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군단장들은 말이 없었다.
다들 마탑주를 문책해야 한다는 질리언의 의견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마탑주가 혼자만 알고 있던 마법으로 조카, 그리고 아들의 목숨을 구한 에녹과 알렉세이.
둘은, 동의하기보다 할 말이 없을 뿐이었다.
“폐하!”
질리언이 재촉했으나, 니콜라스는 다른 생각 중이었다.
‘프리메라의 권능에 도전할 수도 있는 마법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대단한 놈이야.’
오스카의 능력은 느낄 때마다 탐이 났다.
다만 그를 멋대로 휘두를 수 없는 이유는 니콜라스도 그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현존하는 마법식은 전부 마탑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그것을 전부 제어할 방법 또한 있을지 모른다.
‘하여튼, 그쪽은 생각할 때마다 골치 아프단 말이야.’
오스카 마뉘엘.
그는 역대 마탑주들 중에서도 가장 능력이 뛰어난 자였다.
‘그 정도 수준의 치유 마법식도 만들 수 있다면, 분명 파괴적인 공격 마법식도 숨기고 있을 거다.’
니콜라스는 그 부분이 아쉬웠다.
다들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치유 마법을 궁금해하고 있는 와중에도….
“폐하?”
“아아, 그래.”
상념에서 빠져나온 니콜라스가, 하하 웃었다.
“내게도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게.”
“폐하, 이번에도 너그럽게 봐주신다면 마탑주의 기세는 더 등등해질 겁니다. 부디 이 사태를 소명하게 하고, 문책하여 주십시오!”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하는 에녹을 힐끔 보았다.
차라리 에녹처럼 신념이 확고한 인간들은 파악하기 쉽다.
그러나 오스카는….
‘나와 비슷한 놈이지.’
도무지 속을 알기가 힘들다.
그래도 짐작해 보자면, 오스카의 바람은 제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또 굳건하게 하는 것.
인재 확보에 미친놈처럼 혈안이 된 이유도 마탑의 부흥 때문일 거다.
제법 머리가 좋다는 에녹의 딸을 마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앞에서도 언성을 높인 적 있지 않나.
‘이번에 테오 앙트라세를 살린 것도, 아마 에녹에게 잘 보여서 딸을 꾀어내기 위함일 테지.’
니콜라스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아. 회담장을 개방하고 마탑주에게 이 사태의 소명을 요구하도록 하지.”
“폐하, 그뿐 아니라….”
“그래, 그래. 알겠어.”
니콜라스는 질리언에게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덧붙였다.
“소명을 통해 치유 마법식을 숨긴 이유를 들어보고, 타당하지 않다면 문책을 고민해 보겠네.”
니콜라스가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가며 명령했다.
“회담 날짜를 잡도록 하게.”
* * *
“내일이라도 당장 회담을 열어야 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은 주십시오. 토벌이 오늘 끝났으니 전후 수습과 병력 정리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법사단장과 성기사단장이 쉴 새 없이 주고받았다.
한 명은 당장 마탑주를 털고 싶어 하는 눈치고, 한 명은 단 하루라도 시간을 더 벌려 하는 눈치다.
“마탑주가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닌데, 소명 회담이 전후 수습과 무슨 상관입니까?”
질리언은 쯧, 혀를 차며 덧붙였다.
“도움받은 에녹 경의 마음이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마탑주의 기세를 죽여 놓기에 아주 적절합니다. 잘 이용해야 해요.”
“…대체 마탑주 기세를 왜 죽인단 말입니까? 마탑주가 마법식 제공을 빌미로 우릴 겁박하길 합니까, 권력으로 정치에 개입하길 합니까?”
사감으로 오스카를 옹호하고 있긴 하지만, 에녹은 이해가 안 됐다.
‘마법식을 숨겼다는 데에 화내고 있는 거 맞나? 왜인지 마탑주라는 사람 자체를 마땅치 않아 하는 느낌인데? 내 착각인가?’
그랬다.
유독, 마법사단장 질리언 발렌치아노가 제일.
“흠, 10분 쉬었다 하지요.”
질리언은 회의장의 모래시계를 힐끗 쳐다보곤, 몸을 일으켜 나갔다.
