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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180화 (181/261)

180화

‘혼자 가겠다?’

모아르테 제도.

죽으라고 보내는 곳임을 알면서도 이리 자신만만하다니.

‘뭐,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황제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출정지는 비밀에 부치도록 하지. 일단은 북부 쪽이라 알릴 거야. 영 위험한 곳이다 보니, 미리 알게 되면 자네와 함께 출정할 3군들의 이탈이 걱정되잖나?”

“…예, 지당하십니다.”

“악시온 경.”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악시온이 고개를 돌렸다.

“모아르테는 내가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곳이라 꼭 정복하고 싶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네가 실패라도 한다면.”

황제는 뱀처럼 웃으며 말했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 군을 보낼 생각이야.”

“…….”

“준비를 마치고 출정 날짜를 정해 알려주게. 자네가 출정하고 닷새 후에 수습할 군대를 보낼 테니.”

악시온의 눈이 커졌다.

다소 당황한 듯한 표정.

“…알겠습니다.”

이내 그가 회의장을 나섰다.

* * *

모아르테.

중부에서 동쪽으로, 바닷길을 타고 세 시간 남짓 이동하면 나오는 제도(諸島).

그곳은 제국의 영토가 아니다.

아니, 그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다.

‘마수’라는 존재가 처음 생겨났다 전해지는 섬.

그곳을 정벌하려 했던 수많은 이들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종류의 마수가 있는지도 모를 뿐더러, 뱃길로만 이동해야 하므로 비상시 탈출할 수도 없었다.

현 제국 최강의 능력자라 일컬어지는 에녹마저 생사를 장담하기 힘든 곳.

따라서, 마시고 죽으라는 의미로 황제가 내린 독배였다.

“……자네가 출정하고 닷새 후에 수습할 군대를 보낼 테니.”

이는 너의 시신을 확인하겠다는 말로, 탈영할 생각 말라는 뜻이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 군을 보낼 생각이야.”

이는, 탈영한다면 너 대신 다른 능력자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이었고.

‘역시나, 빠져나갈 구멍을 철저히 막아버리는군. 황제가 호락호락한 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복도를 가로지르던 악시온이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러면 방법이 없는데.”

황제는 그 땅이 욕심나서 출정을 명한 것이 아니다.

확실하게.

악시온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 * *

저녁 식사 시간.

“어디냐?”

넷이 함께 밥을 먹는데 아빠가 대뜸 악시온에게 물었다.

앞뒤 다 자른 질문이었지만, 나는 알아듣고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 황제에게 불려갔었나 보네. 빠르기도 해라.’

화재 사건이 있고 나서 딱 이틀 밖에 안 지났건만, 황제가 악시온을 부른 모양이었다.

그는 황궁에 난입한 악시온에게 보복성의 출정 명령을 내렸겠지.

“만만한 곳은 아닐 텐데. 내 출정 날짜 피해서 잡아. 같이 가게.”

“아, 그럴 필요 없다.”

악시온이 수프를 떠먹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북부 쪽이거든.”

“그래?”

아빠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엥. 북부라고?’

나도 의외였다.

“어차피 요즈음 네가 이곳저곳 다 들쑤셔 놨으니 난 편하게 다녀오는 시늉만 하면 돼. 신경 쓰지 마라.”

“아버지.”

체시어가 들고 있던 식기를 내려두고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받으신 징계니, 함께 가겠습니다.”

“아아, 아니다.”

악시온이 손을 휘휘 저었다.

“너도 알잖아? 이번 일은 마침 좋은 명분이었을 뿐이다. 언제가 됐든 또 출정 명령은 떨어졌을 거야.”

“그것도 어차피 저 때문이니까요.”

체시어의 말에, 모두 침묵했다.

‘맞지. 체시어 때문이지.’

사실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악시온은 황제의 표적이었다.

왜냐고?

우리 반란군의 책사, 조제프 아저씨는 말했다.

“아쉽게 됐지만, 황제가 체시어 경을 손에 넣기로 마음먹었다면… 아마 악시온 경은 반란을 끝까지 함께하실 수 없을 겁니다.”

체시어의 양부이면서 아빠와 가장 가까운 악시온.

그러니까 황제가, 자신과 노선을 달리하는 아빠와 체시어를 완전히 떼어놓고 그를 손에 넣으려면….

