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도 초조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문 앞을 막은 호위들을 한 번 힐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본다.
“저기요.”
그리고 에녹에게 속삭였다.
“나 5분 있다가 나갈 거예요.”
“뭘 어떻게 하려고?”
“쟤네 보는 앞에서 마법 풀리면 안 되잖아요. 사칭한 게 밝혀질 텐데. 우리한테 신분 빌려준 잘못밖에 없는 이 늙은이들한테 피해 가면 안 되지.”
“그렇지. 무슨 좋은 방법 있어?”
“일단 마법이 풀리더라도 보는 눈 없는 데서 풀려야지. 이 몸으로 튀는 건 어쩔 수 없고, 체시어 그 자식 오면 당신이 알아서 해명해 줘요.”
“알았어.”
에녹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스카가 곧바로 손을 들고 말했다.
“나 화장실.”
호위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뭘 째려? 마려운데 어쩌라고? 바지에 싸라고?”
“크흠. 호위대장님이 오실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면….”
“언제 오는데? 나 지금 싼다?”
“…….”
“너희 둘 중 하나가 같이 나가면 될 거 아냐. 허튼짓 안 해. 젊은 놈들이, 다 늙어빠진 내 몸뚱이 하나 제압 못 해?”
두 호위가 난처한 눈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곧,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오시지요.”
“진작 그럴 것이지.”
오스카는 호위 한 명을 대동하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곧바로 손을 쥐었다가 쫙 펴며, 제 남은 마나를 가늠해 봤다.
‘옆에 붙은 놈 발 묶어놓는 데 1만 정도 든다. 그럼 남은 마나 거의 전부인데. 튀는 건 내 발로 해야 하나.’
1분 1초가 긴급한 상황.
누군가 보는 앞에서 마법이 풀려 버리면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1초마다 쉴 새 없이 마나가 타고 있는 이 시점에, 고민은 사치.
“…어?”
오스카는 곧바로 옆에 따라붙은 호위의 발을 묶었다. 갑자기 몸이 굳은 호위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거, 거기 서십시오!”
잽싸게 달아나는 노신관을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부신관님이 달아난다!!!”
오스카는 전력 질주했다.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보는 눈은 없고.’
―타이밍 좋게 마법이 풀렸다.
바뀐 몸을 느끼며 오스카는 이를 갈았다.
‘내 마나가 구멍이 나는 날이 두 번이나 오네.’
오스카 마뉘엘.
계급, 도스.
비상한 머리는 물론이요, 100만에 가까운 마나량까지 타고난 축복받은 마뉘엘 가문의 수재.
당연히, 마나 고갈 상태는 평생에 한 번도 겪기 힘들 터.
그런데!
벌써 두 번이나 경험해 봤다!
회귀 전, 체시어를 상대할 때.
그리고, 지금.
놀랍게도 두 번 다!
‘너 때문이야! 이 기집애야!’
리리스 루빈슈타인!
이 정도면 내 인생이 너한테 저당 잡힌 게 아닌가 싶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오스카는 재빠르게 순례복 망토를 벗어서 바닥에 내버렸다.
키도, 덩치도 젊은 성인 남성으로 돌아왔으니 발 빠른 기사들이 따라붙는다고 해도 이제 걸릴 일은 없었다.
다만….
‘여기 내 얼굴을 아는 게 몇이나 되더라?’
뜬금없이 이곳에 마탑주가 나타났다면 이래저래 의심을 살 일이다.
최대한 고개를 푹 숙인 오스카는, 잰걸음으로 숙소 반대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순례단 중 고위 신관 다섯 명쯤. 그리고 체시어, 그놈이랑 리리스. 귀족 중엔 아는 놈 없고. 여기만 벗어나면 들킬 일은 없겠네.’
퍽―!
생각하며 걷는데, 누군가가 그의 왼쪽 어깨에 부딪혔다.
“에이, X발!”
“……?”
뭔 발?
오스카는 두툼한 몸집의 사내를 보며 멈춰 섰다.
벌게진 얼굴과 풀린 눈. 술 냄새.
아마 근처 주점에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나온 주정뱅이인 듯했다.
“야, 이 새끼야. 히끅. 사과, 안 하냐? 비실비실해, 보이는 게~ 히끅! 한주먹거리도 안 되겠구만~?”
“……?”
비실비실?
순간 오스카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겼다.
그 언젠가 에녹과 리리스 부녀에게 근력 부족한 펜잡이 취급당했던 이후.
오스카는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바쁜 시간 쪼개 한 시간씩은 꼭 근력 운동에 투자했다.
윗몸 일으키기로 시작해 팔굽혀펴기로 마무리하던 눈물겨운 나날들이 눈앞에 스쳐 갔다.
“어디로 간 거야!”
“너 저쪽으로 가 봐!”
그때, 뒤에서 오스카를 쫓아 나온 호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아 오래 묶어두지 못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꽤나 빨리 쫓아왔다.
‘벌써 여기까지 왔나.’
오스카는 슬쩍 다시 고개 숙였다.
금세 동료들도 불렀는지 너덧 명의 호위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는 노인은 척 봐도 키가 작고 깡마른 외형이었으니….
다행히 이쪽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멀어져 갔다.
“사과 안 하냐고, X발로마~!”
문제는 이 주정뱅이 사내놈이다.
그는 검지로 오스카의 어깨를 툭툭 밀며 계속 시비 걸었다.
“하, X발. 벙어리였나? 쯧, 면상 하나는~ 히끅! 아주 재수 없을 만큼 때깔 좋고 반반~하구만!”
이번에는 오스카의 턱을 잡고 이리 휙, 저리 휙 돌려 보더니.
