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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193화 (194/261)

193화

오스카가 놀리듯 마법식 종이를 다시 품에 넣었다.

“우리 폐하께서는 차암, 손해 보기 싫어하신단 말이죠. 리브르 공작 같은 고급 인력의 은퇴를 너무 쉽게 약속해 주시길래 어쩐지 이상했는데.”

“…….”

“설마 공작이 정복 영웅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셨을 거야. 그쵸?”

“마탑주.”

“루빈슈타인 공녀가 마탑에 들어와서 제가 요즘 살맛이 납니다. 출근길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초조한 니콜라스와 달리 오스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폐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성의를 보여 줘서 고맙네. 내게 큰 도움이 될 걸세.”

니콜라스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손을 내밀었다. 마법식에 뒤집힌 눈을 숨기지도 못하는 그 모습에 오스카는 웃고 말았다.

“남들 모르게 어린애랑 한 약속이었다고 딴말하실 건 아니죠?”

“…….”

“삼촌 은퇴했다고 좋아 죽던데. 받았던 사탕 뺏기고 저한테 와서 질질 짜면 답이 없어서요.”

협박이었다.

니콜라스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대륙 통일의 그림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재빨리 저울질했다.

강력한 침략 군대를 꾸릴 것이다.

‘체시어 리브르.’

사령관은 새로운 시대의 강자인, 체시어 리브르.

‘그리고, 마법 전투 부대.’

그의 수하로 꾸릴 마법 계열 능력자들에게는 한층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때문에 니콜라스는 마법식이 간절했고, 다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는 그날, 악시온이 살아 돌아올 줄 모르고 리리스와 덥석 해 버린 약속을 후회했다.

“그래, 마탑주….”

“…….”

“설마 내가 한 입 가지고 두말하겠나. 악시온 경에게 공식적인 출정 명령을 내리는 일은 없을 걸세.”

그 말에, 오스카가 다시 품에서 마법식을 꺼내 건넸다.

받아드는 니콜라스의 손이 떨렸다.

“폐하께서 그리는 그림을 완성하시려면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뭐?”

“에이, 뭘 놀라고 그러십니까. 말로만 하는 거래인데 저도 담보는 갖고 있어야죠.”

천천히, 하나씩, 먹이를 던져 주듯 마법식을 내놓겠다는 뜻이다.

“내가…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지 않았나. 악시온 경을 출정시키는 일은 없을 거래도?”

“풉.”

오스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바봅니까? 마법식만 받아 가시고 딴말해도 폐하께 누가 감히 뭐라 하겠어요? 저만 손해지.”

“…….”

“애가 머리 좀 더 크고, 마탑에 자의로 눌러앉을 생각을 해야 저도 안심을 하죠. 당장은 폐하께서 해 주신 약속이 아니면, 애 못 잡아놔요.”

니콜라스가 지그시 눈을 감고 화를 삭였다.

이 건방진 사내는 감히, 지금부터 황제인 자신을 조련하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 거래를 원만하게 유지하고자 하신다면, 앞으로도 좋은 처신 부탁드리겠습니다.”

큭큭 웃으며 오스카가 일어났다.

니콜라스는 아주 오랜만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차마 터뜨리지는 못했다.

“그럼 전 다시 연구에 매진하러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탁.

유유히 떠나간 오스카의 뒤로 닫힌 문.

“으아아아악!!!”

쨍―!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니콜라스가 찻잔을 문 위로 내던졌다.

“이, 건방진, 놈이….”

분노로 악문 그의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으아아아악!!!”

쨍―!

황제의 명으로 사람들을 전부 물린 고요한 알현실 복도.

분노한 니콜라스의 소란이 새어 나오자, 오스카가 실소했다.

“잘 참다가 왜 저런대? 내 귀엔 안 들리게 하셔야지.”

대수롭지 않게 계속 걷던 걸음이 멎는 듯하더니, 오스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죽을 날 받아 놓은 놈이라 무서울 게 없거든.”

이내 매서운 눈으로, 그가 닫힌 문을 돌아보았다.

“내가 너는 꼭, 지옥 가는 길에 길동무로 삼아 주마.”

* * *

그날 저녁.

난 일하는 아빠 무릎에 앉아 오늘 마탑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어휴, 아버지는 또 왜 거기까지 가신 거야. 바쁜 사람 앉혀 놓고 고생시켰네.”

“할아버지는 잘못 없어. 내 걱정에 그러신 거니까. 스승님 잘못도 없구. 잘못이 있으면 바로 내 존재가 아닐까?”

“……?”

아빠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 그래?”

난 아빠 책상에 어지럽게 늘어진 책이며 서류들을 보았다.

불용 마법, 회귀, 사라진 사람들.

벌써 몇 년째. 아빠는 오스카를 살릴 방법을 찾으려 매달리고 있다.

“내가 스승님 인생을 망쳤어.”

“그런 거 아니야.”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도 그 시간을 다 나한테 쓰고 있어.”

“공주야.”

“스승님이 죽으면 난 어떡하지?”

“안 죽어.”

“뭘 안 죽어!”

저항 없이 눈물이 터졌다. 나는 아빠 잘못이 아닌데도 아빠에게 화를 냈다.

“회귀 마법 썼던 사람들 다 감쪽같이 사라졌잖아! 죽는다구! 죽어!”

“꼭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어. 말 그대로 시체도 없이 사라진 거니까. 죽은 걸 확인하지는 못했잖아.”

아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끌어안아 달랬다.