‘악시온이 걸림돌이지.’

“악시온 경을 제거할 생각이라면 군권을 이용함이 빠르겠지요. 사지에 몰아넣을 기회를 만들 것입니다.”

조제프는 그때가, 악시온이 반란군에서 하차할 시점이라고 했다.

“죽을 수는 없으니 출정 명령에 응하고 탈영하시면 됩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악시온 경은 숨죽이며 지내야 하겠지만요.”

원작과 달리 리브르 공작 가문이 반란군에서 빠지게 되면….

‘엄청난 전력 손실이야.’

조제프도 그걸 알아서 매우 아쉬워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막아 볼 수 있을 거야!’

이번 화재 사건이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한 이유였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는 황제와 협상할 수 있는 위치가 됐으니까.

‘그런데 왜 북부지?’

예상과 달리, 황제가 이번에 출정 명령을 내린 곳이 북부란다.

죽으라고 악시온을 보낸다면, 딱 한 곳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 달라진 상황에 고뇌하는 사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떨지 말고, 넌 집이나 지켜.”

먼저 일어난 악시온이 체시어의 어깨를 툭 치고 식당을 나섰다.

* * *

“공주, 치카치카 했어?”

“하느 듀…. (하는 중….)”

밥을 먹은 뒤 지도를 펼쳐 두고 이를 닦는데 아빠가 뒤에 다가왔다.

“뭐 해?”

“지리 검부. (지리 공부.)”

“지리 공부? 갑자기?”

[모아르테 제도]

큰 섬 하나와 자잘한 섬 여러 개로 이루어진 모아르테 제도.

‘아니, 악시온을 제거할 좋은 기회인데 여기에 안 보낸다고? 황제가 내 생각보다 멍청한 놈이었나?’

여기는, 그 어떤 능력자가 가도 살아나올 수 없는 사지(死地)다.

‘아, 에녹 루빈슈타인만 빼고.’

원작의 후반부.

반란을 앞두고, 몇몇 권력자들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읽고 만 황제.

대륙 통일은 고사하고 자기 자리까지 위협을 느낀 황제는 에녹 루빈슈타인을 제거할 꾀를 낸다.

아빠를 제외한 다른 능력자들을 소집해 모아르테의 정벌을 명한 것인데….

“공주야, 치카치카를 언제까지 할 셈이야? 와그르르, 하고 빨리 뱉어.”

“웅.”

나는 손수 양치 컵을 가져다주는 아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에녹 루빈슈타인… 이 괴물!’

황제의 의도대로, 아빠는 출정 명령을 받은 능력자들을 대신해서 칼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군대 하나 없이, 단신으로.

‘죽기를 각오한 출정이었지.’

모아르테는 아빠도 성공을 장담치 못하는 사지였기에, 최소한의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는 자신이 없더라도 체시어가 충분히 뒤를 맡아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시점이었으니까.

‘솔직히 아빠 죽을 줄 알았는데.’

읽으면서 제발 가지 말라고 내적 비명을 질러댔으나, 아무튼 아빠는 죽으러 갔다.

그리고… 안 죽었다.

혼자서 모아르테를 싹 정리한 뒤 제국 깃발을 꽂아 놓고 돌아왔다.

“아빠, 나 궁금한 거 있어.”

“응? 뭐?”

“이 섬나라 말인데… 왜 대륙이랑 엄청 가까운데 제국 땅이 아니야?”

“아, 거긴.”

내가 지도에서 모아르테를 짚으며 묻자, 아빠가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했다.

“위험한 곳이라서. 지금까지 거기 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거든.”

“글쿤.”

“그래서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정보가 하나도 없지. 알려진 건….”

아빠는 잠시 생각하며 덧붙였다.

“…낮에는 엄청 한가롭다는 거? 아마 밤 되면 괴물들이 나오는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야.”

오케이, 확인. 기본적인 정보는 이미 다 갖추고 있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 있는 괴물도 잡아야지?”

“그럴 필요 없어. 거기는 사람들 안 사니까. 괴물들이 바다 건너 대륙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잡아야지.”

“엥? 아아.”

아빠가 탄성을 터뜨렸다.

“공주, 삼촌이 걱정돼서 그러는구나?”

