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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181화 (182/261)

181화

“진짜?”

“응….”

아빠는 피식 웃더니 나와 번뜩 눈을 맞추며 물었다.

“아빠 진짜 안 죽지? 거기 아빠가 잡을 수 있는 괴물만 있는 거 맞지?”

“응. 아빠 다치지도 않아. 그래서 내가… 너무 쉽게 말했어. 미안.”

“아냐, 괜찮아.”

내 뺨을 툭 건드린 아빠가 눈을 옆으로 굴리며 덧붙였다.

“하지만 내일까지 공주한테 삐져있을래.”

“으응?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지금 풀어 주라….”

“싫은데에.”

앗, 알았다.

애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흐음, 제임스 씨 삐진 거 풀려면 내가 뭘 하면 될까~?”

모른 척 능청스럽게 묻자, 아빠는 웃음을 참다가 입을 쭉 내밀었다.

“뽀뽀해!”

* * *

이튿날.

황제궁, 알현실.

황제, 니콜라스는 먼저 연락해 온 오스카를 앞에 두고 있었다.

오스카의 옆에는 에녹의 딸, 리리스도 함께였다.

“전에 공녀의 마탑 영입을 도와주시겠다고 했던 제안, 유효합니까?”

오스카의 부탁을 떠올리자 니콜라스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렇게 빨리 몸이 달아 찾아올 줄은 몰랐군.’

과연, 옛날부터 한결같이 아이를 눈독 들여왔던 오스카다웠다.

“얘야, 혹 아버지가 마탑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말리는 게냐?”

니콜라스가 넌지시 물었다.

케이크에 정신이 잔뜩 팔려 있던 리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옆에 있는 오스카의 눈치를 봤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아하.”

아이다운 이유였다. 니콜라스가 슬쩍 웃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아직 어려서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너는 낮은 계급이기 때문에 가문을 물려받기보다 마탑에 들어가는 것이 더 출세할 수 있는 길이다.”

“그치만 거기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만 해야 한대요. 저는 지금 한 시간씩 공부하는 것도 싫은데….”

시큰둥한 리리스의 말을 듣고 있던 오스카가 쯧, 혀를 차며 고개를 틀었다.

둘의 모습을 보며 니콜라스가 피식 웃었다.

‘하긴. 말 몇 마디로 아이를 꾀어내는 게 쉬웠으면 진작 데려갔겠지.’

리리스는 불편했는지 포크를 내려놓고 우물쭈물했다.

“갖고 싶은 게 있느냐?”

“네?”

“네 아버지도 너에게 못 해 주는 것들 말이다. 나는 네게 뭐든지 해 줄 수 있으니 편하게 말해 보거라.”

“…폐하께서 왜요? 음, 제가 마탑에 공부하러 가는 대신에요?”

“뭐, 그렇지.”

아이는 눈을 굴렸다.

“제가 공부하러 가야 폐하께 좋은 일이에요?”

“마탑주가 너를 더 가르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겠지. 인재들이 좋은 마법식을 많이 만들어낸다면 당연히 내게도 좋은 일이다.”

“아, 네에.”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에게, 니콜라스가 한 번 더 물었다.

“바라는 게 없나?”

“음….”

고민하던 리리스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이내 뭔가 떠올랐는지 멈칫하며 망설였다.

“뭔가 있는 모양이구나. 말해 보거라.”

“저, 저… 그럼요….”

아이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번에 삼촌 벌 주신다구 한 거…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음?”

“실은 불났던 데, 삼촌한테 제가 놀러 가자고 해서 간 건데…. 저 때문에 삼촌이 폐하께 혼나서요….”

니콜라스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그건 곤란하지.’

악시온은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마탑에 보내야만 오스카에게 빚을 지울 수 있는데….

“삼촌이 걱정되는 게냐?”

“네에.”

“네가 그렇게 걱정할 만큼 무서운 벌은 아니다. 나는 그저 마수 토벌을 명했을 뿐이야. 그건 네 아버지도, 삼촌도 항상 하는 일이지.”

“아! 그렇구나. 그치만….”

손을 꼼지락대던 아이가 소심히 눈만 들며 덧붙였다.

“아빠가 괴물 잡으러 가는 건 안 무서운데… 삼촌이 가면 무서워요. 아빠는 항상 괜찮은데, 삼촌은 맨날 다쳐 오고 그러니까….”

“하하, 생각보다 악시온 경과 친한 모양이구나.”

“어렸을 때부터 쭉 봐 왔으니까 당연하겠죠.”

아이가 뭔가 바란 건 처음인지, 오스카는 흥분해서 끼어들었다.

얼른 부탁을 들어주고 리리스를 마탑에 데려갈 수 있게 해 달라는 눈치였는데….

‘정말 곤란한데.’

잠시 손가락을 까딱이며 고민하던 니콜라스가 아, 탄성을 터뜨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이번에는 보는 눈이 많았던지라 아무 징계도 없이 지나갈 수는 없고, 악시온 경이 이미 출정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니….”

천진하게 눈을 깜빡이는 아이.

니콜라스는 웃음을 삼켰다.

“이번 토벌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 악시온 경의 잠정적 은퇴를 약속해 주지.”

“…네?”

고개를 갸웃하는 리리스에게 니콜라스가 덧붙였다.

“삼촌이 다치는 게 걱정된다고 하지 않았나? 괴물을 잡으러 가지 않으면 다칠 일도 없겠지. 네가 마탑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하면, 내가 앞으로는 악시온 경을 모든 출정에서 제외하도록 하겠다.”

“와! 정말요?”

리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 할게요! 그럼, 저 열심히 공부할게요!”