다른 단장들도 우르르 빠져나가고 남은 이는 셋.
에녹, 알렉세이, 체시어.
“하아.”
죄책감 때문에 내내 어두운 낯빛으로 앉아있는 체시어가 신경 쓰여, 에녹은 미칠 것 같았다.
얌전히 자기 집에 있던 오스카가 난데없이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게 된 상황….
부상을 입은 것은 테오요.
그를 데리고 전선을 이탈한 것은 체시어.
테오를 살린 것은 리리스이건만.
“매형, 한데 단장들이 왜 이렇게 마탑주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까? 뭐 아시는 거 있어요? 단순히 이번 일 때문이라기에는….”
“아, 몰랐어?”
에녹이 묻자, 알렉세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들 마탑주를 별로… 썩 좋아하지는 않아.”
“예? 왜요?”
“으음. 들어보니까, 다들 한 번씩 당했더라고.”
“뭘요?”
“마탑주의, 그… 독설?”
“독설?”
오스카의 말투 때문일까?
물론 에녹도 4년 내내 질리도록 들었지만, 거슬린 적 없었다.
게다가 이해해 줘야 하지 않나?
하루 종일 마탑에 틀어박혀 햇빛도 못 보고 일만 하는 사람인데.
그 정도쯤은 예민할 수도 있다.
‘별걸 다 트집이네.’
생각하며, 에녹은 한숨을 쉬었다.
이때의 에녹은 잘 몰랐다.
에녹과 리리스를 대할 때 오스카의 태도는 매우 상냥한 편이라는 것을.
* * *
“…그래서, 노력은 했는데. 일주일밖에 못 벌었어.”
황실에서 돌아온 아빠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했듯, 오스카가 테오를 낫게 한 사실 때문에 난리가 났다.
실은 내가 싼 똥을 대신 치워 줬을 뿐인데, 대단한 마법을 혼자만 알고 있던 얌체가 되어 버린 오스카.
‘미안해요, 스승님….’
마법을 독식한 이유에 대해 오스카를 추궁하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란다.
“뭐라고요? 일주일?”
입에 머리끈을 물고 내 머리를 땋아 주고 있던 오스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진짜?”
그는 “허어.” 탄식하며 내 머리를 마저 묶었다.
아빠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힘들겠지? 너무 촉박하니까. 내가 다시 가서, 어떻게든 며칠이라도 더 벌어 볼….”
“아니, 뭐래! 거기 서요!”
오스카가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나가려는 아빠의 팔을 잡았다.
“촉박한 게 아니라, 그 반대. 늙은이들이 당장 나 데려오라고 난리 쳤을 텐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벌었대?”
“응?”
“그렇게까지 필요 없어요. 거의 다 만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아빠의 눈이 커졌다.
“정말이야? 그….”
아빠는 나를 가리켰다.
“…프리메라의 능력이랑 비슷해 보이는 마법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걸, 5일 만에?”
“예, 뭐. 아직 완성은 아닌데, 곧 되겠지. 오늘 아니면 내일?”
오스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야, 너 잘 때 안고 자는 거는?”
애착 인형, 토순이.
뗄 나이가 되긴 했는데 정들어서 여전히 같이 잔다.
“가져와.”
“네!”
나는 방에 가서 침대에 있는 토순이를 가지고 나왔다. 오스카가 토순이를 가방에 넣어 줬다.
와중에도 아빠는 믿기지 않는지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게 진짜 된다고?”
“아빠, 우리 스승님 천재야. 의심하지 마.”
“일로 와.”
오스카가 또 불렀다. 그는 다 싼 가방을 내 옆구리에 메어 줬다.
“빠트린 거 없지?”
“네에!”
그리고 아빠 옆에 나를 세운 뒤, 마주 보고 말했다.
“이제 가요.”
“그, 마탑주….”
“뭐요.”
“정말 고마워. 항상 신세만 지네.”
아빠가 오스카의 어깨에 두 손을 턱, 얹고 덧붙였다.
“당신도 내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바로 달려갈 테니까!”
“맞아요!”
아빠는 나 때문에 기꺼이 귀찮은 일에 휘말려 준 오스카가 고마워서 죽겠는 모양이었다.
“최고의 천재! 최고의 마탑주!”
