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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56)화 (157/261)

“너, 테오가 걱정됐으면 아빠한테 말을 했어야지. 왜 아빠 몰래 체시어한테만 얘기했어?”

“…….”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말하기엔 좀 그랬다.

내가 아빠에게 테오 얘기도 안 하고, 마도구도 체시어에게 준 이유는….

‘그나마 아빠보다 체시어 쪽이 더 미더워서 그런 거긴 한데.’

그 말을 어떻게 해?

아빠 서운할 텐데.

“아빠보다 체시어가 더 믿을 만했어?”

“으응?”

뭐, 뭐지? 나 방금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말했나?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고 아빠가 힘없이 웃었다.

“그래,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아.”

“아, 아빠! 오해야! 체시어가 아빠보다 더 쎄서 그런 거 아니야! 실은 아빠가, 어, 아빠가….”

“…….”

아빠는 어째선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 *

체시어가 테오를 데리고 향했다는 곳으로 말을 모는 에녹.

그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의 걱정뿐이었다.

딸.

내 아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자식.

리리스.

까딱 잘못해서 마수와 맞닥뜨리면 어쩌지?

테오를 살리려고 생명력을 너무 많이 쓰면 어쩌지?

누군가의 눈에 띄어 정체를 의심받게 되면?

이성을 살라 먹는 걱정은 곧 체시어를 향한 원망이 되었다.

아무리 방법이 없었다고 해도, 너는 꼭 리리스를 찾아야 했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에게 놀라고 말았다.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를 달려오며 에녹의 머릿속에는 오직 딸, 딸, 딸뿐이었다.

조카, 테오가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기적이게도, 딸의 걱정만.

“체시어!”

이내 돌아오는 체시어를 발견했을 때 그는 곧바로 다그쳤다.

“리리스는!”

“…….”

체시어는 놀란 듯했다.

전후 사정도 모르는 에녹이 다짜고짜 리리스부터 찾는 것에….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리리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자길 부르라고 마도구를 줬었는데, 테오 형을 살리려고 그걸 썼습니다. 리리스는 방금 형을 데리고 돌아갔어요.”

자책 가득한 체시어의 표정을 보고, 에녹은 멍해졌다.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했지?

이 애에게, 화를 내려 했었나?

“…그래.”

에녹은 힘겹게, 흥분으로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이라….

아마도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을 딸이 체시어에게 부탁했겠지.

마도구를 자신이 아닌, 체시어에게 준 이유?

‘리리스는… 나를 잘 아니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에녹은 딸을 이곳에 오게 하지 않았을 거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에도 조카, 테오의 안위보다 리리스의 걱정에만 몰두하지 않았던가.

아이는 그것을 알았겠지.

아빠가, 자길 위해서라면 한없이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걸.

“…….”

맞다. 딸의 걱정은, 전부.

부정할 수 없었다.

목숨만큼 소중한 존재인 자식이 생기고 나서, 에녹은 깨달았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인지.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 인간인지를….

그걸 딸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못내 부끄럽게 했다.

“리리스는… 얼마나, 자랐어?”

치미는 자기혐오에 괴로워하며 겨우 물었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머리가, 눈에 띄게 긴 걸 봤어요.”

체시어는 푹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아직 어린 이 아이를….

나는 왜 다그치려 했던 걸까.

아, 참으로 이기적이고 추악한 인간.

에녹은 시큰해지는 눈을 가리며 입술을 물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 * *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젖은 눈으로 침묵하기만 했다.

“아빠?”

그러다 조심히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아무리 걱정됐어도, 너는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면 안 됐어.”

“으응. 잘못했어.”

“잘못했어?”

“응. 다시는 안 그럴게.”

“거짓말.”

나는 흠칫했다.

“이렇게 말해도 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이 행동할 거잖아.”

역시 제임스 브라운 씨.

귀신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은 안 할게. 대신 아빠가 미리 알고 있을 수만 있게…. 그렇게만 해 줘.”

“…….”

“네가 왜 아빠를 못 믿는지는 알아. 그렇지만 아빠도 이번에 깨달은 게 있어. 네 걱정 때문에 마냥 이기적으로 굴고… 그러지 않을게.”

나는 놀랐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빠는 다 알고 있었다.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빠라서, 내가 조금도 위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빠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전쟁터에 부르지 않을 거라고, 내 능력을 쓰게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는 걸.

“네가 네 힘으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아빠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무작정 말리지도 않을게.”

“…….”

“그러니까 제발, 공주야. 뭔가 하기 전에, 아빠한테 꼭 말해 줘. 응?”

“응, 아빠. 정말 미안해….”

“그래, 우리 공주.”

아빠는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고생했어. 무서웠을 텐데.”

“아니야. 하나도 안 무서웠어.”

“응, 공주는 용감하니까. 근데 아빤 무서웠어. 아빠 또 심장 떨어져서 큰일 날 뻔했잖아….”

“걱정시켜서 미안….”

“이제 괜찮아. 우리 공주, 다친 데 없이 무사하면 됐어.”

