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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 (165)화 (166/261)

‘와, 아프다.’

생경한 고통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오스카 마뉘엘.

그는 태어나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마법으로 해결했지, 몸을 써본 일이 없었다.

당연히 크게 다쳐본 기억도 없다.

더럽게 아팠던 적은, 회귀 전에 체시어에게 죽기 전까지 털렸을 때뿐….

“헉!”

“뭐, 뭐야….”

칼부림을 목격한 주변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선을 모으면 안 되는데….

“너, 히끅! 오늘 죽어, 봐!”

주정뱅이 사내가 다시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어, 어어…?”

오스카의 얼굴에 닿기 전에, 휘청.

취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억!”

그의 움직임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오스카만 깨달았다.

‘하, 씨. 이거….’

곧바로 돌아보자, 사색이 된 리리스가 벌벌 떨다가 잽싸게 달려왔다.

“빠, 빨리 가요!”

리리스는 무작정 오스카의 손을 잡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수상한 신관들을 심문하러 이동한 체시어는 부신관이 달아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대체 그게…!”

“죄송합니다, 대장님. 저는 주신관님을 감시하느라 바깥 사정은 잘 모릅니다. 대장님의 명령은 없었지만, 급한 상황인지라…. 일단 부신관님을 함께 찾아보려고 네 명이 더 갔습니다.”

체시어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제 머리를 쥐었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이봐!”

그때,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주신관이 끼어들었다.

체시어가 곧바로 물었다.

“부신관이 도주한 이유가 뭡니까. 무슨 목적으로 순례단에 합류했는지 실토하십시오.”

“목적? 아니, 일단…. 우리를 왜 잡아 가둔 건데? 아니다, 지금 이런 말은 필요가 없겠구나.”

주신관은 방 안에 함께 있는 호위를 가리켰다.

“내보내 줘. 단둘이 말하고 싶으니까.”

체시어는 순간, 주신관의 이해 못 할 태도가 의아했다.

부신관이 대기 명령을 어기고 도주까지 했다면 분명 찔리는 점이 있을 텐데….

“나가 있어.”

하지만, 시간 낭비를 하기 싫었던 체시어는 곧바로 명령했다.

호위가 방을 나갔다.

무슨 꿍꿍이가 있든, 고작 노신관 한 명을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아.”

동시에 체시어는 멍해졌다.

주신관이, 눈앞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공작님?”

에녹이었다.

“이게 무슨….”

“미안하다, 체시어. 말하자면 긴데, 너는 말 안 해도 이해하겠지?”

“…….”

체시어는 곧바로 리리스가 엿들은 대화를 다시 떠올려 봤다.

“여자로 하겠다느니, 노인만 아니면 된다느니…. 내 경계가 심하다고 곤란해하는 거 있지?”

“나 체력 떨어지는 것도 걱정했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멀쩡할 때 나를 데려가겠대!”

“아.”

체시어가 한숨을 터뜨리며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처음으로 리리스 혼자 떠나게 된 장거리 여행.

걱정된 에녹이 따라붙은 거다.

“그럼 혹시 부신관님은….”

“맞아, 마탑주야.”

체시어가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저한테만이라도 귀띔을 해 주셨으면….”

“그럴 새가 없었어. 끝까지 아무한테도 안 들킬 생각이었거든. 갑자기 우리를 감금할 줄 알았겠어?”

“리리스가 두 분 대화를 엿듣고 무슨 나쁜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저도 리리스 말이 맞다고 생각했고….”

“대화를 엿들었다고? 무슨 대화? 아니, 일단 지금은 바쁘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자. 우선.”

에녹이 다시 늙은 주신관의 모습으로 변했다.

“나 마탑주 찾으러 가야 해! 너는 쫓으러 간 호위들 다시 불러 줘!”

“…예, 알겠습니다.”

* * *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무작정 오스카의 손을 잡고 달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부신관, 스카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큰길가를 쭉 걷다가….

익숙한 백발 머리에 키 큰 남자가 보여서 ‘와, 스승님이랑 닮았다!’ 하며 놀랐을 뿐이고….

근데 자세히 보니 진짜 오스카라 “스승님?” 하고 부르자마자 그 앞에 있던 남자가 칼을 꽂았다?

‘뭐냐고, 대체!’

