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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189화 (190/261)

189화

* * *

모아르테 제도 토벌 지원.

명목상의 출정 이유는 그러했으나 실은 악시온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군대였다.

사령관은 에녹 루빈슈타인.

그와 함께 배에 오른 대원들은, 닷새 전 악시온만 두고 돌아온 3계급의 셉티마군이었다.

“…죄송합니다.”

셉티마군의 부사령관은 에녹을 볼 낯이 없었다.

아무리 상관인 악시온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결국 죽음이 두려워 그를 홀로 버려두고 도망치지 않았나.

“면목이 없습니다.”

수습대를 보내기 전까지 출정했던 사실을 함구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어서, 그는 닷새 내내 죄책감에 잠도 못 이루었다.

“괜찮다. 넌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까.”

에녹은 분노하지도, 질책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허해 보였다.

또다시 모아르테 제도로 향하는 지옥 같은 세 시간이었다.

* * *

‘아빠는 지금쯤 도착했을까?’

오스카와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까 한 발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요. 삼촌이 하루 만에 말도 없이 떠나버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야, 두 발 늦었어도 큰일 났어. 네 아빠 혼자 갔으면? 보름 내내 칼이나 휘두르고 있었겠지? 그러다가 토벌군한테 걸렸어 봐라. 변명은 뭐라 할래? 심심해서 마수 잡으러 거기 가 있었다고?”

“맞아요!”

이건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오스카가 없었으면 상황은 매우 복잡해졌을 테니까.

“스승님 덕분에 하루 만에 괴물 다 잡은 거니까요. 스승님이 같이 가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바로 그거지. 내가 그것까지 다 계산에 넣고, 네 아빠 따라간 거야.”

오스카가 우쭐해했다.

“그런데 삼촌이 괴물들을 5일 만에 다 잡고 멀쩡히 살아 있다니 다들 안 믿겠죠? 아빠가 연기를 잘해 줘야 할 텐데….”

“연기할 필요 있나. 리브르 공작이 닷새 동안 거기 갇혀 있었던 건 다들 알고, 마수들 사체도 떡하니 증거로 남아 있는데. 안 믿고 배겨?”

악시온이 단신으로 섬을 토벌한 것처럼 꾸미려고, 아빠와 오스카는 꽤나 고생했다고.

“수가 너무 많아서 상식적으로 혼자 다 잡은 게 말이 안 됐거든. 해서, 내가 거의 태우고 나머지는 숨겨 놨었지. 그거 다시 늘어놨으려나?”

“아마도요?”

“야, 내가 그거라면 할 말이 또 많다. 너도 알겠지만, 네 아빤 놀고 나 혼자 괴물 거의 다 잡았잖아?”

“그랬죠, 그랬죠!”

또 시작된 오스카의 영웅담.

난 그의 비위를 맞출 준비가 만만했다.

“하아, 그래서 나 혼자 일하느라, 다 끝날 때쯤 마나가 똑 떨어졌지 뭐냐.”

“헉! 그럼 괴물 시체는 마법으로 쉽게 숨겨 놓은 게 아니었어요?”

“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오스카가 대뜸 소매를 어깨까지 쭉 걷었다. 나름 잔 근육이 탄탄히 잡힌 팔이 드러났다.

“이 우람한 팔로 번쩍번쩍 들어서 직접 옮겼다는 거 아니냐.”

“대박!”

솔직히 우람까진 아니지만 나는 열심히 맞장구치며 호들갑 떨었다.

길고 잘 빠진 모델 체형도 정말 멋진데 오스카는 왜인지 자기 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휴, 마탑주 곱게 큰 티 왕창 내더라. 마수들 사체 좀 같이 옮기자니까 싫네, 징그럽네, 힘드네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서 아빠가 일일이 다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날조된 사건의 진실도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

“스승님 정말 최고예요. 전 그럼 이만 점심시간이 다 끝나 가니까 다시 공부하러 가 볼게요.”

“야, 기다려. 너 일로 와 봐.”

“네?”

오스카는 일어나서 책상을 돌아오더니 자신만만하게 걷어붙인 자기 팔을 턱짓했다.

설마… 매달리라는 걸까?

참고로 날 한쪽 팔에 달랑달랑 드는 행동은, 아빠가 자주 하는 거다.

“그, 그렇게까지 안 해도 스승님 힘센 거 아는데?”

“스읍!”

이러다 실패하면 서로 민망해질 게 뻔했지만.

나는 하는 수 없이 살짝 내려준 오스카의 오른쪽 팔뚝을 살며시 붙잡았다.

“흡!”

이윽고 힘찬 기합과 함께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며 올라갔다.

“오오!”

뜬다, 뜬다!

…난 3초 정도 허공에 달랑 들렸다가 툭 떨어졌다.

“와!”

“후….”

오스카는 그새 이마에 맺힌 땀을 재빨리 훔치고 뻔뻔하게 말했다.

“야, 깃털인 줄 알았다.”

“…….”

“깃털인 줄 알았다고.”

“아, 네!”

나는 허겁지겁 그를 찬양했다.

“스승님 진짜 세다! 근육 빵빵! 완전 우람해!”

“봤지? 나도 할 수 있어. 네 아빠만 할 줄 아는 거 아니야.”

