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가 힘을 숨김-183화 (184/261)

183화

“마탑주.”

“…….”

“이봐.”

오스카는 나무라려는 에녹을 알아봤는지 대꾸 없이 딴청만 피웠다.

“대체 거짓말은 왜 하는 거야? 이런 게 있으면 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뭐라고 해? 섭섭하네, 진짜?”

“…….”

“힘 좀 그만 숨기라고!”

“아아아! 알았어요, 알았어!”

오스카가 빽 소리쳤다.

“애 아니니까, 잔소리 그만!”

“이게 잔소리야? 아니, 나도 우리 편 전력은 파악하고 있어야 할 거 아냐?”

“어우, 진짜. 잔소리 대마왕. 애는 도대체 이런 아빠랑 24시간 어떻게 지내지?”

“우리 공주는 마탑주처럼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그러지 않거든?”

“예, 예. 알았으니까.”

귀를 후비적거리던 오스카가 고요해진 섬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방금 그것들이 전부인 건 아니겠죠? 고작 땅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 거미 몇 마리 때문에 여기 토벌하러 온 인간들이 다 죽어 나갔다고?”

“그 ‘고작’ 두더지 거미 징그럽다고 방금 막….”

“이거, 이거. 내가 센 거야, 다른 놈들이 약해빠진 거야? 저기요, 집에 가면 애한테 꼭 말해줍시다.”

에녹의 말을 자른 오스카가, 그의 어깨에 제 팔꿈치를 턱 걸치며 우쭐해 했다.

“여기 괴물들, 아빠가 아니라 스승님이 싹~ 다 잡았다고. 알았죠?”

“그래, 그럴게.”

에녹이 환하게 웃으며―

“징그러워! 징그럽다고오오!”

―호들갑 떨었던 몇 분 전의 오스카를 따라 했다.

“…라고 수선 떨었던 것까지, 안 빼놓고 다 전해 줄게.”

“미쳤어요?! 말하면 죽어, 진짜!”

사색이 된 오스카가 소리쳤다.

그를 놀리며 킬킬거리던 에녹이 나직이 읊조렸다.

“마탑주.”

“뭐요?”

어느샌가 진지해진 에녹의 눈이 멀리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를 따라 시선을 튼 순간.

어둠에 묻힌 산등성이에서 불길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설마 이제 시작인 건 아니겠죠?”

“바로 그거야.”

에녹이 씩 웃으며 검을 바로 쥐었다.

동시에 산속에 숨어 있던 비행형 마수들이 달빛 아래 널찍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하, 씨.”

오스카가 얼굴을 쓸며 중얼거렸다.

“내가 진짜 왜… 사서 고생을 하러 왔을까….”

“가 보자고! 밤은 기니까!”

에녹이 신나서 외쳤다.

* * *

“여기, 키 크고 몸 좋고 잘생긴 아저씨 안 왔나요? 머리는 까맣고 눈동자는 보라색이에요.”

“그런 투숙객은 없는데요.”

여관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뒤에 있던 체시어에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여관을 나섰다.

벌써 17곳이 허탕이었다.

“삼촌 대체 어디 숨었지?”

“이만 돌아가자. 너 피곤해 보여.”

“아냐! 나 괜찮아!”

―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거의 반나절 내내 제도를 이 잡듯이 뒤졌던 터라 피곤하긴 했다.

“워프 게이트는 안 탔다고 하니까 제도 안에 있을 텐데….”

제도는 넓었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달까.

“공작님 며칠 걸리신댔지?”

“아빠? 보름 정도?”

원작에서 에녹 루빈슈타인은 보름 만에 모아르테 제도를 정벌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동 마법 있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까 낮에는 집에 와서 자겠다고 했어. 해 떠 있을 때는 괴물 안 나온대.”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내일 공작님 오시면, 아버지는 그때 나 혼자 찾으러 갈게.”

체력 짱짱한 체시어는 악시온을 더 찾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 귀가를 권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혼자 더 찾아볼래? 난 진짜 더 돌아다녀도 괜찮은데, 네가 자꾸 나 신경 쓰니까 집에 가 있을게.”

“안 돼. 집이라도 너 혼자 있는 건.”

