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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184화 (185/261)

184화

…대체 뭐 하는 거지?

아빠와 오스카는 한참 뒤엉켜서 서로 티격태격했다.

“어우, 진짜. 손! 다녀와서 씻지도 않은 손으로 더럽게!”

“시끄러워요! 맞다, 너! 나 보러 왔다고 했지? 왜, 뭔데?”

이내 오스카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말을 돌렸다.

“앗! 내 정신 좀 봐!”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빠, 지금 삼촌 찾으러 가야 해! 삼촌 집 나갔어!”

“뭐?”

순간 아빠 표정이 싹 굳었다.

“밖에서 출정 준비하겠다고 편지 써 두시고 나가셨어요.”

“…….”

체시어가 설명하자, 아빠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아빠, 그래서 체시어랑 같이 삼촌 찾고 있었는데….”

“찾지 마.”

“응?”

“뭐 하러 찾아. 이제 위험할 일도 없는데.”

아빠는 냉정하게 말하며 우리를 지나쳐갔다.

“아, 아빠?”

“얼른 와. 집에 가게.”

나는 오스카와 체시어를 돌아봤다.

갑자기 싸해진 아빠의 분위기에 오스카가 ‘왜 저러냐?’ 하고 입 모양으로 물었다.

“공주! 안 오고 뭐 해!”

“어어, 으응!”

나는 하는 수 없이 남겨진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야, 너! 내일… 알지?”

“앗! 네에!”

당황한 오스카가 급히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아빠를 따라나섰다.

* * *

잔뜩 화가 난 듯한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난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체시어가 돌아온 기척이 난 건, 새벽 네 시쯤.

“왔어? 삼촌은?”

“…….”

체시어는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내려온 날 보며 놀라더니 이내 고개 저었다.

“공작님 화 많이 나셨어?”

“으응. 그런 듯?”

체시어는 거실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실 만도 해. 전에 나한테도 엄청 화내셨거든.”

“전에 언제? 아, 너 칼 들고 폐하 방에 찾아갔을 때?”

난 체시어의 옆에 앉아 소심하게 말했다.

“내가 나 때문이라구 너한테 뭐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야.”

긴 한숨을 쉰 체시어가 덧붙였다.

“공작님은 반란의 성패보다 내가 잘못될까 봐 걱정해서 화를 내셨어. 그때 내가 황제를 공격했다면….”

체시어는 뒷말을 흐렸다.

그래, 그때 체시어가 황제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동반 자살이었겠지.’

반란은 최단기간의 루트로 성공했겠지만, 감히 한 나라의 황제를 죽인 죄를 묻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다.

“공작님은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반란을 성공시키길 원하셔. 하지만 이번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신 건, 그때 나처럼 죽겠다는 각오를 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겠지?”

“적어도 같이 상의라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한마디 말도 없이.”

“삼촌이 왜 그런지는 알잖아. 거기 뭐가 있는지 아빠도 가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는걸. 가면 다 죽는다는데, 삼촌은 괜히 아빠랑 너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버지 마음은 알아. 하지만 공작님의 마음도 이해돼. 두 분은 가장 친한 사이잖아.”

“…….”

“네가 없었으면 모아르테 제도를 미리 토벌해 놓을 생각도 못 했을 거고, 아버지는 그대로 죽으러 떠났겠지.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체시어는 입술을 물었다. 그는 조금 서운해 보였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 정도 의지도 안 되는 걸까, 싶어서 화가 났는데.”

“…….”

“생각해 보면… 나도 똑같이 굴었으니까. 그러면서 뭘 바라고 있나, 바보 같더라고.”

아빠가 ‘안녕, 공주야. 잘 있어.’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죽을 각오로 떠났다면.

‘나도 엄청나게 충격일 거야.’

체시어도 지금 비슷한 심정이겠지.

“그래도… 너도 느낀 게 있다니 다행이다. 너도 네 목숨 소중히 여겨 줘. 다 끝났는데 네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단 말이야.”

“…….”

난 생각이 많은 얼굴로 침묵하는 체시어의 손등을 내 손으로 덮어 주었다.

그는 그걸 물끄러미 보다, 자기 손을 돌려 내 손을 맞잡았다.

“…미안해. 바보같이 굴어서.”

우울한 목소리였다.

* * *

이튿날.

체시어는 날이 밝자마자 또 악시온을 찾으러 나갔고, 나는 마탑에 와 있었다.

“에휴.”

황제와 악시온을 두고 협상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마탑으로의 첫 출근날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은 전부 마탑 내 숙소에서 지낸답니다. 숙소는 3층인데, 공녀님의 방은 마탑주님의 지시로 9층에, 아주 호화롭게 따로 마련해 뒀습니다. 참고로 마탑주님 자택 바로 아래층이에요.”

내게 마탑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던 오스카의 보좌관, 로벨이 말했다.

나는 질겁했다.

“저, 저는 여섯 시 땡 치면 집에 가는데요? 스승님이랑 합의 봤는데?”

난 분명히 오스카에게 9 to 6의 근무 시간을 약속받았단 말이다!

“아하, 물론 알죠. 하지만 일정이라는 게 항상 변동 없이 진행되지는 않으니까요. 피곤하면 언제든 숙소를 이용하세요. 꾸미느라 애먹었으니까 가끔 쉴 때만이라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오스카가 내 방을 꾸며 놓으라며 얼마나 닦달해 댔을지는, 이를 가는 로벨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공녀님과 함께 공부할 친구들은 총 네 명입니다. 다들 평민이고요.”

“네? 평민이요? 평민들도 마탑에 영재 교육 신청할 수 있어요?”

“아뇨…. 그, 직접… 일일이….”

발품 팔며 찾아다녔구나!

오스카에게 시달린 나날들을 떠올리는지 순간 로벨의 표정이 울컥해졌다.