고민할 겨를은 없었다.

능력을 써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남자를 넘어뜨리고 나니, 다음은 얼른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게다가 오스카가 왜 여기에 있든, 일단 아는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여기!”

“하, 씨….”

칼침 맞은 오스카의 상태가 걱정돼서 멀리는 못 가고, 눈앞에 보이는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오스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하윽.”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어깨에 박힌 칼을 잡더니, 신음과 함께 쑥 뽑아냈다.

“으아아, 젠장!”

“…….”

나는 그 끔찍한 모습에 질끈 눈을 감았다가, 얼른 다가갔다.

손을 뻗는데―

“하지 마!”

―탁!

오스카가 거세게 내 손을 쳐냈다.

그리고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쥐고 무서운 얼굴로 노려봤다.

“짜증 나는 짓… 하지 마…. 마나, 차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마나 차면?

지금은 마나가 없단 뜻인가?

왜?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능력을 쓰려고 하니 죽일 듯 노려보는 저 표정.

오스카의 이런 태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싫어요!”

나는 빽 소리치고 곧바로 능력을 썼다. 굳이 가까이 가서 닿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1sec

1초. 그냥 숨 쉬는 동안에도 닳는 수준의 생명력.

상처가 아물자, 오스카가 부들부들 떨더니 무섭게 소리쳤다.

“하지 말라니까!!!”

“아, 귀 아파!”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대체 왜 말을 안 들어! 내 말이 우스워?!”

그는 항상 이랬다.

상처 치유나 회복에 드는 생명이 가장 저렴하다는 걸 알면서도.

절대, 절대 못 쓰게 했다.

그게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안다.

쉽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서, 내가 능력을 쓰는 일에 무뎌질까 봐….

“내가 마나 차면 알아서 한다고 놔두라고 했…!”

“뭘! 대체 뭘 놔둬요!”

“…깜짝아.”

“난 스승님 1초라도 아픈 거 보기 싫은데!”

“…….”

“이거 낫게 하는 데 1년이 들어요, 10년이 들어요? 1초면 되는데 뭐가 문제예요?!”

“너 바보야? 내가…!”

오스카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생명력 많이 드니까 능력 쓰지 말란 뜻이야?”

“알아요! 안다구! 치료하는 데 조금밖에 안 드니까 생각 없이 막 쓰지 말라고 말리는 거!”

“아는데, 씨. 왜…!”

“근데 저는 스승님 아프면 어차피 1년이 들어도 10년이 들어도 쓸 거예요!”

자꾸 자기 말을 막고 내가 소리치자, 오스카가 놀라 눈을 껌뻑였다.

“아니, 기집애가 목소리만 크면 다인 줄 알아….”

내 기세에 오스카는 사납게 뜨고 있던 눈을 깔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또 빽 소리쳤다.

“위험한 일 안 생길 거라며! 그런데 이게 뭐야!”

“……?”

나는 어이없었다.

“저는 안 위험했는데요?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건 스승님이죠. 이상한 사람이랑 시비 붙어서 칼까지 맞았잖아요.”

“…….”

할 말이 없는지 오스카는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 쉬었다. 그러다 한풀 꺾인 기세로 중얼거렸다.

“…내 말은, 여기까지 왜 혼자 나왔냐고. 해도 다 떨어졌는데. 아까 그런 미친놈들이 사람 가려 가면서 시비 터는 줄 알아?”

“아, 그건….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순례단 중에 납치범이 있는 것 같은데 도망쳤거든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뭐? 장난해?”

오스카가 사색이 됐다.

“납치범까지 있는 순례단이 안 위험하다고?”

“저도 그게 이상하다니까요? 원래는 진짜 아무 위험 없었어요! 아르고니아에서 온 신관 할아버지들인데, 수상해도 너무 수상해요.”

“……?”

“도망친 건 부신관 할아버지인데 제가 능력 써서 어디 숨었나 찾아보려고 했더니 5년이나 들더라니까요? 뭔가 힘을 숨기고 있나 봐요.”

“…….”

“5년이나 쓸 수는 없어서 더 멀리 도망치기 전에 직접 찾아보려다가 거기까지 간 거예요.”

왜인지 오스카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대꾸가 없었다.

“에휴.”