이로써 난 확실히 깨달았다.

어째선지 오스카가 아빠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다는 걸!

“스승님이 아빠보다 훨씬 쎄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오스카가 뿌듯하게 코끝을 훔치며 웃었다.

“최고의 마탑주! 지덕체가 완벽한 이 시대 최고의 남자!”

“하하하하!”

웃는 게 보기 좋다.

그래! 스승님이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지, 뭐!

* * *

그 시각, 모아르테 제도.

수습대가 도착했을 때.

섬에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아아….”

“이럴 수가….”

배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인 마수들의 사체.

과연, 대륙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종류들이었다.

“악시온 경의 희생으로 빚은 업적이다. 관리국에 표본을 전달해야 하니 마수들의 사체를 종류별로 배에 실어라.”

“예!”

에녹의 명령에 수습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으, 으아악!”

누군가가 유령이라도 본 듯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아, 악시온 경…?”

사체들 사이에 꽂힌 제국 깃발.

위엄 있게 펄럭이는 제국기와 함께 유유히 걸어 나오는 얼굴.

악시온이었다.

모두 놀라 말을 잃은 사이.

“악시온 경!”

에녹이 허겁지겁 달려가 살아남은 전우를 부서질 듯 끌어안았다.

“어, 어떻게… 어떻게!”

“…….”

악시온은 눈물 고인 연기까지 하는 에녹을 보며 민망했다.

몇 번 연습했지만 제대로 될까?

에녹의 뒤로 울고, 안도하는 대원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뻔뻔하게 연기할 엄두가 안 났다.

“아, 빨리 제대로 하라고.”

에녹이 조용히 속삭였다.

“흠흠.”

헛기침한 악시온이 에녹의 팔을 풀고 대원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토벌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수들이었지만 수가 예상과 달리 적었고, 해가 뜨면 숨어버리니 일거(一擧)에 싸울 필요도 없어 나 혼자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뭐라고? 설마, 혼자서 이 일대의 마수를 전부 토벌했단 말인가?”

에녹이 놀란 척하며 끼어들었다.

“그, 그렇지…. 어제저녁에 더 이상 출몰하지 않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의 악명은 과장되어 있었더군.”

“그렇다고 해도! 대체 누가 단신으로 섬 전체를 토벌할 수 있겠나!”

에녹이 대원들을 돌아보며 놀라워했다.

“악시온 경의 활약으로 모아르테 제도가 제국령이 되었군!”

비현실적인 상황.

그러나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와, 와아아아!”

멍해 있던 대원 중, 누군가 크게 함성을 터뜨렸다.

“악시온 경! 악시온 경!”

그것을 시작으로 모아르테 제도에 악시온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께서 모아르테 제도에 제국의 깃발을 꽂았다!!!”

* * *

“버러지들은 잘 제거했나?”

황제, 니콜라스가 보좌관, 라몬을 향해 물었다.

평민 거주 지역에 화재 테러를 꾸민 일은 실로 일거양득(一擧兩得).

이를 빌미로 악시온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에녹의 기세도 확실히 눌러 놓았다.

“예, 예….”

다만 계획된 테러였음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전부 죽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수고했군.”

은밀히 모았던 테러범들은 전부 가난한 가장들.

그들은 당장 굶어 죽을 가족들을 먹이고 입힐 수 있는 돈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었다.

조사할 여지도 없이 테러범들은 약속대로 전부 자살했으니, 사건의 전말은 영원히 비밀에 부쳐질 터.

“…….”

그러나 라몬은 만족해하는 니콜라스의 눈치를 보며 연신 긴장했다.

‘어, 어쩌지?’

혹시나 테러범들이 마음을 바꿔 도망치기라도 할까, 일일이 사람을 붙여 놓고 확인하였으나….

‘한 놈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딱 한 명.

당일 테러에 동참하지 않은 한 명을 놓쳤고, 행방이 묘연하였다.

제 목이 날아갈 일인지라 라몬은 사실대로 보고할 수 없었다.

“폐하, 오전에 모아르테 제도로 떠난 수습대가 귀환했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녹 경이 보고를 위해 알현을 청하였는데 들여보낼까요?”

“당연하지! 어서 들여라!”

니콜라스가 웃으며 일어났다.

전우의 시신을 짊어지고 돌아온 에녹의 표정은 어떨까.

“왔나?”

그러나 어째선지, 에녹의 표정은 기대와 달리 태연했다.

그는 웃으며 묵례했다.

“예, 폐하. 새로운 제국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뭐?”

순간, 니콜라스는 멍해졌다.

“그게 무슨…?”

말뜻을 이해할 새도 없이, 니콜라스의 눈이 빠질 듯 커졌다.

뒤따라 들어오는 얼굴.

“폐하.”

악시온 리브르였다.

“뭣? 자네가, 자네가 어떻게…?”

니콜라스는 눈을 의심했다.

자잘한 상처, 흙먼지를 뒤집어쓴 갑옷 차림.

‘살아 돌아왔다고?’

멍하니 입을 벌린 니콜라스의 앞에, 악시온이 절도 있게 부복했다.

“신하, 악시온 리브르가 명하신 대로 모아르테 제도를 정복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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