난 서둘러 말을 돌렸다.

“펴, 평민이면 디에즈죠? 비능력자도 있어요?”

“디에즈 없고 다 비능력자입니다. 마탑 연구원 중에는 비능력자가 꽤 있어요. 마탑은 마법을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마법식을 만드는 곳이니까요. 마법을 못 써도 마법식은 만들 수 있죠.”

“세상에! 엄청 신기해요. 마법을 구현하는 개념이 없는데 마법식을 어떻게 만들지?”

“그런 개념이 없어도 마법식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비상한 두뇌를 가졌으니 들어오는 거겠죠? 모두가 악랄한 마탑주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들어온 천재들입니다.”

“그, 그렇구나.”

난 소심해졌다.

여기 있는 애들은 두뇌가 비상한 ‘진짜’ 천재들일 테고, 나는 전생의 기억 때문에 그저 선행학습을 했을 뿐인 ‘가짜’니까!

‘어휴, 그래서 오기 싫었는데. 이게 부정 입학이 아니면 뭐냐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다 악시온을 위해서니까….

“자! 여기가 바로 공녀님이 근무… 아니, 공부하실 곳이고.”

[영재 교육실]

거대한 문에 고급스러운 팻말.

로벨은 영재 교육실 앞에 섰다가 곧, 바로 옆의 다른 문을 가리켰다.

[영재관리부서]

“여기는 제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마탑주님 뒤치다꺼리하느라 바빠서 계속 붙어 있진 않지만요. 그리고, 이거.”

로벨이 불쑥 뭔가를 건넸다.

최고급 가죽 커버 노트와 만년필.

“……?!”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노트 커버는 금색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가죽에 염료를 먹인 게 아니라 진짜 금을 갈아 덮은 것이었다.

게다가….

만년필 몸체도 금!

그 끄트머리에 달린 화려한 깃털 장식 이음새도 금!

“이틀 전에 황제 폐하께서 친히 마탑에 보내신 선물입니다. 공녀님의 마탑 입성을 독려하는 의미로요.”

“허어, 네에.”

난 손을 덜덜 떨며 내 몸값보다 비쌀 듯한 황제의 선물을 받아들었다.

‘이럴 돈 있으면 굶어 죽는 사람 빵이라도 하나 사 줘라!’

들고 다니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럼 가볼까요?”

로벨이 교육실 문을 열자, 넓은 테이블에 앉아서 열심히 펜을 끼적이던 아이들이 전부 고개를 들었다.

이 아이들이 바로….

‘미래에 전문직이 보장된 천재들이로구나!’

난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안녕? 반가워! 내 이름은 리리스 루빈슈타인이야.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공부하게 됐어. 잘 지내보자.”

인사했지만, 왜인지 애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뭐지?’

그들 중 제일 허여멀건 남자아이가 쓰고 있던 안경을 쓱 올리며 말했다.

“선생님, 얘 시험은 보고 들어온 거 맞나요?”

“음? 한스, 내가 말하지 않았니? 공녀님 실력은 선생님이 예전에 다 확인….”

“공녀님이요? 여기 공녀님이 어디 있는데요?”

한스가 불만스럽게 나를 노려봤다.

“마탑은 철저한 실력주의 아니었나요? 마탑주님은 이곳에서 신분과 계급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왜 선생님은 쟤한테 존댓말을 하시죠?”

…와, 이거 뭐지?

나는 오스카만큼이나 재수 없게 말하는 한스 때문에 멍해 있다가, 얼른 로벨에게 속삭였다.

“선생님, 그냥 리리스라고 불러주세요.”

“그, 그럴까. 으음, 그래. 리리스는 여기 앉고.”

로벨이 후다닥 가져다준 의자에 앉으려는데 한스가 발로 그것을 쭉 밀어냈다.

“선생님은 얘 시종이세요?”

“아니, 한스!”

“여긴 자기 실력을 증명하고 들어와야 하는 곳이야. 우리는 똑똑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어. 너처럼 부모님 잘 만나서 여기 쉽게 들어온 게 아니야.”

한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들린 돈 덕지덕지 바른 금장 노트와 만년필을 못마땅하게 노려봤다.

와! 이거 내가 산 거 아닌데!

나는 민망해져서 얼른 그걸 뒤로 숨겼다.

“한스! 너 왜 그러니? 분명히 어제 잘 지내겠다고 선생님과 약속했잖아! 공녀, 아니, 리리스는 그렇게 들어온 게 아니고….”

“선생님은 가만히 계세요. 저희는 불쾌해요. 공부는커녕 허구한 날 인형 놀이만 했을 것 같은 아가씨랑 같이 묶여서 천재 소리 듣고 싶지 않아요.”

한스 포함, 나를 향해 하나같이 적대적인 눈빛.

‘얘, 얘네… 내가 가문발로 마탑에 들어오는 줄 알고 벼르고 있었구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는데 로벨이 내 귀에 속삭였다.

“미안해, 리리스. 마탑주님의 세뇌 교육 때문에 그래.”

세뇌 교육이라.

평민이라도 머리 좋으면 얼마든지 대우받을 수 있다고 자존감을 쭉쭉 높여준 모양이었다.

“여어.”

그때, 누군가 교육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스카였다.

“마탑주님!”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아이들은 로벨을 대할 때와 달리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를 반겼다.

태도가 흡사 광신도 같았다.

“음.”

오스카는 교육실 안의 묘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픽 웃고는 내 앞으로 걸어왔다.

“리리스 루빈슈타인.”

아이들의 태도를 예상했던 걸까?

그는 손에 들린 시험지를 팔랑거리며 말했다.

“너도 절차는 확실히 해야지? 여기 애들도 다 시험 보고 들어왔으니까.”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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