀랍게도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군….

그래도 회귀와 관련된 연구야 지겨울 만큼 했던 오스카이니 어렵지는 않을 듯했다.

하지만, 똥 싸 놓고 대신 닦아 달라 하는 상황이나 다름없어서 나는 내심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고생하는 그를 두고 혼자만 자러 가기에는 양심에 찔려서, 잘 시간이 다 됐지만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옆을 지키고 있는 이유다.

“자러 가라.”

오스카는 졸려 하는 나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말했다.

“안 졸려요. 책 볼 거예요.”

절대 안 자.

“스승님, 저도 사람이라구요. 양심이라는 게 있어요.”

“갑자기 뭐래.”

“스승님은 저의 잠자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오스카의 옆에서, 무조건 같이 밤을 새울 것이다!

무조건!

* * *

“커어어….”

오스카는 턱을 괴고, 잠에 빠진 리리스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잠자는 모습 볼 수 없을 거라며?

테이블 위에 엎드려, 펼쳐 놓은 책에 찐빵처럼 뺨을 뭉개고 잘도 자고 있었다.

“야.”

“…….”

“들어가서 자라.”

얼마나 곤히 잠들었는지 목소리도 안 들리는 모양.

한숨을 내쉰 오스카가 아이의 몸을 살짝 세워 조심히 품에 안았다.

등과 다리를 받쳐 안고 일어나자 대번에 목이 뒤로 꺾였다.

“어우, 씨. 목!”

큰일 날 뻔.

놀란 오스카가 팔을 옮겨 아이의 머리를 바르게 고쳐 안았다.

“잘도 자네, 아주. 깨지도 않네.”

입까지 헤 벌린 채 한창 꿈나라 여행 중인 얼굴을 보며,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조심조심 걸어 방에 들어온 오스카가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 주고, 벌어졌던 입에 들어간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빼 주고 나니….

‘예쁘네.’

새삼, 리리스의 혈색 좋은 얼굴이 보기 좋았다.

황제의 꼭두각시였을 때의 아이는 바보처럼 해맑긴 했지만, 마른 뺨과 총기 없는 눈이 항상 안쓰러웠다.

꼭 숨만 쉬는 인형 같았지.

지금은 비로소 생기 넘치는, 살아있는 사람 같다.

웃고, 울고, 삐지고….

말도 잘하고, 감정 표현도 스스럼없고….

그렇게 보고 싶다던 아빠랑 소원대로 매일 붙어 사니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가는 모습은 오스카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럴 수밖에.

이렇게 평범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이 모습 하나를 보고 싶어서.

그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던졌으니까.

“그러니까 오래오래 살아라.”

되도록 사고는 안 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평범한 존재는 아니라서 여의치는 않을 테고.

“뒤치다꺼리야 뭐가 어렵겠냐.”

널 위해서 안 해 본 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그냥, 네 아빠 말마따나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

“잘 자라.”

미소 띤 얼굴로 아이의 뺨을 톡, 가볍게 건드린 오스카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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