“진정해, 공주야.”

“그게 더 나빠! 확실히 죽는 거면 내가 다시 살려 줄 수라도 있지! 대체 소멸이 무슨 뜻이야? 사라지는 게 뭐야? 뭐냐구!”

난 아빠 품에 안겨 울었다.

“으허엉.”

회귀 마법의 대가는 소멸.

하지만 그 ‘소멸’의 정확한 의미는 당사자인 오스카도 모른다.

오스카 이전에 회귀 마법을 시도했다고 추측되는 인물들이 전부 실종 상태였기 때문에, 그 대가가 ‘사라지는 것’이라 짐작할 뿐.

죽으면 내 생명력을 써서라도 다시 살리면 그만이지만.

오스카가 최후의 날에 정확히 어떤 상태가 되는지 가늠도 못 하기 때문에, 나는 내 능력을 어찌 써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약속했잖아, 아빠아…. 스승님 살릴 방법 찾아 준다고 했잖아….”

아빠는 대답 없이, 우는 나를 안고 달래기만 할 뿐이었다.

“아빠 못하는 거 없잖아…. 제발, 부탁이야….”

언제부턴가 아빠는 선뜻 확신해 주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고.

항상 그렇게 말했던 아빠였는데.

* * *

울다 지쳐 잠든 리리스를 소파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 준 에녹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하아.”

벌써 4년이나 매달렸지만, 그는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파악한 것은 회귀의 원리뿐.

시간을 돌렸던 시점이 다시 돌아오면 시전자는 대가를 치른다.

‘어떻게 사라지는 걸까.’

마법 명문, 마뉘엘 가문에 기록된 실종자만 세 명. 짐작건대 그 셋 모두 회귀를 시도했을 것이다.

죽은 흔적도 없고 향후의 거취를 아는 목격자도 없다.

말 그대로 증발이었다.

‘알베르토 마뉘엘.’

에녹은 오스카와 상당히 닮은 중년 남성의 초상화 몇 점을 펼쳐놓고 살폈다.

그는 선대 마탑주이자 오스카의 조부로, 실종자 중 하나였다.

까마득한 선대인 나머지 두 실종자와 달리, 정말 증발해 버린 것이 아니라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나이.

“주인님.”

그때, 집사 렘이 조심히 들어와 보고했다.

“<붉은 매>에서 또 은밀히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주인님이 조사하시는 일에 관련된 사람이라고….”

“아, 그래.”

에녹은 감흥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마법의 조사를 돕는 <붉은 매>는 종종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 보내 왔지만, 성과는 없었다.

전부 돈 때문에 담대하게 찾아온 사기꾼들이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에녹이 힘없이 일어나자, 기척을 느꼈는지 자고 있던 리리스가 놀라 푸드덕 깨어났다.

“에고. 공주, 깼어?”

“어, 응….”

아이는 여전히 눈이 붉었다.

에녹이 한숨 쉬었다.

* * *

“또 사기꾼일까?”

“글쎄. 공주는 자러 가지 그래? 아빠만 만나 봐도 되는데.”

“아냐, 나도 볼래.”

회귀 마법을 조사하는 4년 동안 많은 사람이 아빠를 찾아왔다.

회귀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있다, 실종자를 만난 적이 있다….

별의별 말을 해 댔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사기꾼이었다.

“얘기 나누십시오.”

집사, 렘 아저씨가 로브를 푹 눌러 쓴 남자 한 명을 들여보냈다.

‘얼굴 가린 것부터 사기꾼 냄새 풀풀 나네.’

시작부터 힘이 빠졌다.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로브를 벗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런데….

‘뭐지? 이상해.’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려던 난 눈을 비볐다.

인상이 흐릿했다.

특징 없는 얼굴.

그런데 단순히 특징이 없다… 라고 하기에는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 뭐지?’

분명 내 앞에 앉아 있고, 얼굴을 눈에 담고 있는데.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기분.

그래, 꼭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인지’하기가 힘들었다.

꿈에서 깨면 꿈의 내용이 흐릿하듯이….

이대로 이 사람이 뒤돌아 나가면, 어떻게 생긴 얼굴이었는지 1초 만에 까먹을 것 같은.

그런, 묘한 위화감.

“아빠….”

아빠를 보니,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모양인지 눈을 가늘게 뜨며 노인의 얼굴을 재차 확인했다.

노인은 작게 웃었다.

마치 나와 아빠가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는 듯.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나는 이솔렘 왕국에서 왔습니다. 타국에까지 손을 뻗칠 정도였으니, 공께서 은밀히 찾으시는 바가 매우 간절한 듯해 이리 찾아왔지요.”

“왕국민이십니까?”

아빠의 질문에, 노인은 무심코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아.’

나는 저 반응을 잘 안다.

오스카가 회귀의 ‘금제’에 걸릴까 봐 말을 아낄 때면 저러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많은 말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나는 이제 늙어서 곧 죽을 몸이니… 죽기 전에 선물이나 드리고 갈까 해 찾아온 겁니다.”

노인은 얼굴을 들고,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얼굴을, 잘 보십시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것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뿌연 느낌이라 여전히 인지하기 힘들다.

“내 죽음으로 부디, 당신들이 찾는 바를 깨닫길 바랍니다.”

“그게 무슨….”

“나의, 이름은, 알베르토 마뉘엘입니다.”

……?

그 순간, 노인이 목을 붙잡았다.

그는 울컥, 피를 토하며 고통스레 눈을 치뜬 채 고꾸라졌다.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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