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거기는 왜 가 있었던 게냐.”
다정하게 아이를 살피는 황제를 보며, 오스카는 가만히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쿵, 쿵, 쿵, 쿵.
터질 듯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많이 놀랐나 보군.”
아이는 숨도 쉬지 못했고, 작은 몸은 병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이제 괜찮으니 안심해라.”
“…….”
“쯧. 말할 기운도 없는 게야?”
“죄, 죄, 죄… 죄송….”
“내게 죄송할 게 무어냐. 사과가 아니라 감사 인사라면 해도 좋다. 혹시 네가 잘못될까 봐 내가 이리로 데려온 것이니 말이야.”
“네, 네….”
아이는 빠르게,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고였던 눈물이 후둑 떨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울지 말고.”
“네…. 우, 울어서….”
황제의 말을 따라야 살 수 있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는 입꼬리를 올렸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기괴한 표정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울어서 죄, 죄송합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
“가엾어라. 충격이 컸겠지. 앞으로 그런 곳엔 얼씬도 말아라. 알았어?”
“네, 네….”
리리스는 한계까지 내몰려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사실은 오스카만이 알았다.
그 또한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지금까지 그를 괴롭혀온 상상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있었다.
“마탑주, 이만 표정 좀 풀게. 애는 무사하잖나.”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황제의 손짓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음을… 피부로 느낀 순간.
“예….”
두려움과 지독한 무력감이 그를 옭아맸다.
* * *
아비규환.
이곳저곳에서 불티가 튀고 새된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콜록, 콜록.”
체시어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여자를 감싸고 실드를 둘러주며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꽤 많은 사람을 대피시켰지만, 아직 고립된 이들은 많았고 불길은 계속 몸집을 불렸다.
‘빌어먹을.’
체시어는 모두를 안전하게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의감 때문에? 아니.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저 밖에서 떨고 있을 리리스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몰랐다.
‘안 돼. 빨리….’
불안함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절반은 저쪽으로 가! 나머지는 나랑 이쪽 건물을 수습하자!”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 체시어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젬?”
제미언 트라하.
어엿한 용병 길드의 수장으로 활약 중인 자신의 전우였다.
그녀의 뒤로는 열 명 남짓한 단원들이 보였다. 디에즈 계급의 능력자들이었다.
“어? 체시어!”
젬이 체시어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나도 도울게! 갑자기 리리스가 우리 길드까지 달려왔지 뭐야!”
“…….”
또, 가만히 있지 않고….
잘된 상황인데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리리스를 떠올리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니 계속 옆에 붙어있을 수도 없는데….
“리리스는 어디 있어?”
“응? 같이 다시 여기로 왔지. 걔는 안전한 곳에 있을걸. 걱정 마.”
“그래.”
“아, 그리고. 다른 길드에도 와 달라고는 해 뒀는데, 아마 기대하긴 힘들 거야. 능력자들 인력 하나하나가 길드 재산이라서… 잘못되면 큰일이거든.”
와중에도 제 단원들에게 손짓으로 이리저리 지시하던 제미언이, 민망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늦어서 미안. 실은 나도 불난 건 알았지만, 봉사할 마음은 없었어. 리리스 아니었으면 안 왔을 거야.”
“괜찮아. 이해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만 도와줘.”
“그래, 너도 다치지 말고!”
능력자 용병들의 지원은 어쨌든 반가운 일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리리스….”
체시어는 다음 건물로 향하기 전 리리스부터 찾았다.
“마검사단장님!”
그때, 대원 하나가 먼저 체시어를 발견하고 허둥거리며 달려왔다. 리리스를 지키라고 부탁해 둔 자였다.
“고, 공녀님이 사라지셨습니다!”
“…뭐?”
순간, 눈이 뒤집혔다.
턱 차오른 숨과 함께 소리쳤다.
“잘 보고 있으라고 했잖아!”
“아뇨, 그게…. 아니, 이게….”
“정신 차리고 제대로 말해! 어디로 갔지?”
“어, 어디로 가신 게 아닙니다! 용병 길드에 갔다 와서, 다시 대피해 있었는데… 그런데 그냥… 그냥 눈앞에서 번쩍하더니 사라지셨어요.”
“뭐?”
“죄, 죄송합니다. 이게 마, 말도 안 되는 변명처럼 들리실 건 아는데… 진짜 갑자기 사라지신 거라….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대원은 문책이 두려운지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
그 뒤로도 변명처럼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더 있었지만, 체시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새하얘진 머릿속.
삐―하는 이명만 귓가에 쏟아졌다.
“리리스….”
갑자기 사라진 리리스.
수천 번 머릿속에 그렸던 최악의 상상 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었다.
리리스를 그런 식으로 빼앗아갈 수 있는 이가, 딱 한 명 있지 않나.