나는 그의 상처가 제대로 나았는지 살펴보려고, 다가가서 피 묻은 어깨 자락을 만지다가 물었다.

“근데 마나가 왜 없어요?”

“…다 썼으니까 없지.”

“대체 스승님이 마나를 다 쓸 일이 뭐가 있는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스카가?

능력자 중에 아빠랑 체시어 다음으로 마나 빵빵한 사람이?

“…….”

왜인지 오스카는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또 입을 다물었다.

“대답 안 하실 거예요? 그리고 왜 여기 있어요?”

“너 데리러 왔다.”

“네?”

“대체 여길 왜 와? 고생만 죽어라 하는데!”

“스승님이 허락해 줬잖아요. 가도 된다고 해 놓고 왜 이제 와서 데리러 오는데요?”

“허락한 적 없거든?”

“있거든요?”

“못 들었어.”

“네?”

“…못 들었다고. 그때. 다른 생각 하느라.”

“허얼.”

어쩐지 너무 쉽게 허락해 주더라.

능력 써서 사람들 살리러 간다고까지 사실대로 말했는데, 고민도 없이 그러라고 한 게 좀 이상했었다.

“됐고, 집에 가자.”

“안 돼요.”

“왜? 너 순례 끝까지 가려는 이유가 뭐야? 몰렉에 뭐 있지?”

“…….”

저번에는 못 들어서 그런 거고, 이제 제대로 들으면 난리가 나겠지.

나는 말을 돌렸다.

“여기서 계속 말하긴 그렇구요. 일단 스승님, 순례단 중에 스승님 얼굴 아는 사람들 있죠? 걸리면 곤란하겠죠? 어디 숙소라도 잡으러 가요.”

오스카도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X바아…. 뭐~? 패배자? 개백, 수? 히끅!”

우리가 들어왔던 골목의 반대편.

불길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오스카는 본능적으로 멈춰 서서 숨을 삼켰다.

곧 아까 본, 오스카에게 대뜸 칼을 꽂았던 미친놈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와.

제발 그대로 쭉 가라….

여기 보지 말고….

“으응?”

내 바람을 비웃듯 남자는 바로 골목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우리, 아니, 정확히는 오스카를 발견하고 눈이 뒤집혔다.

“너 이 새끼…! 여기 있었구나~?”

“하, 씨. 집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랬더니.”

오스카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곧바로 팔찌를 봤다.

되도록 눈에 안 띄게.

남자가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면 바닥에 머리를 꽝 박게 하고 도망칠 생각으로….

“하지 마.”

그러나 오스카가 내 손목을 꽉 잡아 팔찌를 가리며 뒤로 보냈다.

“…뭐 하시게요? 마나 없다면서요?”

못 미더운 내 목소리에 오스카가 발끈하며 돌아봤다.

“야, 말투 뭐냐? 그 표정은 또 뭐고? 내가 너 하나 못 지키겠냐?”

“그건 아니지만, 지금은 제가 지켜드려야 할 것 같은데….”

“있어 봐! 나 운동 했어!”

패기만만한 태도로 오스카가 다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와. 또야?”

어느새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저 미친놈은 도대체 칼을 몇 개나 가지고 다니는 거야!”

오스카의 목소리가 신호탄이 된 듯, 남자가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으악!”

그러나 순식간에 남자의 뒤를 덮친 그림자에, 허벅지를 강타당하고 털썩 무릎 꿇었다.

뜬금없이 남자를 습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릭 할아버지?’

노신관, 릭이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 뒤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꽝!

무릎 꿇은 남자의 뒤통수를 신속하게 눌러 바닥에 처박은 릭.

“에헤이, 사람 참.”

동시에 칼을 든 팔도 붙잡았다.

“이렇게 위험한 걸 막 휘두르고 다니면 어떡해.”

곧, 숟가락 하나도 들기 힘들어 보이는 깡마른 팔로….

우드득.

“으어어억!”

남자의 굵은 팔뚝을 가볍게 돌려 꺾는다.

힘이 빠진 남자의 손에서 칼이 툭, 떨어지자 릭은 그걸 주워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는 버둥거리는 남자의 목뒤를 손날로 탁, 내리쳐 가볍게 기절시키기까지.

……깔끔한 마무리.

“…….”

“…….”

“…….”

이내 정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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