“아하하. 착한 아이구나.”

니콜라스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렇게 쉬울 줄이야….

말장난 한 번으로 마탑주에게 빚을 지웠다.

이 약속은 의미 없었다. 악시온은 어차피 이번 출정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 * *

마탑, 오스카의 집무실.

“…그래서, 리브르 공작의 은퇴를 약속해 줬다니까요? 임시적이긴 해도, 나중에 딴말하면 내 눈치가 보일 거 아냐? 그러니 애가 마탑에 있는 동안은 잠정적 은퇴 맞지, 뭐.”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오스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정말이야?”

연락했더니 왜인지 완전 무장을 하고 찾아온 에녹은, 집무실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다가 기함했다.

“네. 그런데 내가 말한 거 비밀로 해 줘요. 자기 발로 황제 놈 찾아간 거 알면 아빠가 길길이 날뛴다고 절대 말하지 말랬는데….”

오스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협상을 했으니 애가 이제 마탑에 들어오긴 해야 해서… 당신 허락을 안 받을 수는 없잖아요?”

“와, 세상에.”

에녹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 공주 천재인가? 너무 똑똑한데?”

“아, 당연하지. 내 인정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라고요.”

리리스를 칭찬했는데 어깨가 솟은 건 오스카였다.

에녹이 그를 흘겨보았다.

“누가 보면 마탑주 딸인 줄….”

“아니, 그런데. 황제 놈이 내 생각보다 엄청 멍청하더라고요.”

오스카가 킬킬거렸다.

“그냥 이번 한 번만 봐달라는 애 부탁 들어주면 될 걸, 뭐 하러 은퇴를 약속해 줘? 빡대가린가?”

“빡대가리면 좋겠네. 그랬으면 내가 진작 끌어내렸지.”

에녹이 마법진을 마저 그리며 푹 한숨 쉬었다.

“악시온의 은퇴를 약속한 건 아무 의미도 없어. 황제는 자기 손해 보는 짓은 절대 안 하는 인간이야.”

“뭔 소리예요?”

“마탑주 말대로 이번 한 번만 봐주면 될 걸, 그렇게 안 한 이유가 뭐겠어?”

에녹이 황제를 떠올리며 웃었다.

“이번에 악시온을, 사지에 보내려 했을 테니까. 어차피 살아 돌아오지 못하니 은퇴든 뭐든 의미 없지.”

“…? 뭐래. 리브르 공작, 북부 쪽에 출정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거기 뭐 대단한 마수가 있나?”

“북부 아닐걸.”

“그럼 어딘데요?”

에녹이 이내 완성한 마법진 위에 올라가, 검지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지금 내가 가려는 곳.”

“그러니까 어디냐고요?”

“모아르테 제도.”

“…….”

일순 멍해진 오스카가 서서히 입을 벌렸다.

“미, 미, 미친놈. 그거 진짜예요? 거기에 보낸다고?”

“새삼스럽게 뭘.”

에녹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며 허리춤에 찬 검을 점검했다.

“잠깐, 잠깐. 지금 그럼 당신이 거기 가서 뭐 하게? 미리 쓸어놓게?”

“그래야지. 내가 아는 황제라면 분명 출정을 피할 수 없게 악시온을 협박했을 테니까.”

털어놓고 같이 머리를 맞대 볼 만도 한데, 악시온은 말을 아꼈다.

모아르테 제도가, 에녹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사지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기 목숨과 친구의 목숨을 저울질하며 괴로워하는 에녹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테니….

“당신은 거기 가면 살아 나올 수 있고요?”

“아마도? 공주가 가도 된다고 했으니까. 나는 무사하겠지, 뭐.”

에녹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스카는 어두워진 에녹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뭐, 맞아. 솔직히 너무 무사해서 황당했을 정도였지.’

모아르테 정벌.

오스카도 잘 알고 있다.

회귀 전, 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니까.

고작 능력자 한 명이, 섬 전체의 마수를 전멸시키고 제국 깃발을 꽂고 돌아왔었다.

“믿을 만한 몇 놈 데리고 같이 갔다 오지 그래요? 애가 확답을 줬다고 해도, 당신도 사람이니까 무서울 텐데?”

“맞아. 무서워. 용케 알아봤네?”

사지에 뛰어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회귀 전과 달리, 지켜야 할 딸이 있는 에녹은 초조해 보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 잘못되면 우리 공주를 부탁해. 흑흑.”

“…….”

에녹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마나를 흘렸다.

“이, 이봐요! 잠깐만! 그….”

“엉? 뭐라고?”

마법진에 스민 푸른 빛이 시야를 가려, 가까워지는 오스카의 모습이 흐려졌다.

* * *

붉은 노을이 지는 하늘.

멀리 보이는 유려한 산의 능선.

선선한 바람, 향긋한 바다 내음….

한가롭고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할 새도 없이, 에녹은 놀랐다.

“……?”

옆에는 충동적으로 마법진 안에 들어온 듯한 오스카가 함께 이동해 있었다.

“마탑주…?”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땅.

그래서 에녹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던 곳.

리리스의 확신이 있었다고는 해도, 걱정되는 마음에 에녹은 출발 전까지도 고민했었다.

법사단 인력 한 명쯤은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솔직히….

에녹은 감동했다!

“아, 뭐야~!”

에녹이 팔뚝으로 오스카의 허리를 쿡 질렀다. 오스카가 하릴없이 휘청거렸다.

“마탑주, 설마 나 걱정돼서 따라온 거야?”

“하….”

오스카는 멍한 눈으로 제 머리를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미친 건가…?”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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