아빠는 품에서 나를 떼어내고 눈을 맞추며 씩 웃었다.

“근데, 그 마도구는 어디서 났어?”

묻긴 했지만, 이미 답을 아는지 아빠는 바로 오스카를 쳐다봤다.

그는 아빠의 눈빛을 읽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와, 설마 나한테 뭐라 하려고? 내가 그걸 그렇게 쓰라고 줬겠어요? 쟤 위험할 때 내가 쓰려고 만든 건데, 기집애가 한 쌍을 다 강탈해 갔거든?”

오스카는 나를 가리키며 씩씩거렸다.

“저거 칼만 안 들었지. 아주 강도야, 강도! 애교 부리면 다 되는 줄 안다고!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한 거예요?!”

“와, 공주가 애교 부리니까 줬나 보네….”

“…아니, 저기요.”

“아냐, 마탑주. 오해하지 마. 뭐라 하려는 거 아니고.”

아빠는 일어나더니 오스카에게 가서 뭐라고 속닥거렸다.

왜인지 오스카는 쯧쯧 혀를 차다, 곧 앞치마를 벗고 방으로 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아빠는 그걸 받고 씨익 웃었다.

“고마워.”

“아, 잠깐. 내 것도 한 쌍만 줘요.”

오스카는 아빠에게 준 상자를 열어 뭔가 꺼냈다.

보니, 조개껍질 마도구.

‘아하, 저게 쓸 만하다고 생각했나 보네.’

아빠는, 자기한테도 줄 수 있냐고 물어봤나 보다.

오스카는 흰색 조개껍질 하나를 나한테 주고 다시 앞치마를 둘렀다.

“너, 그건 딴 놈 주면 진짜 혼날 줄 알아. 부랴부랴 갔는데 너 말고 다른 새끼가 있다?”

오스카는 거품기를 위협적으로 흔들며 덧붙였다.

“도와주기는커녕 내가 직접 죽일 거야. 그게 누구든지.”

“헉! 네, 네에. 알았어요.”

“어우, 그건 좀 너무했다.”

아빠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음식 만드는 오스카의 곁을 기웃거렸다.

“…? 뭡니까? 그 덩치로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빨리 거기 어떻게 수습하고 왔는지 얘기나 해 봐요. 말은 맞춰 둬야 할 거 아냐.”

“응,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러 왔어. 밥 먹으면서 빠르게 설명할게. 나 어차피 먹고 바로 황실에 토벌 전황 보고하러 가 봐야 해.”

“……?”

“근데 뭐 해? 맛있는 거 만드나 보네?”

“아니, 알아서 뭐 하게요?”

오스카가 황당해했다.

“나도 밥 먹어야 하니까? 궁금할 수도 있지. 집도 안 들르고 바로 온 길이라 너무 배고파.”

양심 없는 아빠의 말에, 오스카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럼 일 끝나고 댁 집에 가서 먹어! 면 2인분밖에 안 삶았으니까! 내 거랑 애 거!”

“엥. 그게 뭐 문젠가? 1인분 더 삶으면 되지. 아니다, 난 2인분은 먹어야겠어.”

아빠는 식탁 위에 있는 스파게티 면을 잽싸게 들고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내가 도와줄게. 나도 요리 잘해.”

“맞아요, 스승님! 울 아빠도 요리 엄청 잘해요! 우리 다 같이 먹어요!”

나도 간만에 요리하는 아빠 구경하려고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

“와, 와. 진짜.”

금세 북적북적해진 주방 안.

오스카는 마음에 안 드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이이, 멍청한 마수 새끼들 같으니…. 겨우 5일 만에 전멸해서….”

그는 이를 갈며, 콧노래 부르는 아빠를 노려봤다.

“저 인간을 벌써 돌려보내고 난리야!!!”

* * *

황실, 회의장.

토벌 전황이 보고된 뒤, 전후의 사정을 논하기 위해 도스 군단장 10인이 소집되었다.

회의의 화두는 마검사단장, 체시어 리브르의 전선 이탈과 테오 앙트라세의 무사 생존.

치명상을 입은 테오를 살리기 위해 잠시 전선을 이탈했던 체시어의 행동은, 사실 큰 관심이 아니었다.

모두가 놀란 것은….

“괘씸한 일입니다!”

바로 마탑주, 오스카 마뉘엘의 개입.

그는 분명히 죽을 위기에 처했던 테오 앙트라세를 살려놓았다.

공개하지 않은 미공개 마법식의 존재가 밝혀진 것이다.

“모탈 상태의 부상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마법이 있었다니요!”

은퇴를 앞둔 중년의 마법사단장, 질리언 발렌치아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폐하,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황제, 니콜라스는 상석에서 턱을 괴고, 가만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황실에서 마탑에 권력을 허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익을 위해서 마법식을 공유할 것을, 분명히 약속받지 않았습니까?”

질리언은 노발대발하며 덧붙였다.

“한데 그런 대단한 마법을 독식하다니요! 마탑주를 불러 이를 제대로 소명하게 하고, 문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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