냉큼 오스카의 옆으로 가 양손을 팔랑거리는 자체 효과까지 내며 주접 떠는 아빠.
“최고의 스승님!”
물론 나도 반대편에서 야광봉 대신 손을 팔랑거렸다.
“아, 좀.”
눈을 가리며 한숨 쉰 오스카가 우리 둘을 떠밀었다.
“가, 빨리. 가.”
우리는 현관에서 마지막으로 오스카에게 인사했다.
“정말 고마워. 회담은 걱정하지 마.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다 막아줄게.”
아빠는 주먹을 꽉 쥐고 위협적으로 흔들어 보였다.
“참, 나. 됐습니다. 괜한 짓 하지 마요. 내가 바보 같은 늙은이들 하나 못 이길까 봐?”
“히히. 스승님, 저 갈게요~!”
“오오냐.”
현관에 비스듬히 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오스카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늦은 밤.
퀭한 눈으로, 오스카는 흰색 쥐 한 마리를 손에 올려놓았다.
온몸이 터져 피범벅이 된 쥐는 겨우 숨만 붙은 채였다.
이내 오스카가 마나를 주입하자.
―찌직, 찍!
말끔히 원상 복구된 동물은 귀를 쫑긋 세우며 발을 굴렀다.
“큭큭.”
오스카가 쥐 꼬리를 잡아 케이지 안에 던져 넣고 일어났다.
드디어 완성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마법을, 단 5일 만에.
“하아.”
기지개를 켠 오스카가 제 이마를 문지르며 웃었다.
“나 천재 아냐?”
남이 듣기에는 다소 민망한 혼잣말이지만, 사실 그 누구도 이견은 없을 사실이다.
오스카는 방을 나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향하자, 거울에 비친 모습이 보였다.
하늘색 구름 잠옷….
괜히 피식 웃고는 칫솔을 들려는데, 멈칫.
까먹었는지 놓고 간 리리스의 것까지 두 개가 꽂혀 있었다.
“어휴, 이 칠칠맞은 기집애. 내가 그렇게 빠트린 거 없냐고 물어봤는데.”
칫솔질을 하는데, 새삼 거울 너머 혼자 선 모습이 낯설다.
뭐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양치를 했었다고….
‘기분 묘하네.’
입에 거품을 묻히고 조잘거리던 애가 없으니 너무 조용해서 그런가 보다.
이내 욕실을 나온 오스카는 휑한 거실을 보고 또 멈칫했다.
‘뭐야, 진짜.’
그동안은 거실에 나오면, 아이가 있었다.
항상 테이블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던 뒷모습이 겨우 5일 만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무심코 테이블을 훑던 오스카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또 뭐야?”
다가가니,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
그리고 접어 놓은 종이 한 장.
리리스가 남기고 간 듯했다.
“허?”
그림을 본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잘생긴 천재 스승님
못생긴 나 ㅠㅠ
못 알아볼까 봐 그림 옆에 누군지 써놓기까지 했다.
“…안 못생겼는데.”
못난이라고 자주 놀렸더니, 설마 진짜 자기가 못생긴 줄 아나?
코를 찡그린 오스카가 다음에는 접힌 종이를 펼쳤다.
편지였다.
[스승님께.
저를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도와주신 것도요.
앞으로는 스승님 걱정 안 시키고 얌전히 크겠습니다!
스승님이랑 지냈던 5일 동안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아침에 깨워 주시고 간식도 챙겨 주시고 맛있는 밥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물어보는데, 아빠 없을 때 스승님한테 가도 된다는 거 진심이시죠?
또 올게요 ☺
일이 바빠도 하루에 꼭 6시간은 주무시고 건강하세요. 젊다고 방심하면 안 돼요.
스승님은 저랑 100년 넘게 같이 건강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스승님을 아빠만큼 세상에서 제일제일 좋아해요.
(그런데 이건 아빠 삐지니까 비밀)
사랑해요♡♡♡♡]
“참, 나.”
오스카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내 한숨과 함께 다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또 멈칫.
고개를 들자 큰 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실, 넓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집 더럽게 넓네.”
새삼스레 넓다.
참, 이상하지.
짹짹거리던 애 하나만 있다 없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