“응. 조제프 아저씨가 그랬잖아. 황제 폐하가 삼촌 무서운 데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고.”

“아무리 황제 폐하라도, 삼촌이 뭔가 잘못하지 않는 한 대놓고 여기 가라고는 못 할걸.”

“그치? 그래서 좀 이상하다니까, 아빠?”

이번에는 악시온을 이곳에 보낼 명분이 있었는데.

“왜 이번에 여기 안 보냈지? 분명 삼촌한테 대놓고 벌주겠다고도 말했었는데?”

“…….”

내 질문에, 아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침묵했다.

“근데 아빠, 여기 괴물 빨리 잡아놓긴 해야 해.”

모아르테는, 언제가 됐든 토벌해 놔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도 악시온을 언제 여기로 보낼지 모르니까.

또, 원작처럼 모아르테의 정벌을 명하며 다른 이들을 인질 삼을 수도 있고.

“아빠가 몰래 다녀와. 꼭 배 타고 안 나가도 좌표 찍고 이동 마법 써서 가면 되니까….”

나는 지도를 착착 접으며 말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최대한 빨리! 중간에 황제 폐하 마음이 바뀌어서 삼촌 여기로 보내버리면 큰일이니까, 삼촌 출정하기 전에… 으응?”

왜인지 작게 입을 벌린 아빠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공주 너….”

아빠는 울컥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왜라니! 왜라니!”

아빠가 내 어깨를 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아빠도 여기 무슨 괴물이 사는지 모른다니까?”

“그게 뭐….”

갑자기 흥분한 아빠를 보며 의아해하던 나는, 뒤늦게 내가 뭘 빠트렸는지 깨달았다.

‘앗! 내가 앞뒤를 다 자르고 말했구나!’

상처 하나 없이 모아르테를 정벌하고 돌아왔던 아빠의 활약은 나만 알고 있다.

자신의 강함을 잘 알고 있던 아빠인데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해, 원작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갔던 곳이 아닌가?

그러니 원작을 스포일러 해주는 것이 먼저였는데!

“아, 아빠! 오해야! 내가 중요한 말을 안 했어! 그니까 이게….”

서둘러 해명하려는데, 아빠는 이미 충격받을 대로 받은 표정이었다.

“공주는… 아빠 없어도 돼?”

헉.

“아, 아니야…. 제임스 씨, 미안해. 그런 게 아니야.”

실수해 버렸다….

나는 허둥거리며 아빠 품에 안겨들었다.

“아빠, 상처받았으면 미안해…. 사실 난 거기 가도 아빠 무사할 거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라고 말해버렸어.”

“…….”

“아빠 나중에 혼자서 거기 괴물 싹 다 잡고 온단 말이야. 아빠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거든.”

“그렇구나.”

해명에도 댓 발 튀어나온 아빠의 입은 들어갈 줄 몰랐다.

그래, 서운할 만도 하지.

미래를 아는 것과는 별개로, 딸이 대뜸 사지에 갔다 오라는데 아빠는 당연히 섭섭할 테다.

“정말 미안. 아빠도 무서울 텐데.”

“맞아. 아빠도 무서워. 옛날에는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지금은 죽는 거 엄청 무서워.”

“그, 그치? 아빠도 당연히 사람이니까….”

“공주 때문이야. 아빠 없이 혼자 있을 공주가 걱정되니까. 공주 지켜 줄 사람이 없어지는 게 무서워.”

“아?”

아빠의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원작에서 주인공이 무서운 것 하나 없이 굴었던 이유는 지킬 사람이, 잃을 것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기 안 가겠다는 말은 아니야. 실은 아빠가 그 섬을 전혀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공주가 말해 줘서 아차 싶었거든. 아빠도 삼촌이 걱정되니까, 당연히 갈 거야.”

“아빠….”

“그냥, 아빠느은.”

아빠는 애써 서운함을 감추려는지 장난처럼 말했다.

“공주 엄~청 사랑하는데. 공주는 별로 아빠 안 사랑하는 것 같아서 섭섭해서 그러지.”

“아니야! 나 세상에서 아빠 제일 사랑해!”

나는 아빠 목을 잡고 매달렸다.

“난 아빠 없이 못 살아….”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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