“근데 벙어리라니 안됐네.”
뺨까지 툭툭, 치며 혀를 찬다.
‘이 내가 지금… 대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거지?’
실제 상황인가?
* * *
순례단은 무사히 마을에 도착했고, 나는 간만에 잠다운 잠을 잘 수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씻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체시어가 신관 할아버지들 잡아뒀다고 했지?’
마을에 오자마자 날 잡아가겠다고 했던 둘.
순례단 숙소 배정을 끝내면 체시어는 두 신관을 심문하러 나올 거고, 나도 합류하러 나왔는데….
“미치겠네! 호위대장님 알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해! 멀리 못 갔을 거야!”
“야, 이 바보야! 부신관 그 사람, 완전히 늙어빠졌던데 그걸 놓쳐?”
두 신관을 잡아둔 다른 여관에서 우르르 네 명의 호위들이 나왔다.
놓쳐? 부신관?
‘악! 설마 스카 할아버지 도망친 거야?’
나는 경악해서 뺨을 붙잡았다.
놓친 것도 문제지만, 도망쳤다는 건….
‘확실히 뭔가 있구나. 꿍꿍이가 있는 사람이 맞았어.’
호위들은 체시어에게 혼나기 전에 일을 수습하려는지 재빨리 흩어져서 떠났다.
“아우, 정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여기 섞이면 찾을 수나 있으려나?’
마을의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신관들이 왔다는 소식에 기도를 받으러 온 사람들, 곳곳의 음식점과 주점 앞에 모인 사람들….
‘와, 나 미치겠네.’
범죄자를 놓쳤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팔찌를 봤다.
어딘가로 숨어들었다면 감지할 수 있겠지.
위치 파악은, 능력자들의 능력치에 비례한다.
제임스 브라운 씨 같은 마나 괴물들은 생명력이 어마어마하게 드니 엄두도 못 내지만….
‘스카 할아버지는 늙었으니까.’
나이 먹으면 마나도 줄어든다.
‘얼마 안 들겠지?’
아마, 한 생명력 5분 정도면….
5years
띠용?!
나는 눈을 의심하며 팔찌를 다시 봤다.
정말? 다 늙은 할아버지 위치를 감지하는 데 5년이나 든다고?
내 피 같은 생명력을 5년이나 쓸 수는 없는데….
“뭐, 뭐, 이게 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설마 제임스 브라운 씨처럼 힘을 숨긴 할아버지였다거나?
“대체 정체가 뭐야!”
나는 머리를 붙잡고 경악했다.
* * *
“야아, 히끅! 말해보라고~! 진짜 벙어리야? X발, 말로, 끅! 사과 못 하겠으면, 몸으로 때울래~? 응?”
주정뱅이 사내놈은 이제 오스카의 멱살까지 잡고 탈탈 털어대는 중.
지금 오스카는 마나 고갈 상태다.
모든 마법에 통달한 마탑주라고 해도, 한없이 취약한 이 순간.
더러워도 대충 ‘미안하게 됐습니다!’ 해 주며 자리를 피하는 게 최선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아가리에….”
그의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은 결코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 뭐야? 말할 수 있었어?”
“아가리에 걸레를 물었나, X발. 너만 욕할 줄 아냐?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왜 얌전히 길 가던 나를 건드려? 뒤지고 싶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조용히, 또 신속하게 뱉어내는 말.
주정뱅이 사내는 순간 멍해졌다.
“뭘 또 멍청한 눈깔로 야리세요, 야리길. 눈 안 깔아? 그리고 너, 아까 뭐랬냐? 비실비시일? 술안주로 지 눈깔을 뽑아 드셨나. 내 어디가 비실비실이야, 이 무식한 새끼야.”
말에도 공격력이 있다면 사내는 이미 치명상이었을 것이다.
만취 상태에도 귀는 열려있는지, 쉴 새 없이 박히는 독설에 사내는 머리끝까지 분노했다.
“이, 이, 이 새끼가!”
후웅―
사내의 굵은 팔뚝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져 왔다.
그러나 오스카는 슬쩍 고개를 뒤로 젖혀 피하며 비아냥거렸다.
“어,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너처럼 무식한 놈들 특징이지. 일단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거.”
“너, 너! 내가, 히끅! 누군지 모르나 보네~?”
“내가 그걸 알아야 하냐? 누군데? 인생 최대 업적이 태어나서 숨 쉰 게 전부인 패배자 새끼?”
“…….”
“아니면, 배운 거라곤 밤늦게까지 술이나 처먹고 걸레 문 아가리로 선량한 사람한테 시비 털기가 전부인 지능 떨어지는 개백수?”
오스카는 킬킬거렸다.
“둘 중 뭔데?”
체급 차이는 좀 나지만….
오스카는 만취 상태인 사내의 둔한 몸놀림 정도는 피할 자신이 만만했다.
반쯤 미쳐 돌아버린 주정뱅이가 품 안에서 칼을 꺼내기 전까지는.
“……?”
이건 예상 못 했다.
주먹질은 그렇다 쳐도, 난데없이 칼까지 나올 줄은.
일평생 최소한의 상식이 보장되는 제도 안에서만 살아 봐서 말이지.
그때.
“스승님?”
익숙한 목소리에, 오스카가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뭐야, 애가 왜 여기 있어?
제 눈을 의심하듯 입을 떡 벌린 리리스의 표정에, 오스카가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소리쳤다.
“야! 저리 가! 저리 멀리 가! 이 새끼 완전 미친놈이니까! ……아.”
푹.
순식간에 달려든 사내가, 단도를 오스카의 왼쪽 어깨에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