체시어는 단호하게 고개 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

‘과보호 답답해라.’

어디 체시어뿐인가.

아빠도, 악시온도 그랬다.

내가 안전한 집에, 이불 안에 꼭꼭 숨어 있어도 누구 하나 안심하지 못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황제 앞에 끌려갔다 온 이후로는 더더욱.

“집에 가자.”

“체시어, 그러면….”

염치없지만 이 시간이면 퇴근했을 테니까 오스카에게 가 있겠다고 하려는데.

“맞다! 아니, 나 바본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대체 왜 이렇게 직접 발로 뛰면서 악시온을 찾고 있었지?

“음하하하!”

“……?”

“체시어 경, 내가 누군가!”

나는 허리에 착, 손을 얹고 제법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체시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짐은 못 하는 것이 없느니라!”

“아.”

이내 깨달았는지 탄성을 터뜨리는 체시어에게 웃어 주고, 나는 팔찌를 들여다봤다.

‘제도에서 악서방 찾기! 나에게는 식은 수프 먹기보다 쉽다!’

어디, 위치 추적에는 얼마나….

2years

“……?”

그래, 악시온도 도스였지.

주변 사람들 능력치가 너무 세서 잠시 잊고 있었다.

허세 부렸던 게 민망해져서, 나는 우물쭈물하다 사과했다.

“미안, 체시어. 삼촌 쎄네….”

“…아냐.”

“흠흠, 있잖아. 그럼 나 그냥 스승님한테 가 있을게….”

* * *

날 맡겨놓고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체시어와 함께, 오스카의 집무실로 향하는 중.

체시어는 오스카를 만날 때마다 꼭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처럼 안색이 어두웠다.

“힘 숨기면 재밌어? 솔직히 즐기고 있지? 이게 맞아? 응?”

“와, 사람 끈질긴 거 봐라? 그만 좀 하라니까요? 다 잡고 왔으면 된 거지, 왜 자꾸 잔소리야!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고요한 복도를 걷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막 집무실에서 나온 듯한 아빠와 오스카가 빽빽 언성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빠?”

“엥? 공주?”

아빠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뭐야! 공주, 여기 왜 왔어?”

“나는 스승님 보려고 왔지. 아빠 뭐야? 왜 여기 있어?”

한밤중.

모아르테 제도의 마수들이 한창 극성일, 토벌 골든타임.

그런데 왜 이 시간에 아빠가 여기 있지?

“오늘 안 갔나 보네? 아니면 설마, 괴물들 너무 강했어? 그래서 일단 후퇴하고 온 거야?”

“아빠가?”

아빠는 피식 웃었다.

“아빠 몰라? 후퇴라니. 설마 아빠 사전에 그런 단어가 있을까?”

저 표정은….

‘자기 자랑? 아빠답지 않은데?’

하지만 괜찮다.

사람들은 다 크든 작든 허세와 자기 자랑을 장착하고 있는 법이니까.

이때 딸이 할 일은, 칭찬과 함께 아빠를 추켜세워주는 것!

“아빠 대단해! 잘 싸우고 왔구나!”

“고럼, 고럼. 공주, 그리고 공주가 왜 아빠 보름이나 걸렸다고 했는지 알았어.”

“왜?”

“마수들이 지능이 있더라고. 심지어 꽤 높아. 전력 차이를 느끼면 숨어버리는 거 있지?”

“아!”

나는 단번에 말뜻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원작에서 모아르테 제도 정벌에 보름이 걸렸던 건….

‘아빠가 너무 세서 마수들이 숨어버리니까 나올 때까지 기다린 시간이 대부분이었나 보구나.’

역시 주인공!

“공작님, 저도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보름이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때, 듣고 있던 체시어가 말했다.

“아아, 체시어! 그럴….”

“그럴 필요 없다.”

갑자기 오스카가 아빠를 밀쳐 내고 나와 체시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양팔을 쫙 펼치며 거만하게 턱을 세웠다.

“가 봤자 이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엥?”

“이 대단한 오스카 마뉘엘 님의 활약으로, 거기 마수들은 오늘부로 씨가 말랐다.”

뭔 소리람?

나와 체시어는 어리둥절해진 눈으로 마주 봤다.