‘그래.’
머리가 차가워졌고, 체시어는 더 고민하지 않았다.
‘어쩌면 잘됐어.’
지긋지긋하다. 끝내 버리자.
그는 주저 없이 내달렸다.
* * *
‘젠장.’
한순간,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집중했던 마나가 흐트러지자 매캐한 연기가 폐부를 쑤셨다.
지금 악시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원을 기다리며 사람들을 건물 안에서 빼내는 게 다였다.
‘리리스….’
아이 때문에 마음은 더 초조했다.
악시온은 사람들을 구해 나올 때마다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했고, 연신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쪽이… 캑! 아, 숨 쉬지 말고!”
그때, 어린아이 한 명을 이불에 감싸 구하려는 이가 보였다.
꼭 사내처럼 보이는 붉은 머리의 용병, 제미언.
함께 출정하는 일이 잦아 악시온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봐! 괜찮나?”
“아, 공작님! 콜록, 콜록.”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 너도 이만 밖에서 대기해.”
악시온이 급히 통로를 확보해 주며 말했다.
“앗! 그럴 순 없습, 캑!”
“말 들어!”
제미언은 마나가 부족해 실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그녀는 지금 거의 맨몸이었다.
“지금까지 도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곧 지원이 올 테니, 넌 밖에서 내가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지원이… 콜록, 빨리 오지는 않을걸요. 저도 계속 돕겠습니다!”
힘겹게 계단을 내려가며 말하는 제미언에, 악시온이 입술을 물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
평민 거주 지역에 난 화재에, 고급 지원 인력들이 발 빠르게 나서줄 리 없다는 걸.
‘미치겠군.’
겨우 제미언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온 그때.
악시온은 안에 들어갈 때와 사뭇 달라진 풍경에 놀랐다.
‘이게 무슨…?’
불길이 반쯤 잡혀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능력자들이 곳곳에 보였다.
마탑의 연구원들이었다.
“와, 세상에!”
제미언이 환호했다.
“공작님 진짜 최고십니다! 저 사람들 공작님이 부르니까 온 거예요? 와, 역시! 대단해!”
시간상, 황제의 허락 없이 지원을 왔음이 분명했다.
한시름 놓기도 잠시.
“리리스! 리리스는….”
기다리고 있던 대원 한 명이 달려왔다.
“각하!”
“어, 그래! 애는 어딨어?”
“사, 사라지셨습니다.”
“뭐?”
악시온의 눈이 커졌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사라지다니?”
대원은 자기도 답답한 듯 허둥거리며 말했다.
“저희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눈앞에서 그냥 번쩍 사라지셔서….”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치려던 악시온이 숨을 삼켰다.
설마?
“잠깐. 그럼 체시어…. 체시어는 어디 있지?”
“마검사단장님이라면… 공녀님이 사라진 걸 아시고는 곧바로 현장을 떠나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
눈앞에서 사라진 리리스.
그걸 본 체시어가, 어디로 갔을까.
“넌… 뭐 때문에 싸우냐? 에녹이 시켜서?”
“아니요.”
새하얘진 머릿속에 기억들이 돋아났다.
“난 네게 반란에 동참하는 이유가 있었으면 한다. 너만 황제의 목을 벨 수 있으니까, 뭐 그런 이유 말고.”
반란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알게 된 건, 체시어의 비밀이었다.
성력이 없는, 그래서 프리메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능력자.
황제에게 대적할 수 있는 검.
“살리려고요.”
살리려고?
황제의 폭정에 앞으로 죽어 나갈 이들을?
당시에는 그 말이, 대의를 위해 검을 쥐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제가 얼마나 강해졌어요?”
“공작님과 아버지가 실패해도, 저 혼자 황제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졌어요?”
체시어는 옛날부터 꽤 자주,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어딘가 뒤틀린 체시어의 눈빛을 발견한 날. 악시온의 마음에는 불길함이 싹을 틔웠다.
“아버지, 이제는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너 혼자 황제를 죽이러 가겠다는 거냐?”
“…….”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다 같이 살자고 하는 일인데, 준비도 안 된 마당에 대뜸 쳐들어갔다가 너도 같이 단두대 갈래?”
왜일까?
대체 왜, 아직 뭣도 모를 나이에 너에게는 반란의 의지가 충만했던 걸까?
그 이유를….
악시온은 이제야 깨달았다.
대의나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살리려고요.”
리리스를.
“무조건, 죽여야 해.”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오래전 반란을 얘기하며 에녹이 했던 말도,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죽이지 않으면 분명 죽을 것이다.
프리메라인….
리리스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요?”
단신으로 프리메라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
“안 돼….”
체시어는 지금, 황제에게 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제발…!”
악시온은 자신이 늦지 않길 바라며, 미친 듯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