“뭐, 뭐예요? 스승님도 아빠랑 같이 갔어요?”

“그렇다. 내가 따라가니 네 아빠 입이 귀에 걸렸었지.”

“귀까지 올라가진 않았거든?”

이 말투, 이 목소리.

‘오스카도 자기 자랑이다!’

난 왜 아빠가 아까 허세를 부리려 했는지 깨달았다.

둘 다 우리에게, ‘내가 더 잘났다’면서 자기들의 활약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스승님, 대단해! 아빠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최고야!”

“하하하하!”

난 오스카의 허리를 잡고 안겨들었다. 그의 어깨가 치솟았다.

“그런데 씨가 말랐단 말은 뭐예요? 설마 괴물 다 잡았어요?”

“물론.”

오스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 아빠를 향해 까딱, 하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약속했죠? 애한테 나의 활약을 낱낱이 말해 주기로?”

“하아.”

아빠는 한숨 쉬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마탑주 없었으면 아빠 혼자서는 정말 보름 걸렸을 거야.”

“뭐야. 그게 다예요?”

오스카가 노려보자 아빠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으응, 그래. 비행형 마수가 나왔는데…. 아, 비행형 마수는 새처럼 생긴 거야. 날아다니니 잡기 힘든데 마탑주가 있어서 쉬웠지. 공격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니까 때맞춰 봉쇄 마법을 써 줬어.”

“…봉쇄 마법이 뭐죠?”

듣고 있던 체시어가 의아해하며 묻자, 아빠가 환히 웃었다.

“너도 모르지? 나도 몰라. 왜냐면 오늘 처음 봤거든. 듣도 보도 못한 마법만 오늘, 무려 다섯 종류를 보고 왔어.”

“예?”

“비행형 마수를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알았지 뭐야?”

아빠는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였지만, 오스카는 한없이 우쭐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다음에는 증식형 마수가 나왔지. 공격당하면 즉시 개체가 늘어나는 놈들이라 섣불리 공격 못 하는 종류인데….”

“늘어나기 전에 한 번에 없애면 되는 거 아닌가? 응?”

아빠의 말을 받아치는 오스카의 어깨가 이제는 하늘까지 치솟아 있었다.

“늘어나면 까다롭다고 알려 줬더니 공주 스승님이 한 번에 없앴어.”

“저, 정말? 이거 거짓말 아니고 다 진짜야?”

감탄하는 나를 보며 아빠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스승님 최고다! 아빠보다 더 센 거 아니에요?”

“으하하핫!”

나는 이때다 싶어 체시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지금 점수 따라.

“정말 대단하십니다. 마탑주님은 최고의 능력자이십니다. 저였으면 꼼짝 못 하고 당했을 겁니다.”

눈치 빠른 체시어의 입에서 자판기처럼 오스카 금칠이 튀어나왔다.

“하하하! 그렇지, 뭐. 칼잡이들이 아무리 강해 봤자 이 몸의 상대가 되겠어?”

한껏 거만해진 오스카가 나를 보며 덧붙였다.

“이제 내가 얼마나 센지 알겠지? 너,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고 맨날 펜만 잡느라 비실대는 무지렁이라고 나 무시했잖아? 네 아빠처럼 너 한쪽 팔에 번쩍번쩍 못 들고 진땀 뺀다고?”

“…?! 제가 언제? 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피해 의식 무슨 일이야?

아마도 오스카 혼자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내가 아빠 팔에 달랑 들려있을 때마다 아니꼽게 노려보더라니.

“아, 맞다! 매복형 마수도 있었어, 공주야.”

그때 아빠가 끼어들었다.

순간, 오스카의 얼굴이 굳었다.

“땅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솟아 나오면서 공격하는 괴물이거든?”

“저기요, 잠깐.”

갑자기 오스카가 다급한 눈치로 아빠를 돌아봤다.

아빠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미같이 생긴 괴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공주 스승님이, 징그러워오오옹~~~”

“으아아아악!”

얼굴이 시뻘게진 오스카가 잽싸게 달려들어 아빠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붑.”

“느그 은즈 그릈느그으!(내가 언제 그랬냐고요!)”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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